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의 운명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문재인의 <운명>을 읽으며 노무현 이후의 한국 정치를 다시 생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을 보면서 그가 떠난 이후의 한국 정치를 생각한 적이 있다. 그의 죽음이 한국 정치에서 무얼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당시엔 막연히 노무현 이전과 이후의 한국 정치가 확연히 달라질 것이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때때로 이 의문에 사로잡히곤 했다.
유시민의 <운명이다>를 읽으면서 노무현의 필생의 과업이 지역주의와의 싸움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
3당 합당이 그의 정치인생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으며, 3당 합당으로 상징되는 지역주의, 맹주 정치, 패거리 정치에 대한 저항이 노무현 정치의 열쇳말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에 문재인의 <운명>을 읽고선 노무현이 10년 민주정부의 한계를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문재인은 다소 무미건조한 어투로 자신이 겪은 노무현 정부의 성과와 한계를 적어 놓았다.
노무현이 세상을 뜬 지 2년 세월이 흐르면서 진정성만으론 진보정치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진정성이 있다 해도 정책과 비전, 실행력이 없으면 국민이 외면하고 만다는 것을 노무현은 죽음으로 웅변한 건 아닐까.
한국 정치에서 노무현이 남긴 족적 중 하나는 대의를 위해 최후까지 헌신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남 탓하지 않고 자신의 몫을 고스란히 떠안는 지도자의 모습을 그는 보여주었다. 노무현이 비록 실패했지만,
국민이 그의 진정성을 알아주는 이유다. 진정성조차 없는 정치는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알아본다는 것 또한 노무현 이후 분명해지고 있다.
진정성, 혹은 운동가적 소양으로 정치를 하는 시대도 노무현과 함께 끝이 났다.
노무현 이후 한국 정치는 정책으로 말하는 진보, 집행력을 갖춘 진보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힘 있고 가진 자들의 카르텔에 단순히 부딪혀 깨지는 것이 아니라, 이 카르텔을 해체하고 ‘사람 사는 세상’을 정책으로 관철할 수 있는 단일·연합대오의 진보정치 시대가 노무현 이후의 한국 정치상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