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청준의 삶과 문학이 준 , 내가 소망하는 신앙고백—
어제 밤, 잠이 오지 않아 조용한 늦은 시간에 서가에 꽂혀 있는, 故 이청준(李淸俊) 작가가 쓴
단편 “눈길”을 다시 끄집어 내어 펼쳤다.
우리나라 작가 중 내가 알며 가장 좋아했던 그가 세상을 떠난 지도 어언 15년이 흘렀는데도
이 단편소설에 투영되어 있는 그의 어린 시절의 삶이 눈앞에 얼렁거리며 아리게 다가 온
그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가슴 아프게 기리면서, 그의 작품세계를 지탱해 주며 힘의 원천이 되었던,
그의 어머니의 영원히 말리지 못할 젖은 옷 같은 사랑을 다시 떠 올리며,
오늘 이를 통해 나의 남은 날의 삶과 신앙의 바램을 솟구쳐 본다.
ㅇ, 1954년 이청준이 고향 장흥을 떠나 도회지 중학교로 유학 떠나기 전날, 어머니와 개펄로 나갔다.
홀어머니는 몹시 가난했지만 아들을 맡아 줄 친척집에 빈손으로 보낼 순 없어서 모자는
애 뜻한 마음으로 한나절 게를 잡았다. 이튿날 그가 긴 버스길 끝에 친척집에 닿자 게들은 상해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자 친척집 누님이 코를 막고 게 자루를 쓰레기 통에 버렸을 때,
그는 자신이 버려진 듯 비참한 마음이었다.
궁색한 게 자루와 거기 함께 버려진 어머니의 정한(情恨)을 두고두고, 그의 삶과 문학의
숨은 씨앗이 되었고, 그는 "어머니에게서 깊은 삶의 비의(悲意)와 문학의 자양(滋養)을 얻었고,
당신의 삶을 빌린 글들을 쓰면서 많은 것을 깨우쳤다"고 했다.
그의 문학의 출발점은 고향, 어머니, 불우한 유년이 뭉쳐진 원죄의식이었고, 영원히 말리지 못할
축축하게 젖은 옷을 입은 듯 남루한 원죄의식, 그 모든 것을 끌어 안은 상징이 '어머니'였다
ㅇ, 어머니는 가난에 치여 집까지 팔았지만, 고향에 다니러 온 고교생 아들에게 그 사실을 숨기고
집주인의 허락을 얻어 내집인양 아들에게 밥 해 먹이고 잠까지 재워 보냈다.
어머니는 이른 새벽 눈 쌓인 길을 걸어 아들을 읍내까지 배웅하고 돌아서며, 눈길에는 모자가
걸었던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어, 어머니는 아들의 목소리와 온기가 밴 아들의 발자국을
밟고 온다. 그러나, 마을 어귀에 선 어머니는 갈 곳이 없다. 집이 없다. 이청준은 그 황망한 사연을
십 몇년 뒤에야 알게 되었다. 단편 '눈길'에 쓴, 이 가슴 아픈 내용은 자신의 얘기였다.
ㅇ, 그 후 어머니의 상(喪)을 치르면서 영화감독 임권택에게 격은 일화들을 얘기했다
그래서 두 사람이 함께 소설과 영화를 쓰고 찍은 작품이 '축제'다
ㅇ, 조병화 시인은 '꿈의 귀향'이란 시에, ' 나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
이제 어머니의 심부름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 왔습니다' 라고 했다
이와 같이 이청준은 "내 소설의 기둥은 어머니"이며, "소설을 쓰게 해주는 힘과 인연이
어머니에게서 비롯된다"고 했으며 즉, 어머니는 그가 영원히 말리지 못할 젖은 옷 한벌,
그의 정신의 피륙(皮肉)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갔다.
오늘 이청준씨의 일련의 삶과 문학을 떠 올리며,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과 신앙을 뒤돌아 보면서
이청준의 삶과 문학의 기둥이며 힘의 원천인 어머니 같은, "우리 하나님의 사랑" ~~~,
아들이 영원히 말리지 못할 젖은 옷과 같은, "우리 하나님의 사랑으로 젖은 은혜"~~~
그로 인해, 나도 이 세상을 떠나는 날, 이런 고백을 하고 싶다!
"내 생애의 기둥은 어머니같은,하나님의 사랑"이며,
"내 인생을 살게 해준 힘과 인연이 어머니의 젖은 옷과 같은,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됐다"고...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 이제 하나님의 심부름을 다 마치고 /
하나님께 돌아 갑니다" 라고....
훗날, 이 세상을 떠날 때, 내가 뭣 하려 이 세상에 왔다가가는지 뭐가 뭔지도 모르며
죽음만 무서워하며 부들부들 떨다가 눈을 감는 내가 아니라,
이런 아름답고 의미있는 고백을 담대히 하며 눈을 감을 수 있다면 , 그 얼마나 행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