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섭이 상가에 다녀와서
<깐깐한 처신과 허술한 처신>
부모님 장례치를 때 조문객이 너무 없어 접빈실이 썰렁해지면 어떻게 하나? -- 나는, 나만 이런 걱정을 하면서 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심지어 진섭이 같은 사람까지 그런 문제에 신경을 쓰더라. 진섭이는 어떤 사람인가 하면 -- 이번에 측근들의 증언을 듣고 나는 더욱 분명하게 확신하게 되었지만 -- 고지식한 원칙주의자이다. 고지식한 원칙주의자는, 예컨대, 친구가 가벼운 청탁을 넣어도 일언지하에 거부한다. 그래서 진섭이는 적지 않은 동창들에게 섭섭하다는 말을 들었고 심지어 원망을 사기까지 했다고 한다.
고지식한 원칙주의자들이 대개 그러하지만, 진섭이는 매사에서(예컨대 가족들을 대할 때에도) 허술하게 처신하지 않으며,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다가서지 못하게 한다. 곁을 잘 주지 않는다고 할까?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다고 할까? 이 점은 그의 측근이 나에게 증언해 준 것이 아니라, 이번에, 진섭이 자신이 나에게 고백한 준 것이다. 가족들(특히 형제들)이 자기를 어려워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부분에 관한 한, 진섭이는 반성을 한다. 반성을 많이 했다더라. 그리하여 3년 전부터는 자기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해 왔으며, 이제는 노력의 성과를 어느 정도 거두고 있다고 한다. 즉 최소한 가족들 앞에서는 허술하게 처신해낸다는 것이다. 이번의 어머니 장례에서도 자기가 허술하게 처신한 탓에 화목하고 원만하게 장례를 치루어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고백을 참고하면서 한 중년 남자가 자기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모습을 관찰하였다.
내가 (분당의) 성요한성당 영안실에 도착한 것은 어제 저녁 9시 경이었다. 의외로 우리 동창들은 한 명도 없었다. 많이들 왔었는데 벌써 다 갔다고 한다. 첫째 날도 많이들 왔었지만 다들 일찍 끝냈다고 한다. 내가 혼자서 밥을 다 먹고나니, 태영이가 왔고, 한조가 왔으며, 마지막으로 근식이가 왔다. 이들도 12시가 되기 전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성요한성당은 밤 열 두 시와 새벽 다섯 시 사이에는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도 이 곳은 우리 동창들이 와서 평소처럼 떠들고 마시기에는 적절치 않은 곳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 곳에 빈소를 차렸는가? 진섭이는 큰 형수의 뜻에 승복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진섭이는 이렇게 자기가 허술하게 처신해내었다면서 아주 만족해하였다.
장례 미사 역시 큰 형수가 다닌다는 부송동 성당에서 열렸다. 미사의 절차 가운데에는 성경 구절을 봉독하는 순서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순서를 일반 신도가 맡아서 하는 수가 있나? 그것도, 상주 신분인 사람이 그렇게 하는 수가 있나? 하여간 진섭이는 단상에 올라가 바울의 편지 한 부분을 읽었다. 부송동 성당에서 미사를 마친 후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을 하고 제천의 배론 성지로 이동을 하였는데, 제천으로 이동을 하는 중에도 진섭이는 의외의 행동을 하였다. 진섭이는 마이크를 잡더니 조문객들을 향하여 자기소개를 한 후 감사의 인사를 전하였으며, 나중에 한 차례 더 마이크를 잡고는 가족사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어젯 밤에 진섭이는 나에게, 3년전부터 자기는 ‘튀는 행동’을 하기로 결심하였다고 말하였다. 진섭이는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이 허술하게 처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함에 틀림없는데, ‘튀는 행동’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했더니, 바로 위와 같은 것들을 가리키는 모양이다. 그런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진섭이가 ‘튄’ 것은 분명하다. 진섭이는 무슨 기쁜 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내내 싱글벙글거리면서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마음 공부: 두 가지 방법>
어젯 밤, 열 두 시가 넘은 후, 나, 진섭이, 진섭이의 제자 한 사람, 진섭이 사무실의 직원 한 사람, 그리고 진섭이 동생 한 사람 -- 이렇게 다섯 명이 한 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섭이 동생 이름은 빈섭이이다. 나는 또 얼토당토 않은 실수를 하고 말았다. 나는 검은 줄 두 개 짜리 완장을 찬 신사 분에게 다가가서는 “큰 형님, 저 알아보시겠습니까? 빠리바 은행으로 제가 찾아뵌 적도 있는데...... 제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저 영탭니다, 조영태.”라고 말하였다. 그 신사 분은 반색을 하고 내 손까지 꼭 잡으면서 “아, 영태형이세요? 저 빈섭이예요, 빈섭이.”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콱 죽고 싶었다. 큰 형님과 빈섭이는 13년 차이란다. 나 자꾸 왜 이러지?) 진섭이의 제안으로 ‘마음 공부’가 이야기의 주제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젯 밤, 진섭이와 나는 각기 자기가 믿는 마음 공부법을 주장하였던 셈이다.
진섭이는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 “무아(無我)”, “견성성불(見性成佛)”, 직지인심(直指人心) 등등 격조있는 말을 입에 올리면서 토론을 이끌어갔다. 진섭이 제자인 대학생과 진섭이 사무실의 젊은 직원도 이러한 주제에 관심이 많은 듯 열렬하게 대화에 참여하였다. 처음에는 빈섭이도 그렇게 열심히 참여하였지만, 내가 내 주장을 내어 놓자 그것을 듣고 기분이 상했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를 13년이나 늙게 보았다는 사실이 갑가지 회상되어 기분이 상했는지) 중간에 슬며시 자리를 떠났다.
내가 내어 놓은 주장은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이 오로지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말을 너무 좋아하지 마라. 그 말은 동네 아줌마들도 다 이해하고 있는 것 아닌가? 거기에도 진리가 전혀 들어있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만, 불교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이해되는 것이겠는가? “一體唯心造”는 다른 방식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유’(唯)는 부사(‘오로지’)가 아니라 형용사(‘하나인’)이다. 즉 “모든 것이, 하나인 마음(唯心)에 달렸다.”로 번역되어야 한다. 불교는 ‘하나인 마음’이라는 것이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것이 있는 것 같다. ‘하나인 마음’은 ‘마음먹기’의 마음과는 구별되어야 하며, 다시 말해서 내가 의식하고 있는 내 마음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무아’라는 것은 바로 그 ‘하나인 마음’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무아’는 “내가 없다”는 불투명한 말로 직역되어서는 안 되며,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진정한 나라고 할 수 없다”로 의역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나는 무엇인가? 그것은 물론 ‘하나인 마음’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성’이나 ‘불’ 역시 ‘하나인 마음’을 가리킨다.
이것이 나의 (마음에 관한) 이론이라면, 나의 마음 공부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마음먹기를 직접 겨냥하는 것일 수 없다. 그것은 차라리 ‘하나인 마음’을 직접 겨냥하는 것이다. “직지인심(直指人心)”의 ‘인심’ 역시 ‘하나인 마음’이다. 마음먹기를 직접 겨냥하는 공부 방법이라는 것은, 예컨대, 금번 인사 발령에서 억울하게 밀려난 스님이 자신의 그 억울한 마음을 달래려고 애쓰는 것, 자기 대신 주지 자리를 꿰찬 후배 스님을 보면서 그에 대한 시기심을 억누르려고 애쓰는 것 -- “그 녀석이 나보다 후배이기는 하지만 조직을 이끄는 리더쉽이 제법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등등 -- 을 가리킨다. 이것은 물론 불교의 수행법이 아니다. 불교의 마음 공부 방법은 물론 경전 공부와 참선이다. 나는 거기에 독서 일반과 저작(著作) 일반을 포함시킨다. 글 읽고, 글 쓰는 것, 전부 말이다. 이들은 ‘하나인 마음’을 겨냥한다. 나에게 ‘하나인 마음’이 생겨나거나 확충되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먹기를 달리하게 된다. 독서와 저작이라는, 나의 마음 공부 방법은 ‘하나인 마음’을 직접 겨냥하는 것이며, 다시 말해, ‘하나인 마음’을 경유하여 마음먹기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진섭이의 공부 방법은 마음먹기를 직접 겨냥하는 것이다. 그가 그러한 공부 방법을 채택하는 것은 그가 그만한 이론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론은 물론 동네 아줌마들도 이해하고 있는 마음 이론 -- “모든 것이 오로지 마음먹기에 달렸다” -- 이다. 진섭이는 동네 아줌마 마음 이론을 기반으로 동네 아줌마 수행법을 채택한다. 혹은 그는 그러한 이론을 따를 뿐 아니라 그러한 방법을 실천하고 있다. 진섭이는 어젯밤 토론을 통하여 자기 생각을 자세하게 말하였으며 날이 밝자 행동으로 자기 생각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수행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이 아닌가? 그는 자신의 마음을 고쳐먹고 장례 절차를 결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형수의 주장에 승복해내었으며, 허술하게 처신하기로 마음먹고 의도적으로 ‘튀는 행동’을 해내었다. 누구나 다 아는 바와 같이,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는 일이야말로 어려운 일 가운데에서 어려운 일이다. 진섭이는 고시공부할 때의 집념과 같은 집념으로 마음을 다스려온 것 같다. 나는 진섭이의 수행법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 수행법에 갖다 붙인 ‘동네 아줌마’라는, 폄하하는 듯한 명칭도 철회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해야 할 듯하다.
<동쪽의 귀인>
진홍이가 부송동 성당으로 왔으며, 승현이가 진섭이의 대학원 때 친구와 같이, 수원 연화장으로 왔다. 방학이 되어 시간이 널널한 나와, 방학이 아니래도 시간이 널널한 승현이는 장지까지 쫓아갔다. 장지인 제천 배론 성지는 정말로 배 밑바닥 모양이었으며 아늑하고도 성스러운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거기까지 따라온 조문객만도 육, 칠십 명이 넘었으며, 그 곳에서도 다시 신부님이 나와 납골을 위한 예절을 집전해주었다.
장례 행사를 완전히 마친 후 일행은 그곳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는데, 재훈이는 나에게 밥을 남길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였다. 아 참, 배론 성지에 도착하니, 놀랍게도 재훈이(건설부)가 와있었다. 알고 보았더니, 재훈이는 충주에서 근무하더라. 승현이와 나는 재훈이의 초대를 받아 수안보와 충주호를 둘러보고 꿩고기 요리를 대접받았다. 그 지역 토박이인, 재훈이의 승용차 기사가 안내해 주었던 것. 재훈이는 우리를 다시 충주터미널로 대려다 주고 버스표까지 끊어 주었다. 나는 전주 가는 버스에 앉아 손까지 흔들어주는 친구의 배웅을 받았다. (마음먹기가 아니라) ‘하나인 마음’을 지향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마치 혼자서 세상을 살 수 있는 것처럼 큰 소리를 쳐댄다.
첫댓글 일체유심조나 견성성불, 그리고 하나인 마음에 대한 영태거사의 해석에 전적으로 동의 합니다. 특히 일체유심조는 그렇게 보지 않으면 영 엉뚱한 얘기가 되는 거 아닌가요? "하면 된다"는 류의.....마음 먹기가 곧 분별심, 번뇌 또는 망상으로 가는 거 아닐까요?
불교의 마음 공부 방법은 말씀을 하셨는데, 목표랄까 아니면 마음 공부가 된 상태에 관해서 조금 더 거사님의 설법이 필요합니다. 제 모자라는 생각으로는 위의 스님의 예로 보면 인사발령에서 억울하게 밀려났다는 생각이 아예 들지 않게 되어야 하나의 마음에 다가간 것(직지인심,直指人心)이 아닐까 합니다. 억울한 가운데서 이런저런 마음 먹기란 것이 병의 원인은 그대로 두고 증상만 어찌 해보려 용쓰는 거 아닐까요? 거사님의 한 말씀을 기대합니다.
닌지 논객에게서 동의를 얻어내다니, 음, 기분 좋구만. 맞습니다. 마음 먹기를 바꾸는 일은 "증상만 어찌해보려 용쓰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글은 그렇게 증상만 바꾸는 일도 의미있고 중요한 일이 아닌가 하면서, 종래의 내 생각을 반성하는 글이 아닙니까?
그 날 밤의 토론에 대한 위의 정리는 내 입장에서 한 것으로, 진섭이는 다른 식으로 정리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토론에 대한 것이건, 다른 부분에 대한 것이건, 내가 진섭이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된다. 진섭군, 어느 정도 정신이 들어 까페에 들어와 내 글을 보게 되면 귀띰을 해 주오.
수고하셨네~~
영태^^ 고맙다. 승일^^ 역시 고맙다.
영태다운 관찰과 성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