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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보석, 돈황(敦惶 : 뚠황)
우루무치와 예멘 사이에 위치해 있는 오아시스 도시인 돈황은 중국 감숙성 하서주랑의 인구 18만명이 살고 있는 이름난 역사 및 문화도시다. 이러한 역사와 문화적 배경때문인지 아니면, 오아시스도시라는 독특함 때문인지 서역으로 향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이곳에 발길을 멈춘다. 공산주의 사회체제 아래서 옛 명성만큼의 부귀와 성함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유적지나 골목 곳곳에서 예전에 번영했던 흔적을 깊이 느낄 수 잇있다. 이 18만의 인구는 한족이 총 인구의 99%을 차지하며 회족, 장족, 몽골족, 토족, 묘족, 만족, 조선족 등 10여개 민족이 1%을 차지한다 돈황이라는 이름은 '크게 번성한다'는 의미인데, 그 의미 그대로 고비사막의 오아시스도시로서 '실크로드'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특히 당대 7세기부터 8세기 중엽에 걸쳐 가장 왕래가 성해 동서무역의 중계지점으로서 문화의 꽃을 피우며 세계적인 '돈황예술'을 창출했다. 이미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막고굴의 천불동이 그 예다. 그 밖에 이곳의 볼거리로 막고굴을 비롯해 사주성(沙洲城), 백마탑(白馬塔), 옥문관(玉門關), 양관(陽關), 월아천(月牙泉) 등이 있다. 돈황의 기후는 중국 북서쪽의 대륙성 기후대에 속해 여름에는 덥지 않으나 매우 건조하며, 겨울에는 평균 영하 9~10도까지 내려갈 정도로 춥다. 건조한 여름이지만 이 도시에 들어서면 먼저 방문객을 반기는 백양나무의 푸른 잎새는 단조로운 사막의 풍경과 더위에 지친 여행객들에게 새로움을 준다. 이 나무는 원래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흔히 오아시스 도시의 주변에 많이 늘어서 있는데, 돈황의 백양나무 너머에는 옥수수밭과 보리밭, 목화밭 등이 펼쳐져 있다. 아침,저녁간 기온차가 극심하고 건열풍과 흑사폭풍 등의 자연재해가 있기 때문에 선글라스와 모자, 모래바람을 막을 두건은 필수품으로 꼭 챙겨야 한다. 대체로 5월에서 10월 까지가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다. -돈황 내에는 의료시설이 많이 부족한 상태이다. 풍토병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하며 감기약 및 비상약품들을 준비해가는게 좋다. -멋진 일몰,일출 사진을 찍고 싶다면 명사산,월아천이 있는 과벽탄(戈壁灘)에 가는게 좋다. 시내에서는 그정도의 장관을 볼 수 없는대다 시내에서 과벽탄까지는 10km 가 넘는 거리이므로 과벽(戈壁) 근처에 있는 칠리진(七里鎭)에 하룻밤 머물면서 일몰,일출을 모두 멋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
돈황예술의 결정, 막고굴 (莫高窟, magaos caves, 모어까오쿠): 세계문화유산 실크로드의 중심이었던 돈황에는 구법승, 대상, 병사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때문에 경제적인 융성 뿐 아니라 돈황예술을 꽃피우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 흔적이 바로 세계적인 불교유적지로 유명한 막고굴(莫高窟)이다. 둔황 시내에서 동남쪽으로 25km 떨어진 곳으로 버스로 약 삼십분 거리에 있고, 굴 주변으로 가느다란 시냇물이 흐르며 주변은 온통 황량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막고굴은 서기 366년 승려 악준(樂樽)이 명사산(鳴砂山)과 삼위산(三危山)에 이상한 빛이 있음을 알고 석벽을 파서 굴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14세기까지 약 천 년 동안 수많은 승려와 조각가, 화가, 역경사, 석공, 도공, 목공, 시주 들이 드나들면서 하나, 둘씩 굴을 팠으며 그렇게 파게 된 크고 작은 굴의 전체 수가 약 천 개 가량이 된다. 그 수많은 굴 중에서 17번이라 번호가 붙여진 굴 속에는 우리나라 신라 혜초 스님이 남긴 '왕오천축국전'이 다른 보물들과 함께 잘 보전되어 있다. 1,000개의 굴이 있다 하여 천불동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곳에는 굴마다 불상의 형태나 벽화의 내용이 다르다. 그러나 어두운 동굴의 천장과 벽화를 가득 메우고 있는 그림에는 한결같이 어떤 종교적 고행이 느껴지며, 또한 각 굴의 천장화는 매우 정밀하고 기하학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종교와 예술의 피땀어린 결정체이기 때문에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이 되었지만, 아쉽게도 경동의 유물들은 일찍이 약탈로 인해 수만점이 해외로 유출되어 현재에는 10여개국의 박물과과 도서관에 분산 보관되고 있다. 이에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막고굴문화재의 보호와 연구를 강화하고 있으며, 1961년에는 국무원에서 막고굴을 중점문화재로 지정하고 막고연구원을 설립하여 보호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가는방법 : 서역빈관 앞이나 돈황반점 부근 미니버스 탑승.
산같은 모래 언덕 명사산 (鳴沙山 : 밍샤샨, Mingsha Shan or Dunes of the Singing Sands) 돈황에 있는 또 하나의 명물은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명사산(鳴砂山)이다. 이 명사산은 돈황의 남쪽으로 5㎞ 떨어진 곳에 뾰족하게 솟아있는 모래산으로 쌀알만한 모래와 돌이 퇴적되어 형성된 산이라고 한다. 신사산(神沙山), 사각산(四角山)이라고도 하는데, 심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모래산은 거대한 소리를 내며, 가벼운 바람이 불어도 마치 관현악 연주를 하는 듯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산의 특징으로 鳴(소리낼 명), 沙(모래 사) 를 따서 명사산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산 정상에 올라가 미끄러지듯 내려오다 보면 발 아래에서 내는 모래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남북 20KM, 동서가 약 40KM에 이르는 거대한 모래산은 이름 그대로 모래결이 희고 가는 정도가 믿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명사산 위로 올라가 바라보는 저녁 일몰의 풍경은 천하의 절경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또 이때는 아름다운 모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인체와 모래의 마찰로 인하여 일어나는 불꽃도 볼 수 있다. 여름에는 기온이 매우 높아서 오후 4시 이후에 가는 게 좋으며, 명사산안에서 낙타를 타고 갈 수 도 있다.
초생달 모양의 오아시스 월아천(月牙泉 : 위에야취엔, Crescent Moon Lake) 월아천은 명사산 안에 있는 초생달 모양의 작은 오아시스로 남북길이가 약 150m, 폭이 50m 정도다. 서쪽에서 동으로 갈 수록 수심이 깊고, 제일 깊은 곳은 5m 정도인데, 물색이 맑고 파래 거울을 보는 것과 같다. 월아천의 발원지는 돈황 남쪽에 솟아있는 곤륜산맥의 눈 녹은 물이 만든 당하(黨河)라는 이릉의 강으로 이 물이 지하로 흘러 비교적 저지대인 이곳에서 솟아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매년 광풍이 불어도 이곳 만큼은 좀처럼 모래에 덮이지 않아 기이하게 여겨졌고, 옛부터 이곳에서 살았던 칠성초와 같은 생물이 평생 늙지 않아 '만천(萬泉)'이라 불리기도 했다. 아쉽게도 최근들어 당하(黨河)와 월아천의 사이가 끊겨져 인공적으로 물을 대고 있다. 모래산에 둘러싸인 채 수천 년 동안 내려오면서 어우러진 풍경은 사막 안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멋진 풍경이다. 이런 월아천은 사막의 오아시스가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일몰때 명사산에서 바라보면 정말 예술이다. 현재는 월아천 옆에 누각을 세워 사막의 작은 오아시스가 주는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서역으로 가는 길목, 양관(陽關古城) 돈황시에서 남서쪽으로 70km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한대에 만들어진 실크로드 길목으로 서역 남도(南道)의 입구이다. 많은 중국인들은 양관하면 당대 시인 왕유가 남긴 "그대에게 한잔의 술을 권하니, 서쪽 양관으로 나가면 옛벗이 있겠는가 (勸君更進一杯酒, 西出陽關無故人)" 라는 시구를 떠올린다. 양관은 이미 오래 전에 파괴되어 지금은 단지 붉은색 모래산 위에 양관의 눈과 귀의 역할을 했던 봉화대만 남아 있다. 봉화대의 높이는 4.7미터, 길이는 8미터이다. 양관 근처에는 남호(南湖)와 포도길이 있어 독특하면서도 이국적인 풍경을 즐길 수 있으며 이곳 민속문화를 탐방할 수도 있다.
영화 세트장으로 만든 사주고성유적(敦惶古城) 돈황의 시가지에서 25km가량 빠져 나와 남동쪽, 명사산이 있는 사막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성이 하나 나타나는데, 이곳이 영화세트장으로 유명한 돈황고성이다. 1987년 중일합작으로 대형 역사영화 <돈황>을 찍기 위하여 만들어진 세트장으로 송대의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를 원본으로하여 사주고성을 그대로 재현하였는데, 그 건축면적이 1만평방미터에 달한다. 돈황고성의 건축풍격은 서역의 운치 속에 동,서,남으로 난 세개의 성문과 성루가 우뚝 솟아있다. 성내에는 고창, 돈황, 감주, 흥경, 변량 5개의 주요도로를 조성해 놓았으며, 도로 양편으로는 불당과 전당포, 창고, 주점, 주택 등이 지어져 있다. 돈황고성은 당송시기의 서북 요충지인 돈황의 웅장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어 중국 서부건축예술 박물관이라 불리고 있다. 이곳은 중국 서부의 최대 영화 촬영기지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미 <봉신연의> , <신용문객잔> 등 20여 편의 영화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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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명사산은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산인데..언덕을 오르며 생각했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 모래가 날라 가는데,
어떻게 이런 언덕이 계속 유지되고 있을까?"
사막 저곳에서 날라 와 쌓이고, 또 날라 가고 이것을 계속 반복하나 보다.신기한 자연의 조화이다....한번도 사막을 밟지 않아본 사람으로 정말 의미있는 장관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