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등산싸이트에서 허락없이 퍼 왔습니다. 약 40년전 산행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철계단으로 되어 있는 천불동 계곡이 이 당시에는 접근하기가 어려웠나 봅니다.
산에서 모닥불을 피우던 시절... 지금보단 훨씬 더 정감이 갑니다.
아름다운 우리강산! 잘 쓰고 아껴서 아들놈에게 물러줘야죠..
*******************************************************************************
한 때 일기를 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훗날 읽어보니 스스로 얼굴이 뜨뜻해지는 생각과 행동이 많아 없애 버렸습니다. 과거사 청산을 한 셈이죠.
통금 해제 싸이렌에 깨어나 부모님께 인사 드리고 부지런히 을지로 6가 시외 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어머님은 웬 걱정이 그리도 많으실까? 이젠 나도 대학생인데….
도착하니 2, 3학년 선배들이 반가이 맞아 준다. 07:30 출발.
금강운수 차장 눈길이 곱지 않다. 우리 일행 12명의 배낭이 버스 뒤 좌석을 모조리 차지해 버렸기 때문이다. 차비를 더 내라느니 돈이 없다느니 승강이를 벌이는데 옆에서 보기에 영 불안하다. 선배들은 끄떡도 않고 버틴다. 결국 손님이 더 타면 배낭 위에 올라 누워 가기로 합의가 된다.
그리곤 곧 합창이 시작된다. “누나! 누나! 누나가 최고야~ 이 세상에 누나 없이 무슨 재미로 사나? 해가 떠도 누나! 달이 떠도 누나! 누나가 최고야~”
이제까지 도끼 눈이던 차장 얼굴에 금방 웃음이 번지고, 붐비지도 않는데 배낭더미 위로 기어 올라 잠을 청하는 대원도 있다.
버스는 물 안개 가득한 남한강 변을 흙 먼지 폴폴 일으키며 잘도 달린다.
덕소 지나 팔당, 강변의 포플러들이 아침 잠에서 깨어나 싱그럽게 흔들린다.
이름도 낯선 읍들을 숱하게 지나고서 잠에 빠져들 즈음 홍천 도착 11:30.
30분 후 출발이다. 운전수, 차장, 승객들의 점심 시간이다.
터미널 옆 국밥 집에 우르르 몰려 간다. 선배들의 식사 방법이 묘하다.
우선 국물부터 다 마셔 버린다. 그리곤 그릇 들고 주방 창구에 가 “아주머니, 국물 좀…”
다음엔 탕 속의 밥을 다 먹어 버리곤 다시 주방 창구에 가 아까보다 더 공손히 “아주머니, 밥 좀 더….”.
이렇게 한 수 한 수 배워가며 산꾼이 되어 가나 보다.
허연 흙먼지를 덮어 쓴 강원도 채마 밭을 끝없이 지나 남교리 도착.
A조4명 하차.
내일 B조와 대승령에서 만나기로 한다. 15:40 용대리 도착.
선배들의 배낭은 정말 무겁다. 혼자서는 일어나질 못한다.
서울역 지게꾼처럼 뒤에서 받쳐 줘야 일어선다.
오늘 목적지인 백담사를 향해 출발. 북한산의 계곡과는 격이 틀리다. 산속의 계곡이 강처럼 이렇게 깊고 넓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짙푸른 백담 계곡에 압도 당하며 한시간여 이리 저리 물을 건너니 고풍스런 절 집이 보인다. 깨끗이 빗질을 한 큰 마당에 들어서 두리번거리자 스님 한 분이 나오신다. 잠자리를 청하니 요사채의 큰 방 하나를 내어 주신다. 짐을 풀고 계곡으로 내려가 하루 종일 뒤집어 쓴 흙먼지를 말끔히 씻은 후 식사 준비를 한다. 꽁치 찌개에 밥 한 그릇을 뚝딱 해 치우고 설거지를 끝내니 산골엔 이미 어스름이 내려 앉았다.
절 뒤의 짙푸른 전나무 숲이 어둠에 싸이자 하늘의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산사의 고요함을 더욱 깊게 한다.
서울 촌놈이 난생 처음 안겨보는 자연의 품이다.
2. 둘째 날
목탁 소리에 잠을 깨었으나 창호지 밖은 달빛만이 희뿌윰하다. 새벽 4시. 다시 잠에 빠져 들어 “기상” 소리에 깨어보니 6시30 분.
주섬주섬 세면도구를 챙겨 들고 계곡으로 내려가니 뽀오얀 물 안개가 계곡에 가득하다. 그 속에서 움직이는 대원들의 모습이 산수화 속의 인물들인 양 느껴진다. 차가운 공기에 몸을 움츠리며 시린 물로 세수를 하고 엊저녁과 같은 메뉴의 아침식사를 한다. 해우소에 들르니 이건 고소 공포증을 극복해야 뭔 일을 볼 수 있겠다. 이렇게 깊은 화장실은 처음 본다.
배낭을 꾸려 절을 나선 시각이 8시. 계곡 따라 십여분을 걸으니 건너 편에 너와집 하나가 보인다. 황 포수 집이라고 한다. 올 때마다 이 집을 찾는 선배 몇이 아이들 줄 사탕 한 봉지 챙겨 들고 등산화 벗고 내를 건넌다. 발을 적시기 싫은 나머지 일행은 여유롭게 담배 피워 물고 주위 풍광을 즐긴다.
갔다 와 전해주는 얘기로는 포수도 올해 안에 이사를 갈 모양이다. 아이들이 학교 다닐 나이가 되어 원통으로 나가 살 수 밖에 없다고 한단다. 황 포수의 실력은 종 잡을 수가 없어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호랑이도 잡았다고 하는데 그건 믿기 어렵고 곰을 잡은 건 사실이라고 한다.
얼마 가지 않아 C조와 헤어진다. C조는 가야동 계곡으로 오늘 봉정암까지
오르고 내일 청봉에서 합류한다. 서북 주능선으로 가는 A,B조의 식수까지 책임져야 하니 내일 꽤나 고생들 하겠다.
C조와 헤어진 우리는 오른쪽 지계곡인 흑선동으로 들어선다. 이 계곡의 암반은 이제까지의 하얀 바위들과는 달리 시커먼 암반들이다. 그래서 이름이 흑선동인가?
보이는 모든 것들에 마음을 빼앗긴다. 몇 아름씩 되는 큰 나무들이 이룬 울창한 숲하며, 그 속에서 빼곰히 우리를 쳐다보는 다람쥐, 새 소리, 물 소리, 진한 송진 냄새와 가끔씩 와 닿는 꽃 향기, 계곡을 가로지른 벼락맞은 나무…. 배낭의 무게도 잊은 채 한 시간을 걸은 후 휴식 10분.
계곡이 끝나는 곳에서 수통 두 개에 물을 채운다. 내일 오후까지 마실 물이다.
된 비알을 오른 후 목이 말라 벌컥 벌컥 들이키고 흔들어 보니 반은 마셔버린 것 같다. 은근히 걱정이 된다. 선배들 눈치를 보니 한 모금 슬쩍 입만 축이고 만다.
세 번의 휴식을 가진 후 대승령 도착. 12:40
약속시간 보다 20분을 빨리 왔다. 배낭을 내려놓고 주위의 높은 곳으로 올라가 산세를 설명 듣는다. 우리가 진행할 서북 주능, 공룡 능, 화채 능, 각 봉우리들의 이름을 들으며 언젠가는 모두 섭렵하리라는 속 다짐을 해 본다.
2시가 되어서야 A조가 나타났다. 어제 오늘 무척 고생을 한 모양이다. 어제는 선녀탕 초입에서 군인 초소를 지났는데 군용 물품을 압수하겠다고 해 할 수 없이 담배 두 갑과 통조림 두통을 상납했다고 한다. 배낭부터 수통 반합 버너 판초 모두가 군용이니 별수 없었겠지.
계곡을 몇 차례 건너느라 물 속에 쳐 박히기도 하며 간신히 일몰 전에 복숭아탕까지 올라 비박을 하고 오늘도 흔적이 자주 끊기는 길을 찾아 오르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 되였다고 한다.
준비한 주먹밥으로 점심을 하고 능선을 따라 진행한다.
능선에서 바라보는 설악의 모습은 또 다른 감동이다. 하얀 바위벽들이 모여 암봉을 이루며 힘차게 솟아 있는 모양은 정말 눈부시다.
설악은 계곡과 능선을 아울러야 참모습을 맛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두 번의 휴식을 가졌는데도 멀리 보이는 귀때기청봉은 좀처럼 거리가 줄어 들지 않는다. 내리쬐는 햇살과 배낭 무게에 짓눌려 얼마 안가 숨이 가쁘기 시작하고 어쩔 수 없이 수통에 손이 간다. 이미 수통 하나는 바닥이 나고 있고 내일까지 버티려면 참는 수 밖에 없다. 종종 길이 애매해 선배들이 찾아나서는 사이 숨을 돌리며 체력을 회복한다.
머리 위의 해가 옆으로 기울어 졌을 즈음 귀때기청 너덜이 눈에 들어오고 마침 적당한 공터가 있어 비박을 하기로 한다.
고무에 천으로 코팅한 군용 물통에서 물을 따라 밥과 찌개를 끓이고 물통은 굵은 나뭇가지에 걸어 놓는데 아무도 마셔서는 안 된다는 엄명이 떨어진다.
느닷없이 자린고비 생각이 난다. 굴비 걸어 놓고 밥 한술에 한번씩 쳐다 보았다는데 이제 목 마르면 쳐다보고 갈증을 달랠 수 밖에 없다.
저녁식사를 마치니 어느새 하늘은 황혼 빛에서 푸르른 어둠으로 바뀌어 가고, 끝도 없이 이어진 산줄기들이 검은 윤곽을 그려 놓는다.
잠자리를 준비한 후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 앉는다. 낮과는 달리 써늘한 밤 한기에 불 가에 붙어 있어도 더운 줄 모르겠다. 온갖 이야기들을 쏟아 내며 웃고 떠들다 문득 고개를 드니 밤 하늘엔 별이 가득하다.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가슴이 시리다.
3. 셋째 날
산새의 지저귐에 눈을 떠보니 이미 날이 밝아있다. 어제 밤은 정말 꿀 잠을 잤다. 밤새 이슬에 젖은 침낭을 나무가지에 널고 아무 생각 없이 양치질을 하려다 물이 없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목이 마르지 않은 것만도 다행인데 별 사치스런 짓을 할 뻔 했다.
공용 물통의 물로 빠듯하게 밥을 하고 마른 반찬으로 아침식사를 때운다.
그래도 커피 끓일 물은 남겨 두어 식사 후 한 잔의 커피와 한 모금의 담배를 즐기는 여유를 가져 본다.
준비를 마치고 배낭을 메니 어제보다 더 무겁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오늘 점심은 내 배낭 속의 쌀을 잽싸게 처분해야겠다.
배낭 무게로 기우뚱 거리며 너덜 밭을 힘들게 지나 귀때기청에 오르니 대청까지의 능선이 뚜렷이 펼쳐진다.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어제에 이어 주위 지형에 대한 설명을 다시 듣는다.
오른쪽 아래 오색 주전골은 설악산에서도 가장 외진 곳이란 말이 흥미롭다.
오죽하면 도둑들이 들어와 가짜 엽전을 주조했을까?
그러나 한계리에서 동해안까지 지금 공병대가 도로를 뚫고 있으니 조만간 옛 얘기가 되리라.
귀때기청을 지나 얼마 되지 않아 길을 잃어버린다. 선두를 지키던 선배는 작년에도 이 근처에서 애를 먹었는데 또 길을 놓쳤다고 투덜거린다.
십여분을 헤매다 결국 자일을 꺼내 바위길을 하강해 제 능선길로 들어선다.
오월의 태양은 생각보다 뜨겁다. 수통의 물은 바닥나고 간식으로 먹은 사탕이 더욱 갈증을 일으킨다. 다른 대원들도 빈 수통이 대부분이다.
누군가가 감자를 꺼내 껍질을 벗겨 날로 먹는데 갈증 해소에 도움이 될듯하여 따라 해 보니 제법 괜찮다. 너무 힘들어 주위 풍광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고 쫓아만 가다 중청에 올라선다.
대청을 향해 모두가 외치니 답이 있다. 봉정암에서 오른C조가 기다리고 있다.
저길 가면 물이 있다는 생각에 힘이 솟아 쉬지 않고 대청까지 오른다.
건네주는 수통을 반 가까이 비우고서야 이야기를 시작한다.
뒷짐지고 동해바다를 바라보고 계신 스님 한 분은 봉정암 스님인데 신흥사까지 우리와 동행키로 하여 함께 올라왔다고 한다.
봉정암엔 부엌딸린 방 한칸의 요사채와 법당이 전부인데 어제밤엔 우리 대원들에게 방을 내주고 스님은 법당에서 주무셨다고 한다.
덕분에 부엌에서 편히 밥 짓고 산나물 반찬까지 얻어 먹었단다.
물이 있으니 느긋하여져 천천히 점심을 지어 먹고 천불동을 향해 출발한다.
급한 내리막을 서두를 것 없이 두어 시간 내려오니 물소리가 요란하고 덩그러니 지붕과 기둥만 있는 팔각정이 나타난다. 희운각이다.
오늘 밤은 이곳에서 야영을 한다.
12명의 대원이 다 합류하니 시끌벅적하다.
한 편에선 굵은 나뭇가지에 반합 네 개를 걸어 밥을 하고 다른 쪽에선 찌개를 끓이는데 구수한 냄새가 코 끝에 맴돈다. 요즘은 집집마다 연탄을 사용해 저녁 때가 되어도 이런 밥 짓는 냄새를 맡을 수 없나 보다. 식사를 마치고 어제보다 훨씬 큰 모닥불을 지핀 후 끝없이 떠들고 노래하느라 밤이 깊은 줄도 모른다.
오늘은 술까지 나온다. 모두에게 양주 한잔씩이 돌려진다.
처음 마셔보는 술인데 목구멍이 화끈하다. 이래도 음주 경력 3개월에 술이 세다는 소릴 듣는데 이건 액체가 아니라 불덩이를 삼킨 것 같다.
야영 준비가 없는 스님께 판초우의를 여러 장 드리고 불가에서 주무시라 해도 사양하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잠자리를 정하신다.
하긴 비린내 나는 통조림 깡통하며 술병 꽁초가 널려 있는 곳에 주무실 생각이 나질 않으시겠지.
4. 넷째 날
느직이 아침식사를 마치고 천불동 계곡을 내려간다.
계곡의 굽이를 돌아설 때마다 펼쳐지는 장관에 정신을 빼앗기며 위험스런 곳을 어렵사리 지나오다 마침내 천당 폭포에서 막혀버린다.
통나무를 엮어 만든 다리가 옆의 사면을 따라 걸려 있긴 한데 너무 낡아 보여 도저히 건널 용기가 안 난다. 여러 궁리를 해 보지만 방법이 없다.
결국 리더가 자일을 묶고 먼저 건너가 양 편에 자일을 고정 시킨 후 조심 조심 모두가 다리를 건넌다.
양폭으로 내려서니 계곡의 폭이 한결 넓어 진듯하다.
여기서부터는 선두 후미 구분 없이 제 멋대로 내려간다. 위험구간이 더 이상 없나 보다. 환상의 오련폭을 지나 넓은 계곡가에서 점심을 하고 귀면암 오르막에서 마지막 땀을 낸다. 조금만 가면 된다더니 또 오르막인가?
너른 소가 보이는 곳에 이르자 한 대원이 소리친다. “야, 사람이다”.
그러고 보니 산 속에서 스님 이외에 만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놀랍다.
비선대의 유람객들 사이에 끼어드니 지난 사흘 동안 선계에서 놀다 다시 속세로 돌아온 느낌이 든다.
이래서 틈만 나면 배낭 메고 산으로 내 빼는 걸까?
평탄한 길을 걸어 신흥사에 도착하자 동행했던 스님이 합장을 하며 작별인사를 하신다. 함께 산을 내려와 즐거웠다며 앞날의 복을 빌어 주시겠다고 하신다. 우린 합장 대신 꾸벅 절을 하고 신흥사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본다. 고즈넉한 백담사와는 달리 이곳은 관광객들이 들락거리고 왠지 도시 냄새가 난다.
좀 더 내려오자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북적대는 여관촌이 나타난다.
단골이라는 ‘비선여관’에 들어가 방을 보니 일행 모두 댓자로 누워 자도 남을 만큼 넓은 방이다. 이곳 여관들은 수학여행 단체를 겨냥해서 방이 모두 큼직한 모양이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는데 남은 쌀은 모두 공출이다.
선배 셋이 산에서 한 톨도 건드리지 않은 쌀 주머니를 꺼낸다.
둘러메고 나가더니 잠시 후 막걸리가 가득 담긴 바께스를 들고 온다.
물물교환으로 확보한 막걸리다.
이렇게 해서 우린 설악의 마지막 밤을 산의 정기에 취하고 술에 취하여 달빛에 흘려 보낸다. ‘개나리 고개’를 합창 하면서.
첫댓글 아..개나리고개..산노래...오래된 노래인데...예전의 산선배들의 모습...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정말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멋있습니다.나도 한번 해 보고싶네요.
당시 산행이 훨씬 재미나고 멋스럽지않았을까요 ^^ .
왜이리 가슴이 찡하면서 좋을까요*^^*
와우~~ !! 정말 대단 한대요...! 나도 함 하고싶다..
고생하면서 하는 산행이 진짜 산행맛인데 요즘 산행은 유랑산행으로 바꿔으니..........아~~~~옛날이여
그때는 등산로도 제대로 없었을 시절이었을텐데, 진짜 산행다운 산행이군요....
사진까지 있었다면 금상첨화겠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