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사고 이후 엄청난 양의 말과 글이 연일 쏟아져 나왔지만 나는 단 한 줄도 애도의 글을 쓸 수가 없었다. 학교에 추모 공간이 만들어지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노란 종이 위에 빼곡히 뭔가를 적고 있을 때도 내 머릿속은 하얗게 바래어 있었다. 어떤 단어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아 아이들이 써놓은 추모 글들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자리를 떠야만 했다.
내가 가진 언어로는 내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불가능했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고백하자면, 내게는 감정이라고 할 만한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학교에서 나누어준 검정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있었지만 누구처럼 눈물이 나거나 가슴이 아프지도 않았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일이 벌어졌기 때문일 거라고 내 자신을 변명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지역 교사 신문 편집장을 맡고 있는 한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1면에 실을 추모 시를 한 편 써달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펄쩍 뛰며 사양했지만 나중에는 허락하고 말았다. 부탁이 너무 간곡해서만은 아니었다. 원고 마감일이 여유가 있어서 그 안에 얼어붙은 감정이 풀릴 것도 같았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온 국민이 평범한 일상마저 죄스러워 모든 일정을 뒤로 미루거나 취소하는 형국인데,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 나부랭이를 쓰는 사람이 이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참사가 있기 전, 나는 어떤 한 가지 일에 몰두해 있었다. 누군가와 싸울 것인가 말 것인가를 진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누군가란 어떤 특정 인물을 지칭한 것은 아니었다. 싸움의 대상은 일종의 관행 같은 것이었다. 그 무렵 내 머릿속에서 들끓고 있던 물음들이다.
왜 아이들은 아침 7시 반에 식사도 거른 채 서둘러 등교를 해야 하는가? 왜 아이들은 버스가 끊긴 밤 11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왜 한창 성장의 기쁨을 누려야 할 아이들이 죄도 없이 수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나는 과거에도 이 싸움을 벌인 적이 있었다. 지역 교육청은 물론 교육부와 청와대에까지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당신들이 내려보낸 강제 보충자율학습 엄금 지시를 일선 학교가 비웃듯이 어기는데 이를 방관하고만 있을 것인가? 해마다 학교라는 감옥에서 공부 기계가 되거나, 그것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아이들이 늘어만 가는데 이대로 뒷짐만 지고 있을 것인가?
이 싸움을 하는 동안 내가 터득한 것은 ‘말의 허망함’이었다. 한마디로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위력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결국은 끈질기게 요구한 학교 감사가 실시되었고 가시적인 변화가 오기도 했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런 허망한 싸움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인근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의 체벌과 관련해 학생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도 그 일이 계기가 되어 학교에 변화가 찾아왔다. 문제는 학교의 혁신을 원하지 않는 일부 교사였다. 하긴 ‘다른 학교는 가만있는데 왜 우리만 변해야 하느냐’는 반발이 나올 법한 일이었다. 해결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다른 학교들도 함께 학교 혁신의 대열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것.
사실 혁신이랄 것도 없었다. 아무리 늦어도 시내버스가 끊기기 전에는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자는 것이 어찌 혁신인가. 그것은 상급 관청에서 요구하는 수준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나는 싸움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철저히 이성적일 필요가 있었다. 더는 말의 허망함에서 허우적거리고 싶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것은 바로 그 무렵의 일이었다.
나는 지금도 감정보다는 이성이 나를 지배하고 있음을 느낀다. 물론 그것이 애도의 감정이 솟구치지 않았던 이유나 변명이 될 수 없음을 나는 안다.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는 그릇된 관행과 내 안에 뿌리를 내린 온갖 관성과 싸울 것인가 말 것인가, 지금 내겐 그것이 문제다. 나는 싸울 것이다. 싸워서 이길 것이다.
아이들아, 그때까지만 너희를 애도하지 못하는 나를 용서해다오. 그때까지는 나를 용서하지 말아다오.
-시사in에 기고한 글입니다.
첫댓글 전투모드... 그래서일 겁니다, 아마도. 싸움에 집중하셔요. 응원할게요.^^
옛써...얼!!
어제 저녁 아내가 <시사iN>을 읽다가 "안준철 선생님 글 '나도 아직 애도하지 않았다' 읽어봤어?"라고 묻더군요. 글이 참 좋다며...^^
사모님이 뭘 좀 아시네요(키팅 버전으로)....하하. 그러고보니 제가 원조군요.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