|
불취무귀(不醉無歸)
취하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는 뜻으로, 백성들의 생활이 풍요로워 마음껏 취하도록 술을 마시며 즐길 수 있다는 말이다.
不 : 아닐 불(一/3)
醉 : 취할 취(酉/8)
無 : 없을 무(灬/8)
歸 : 돌아갈 귀(止/14)
출전 : 시경(詩經) 소아(小雅) 잠로(湛露)
이 성어는 시경(詩經) 소아(小雅) 第2 남유가어지십(南有嘉魚之什) 잠로(湛露)에 나오는 말로 천자(天子)가 제후(諸侯)들에게 연회를 베풀었을 때 부른 노래라고도 하며, 정조(正祖)가 즐겨하던 건배사라고도 하는데, 그 내용의 1장은 다음과 같다.
잠로(湛露)
(흠뻑 젖은 이슬)
촉촉이
내린 이슬이 옷깃을 적시는
새벽녘이 되었는가,
햇빛이
나지 아니하면 이슬은
마르지 아니하나니,
밤이
깊어갈수록 편안도 깊어져
잔치는 절정으로 치닫고,
이 어찌
취하지 아니하고
홀로 돌아갈 수 있으리.
湛湛露斯(쟙쟙로사)
匪陽不晞(비양불희)
厭厭夜飮(염염야음)
不醉無歸(불취무귀)
조선 정조임금은 술에 관대했다. 역사적 사실도 이를 증명한다.
때는 1796년(정조20년) 4월11일 2경(밤10시). 성균관 유생 이정용이 술에 취해 궁궐 담장 아래에서 잠을 자다 붙잡혔다.
당시 ‘일성록’에도 ‘유생이 술에 취해 야금을 범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임금이 사는 궁궐 담벼락을 베게 삼아 큰 대(大)자로 누워 잠을 잤으니 중죄라면 중죄다.
그러나 정조는 죄를 묻는 대신, “조정 관료와 선비들은 주량이 너무 적어서 술에 취하는 풍류를 모른다.이 유생은 술 마시는 멋을 알고 있으니 매우 가상하다. 술 값으로 쌀 1포를 지급하라.”고 명한다.
술에 약한 정약용에겐 필통에 술을 부어 마시게 했을 정도로 짓궂었던 정조는 술을 마다하지 않았다.
시경(詩經)에 나오는 염염야음 불취무귀(厭厭夜飮 不醉無歸), 흐뭇한 술자리 밤에 벌어졌으니, 취하지 않고는 돌아가지 못하리라며 술을 권했다. 不醉無歸는 현재까지 건배사로 인용될 정도로 유명한 구절이다.
군자의 음주는 공자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공자는 술 마시고 흥청거리는 모습에 대해, “백날을 수고하고 하루를 즐기는 것”이라며 개의치 않았다.
논어 향당편(鄕黨篇)에는 ‘오직 주량은 한정이 없으시되 정신이 혼란스러운 데는 이르지 않으셨다(唯酒無量 不及亂)’고 공자의 음주법을 전한다.
술자리가 빈번하게 이뤄지는 때다. 여전히 취하지 않고는 돌아가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분위기가 있긴 하나 주법은 예전과 같지 않다.
밤 9시면 문을 닫는 장소에서 모임을 갖는 신데렐라 송년회가 인기를 끌고, 아예 술을 마시지 않거나, 석잔 이상 마시지 말라는 지침을 따른다.
꽃은 반쯤 핀 것이 좋고 술도 반만 취한 것이 좋다는 얘기다. 적절히 마시고 중간에 그칠 줄을 아는 적중이지(適中而止)의 주법이다.
술꾼들은 술 취하는 단계로 네 단계를 꼽는다. 긴장된 입이 풀리는 해구(解口), 미운 것도 예뻐 보이는 해색(解色), 분통과 원한이 풀리는 해원(解怨), 인사불성이 되는 해망(解妄)이 그 것이다.
건배사로 인기를 끈 ‘인사불성(인간을 사랑하면 불가능도 성공이 된다)’이면 좋으련만 해망(解妄)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올 송년회는 ‘한가지 술만으로 일차에서 9시까지만(119)’ 하거나 ‘8시에 만나 9시에 끝내고 2차는 없는(892)’ 자리이길...
🔘 술(酒)
우리 민족이 즐겨 마시는 술은 거른 형태에 따라 청주(淸酒; 소주)와 탁주(濁酒; 막걸리)로 나뉜다. 이는 자연스럽게 고급 술과 대중 술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옛사람들은 청성탁현(淸聖濁賢)이라며 청주를 성인(聖人)으로, 탁주를 현인(賢人)에 빗대어 표현했다.
그런데 조선 초기 소주는 특정 계급인 양반들에게만 접근 가능한 기호품이었고, 사치스러운 고급주로 인식됐다.
소주를 발효시켜 증류하기 위해서는 곡식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인데, 곡식 낭비 때문에 소주 제조를 금지시키자는 간언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영조는 오랜 기간 금주령을 내린 바 있다.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은 정경세 역시 “술은 사람을 죽이는 독약이다. 아주 통렬하게 술을 끊어서 누룩이나 술잔, 술동이 따위를 일절 집 안에 두지 말라”며 제자들에게 교육을 시켰다.
반면 술의 효용을 인정하고 적절하게 활용한 정조는 기쁜 일이 있으면 신하들과 함께 흠뻑 취하는 술자리를 종종 마련했다.
그는 1792년 희정당에서 열린 연회에서 성균관 제술 시험의 합격자들에게 술과 음식을 내려주고는, “옛사람의 말에 술로 취하게 하고 그의 덕을 살펴본다고 했으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다는(不醉無歸) 뜻을 생각하고 각자 양껏 마시라”며 합격자들을 격려했다.
술에 대해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동시에 평가한 이도 있다. 규장각 검서관 이덕무는, “술은 기형을 순환시키고(導氣), 감정을 펴고(布情), 예를 행하는(行禮) 세 가지 의의가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이 마셔 혼미한 지경에 이르면 인간의 도리를 해한다”며 긍정과 부정적 측면을 모두 지적했다.
⏹ 송년회 건배사와 주도(酒道)
唯酒無量, 不及亂.
오직 주량은 한정이 없으시되, 정신이 혼란스러운 데는 이르지 않으셨다.
沽酒市脯, 不食.
시장에서 파는 술이나 육포는, 드시지 않았다.
논어 향당편(鄕黨篇)에 실려 있는 공자의 음주 모습이다.
채근담(菜根譚) : 꽃은 반쯤 핀 것이 좋고 술도 반만 취한 것이 좋다.
안자춘추(晏子春秋) : 술이 머리에 미치기 전까지만 마셔라. 허세가 밀려오기 때문이다.
출 취하는 단계 : 긴장된 입이 풀리는 해구(解口), 미운 것도 예뻐 보이는 해색(解色), 분통과 원한이 풀리는 해원(解怨), 인사불성이 되는 해망(解妄)
전통 주도의 세 가지 계명 : 저녁에만 마셔라(酉時誡), 술 마신 후 물로 입을 헹궈라(玄酒誡), 석 잔 이상 마시지 말라(三盃誡)
연말이 되면 이런저런 인연의 송년회가 이어진다. 음주가무는 항상 빠지지 않는다. 잔 돌리는 수작례(酬酌禮)에 언제부턴가 건배사도 필수조건이 됐다.
건배(乾杯)는 잔을 말린다는 뜻이니 다 마시는 원샷이고, 축배(祝杯)는 축하의 잔이니 남겨도 무방하다.
고상하고 멋진 건배사가 속속 개발되고 있다. 술 향기는 백리까지 퍼져가고(酒香百里), 꽃향기는 천리까지 퍼져가고(花香千里), 인품의 향기는 만리까지 퍼져간다(人香萬里).
차가운 술은 위를 상하게 하고(冷酒傷胃), 독한 술은 간을 상하게 하고(毒酒傷肝), 술이 없으면 마음을 상하게 한다(無酒傷心).
정조 임금은 성균관 제술시험에 합격한 유생들과 함께한 주연(酒宴)에서 각자 양껏 마시라며 시경(詩經)의 구절을 인용했다.
흐뭇한 술자리 밤에 벌어졌으니, 취하지 않고는 돌아가지 못하리라(厭厭夜飮 不醉無歸). 이 구절에서 따온 불취무귀(不醉無歸)로 건배사를 했다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은 술 취해 흥청대는 일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모양이다. 송년축제 행사장에서 사람들은 즐기며 취해 있었다.
공자께서 “너도 즐거우냐?”고 묻자, 자공이 대답했다. “온 나라 삶이 모두 미친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즐거움을 알지 못합니다.”
술을 좋아해 유주무량(唯酒無量)한 공자께서 제자에게 말씀한다. “백날을 수고하고 하루를 즐기는 것이다. 긴장만하고 풀어지지 않는 일은 문왕과 무왕이 하지 않았으며 풀어지기만 하고 긴장하지 않는 일도 문왕과 무왕이 하지 않았다.”
조선 3대 태종 임금이 셋째아들 충녕대군(세종대왕)을 후계자로 택한 이유 중 하나가 술을 마실 줄 안다는 것이었다. 중국 사신을 맞을 때 주인으로서 한잔도 마시지 못하면 어떻게 손님에게 권하여 즐거운 자리를 만들 수 있겠는가는 생각이었다.
장남 양녕대군은 지나치게 마시고 차남 효령대군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충녕대군은 적절히 마시고 중간에 그칠 줄을 알았다. 조선왕조실록에 적중이지(適中而止)라고 기록돼 있다.
불안하고 속상한 연말 술자리가 잦아지면서 자칫 불취무귀(不醉無歸) 하거나, 상위(傷胃) 상간(傷肝) 하지 말고, 적중이지(適中而止)의 지혜를 발휘할 때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부적절(不適切),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
▶️ 醉(취할 취)는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酔(취)의 본자(本字), 酻(취)는 와자(僞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닭유(酉; 술, 닭)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없어질 때까지 하다의 뜻을 가지는 卒(졸, 취)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醉자는 ‘취하다’나 ‘(술에)빠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醉자는 酉(닭 유)자와 卒(군사 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酉자는 술병을 그린 것이다. 卒자는 고대에 졸병들이 입던 옷을 그린 것으로 옷 가운데에는 X자가 표시되어 있다. 졸병이란 계급이 가장 낮은 군사를 말한다. 전투력이 약했기 때문에 卒자에는 ‘죽다’나 ‘끝내다’, ‘마치다’라는 뜻이 있다. 醉자는 이렇게 ‘끝내다’나 ‘죽다’라는 뜻을 가진 卒자에 酉자를 결합한 것으로 술을 “(죽을 때까지)마시다”나 “죽을 만큼 술에 취해있다”라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醉(취)는 술을 없어질 때까지 마셔 취하다의 뜻으로 ①취(醉)하다 ②취(醉)하게 하다 ③술에 담그다 ④빠지다 ⑤지나치게 좋아하다 ⑥탐닉(耽溺)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술 취할 정(酊), 술 취할 명(酩),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깰 성(醒)이다. 용례로는 술에 취한 사람을 취객(醉客), 술에 취하여 일어나는 흥취를 취흥(醉興), 술에 취해 얼근한 기운을 취기(醉氣), 술이 취하여 노래를 부름 또는 그 노래를 취가(醉歌), 술에 취한 동안을 취리(醉裏), 술 취한 노인을 취옹(醉翁), 술 취한 사람의 태도를 취태(醉態), 술이 취해 누움을 취와(醉臥), 경사스러운 일에 도취함을 취서(醉瑞), 술에 취해 함부로 하는 말을 취담(醉談), 술이 취하여 잠을 잠을 취면(醉眠), 술이 취해 춤을 춤 또는 그 춤을 취무(醉舞), 술이 취하여 쓴 글씨를 취묵(醉墨),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를 취보(醉步), 술에 취한 기색을 취색(醉色), 술이 취한 얼굴을 취안(醉顔), 취중에 마구 하는 말을 취어(醉語), 술에 잔뜩 취한 친구를 취우(醉友), 술에 취하여 이리저리 비틀거림을 취보만산(醉步蹣跚), 술에 취한 듯 살다가 꿈을 꾸듯이 죽는다는 취생몽사(醉生夢死), 술에 취하여 눈이 흐려 앞이 똑똑히 보이지 않는 상태를 취안몽롱(醉眼朦朧) 등에 쓰인다.
▶️ 無(없을 무)는 ❶회의문자로 커다란 수풀(부수를 제외한 글자)에 불(火)이 나서 다 타 없어진 모양을 본뜬 글자로 없다를 뜻한다. 유무(有無)의 無(무)는 없다를 나타내는 옛 글자이다. 먼 옛날엔 有(유)와 無(무)를 又(우)와 亡(망)과 같이 썼다. 음(音)이 같은 舞(무)와 결합하여 복잡한 글자 모양으로 쓰였다가 쓰기 쉽게 한 것이 지금의 無(무)가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無자는 ‘없다’나 ‘아니다’, ‘~하지 않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無자는 火(불 화)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불’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갑골문에 나온 無자를 보면 양팔에 깃털을 들고 춤추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무당이나 제사장이 춤추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춤추다’가 본래의 의미였다. 후에 無자가 ‘없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 되면서 후에 여기에 舛(어그러질 천)자를 더한 舞자가 '춤추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無(무)는 일반적으로 존재(存在)하는 것, 곧 유(有)를 부정(否定)하는 말로 (1)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공허(空虛)한 것. 내용이 없는 것 (2)단견(斷見) (3)일정한 것이 없는 것. 곧 특정한 존재의 결여(缺如). 유(有)의 부정. 여하(如何)한 유(有)도 아닌 것. 존재 일반의 결여. 곧 일체 유(有)의 부정. 유(有)와 대립하는 상대적인 뜻에서의 무(無)가 아니고 유무(有無)의 대립을 끊고, 오히려 유(有) 그 자체도 성립시키고 있는 듯한 근원적, 절대적, 창조적인 것 (4)중국 철학 용어 특히 도가(道家)의 근본적 개념. 노자(老子)에 있어서는 도(道)를 뜻하며, 존재론적 시원(始原)인 동시에 규범적 근원임. 인간의 감각을 초월한 실재이므로 무(無)라 이름. 도(道)를 체득한 자로서의 성인(聖人)은 무지(無智)이며 무위(無爲)라고 하는 것임 (5)어떤 명사(名詞) 앞에 붙어서 없음의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없다 ②아니다(=非) ③아니하다(=不) ④말다, 금지하다 ⑤~하지 않다 ⑥따지지 아니하다 ⑦~아니 하겠느냐? ⑧무시하다, 업신여기다 ⑨~에 관계없이 ⑩~를 막론하고 ⑪~하든 간에 ⑫비록, 비록 ~하더라도 ⑬차라리 ⑭발어사(發語辭) ⑮허무(虛無) ⑯주검을 덮는 덮개 ⑰무려(無慮), 대강(大綱)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빌 공(空), 빌 허(虛)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존(存), 있을 유(有)이다. 용례로는 그 위에 더할 수 없이 높고 좋음을 무상(無上), 하는 일에 막힘이 없이 순탄함을 무애(無㝵), 아무 일도 없음을 무사(無事), 다시 없음 또는 둘도 없음을 무이(無二), 사람이 없음을 무인(無人), 임자가 없음을 무주(無主), 일정한 지위나 직위가 없음을 무위(無位), 다른 까닭이 아니거나 없음을 무타(無他), 쉬는 날이 없음을 무휴(無休), 아무런 대가나 보상이 없이 거저임을 무상(無償), 힘이 없음을 무력(無力), 이름이 없음을 무명(無名), 한 빛깔로 무늬가 없는 물건을 무지(無地), 대를 이을 아들이 없음을 무자(無子), 형상이나 형체가 없음을 무형(無形), 아무런 감정이나 생각하는 것이 없음을 무념(無念), 부끄러움이 없음을 무치(無恥), 도리나 이치에 맞지 않음을 무리(無理), 하는 일 없이 바쁘기만 함을 무사분주(無事奔走), 한울님은 간섭하지 않는 일이 없다는 무사불섭(無事不涉), 무슨 일에나 함부로 다 참여함을 무사불참(無事不參), 즐거움과 편안함에 머물러서 더 뜻 있는 일을 망각한다는 무사안일(無事安逸), 아무 탈없이 편안함을 무사태평(無事泰平), 재미나 취미나 없고 메마르다는 무미건조(無味乾燥) 등에 쓰인다.
▶️ 歸(돌아갈 귀)는 ❶형성문자로 帰(귀)의 본자(本字), 归(귀)는 통자(通字), 归(귀)는 간자(簡字)이다. 追(추; 따라가다)의 변형과 婦(부)의 생략형인 帚(추)로 이루어졌다. 고대(古代)에는 처가(妻家)에서 일정 기간의 노동을 한 후 새색시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돌아온 데서, '돌아오다'의 뜻이 되고, 전(轉)하여 '시집가다'의 뜻으로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歸자는 '돌아가다'나 '돌아오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歸자는 阜(언덕 부)자와 止(발 지)자, 帚(비 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갑골문에서는 단순히 阜자와 帚자만이 그려져 있었다. 여기서 阜자는 '쌓이다'라는 뜻의 堆(언덕 퇴)자가 생략된 것이다. 이렇게 '쌓이다'라는 뜻을 가진 堆자에 帚자가 더해진 것은 집안에 쌓인 먼지를 쓸어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사실 歸자의 본래 의미는 '시집을 가다'였다. 아마도 시집간 여자가 집안일을 한다는 뜻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止자가 더해지면서 '돌아가다'나 '돌아오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歸(귀)는 ①돌아가다, 돌아오다 ②돌려 보내다 ③따르다, 붙좇다(존경하거나 섬겨 따르다) ④몸을 의탁하다 ⑤맡기다, 위임하다 ⑥마치다, 끝내다 ⑦시집가다 ⑧편들다 ⑨맞다, 적합하다 ⑩모이다, 합치다 ⑪선물하다, 음식을 보내다 ⑫자수하다 ⑬죽다 ⑭부끄러워하다 ⑮몸을 의탁할 곳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돌아올 회(回)이다. 용례로는 외국에서 본국으로 돌아감 또는 돌아옴을 귀국(歸國), 본디의 처소로 돌아옴을 귀환(歸還), 집으로 돌아감 또는 돌아옴을 귀가(歸家), 사람의 마음이나 사물의 돌아가는 형편을 귀추(歸趨),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을 귀향(歸鄕), 끝을 맺음을 귀결(歸結), 재산이나 권리 따위가 특정한 사람이나 단체에 속하게 됨을 귀속(歸屬), 돌아가 몸을 기댐을 귀의(歸依), 적이 굴복하고 순종함을 귀순(歸順), 돌아와 닿음을 귀착(歸着), 돌아오거나 돌아가는 길을 귀로(歸路), 객지에서 부모를 뵈러 고향에 돌아감을 귀성(歸省), 한 군데로 돌아감을 귀일(歸一), 집으로 돌아가 쉼을 귀휴(歸休), 서울로 돌아오거나 돌아감을 귀경(歸京), 집으로 돌아가 부모를 봉양함을 귀양(歸養),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옴을 귀래(歸來),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귀사(歸思), 숙박 집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을 귀숙(歸宿), 황천으로 돌아감이란 뜻으로 죽음을 일컫는 말로 귀천(歸泉), 흙으로 돌아감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죽음을 일컫는 말로 귀토(歸土), 여자가 이혼을 하고 친정으로 돌아옴을 대귀(大歸), 마음을 결정하고 돌아감을 결귀(決歸), 향하여 감이나 따라감을 적귀(適歸), 함께 돌아감을 동귀(同歸), 작별하고 돌아감을 고귀(告歸), 신부가 처음으로 시집에 들어감을 우귀(于歸), 본디 상태나 자리로 다시 돌아감을 복귀(復歸), 도로 돌아오거나 돌아감을 회귀(回歸), 벼슬을 내어 놓고 돌아옴을 체귀(遞歸),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한 뒤 전쟁에 쓴 마소를 놓아주었다는 옛일에서 온 말로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귀마방우(歸馬放牛), 헛되이 돌아감을 일컫는 말을 귀어허지(歸於虛地), 처음에는 시비 곡직을 가리지 못하여 그릇되더라도 모든 일은 결국에 가서는 반드시 정리로 돌아감을 일컫는 말을 사필귀정(事必歸正), 죽는 것을 고향에 돌아가는 것과 같이 여긴다는 뜻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시사여귀(視死如歸), 구슬을 온전히 조나라로 돌려 보낸다는 뜻으로 흠이 없는 구슬이나 결점이 없이 완전함 또는 빌렸던 물건을 온전히 반환함을 일컫는 말을 완벽귀조(完璧歸趙), 옳지 않은 일에 부화뇌동 함을 이르는 말을 난만동귀(爛漫同歸), 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모든 일은 처음으로 돌아감을 이르는 말을 낙엽귀근(落葉歸根), 넷이 결과적으로 하나를 이룸을 일컫는 말을 사귀일성(四歸一成), 삶은 잠깐 머무르는 것이고 죽음은 돌아간다는 뜻으로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잠깐 동안 머물러 있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죽는 것은 본래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는 말을 생기사귀(生寄死歸), 나이를 먹어서 머리털이 희어져도 학문이 성취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백수공귀(白首空歸), 합심하여 같은 목적으로 향함을 일컫는 말을 일심동귀(一心同歸),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옴을 일컫는 말을 조왕모귀(朝往暮歸), 가는 길은 각각 다르나 닿는 곳은 같다는 뜻으로 방법은 다르지만 귀착하는 결과는 같음을 일컫는 말을 이로동귀(異路同歸)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