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한 때
에밀 베라랭
오늘 이 저녁 나는 그대에게
바치기 위하여
상냥한 바람과 저 빛나는 황금과
비단결 빛을 지닌 태양 속에
젖어 온 기쁨을 가지오.
풀 속을 헤쳐 왔으니 나의 발엔 티 없고
꽃술은 만지고 왔으니 나의 손은 달콤하고
축제에 뒤덮인 이 대지와
그 띁없는 힘 앞에
눈시울에 솟아나는 눈물
넘쳐흘렀음을 느꼈으니
나의 눈동자는 빛나고
온 누리는 흔들이는 빛의 품 안으로
때로 취하고 때로 핏대 올리며
흐느낀 울음에 젖어 왔던 나를
송두리째 끌어간다.
그러나 나는 울분에 쌓이고 쌓인
나의 고함을
거니는 나의 발로 말하게 하고
저 멀리 먼 곳을
발 닿는 대로 걸어왔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나는
들의 생명과 아름다움을 그대에게
삼가 올리오
그것들을 나의 육신에서
흠뻑 마음껏 마셔 주시오.
나의 손가락 끝에 만져가는 풍금(風琴)
공기 그 빛 그 향기가
지금 나에게 가득찬다.
[작가소개]
에밀 베라랭(1855~1916)
벨기에 태생의 프랑스 시인
<플랑드르 풍물시>를 시작으로 수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밝은 시간> <오후의 한 때>
<해질 무렵>등은 자신의 반려자에게 바친 시로 특히 감동을 주고 있다.
출처 : 『향기가 묻어나는 세계명시 150』
뜻있는 사람들
문영 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