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의 재앙에 이끌리면 말에 사망을 태우게 됩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유명한 장군인 김유신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 때 유흥에 취하여 기생집을 찾는 날이 잦았습니다.
이를 본 그의 어머니가 그를 불러 꾸짖고 돌이키라고 훈계를 하였습니다.
자신의 잘못 된 점을 깨달은 김 유신은 다시는 기생집을
찾지 않으리라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러나 의례히 기생집으로 가도록 길들여진 김유신을 태운 애마(愛馬)는
김유신을 태우고 여전히 기생집으로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김유신은 그릇 되게 걷는 애마의 목을 단칼로 치고 말았습니다.
그 애마의 목을 친 다음에 새로운 말을 택한 후에는
김유신은 다시는 기생집에 가는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이 예화를 사자성어로〈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고 하며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으로 나쁜 습관에 길들여진 육체를 끊는 의미로 성경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므로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육체를 싫어하십니다 (창 6:3)
그래서 육체의 생각을 좇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롬 8:7)
성경은 사람이 타고 다니는 말을 많이 기록하였습니다.
사 31:3은 말이 육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사 31:3)
갈 5:24에서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가 예수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육체를 못 박으라고 하시는 이유는 죄의 본성인 육체가 움직이면
죄를 짓게 되어 하나님과 대적을 이루게 되기에 그렇습니다.
갈 5:24의 말씀과 사 31:3의 말씀을 연결하여 보면
육체는 죄에 길들여져 있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은 주로 전쟁하는 도구로 쓰입니다.
전쟁에는 아군과 적군이 있기 마련입니다.
말이 아군을 태우면 아군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그러나 말이 적군을 태우면 적군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한 인간의 육체 곧 말은 사단을 태우고 삽니다.
사단을 태우는 말은 사단에 의해서 조종을 받습니다 (롬 6:17)
사단은 육체를 조종하여 죄를 짓게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안에 주인으로 모시고 살지 않는 사람은
사단을 태우고 사단에 의해 살아갑니다.
그런데 자신이 사단을 태우고 사단의 종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빛이신 주님께로 돌이킵니다.
이는 주님을 태우는 말이 되기 위함입니다.
이는 위에서 예화를 들은 것 처럼 죄의 길로 가게 하는 말을
단칼로 쳐 죽이는 김유신과 같이 사단에게 이끌리려고 하는
자신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육체의 반응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려고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자는(히 12:4) 주님을 태워 드리는 육체가 됩니다.
주님은 주님을 진심으로 영접한 인간 안에 죄 없으신 육체로
오십니다.(요 1:14)
말씀이 육신(육체:싸륵스)이 되어 우리 가운데(안에)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이렇게 주님을 영접한 사람은 주님의 죄 없는 육체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온전히 일치되면 죄와 상관 없이 살 수 있습니다 (벧전 4:1,2)
그래서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은 어둠을 멀리하고 영광 곧
광채의 빛을 발하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알곡이 되도록
단련하셔서 마지막 대심판의 키 질 하실 때 떨어지지 않는
하늘의 강한 용사로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계 6:13,19:14,15)
하늘에 있는 군대(하늘에 내려 오신 빛의 아들 곧 천국의 아들 ; 마 13:38)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죄 없는 주님의 육체에 조종을 받는 말은 영광 속에 있으므로 희게 되어 흰 말이 됨)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계 19:14,15)
그러기 위해 어둠을 통한 훈련에 동참하여야 함을
주님은 성경을 통해 알리셨습니다 (사 45:7)
주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십자가로 온전히 이루시고 승천하신 후인
계 5:1,2에 보면 기록된 약속의 말씀대로 응하시기 위해 인을 떼십니다.
이는 십자가로 사단의 머리를 밟으시고 승리하신(창 3:15)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경 말씀에 감춰진 비밀의 인을 떼시는 권세를
하나님께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승천하신 주님은 사도 요한을 통해 일곱 교회에게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일곱 교회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루는 각각 지체들을 상징합니다.
그들에게 보내신 편지 내용은 사람의 가치 기준으로 보지 않은
주님의 눈으로 보신 그 지체들의 영적 상태에 따라 사랑으로
칭찬과 권면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일곱 인을 떼시어 환난을 통과하는
즉 시험을 받게 하실 때에 죽기까지 말씀에 순종하여
이긴 자가 되라고 권고하시는 내용입니다.(계 2:10)
주님의 지체들이 강한 의의 용사가 되기 위해서
주님은 일곱 인을 떼셔야 합니다.
일곱 인을 떼시는 목적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시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약간의 고통을 통해 더 큰 기쁨을 주시기 위함입니다.(요 15:11)
그 기쁨을 주시기 위해 주님은 인을 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을 떼실 때마다 주님 안에 있는 지체들에게는
연단 하시기 위한 환난의 바람이 다가옵니다.
그 인으로 인한 환난의 바람은 첫째에서 일곱 째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첫째 혹은 일곱 째 등을 숫자의 개념으로
보면 일곱 인의 참 뜻이 흐려집니다.
주님의 지체들은 강한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처음 훈련을 시작해서 완전해지기까지
환난의 훈련을 통해 점과 흠을 없게 하십니다.
정결한 신부로 단장시키시기 위해 7인의 훈련으로
이끌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누구나 조용히 감사하며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말에 대한 것입니다.
계 6:2-8에 보면 첫째 인부터 네 인을 떼시는 과정에
말이 등장하는데 그 말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