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7월 11일 태어나 1972년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2002년에는 교감, 2007년에는 교장으로 승진했고 올해 8월, 만 41년 5개월간 교직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을 한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교장으로 승진해 정년퇴임하는 것이 그렇게 특별한 삶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 그것도 쌍둥이 자매라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년퇴임을 기념해 6월 18일 서울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Twin Flowers(쌍둥이 꽃)'라는 그룹 이름으로 생애 첫 콘서트 '두 배로 행복하기'를 연 박계화(아가타, 서울 천일초등학교장)ㆍ온화(루치아, 서울 상경초등학교장)씨는 한날한시에 태어나 같은 날 유아세례, 견진을 받았다. 같은 초ㆍ중ㆍ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날 교사가 됐다. 그리고 같은 날 교장으로 승진했다. 전례가 없었던 쌍둥이 자매의 동반 교장 승진 소식이 당시 언론에 소개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매는 "어린 시절부터 선생님이 되는 것을 함께 꿈꿨는데, 꿈을 이루고 아무 탈 없이 교직생활을 마치고 같이 은퇴를 할 수 있게 돼 정말 행복하다"면서 "그동안 서로 일이 바빠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은퇴 후 다시 뭉쳐 이웃에게 봉사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꿈을 밝혔다.
일란성 쌍둥이가 많이 닮는다지만 두 사람은 외모부터 성격까지 모든 게 똑 같았다. 공부도 똑같이 잘했다. 음악에도 남다른 재능을 있어 학창시절에는 합창단도 함께 했다.
독실한 신자였던 부모님 영향을 받아 성당도 열심히 다녔다. 주일이면 꼭 손을 붙잡고 주일학교에 나와 성당에서 자매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함께 활동했다. 한때는 수도생활을 동경해 '수녀님'을 꿈꾸기도 했지만 '선생님'을 더 하고 싶어 결국 교대에 가기로 결정했다.
평생 같을 것만 같았던 두 사람 삶은 계화씨가 먼저 결혼을 하면서 처음으로 달라졌다. 온화씨는 "예전부터 '우리는 꼭 같은 날 명동성당에서 결혼하자'고 굳게 약속을 했는데 계화가 약속을 어기고 결혼을 선언했다"면서 "한 이불 아래서 끌어안고 자던 계화가 남자를 만난 지 두 달 만에 결혼을 하고 훌쩍 떠나버려 많이 서운했었다"고 말했다.
계화씨는 "온화가 남자친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어겼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2년 후 온화씨가 결혼을 하면서 다시 두 사람은 같은 삶을 살기 시작했다. 계화씨는 딸 둘, 온화씨는 아들 둘을 낳았다.
평탄하게 교사 생활을 하던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교장 승진을 준비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공부를 할 시간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서로 정보를 주고 받으며 밀어주고 끌어주며 공부에 매달린 끝에 같은 날 교장으로 승진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자매는 1998년 계화씨가 서울대교구 가톨릭초등교육자회 피정에 우연히 참여하면서 '뜨거운 신앙인'으로 거듭났다.
피정에 다녀온 후 계화씨는 가톨릭초등교육자회 활동을 시작했고 온화씨에게도 활동을 권했다. 항상 십자성호를 긋고 정성껏 식사 전후 기도를 바치는 계화씨 모습을 보고 냉담을 푼 동료교사도 적지 않았다. 계화씨는 현재 서울 가톨릭초등교육자회 부회장, 온화씨는 지구회장을 맡고 있다.
인터뷰 내내 자매는 서로에게 칭찬을 쏟아냈다. 계화씨는 "둘 다 노래를 잘 하는데 온화가 더 잘 한다"고 말했다. 온화씨 노래 실력은 여느 가수 못지않다. 1980년대 후반 'MBC 주부가요열창'에 출전에 2주 연속 대상을 수상한 후 KBS '가요무대'에도 출연했다.
평생을 '우리는 정말 비슷하고 잘 맞는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자매는 이번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많이 다퉜다. 선곡부터 노래 템포, 무대 의상 선택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의견이 맞는 게 없었다. 계화씨는 "정말 이렇게 다를 줄은 몰랐다"면서 "결혼 이후로 다른 환경에서 살면서 성격이나 취향이 달라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많이 투덜거렸지만 곧 서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두 사람은 지방에 내려가 합숙까지 하면서 콘서트를 준비했다. 솔로곡 한 곡씩을 제외하고는 모두 함께 불렀다.
자매는 은퇴 후 음악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사할 계획이다. 또 수필집 「두 배로 행복하기」도 출간할 계획이다. 계화씨는 "본당 노인대학, 양로원 등 우리를 필요로 하는 분들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 음악으로 즐거움을 선물할 것"이라며 "온화랑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질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온화씨는 "기쁜 일이 있으면 나누고, 힘든 일이 있으면 아무 때나 편하게 토로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어 행복하다"면서 "앞으로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항상 함께 하면서 기쁘게 살 것"이라고 밝혔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 학창 시절에는 사람들이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외모가 똑같았지만 결혼 후 각자의 삶을 살면서 얼굴도 조금은 달라졌다. 왼쪽이 박온화씨, 오른쪽은 계화씨.
1951년 7월 11일 태어나 1972년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2002년에는 교감, 2007년에는 교장으로 승진했고 올해 8월, 만 41년 5개월간 교직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을 한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교장으로 승진해 정년퇴임하는 것이 그렇게 특별한 삶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 그것도 쌍둥이 자매라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년퇴임을 기념해 6월 18일 서울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Twin Flowers(쌍둥이 꽃)'라는 그룹 이름으로 생애 첫 콘서트 '두 배로 행복하기'를 연 박계화(아가타, 서울 천일초등학교장)ㆍ온화(루치아, 서울 상경초등학교장)씨는 한날한시에 태어나 같은 날 유아세례, 견진을 받았다. 같은 초ㆍ중ㆍ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날 교사가 됐다. 그리고 같은 날 교장으로 승진했다. 전례가 없었던 쌍둥이 자매의 동반 교장 승진 소식이 당시 언론에 소개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매는 "어린 시절부터 선생님이 되는 것을 함께 꿈꿨는데, 꿈을 이루고 아무 탈 없이 교직생활을 마치고 같이 은퇴를 할 수 있게 돼 정말 행복하다"면서 "그동안 서로 일이 바빠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은퇴 후 다시 뭉쳐 이웃에게 봉사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꿈을 밝혔다.
일란성 쌍둥이가 많이 닮는다지만 두 사람은 외모부터 성격까지 모든 게 똑 같았다. 공부도 똑같이 잘했다. 음악에도 남다른 재능을 있어 학창시절에는 합창단도 함께 했다.
독실한 신자였던 부모님 영향을 받아 성당도 열심히 다녔다. 주일이면 꼭 손을 붙잡고 주일학교에 나와 성당에서 자매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함께 활동했다. 한때는 수도생활을 동경해 '수녀님'을 꿈꾸기도 했지만 '선생님'을 더 하고 싶어 결국 교대에 가기로 결정했다.
평생 같을 것만 같았던 두 사람 삶은 계화씨가 먼저 결혼을 하면서 처음으로 달라졌다. 온화씨는 "예전부터 '우리는 꼭 같은 날 명동성당에서 결혼하자'고 굳게 약속을 했는데 계화가 약속을 어기고 결혼을 선언했다"면서 "한 이불 아래서 끌어안고 자던 계화가 남자를 만난 지 두 달 만에 결혼을 하고 훌쩍 떠나버려 많이 서운했었다"고 말했다.
계화씨는 "온화가 남자친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어겼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2년 후 온화씨가 결혼을 하면서 다시 두 사람은 같은 삶을 살기 시작했다. 계화씨는 딸 둘, 온화씨는 아들 둘을 낳았다.
평탄하게 교사 생활을 하던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교장 승진을 준비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공부를 할 시간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서로 정보를 주고 받으며 밀어주고 끌어주며 공부에 매달린 끝에 같은 날 교장으로 승진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자매는 1998년 계화씨가 서울대교구 가톨릭초등교육자회 피정에 우연히 참여하면서 '뜨거운 신앙인'으로 거듭났다.
피정에 다녀온 후 계화씨는 가톨릭초등교육자회 활동을 시작했고 온화씨에게도 활동을 권했다. 항상 십자성호를 긋고 정성껏 식사 전후 기도를 바치는 계화씨 모습을 보고 냉담을 푼 동료교사도 적지 않았다. 계화씨는 현재 서울 가톨릭초등교육자회 부회장, 온화씨는 지구회장을 맡고 있다.
인터뷰 내내 자매는 서로에게 칭찬을 쏟아냈다. 계화씨는 "둘 다 노래를 잘 하는데 온화가 더 잘 한다"고 말했다. 온화씨 노래 실력은 여느 가수 못지않다. 1980년대 후반 'MBC 주부가요열창'에 출전에 2주 연속 대상을 수상한 후 KBS '가요무대'에도 출연했다.
평생을 '우리는 정말 비슷하고 잘 맞는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자매는 이번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많이 다퉜다. 선곡부터 노래 템포, 무대 의상 선택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의견이 맞는 게 없었다. 계화씨는 "정말 이렇게 다를 줄은 몰랐다"면서 "결혼 이후로 다른 환경에서 살면서 성격이나 취향이 달라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많이 투덜거렸지만 곧 서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두 사람은 지방에 내려가 합숙까지 하면서 콘서트를 준비했다. 솔로곡 한 곡씩을 제외하고는 모두 함께 불렀다.
자매는 은퇴 후 음악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사할 계획이다. 또 수필집 「두 배로 행복하기」도 출간할 계획이다. 계화씨는 "본당 노인대학, 양로원 등 우리를 필요로 하는 분들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 음악으로 즐거움을 선물할 것"이라며 "온화랑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질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온화씨는 "기쁜 일이 있으면 나누고, 힘든 일이 있으면 아무 때나 편하게 토로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어 행복하다"면서 "앞으로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항상 함께 하면서 기쁘게 살 것"이라고 밝혔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 학창 시절에는 사람들이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외모가 똑같았지만 결혼 후 각자의 삶을 살면서 얼굴도 조금은 달라졌다. 왼쪽이 박온화씨, 오른쪽은 계화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