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여
나현수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던 소녀
같은 나이의 소녀들이 두 손에 책을 들 때
그녀의 손에는 멸장 통이 들려 있었다
그녀의 친구들이 원피스를 입고 대학로를 걸을 때
그녀는 몸빼바지와 헐렁한 티셔츠를 입은 채
젓갈 냄새에 절어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했다.
소녀의 고향은 경상도
시댁은 전라도
대학까지 중퇴했던 그녀가 선택한 사랑은
우는 아이 두 명과 멸장 통이 지킬 뿐
시누이도 시부모님도 남편까지도 그 곁에 없었다고 한다.
매일 밤 소화기 너머 들려오는 딸의 울음은
그녀의 어머니 또한 병들게 했다
오랜만에 친정어머니를 찾아 온 소녀는
자식들이 눈에 밟혀 하루 만에 전라도행 버스를 탔고
얼마 안가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채
앞으로는 울리지 않을 수화기를 들고
아이들이 잠을 깨지 않도록 숨죽이며
밤이 오면 며칠을 우셨다.
이제 그 아이들이 결혼하여 손주를 낳고
소녀는 할머니라 불리게 됐다.
그녀의 삶은 노동과 울음으로 가득했는데
그녀는 웃는다, 행복했다고 한다.
휴대폰이 울린다
다 큰 아들이 혹여나 아프지는 않는지 묻는 여인
그런 그녀가 나의 어머니임을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카페 게시글
詩와 그리움
어머니여 ㅡ 나현수
산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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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06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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