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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설날, 남희는 차례상을 차리기 위해 새벽에 일어났다.
30년 전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차례상 차리는 일은 줄곧 혼자 하고 있었다.
딸도 한 명 있고, 며느리가 둘이나 있었지만 모두 미덥지 못해 일을 맡길 수 없었다.
남편과 아들들은 부엌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어젯밤 오랜만에 모인 아들 식구들과 남편은 거실에서 술을 마시며 시끌벅적하게 놀았다.
뭣도 모르는 손주들은 부모 옆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흥을 보탰다.
같이 술을 한 잔 마신 남희는 피곤하다 말하며 만류하는 며느리들을 뿌리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설이 지나고 봄이 되면 남편이 39년 공직에서 은퇴를 한다. 아들들과 며느리들은 축하한다며 술판을 벌렸으나, 남희는 앞으로 남편에게 삼시세끼 밥 차려줄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다.
‘저것들은 남의 속도 모르고.’
남희는 한동안 뒤척이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잠잠해질 무렵 잠들었다.
남편은 지방직 공무원으로 9급부터 시작해서 퇴직 2년 전에 가까스로 4급으로 승진했다.
남희가 사는 지방 도시의 시청에는 4급이 세 자리 밖에 없었다.
어디 가서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남편은 자꾸 승진에서 밀리더니 결국 후배들에게도 밀렸다.
나이가 더 많은 남편이 일찍 퇴직할 것이므로 끝내 4급을 못 달 판이었다.
5급으로 퇴임하는 것과는 연금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남희는 못내 아쉬웠다.
그러다가 4급 중 한 명이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어 보직에서 해임되었다.
그 자리를 계속 공석으로 둘 수가 없었던 시장은 남편을 승진시켰다.
남희는 그날 뛸 듯이 기뻐하며, 아들, 딸, 며느리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남희가 중매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던 때만 해도 공무원은 월급이 적어 인기 직종이 아니었다.
그러나 남편은 키가 크고 인물이 적당하며, 비록 시골이긴 해도 집과 주변 논밭을 갖고 있어서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몰락한 양반가인 남희네 집안도 남편 네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남희의 아버지는 중학교 선생님이었지만 생활이 넉넉지 않았고, 농사를 지어야만 했다.
그는 장성한 자녀들을 일찍 결혼시켰다.
남희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녀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야 했다.
하지만 홀어머니에 위에 누나만 셋이라는 점은 마음에 걸렸다.
모두 서울로 시집간 시누이들은 만날 일이 별로 없어 다행이었지만, 시어머니는 아주 깐깐하고 보수적이었다.
군청까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하는 아들이 어떻게 될까 걱정하면서도 옷차림이 단정치 못하면 나무라기 일쑤였다.
특히 남자가 빨간색이 들어간 옷을 입으면 정색을 하며 혼냈다.
남희에게는 꼭 남편에게 더운밥을 먹이라고 다그쳤다.
남희는 아침에 밥을 짓고 나면 안방의 아랫목에 남편이 먹을 저녁 밥공기를 따로 보관했다.
남희는 아들이 귀한 집안에서 첫째 아이로 아들을 낳았다.
이제 시어머니의 관심은 온통 손자에게 쏠렸다.
아들을 낳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남희는 이 시골에서 벗어나야한다고 생각했다.
주변엔 온통 논과 밭뿐이었고, 마을 사람들이 할 줄 아는 건 농사밖에 없었다.
이런 곳에서 아들을 키웠다간 농사꾼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남희의 오빠 둘도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지 않은가.
남희가 그 생각을 처음으로 남편에게 말했을 때, 남편은 들은 체도 안했다.
그 집은 남편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살던 집이었고 친척들이 옆 마을에 살고 있으며 뒷산에는 조상들의 묘가 있었다. 남편이 다니는 군청도 자전거를 타고 가면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한편으로 남편은 어머니를 설득할 자신이 없기도 했다.
남희가 둘째를 임신했을 무렵,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남희가 살던 곳이 군에서 시로 승격되면서 새로 청사를 짓게 된 것이다.
남편의 직장이 시내 한복판으로 옮겨 가게 된 것이다.
남희는 부엌에서 남몰래 기뻐했다.
이제 시어머니를 설득할 명분이 생겼다.
지금 사는 곳에서 새로 옮겨갈 청사까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야근과 회식 때문에 자가용 승용차를 산다고 해도 무리였다.
동네의 친척 어르신까지 가세해 시어머니를 설득했다.
“아주머니도 차암, 하나뿐인 아들 그 멀리까지 댕기다 사고라도 나믄 워쩔라구 그래유?”
시어머니는 끝내 시내로 이사 가는 것에 동의했다.
둘째 아들이 태어나고 백일 무렵 되었을 때, 남편은 집과 논밭을 팔아서 시내에 집을 샀다.
40평 남짓한 대지에 지어진지 얼마 안 된 조그마한 단독 주택이었다.
2층 다락방까지 합쳐서 방이 네 개였고, 화장실은 하나였다.
방들이 좁기는 해도 남희와 남편, 아들 둘, 시어머니 이렇게 다섯 명이 살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남편의 새 직장이 걸어서 10분 정도로 가까웠다.
시내라고는 해도 구불구불한 골목과 골목으로 이어진 오래된 마을이었다.
남희의 집도 이런 골목 한 가운데 있었다.
왼쪽에는 비슷한 집이 두 채 있었고, 오른 쪽은 공터였으나 곧 집을 짓기 시작했다.
골목 건너편도 사정은 비슷했다.
집 몇 채와 조그만 밭들이었다.
그렇게 30년 넘게 한 집에서 살았다.
이사하고 2년 뒤에 막내딸이 태어났고, 그 이듬해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한 동안 기침을 계속 하더니 폐렴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가기까지 큰 손자를 안고 있었다. 훗날 큰 아들은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집에서 성장한 아들 둘과 딸은 결혼했고, 아이들도 낳았다.
그리고 남편은 이제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남희는 지나간 세월동안 무탈하게 순리대로 살게 해준 고마운 집이라고 생각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전 집과 달리 마당이 매우 좁다는 점이었다.
딱히 마당에서 뭔가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빨래를 널 때, 옆집이 창문을 열어 놓으면 안방까지 훤히 다 들여다보였다.
사정을 다 아는 오래된 이웃이지만 조금 신경이 쓰이긴 했다.
옆집은 남희가 이 집에 이사 오기 전부터 살고 있었다.
남희가 처음 인사드리러 갔을 때 옆집엔 부부와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아이 셋이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중 둘째인 아들 내외가 살고 있다.
옆집 아저씨는 마음씨 좋은 환경 미화원이었는데, 새벽에 일하다가 그만 사고를 당해 팔이 하나 잘렸다.
남희는 밤마다 괴상한 소리가 들려 옆집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아저씨가 팔이 아파 그런다고 했다.
없는 팔이 아프다니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했다.
나중에 환상통이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옆집 아이들은 남희의 아이들보다 나이가 대여섯 살 많아서 학교로 인한 교류는 적었지만, 집안에 일이 있을 때 서로 도와가며 살았다.
남희의 부엌에서 문을 열고 ‘준영아’하고 부르면 옆집 부엌에서 들린다. 그렇게 서로 만든 음식을 나눠먹으며 살았다.
지금 옆집에 살고 있는 준영이는 어려서 그렇게 까불어대더니만, 아버지의 사고로 정신을 차렸는지 사범대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영어 선생님이 되었다.
지금은 집근처 모교에서 근무하는데, 남희의 아들들보다 나이는 많아도 결혼은 늦었다.
남희는 준영의 결혼식에 가서 축의금을 많이 했다.
그 집 첫째 딸 준희는 아이들 딸린 아줌마가 됐고, 막내 준식이는 형의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준식이는 군을 제대하고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갔다는데 아예 거기에 정착해버린 모양이다.
뭐하고 사는지 가족들과도 잘 연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들이 많으면 그 중에 꼭 속 썩이는 자식이 있게 마련인데, 옆집에는 준식이가 그랬다.
그에 반해 남희의 자식들은 모두 잘됐다.
지방의 소도시라서 학원도 하나 변변치 않았는데, 아들 둘이 모두 서울의 명문대에 들어갔다.
큰 아들은 이름만 대면 모두 아는 대기업에 다니고, 작은 아들은 은행원이 되었다.
딸은 지방의 4년제 대학에 다니며 일찌감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여 졸업하자마자 아버지를 따라 공무원이 되었다.
남편은 자식들 학업을 남희에게 일임했지만 공무원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학비를 대기 위해 고향에 남겨둔 논밭을 모두 팔아야 했다.
이제 남은 재산이라고는 지금 살고 있는 작은 단독 주택 한 채와 다달이 받을 연금 밖에 없었다.
남희의 남편은 빚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목돈을 가진 것도 아니라서, 은퇴하고 나면 한동안 끓이지 않을 경조사비와 손주들 용돈이 걱정이었다.
설 전날 장성한 아들들이 모여 자신의 정년퇴임을 축하하며 따르는 술은 무엇보다 달콤했다.
큰 아들이 차례 지낼 때 쓰려고 지역의 특산품인 전통주를 두 병 사왔다. 1.8 리터짜리 큰 병이었다.
한 병은 전날에 마시고, 다른 병은 차례를 지낼 때 쓸 것이다.
남희의 남편은 그 술을 특히 좋아했다.
요즘에야 상품으로 개발되어 특산품이니 뭐니 하지만, 예전엔 시골에서 집집마다 담그던 술이었다.
남희도 시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술 담그는 법을 배우긴 했는데, 몇 번 마셔본 남편은 어머니의 맛이 아니라 했다.
언젠가부터 남편은 술을 사오기 시작하더니, 이제 집에선 그 술만 마신다.
그걸 아는 아들들이 명절 때 마다 사오곤 했다.
모두 술 한 잔 씩 마시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큰 며느리가 남편에게 봉투를 건네었다.
“아버님, 정년퇴임 축하드려요.”
“우리 모두 조금씩 넣었어요. 수고하셨어요.”
큰 아들이 덧붙였다.
남희는 며느리의 손에서 봉투를 얼른 낚아챘다. 그러더니 마치 자신이 정년퇴임을 하는 것처럼 말했다.
“고맙다.”
남편은 봉투에 눈길을 한 번 주고 입맛을 한번 다시더니 남희를 따라 말했다.
“고마워.”
그리고 잔을 들어 건배를 유도했다.
가족들이 모두 잔을 들었다. 남희도 봉투를 바닥에 내려놓고 잔을 들었다.
“건배.”
하고 모두 외치는 사이, 남희는 제법 두툼한 봉투에 얼마나 들어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차례가 끝나고 가족들이 차례상에 둘러 앉아 남희가 아침부터 분주히 끓인 떡국을 먹었다.
과일까지 먹고 한숨 돌리다가 큰 손자가 세배는 언제 하냐고 자기 엄마에게 물었다.
남희와 남편이 안방에 나란히 앉았다.
큰 아들 부부와 네 살 난 아들 딸 쌍둥이가 먼저 절을 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모두 한 목소리로 말했다.
뒤이어 둘째 아들 부부와 두 살 배기 딸이 절을 했다.
아기가 부모를 따라 엉거주춤 절하는 모습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남희는 아들과 며느리 손자들에게 세뱃돈을 주었다.
한사코 거절하는 며느리들에게 억지로 손에 쥐어 주었다. 어제 봉투에서 나온 그 돈이었다.
다 같이 성묘하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의 고향 마을을 지났다.
마을로 이어지는 길이 포장이 된 것만 빼면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논과 밭 건너편에 시어머니와 함께 살던 남편의 고향집도 아직 있었다.
몇 해 전까지 누가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안사는 지 폐가처럼 보였다.
문득 남편이 운전하고 있던 큰 아들에게 물었다.
“너 저기 옛날 집 기억 나냐?”
“난 조금 기억나.”
큰 아들은 세 살까지 그 집에서 살았다.
“아무튼 마당이 좀 넓었던 건 기억나.”
그 집 마당은 지금 집보다 넓은 것은 맞지만, 여느 시골집처럼 그리 넓은 편은 아니었다.
“넌 그래도 좀 기억하는구나. 니 동생은 하나도 기억 못 할 걸? 걔는 갓난 애기일 때 이삿짐 차에 내가 이렇게 안고 타고 갔어.”
남편이 팔로 아기를 안은 것 같은 동작을 하며 말했다.
“그때 누구한테 팔았어?”
큰 아들이 물었다.
“몰라. 누구였든지, 저 동네는 백씨들 집성촌이라서 다른 성씨는 살기 힘들어. 니 할머니니까 버티고 살았지, 다른 사람은 어림도 없어.”
남희가 남편과 아들의 대화에 껴들며 말했다.
“무슨 점보는 사람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남편이 뒤이어 말했다.
어느새 차는 마을을 빠져나왔고,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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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공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근래에 이 일대에 오래된 단독주택을 허물고 원룸 건물을 지어대기 시작했다.
골목 끝에 있는 명수네 집이 팔리더니 곧 허물어지고 새 건물이 들어섰다.
그 후 명수네 건너 편 집도 마찬가지였다.
‘요즘에 혼자 사는 사람들이 뭐 이리 많아.’
남희는 새 건물들을 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 건물을 지을 때 길에서 1미터가량 띄워놓고 지어야 하므로 집으로 가는 골목길 초입이 넓어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왠지 다음은 옆집인 준영이네 차례 같았지만 준영이네나 남희네나 평수가 작아 원룸을 짓기엔 무리였다.
마을 곳곳에 새 건물이 들어서자 골목길 곳곳에 담배꽁초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건물에 독서실이 생겼는지, 중고등학생들이 교복을 입은 채 골목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곤 했다.
담배 피우는 학생들은 남희와 남편을 마주칠 때면 자기들도 겸연쩍은지 슬슬 자리를 피했다.
남희와 남편은 해코지를 당할까봐 아무 말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가끔 담장 너머로 꽁초가 날아들기도 했다.
그러나 중학교 선생님인 옆집 준영이는 달랐다.
골목에서 담배 피우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꾸짖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준영이는 대문 위에 감시카메라를 달았다.
준영이의 꾸짖음이 통했는지, 준영이가 학교 선생님이라는 것이 학생들 사이에 소문이 났는지, 아니면 감시카메라가 찜찜했는지 모르지만, 점차 골목길에 담배꽁초가 줄어들었다.
남희는 어찌되었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은퇴하자 하루 종일 집에 머무르며 남희의 심기를 건드렸다.
예전 같으면 아침밥만 차려주면 출근해서 저녁도 먹고 들어왔지만, 이제 삼시세끼 다 차려줘야 했다.
남희는 혼자 집에 있을 때면, 점심 같은 것은 따로 차려먹지 않았다.
옥수수, 고구마, 감자가 있으면 쪄 놨다 입이 심심할 때 먹곤 했다.
어려서 그런 음식을 먹고 자라서인지 남희는 별로 거부감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좋아했다.
하지만 남편은 하루 이틀 부실한 점심이 이어지자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자기는 어려서 그런 음식만 먹고 자라서 이젠 싫다고 했다.
남희는 할 수 없이 남편의 점심을 차리기 시작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남희네는 30년 넘게 한 일간지를 구독하고 있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남희는 신문을 보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중학교 때까지 전교 1등을 도맡아하던 남희였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남희는 학력에 콤플렉스가 있어 매일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였다.
그래서 남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남편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명문대에 다녔던 아들들보다 상식이 더 풍부했다.
한번은 다른 일간지에서 남희네 집에 무작정 신문을 넣은 적이 있었다.
남희는 그걸 가져다보면 구독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으로 여길까봐 대문 밖에 그대로 놓았다.
대문밖에 신문이 계속 쌓이자 남희는 동의 없이 신문을 넣고 있는 일간지 대신 현재 구독하고 있는 일간지에 전화를 걸었다.
다른 일간지에서 계속 우리 집에 신문을 넣고 있는데, 이렇게 하도록 놔두면 다른 일간지로 갈아탈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음날부터 거짓말처럼 동의 없이 넣어 오던 신문이 끊겼다.
아침 신문을 남편과 나눠 보는 것은 남희에겐 곤욕이었다.
남편은 건성으로 신문을 빨리 읽었지만, 남희는 정독하여 느리게 읽었다.
절반씩 나누어 읽기 시작하면 남편은 얼른 나머지 절반을 내놓으라고 닦달하였다.
남희가 아들들에게 하소연하자, 며칠 뒤 큰 아들이 컴퓨터를 사들고 내려왔다.
“이제 싸우지들 말고, 한 사람은 컴퓨터로 보셔.”
아들이 건넛방 책상에 컴퓨터와 모니터를 설치하며 말했다.
컴퓨터가 생기자 남편은 신문 대신 유튜브에 빠져들었다.
이즈음부터 남희는 주로 안방에서, 남편은 건넛방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어느 날 남편이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집 외벽에 페인트칠을 새로 하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직접 하겠다며 무슨 색이 좋겠는지 물었다.
남희는 에메랄드 색깔을 떠올리며 초록색 비슷한 게 좋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아침 먹고 나가더니 파란색 페인트와 롤러를 사왔다.
남희는 남편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했다. 분명 초록색이라고 말했거늘.
남희는 남편이 일하는 동안 동네 아줌마들 점심 모임에 나갔다.
차까지 한 잔 마시고 오후에 집에 와 보니 상당히 많이 칠해져 있었다.
“점심은?”
남희가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요 앞에 중국집.”
남희는 가서 먹었다는 건지, 시켜 먹었다는 건지 궁금했으나 묻지 않았다.
회색 위에 파랗게 칠해진 집 외벽이 낯설었다.
문제는 그날 밤 발생했다.
자고 있는데 갑자기 마당에서 펑 소리가 났다.
깜짝 놀란 남희는 얼른 남편을 깨워 밖에 나가보니 낮에 쓰고 남은 페인트 신나에 불이 붙었다.
얼마 남지 않았던 터라 뚜껑을 열어두었는데, 하필 거기로 누가 골목길에서 꽁초를 던진 모양이다.
신나 통이 불에 타며 터져버렸다.
남희와 남편은 마당에 있는 수도꼭지를 열어 호스로 물을 뿌렸다.
불이 집에 옮겨 붙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남희는 경찰에 신고했다. 난생 처음 해보는 신고였다.
날이 환해지자 새로 칠한 외벽이 불에 검게 그을려 있었다.
남편은 페인트칠을 망친 것에 화가 나 있었지만 남희는 남편이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것에 화가 났다.
출동한 경찰은 주변을 살펴보더니 마침 옆집에 감시카메라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경찰은 티셔츠 차림으로 대문 밖으로 나온 준영이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하더니 잠시 뒤 남희네로 돌아왔다.
“감시카메라가 모형이래요.”
누가 그런지 잡기 힘들다는 말이었다.
그날, 남희와 남편은 한바탕 말다툼을 했다.
케케묵은 옛날 얘기까지 들춰내며 누가 서로의 속을 더 긁어낼 수 있는 지 경쟁이 붙었다.
그날 이후로 두 사람은 완전히 각방을 썼다.
남편은 안방에 잘 들어가지 않았고, 남희는 건넛방에 가지 않았다.
어느 날 남희는 친구들 모임에서 컴퓨터로 고스톱도 치고 점도 본다는 얘기를 들었다.
호기심이 생겨 자신도 시도 해보고픈 마음에 자세히 설명을 들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가 있는 건넛방 문을 열었다.
화들짝 놀란 남편은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화면을 성급히 손으로 가렸다.
남편의 손가락 사이로 서양 여자의 커다란 젖퉁이가 보였다.
“이런 주책바가지 늙은이.”
남희는 남편의 등을 찰싹 때렸다.
남편은 갑자기 이 화면이 튀어나온 거라며 애써 변명했다.
남희는 어이없다는 듯이 남편 귀에서 이어폰을 뽑으며 ‘늙으려면 곱게 늙어.’하고 쏘아붙였다.
남희는 화가 나서 밖으로 다시 나갔다.
동네에 새로 생긴 커피 전문점으로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낮에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을 잘 못자지만, 남희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차갑게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한동안 홀로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그때 휴대폰 문자 메시지 알람이 들렸다.
남희는 남편일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옆집 준영이었다.
「아줌마, 옆집 준영인데요. 저희 집 부동산에 1억 8천에 내놨어요. 혹시 주변에 관심 있는 사람 있으면 알려주세요.」
남희는 옆집 준영이가 이사 가려고 생각하는지 꿈에도 몰랐다.
준영이는 마흔이 넘어서 결혼해서 얼마 전에 아이를 낳았다.
젊은 시절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준영이도 아이를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은 건지도 몰랐다.
그나저나 준영이네 집이나 남희네 집이나 거주적으로나 상업적으로 가치가 떨어진다. 지은 지 30년이 넘은 작은 단독주택에서 누가 살고 싶어 할까? 여기저기에 편리한 아파트 천지인데.
부수고 다시 지으려고 해도 평수가 작아서 활용도가 떨어진다.
그런데 남희네 집과 합치면 90평 쯤 된다.
남희는 준영이의 문자가 마치 자기네보고 사라는 소리로 들렸다.
그녀는 남편과 상의하고 싶었으나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아버지의 퇴직 이후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가 틀어지고 있다는 소식은 자식들에까지 전해졌다.
자식들은 부모님이 황혼 이혼이라도 할까봐 전전긍긍했다.
큰 아들은 부모님이 이혼하면 명절 때 어느 집에 가야하는 지 생각해봤지만 답이 나오질 않았다.
동생들에게 연락해서 엄마 아빠 이혼할 수도 있다고 운을 띄우며 두 사람을 화해시킬 대책을 강구해보라고 말했다.
동생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며 코웃음을 쳤다. 이제 와서 무슨 이혼이야.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로부터 셋이 합쳐서 1억을 만들어서 보내지 않으면 아빠랑 이혼할 거라는 문자를 받고는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
1억을 보내면 그걸로 분가해서 정말 이혼하려는 거 아닐까?
자식들은 도무지 엄마의 속을 알 수 없었다.
남희는 자식들이 정말 1억을 만들어 보내면 남편 몰래 숨겨둔 돈과 합쳐 옆집을 살 생각이었다.
옆집을 사서 허물어버릴 생각이었다.
자신도 왜 그런 계획을 세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유를 대라면 많은 이유를 갖다 댈 수 있었다.
난생처음 땅을 소유해 보고픈 마음도 있었고, 넓은 마당을 갖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동네 여기저기서 높이 올라오는 새 건물들과 남편과의 싸움으로 위축된 마음을 달래보고도 싶었다.
처음에는 그냥 드는 마음인가 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남희는 옆집을 사서 허물고 싶었다.
남희는 자식들에게 연락했다.
「너희들 돈 잘 벌잖아. 이제까지 먹여주고 키워주고 대학까지 가르친 값 돌려줘라.」
「엄마, 뭐하려고 그러는데요? 어디서 사기 당하는 건 아니지?」
큰 아들이 물었다.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말고. 나중에 너희들에게 다 돌아가는 거니까 그리 알고 돈 좀 만들어서 줘.」
남희의 목소리에 단호함이 묻어났다. 어차피 자신이 죽으면 자식들에게 물려줄 땅이니까.
며칠 뒤, 자식들은 둘째가 일하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얼마 뒤, 남희는 조심스레 건넛방 문을 열었다.
남편은 여느 때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자신이 옆집을 샀노라고 말했다.
남편은 가만히 있다가 무슨 뜻인지 깨닫고는 자리를 고쳐앉고 물었다.
“뭔 얘기야? 무슨 돈으로?”
남희는 대답 대신 다른 말을 했다.
“걱정 마. 많이 깎았어.”
남편은 서둘러 큰 아들에게 전화했다.
큰 아들은 자신들이 돈을 마련해줬다고 순순히 시인했다. 그러나 그 돈으로 옆집을 샀는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다만 돈을 주지 않으면 아버지와 이혼할거라는 협박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저 집 허무는 돈은 당신이 대.”
남희는 전화를 끊은 남편에게 말했다.
“뭐라고?”
“저 집 허물 테니까 철거 비는 당신이 대라고. 안 그럼 정말 당신이랑 이혼하고 저 집에 들어가서 나 혼자 산다.”
“뭐?”
“난 이제 돈 다 써서 없어. 앞으로 밥 좀 얻어먹고 살고 싶으면 저 집 철거하시라고요. 정말 들어가서 나 혼자 살기 전에.”
남희가 옆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남편은 한동안 말없이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마침내 옆집을 허물고 새롭게 담을 쌓았다.
이제 남희의 집에 45평의 빈 터가 생겼다.
마당이 될 수도, 텃밭이 될 수도, 정원이 될 수도 있었다.
남희는 온종일 공간을 채울 생각에 빠져 있었다.
남편과 함께 묘목 시장에 가서 심을 만한 나무들을 찾아봤다.
남희는 벚나무와 단풍나무를, 남편은 감나무와 앵두나무를 골랐다.
남편은 어릴 적 마당에 있던 감나무와 앵두나무 생각이 난다며 요즘엔 앵두 파는 곳이 없다고 혼잣말을 했다.
오는 길에는 마당 한 쪽에 심을 채소 씨들도 사왔다. 이제 상추며 토마토며 길러서 먹을 생각이었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호미며 삽 같은 농기구가 없어서 다시 사러가야 했다.
평소 같으면 투덜댔을 남편도 아무 말 없이 다시 밖으로 나갔다.
추석 때 집에 온 자식들은 변해버린 고향 집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사진으로 봐서 알고는 있었지만, 사라진 옆집은 제법 멋진 정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비록 열매가 맺히진 않았지만 몇 년 지나면 감나무가 커서 이 맘 때쯤 주렁주렁 감이 열릴 것이다.
며느리들이 정원이 예쁘다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손주들을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다.
“이럴 줄 알고 나는 텐트도 가져왔지. 이제 애들이랑 캠핑은 여기로 와야겠다.”
큰 아들이 웃으며 말했다.
둘째 아들이 자신의 부담금을 떠올리며 ‘사천 만 원 짜리 캠핑장이다.’하고 혼잣말을 했다.
추석 전날 밤, 남희의 가족들은 마당에 둘러 앉아 장작불을 붙이고 그 위에서 고기를 구워먹었다.
큰 아들은 잊지 않고, 지역 전통주를 사왔다.
남희의 남편은 아들과 며느리가 따라주는 술을 거절하지 않고 마셨다.
남희도 남편을 따라 넙죽넙죽 마셨다.
취기가 오른 남희가 고개를 젖히니 밤하늘에 둥근 보름달이 보였다.
그날따라 달이 유난히 밝아 보였다.
-끝-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활상을 재미있게 잘엮으셧습니다 잘보구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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