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년도 이제 서서히 저무는 끝자락, 2004년 12월 21일 향군회관 컨벤션홀에서 재경 고령중학교 총 동문들이 화합의 잔치가 성대하게 치루어졌다.
100여명이 넘는 동문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고, 특히 금년부터는 고령여자중학교 졸업생(회장 이기옥)도 27명이나 합류하여 통합 동문회가 되어 더욱 열기가 뜨거웠다.
기수별로 대체로 고른 참석률을 보였고, 우리 12회에서는 박광진 산악대장을 비롯하여 라진두 회장, 황길수 총무, 곽병기, 나 이렇게 다섯 명이 참석하였다.
8회와 9회의 쟁쟁한 선배님들께서 많이 참석하시어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주셨음이 더욱 돋보였다.
열성적인 동문들이 한 두 명 있는 기수일수록 참석률이 좋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례로 곽은섭동문이 속한 13회와, 윤건영 현역 국회의원과 문장원 총무가 속한 17회, 서상식 동문의 20회, 시진성 동문의 24회, 이렇게 위에 열거한 기수들이 열성적인 참석 율과 단합된 모습이 특히 눈에 띄었다.
한 해 동안 대단히 수고가 많으신 조명암 회장님 후임에 9회 서석홍 회장님이 자리를 이어 받으셨다. 서 신임 회장님은 중소기업인으로써 보기 드물게 성공한 동문이셔서, 이렇게 식견과 재력을 가지신 분이 우리 동문회를 이끌게 되었으니 더욱 단합된 모습으로 일취월장하리라 확신하게 된다.
9회 선배님들의 테이블이 우리 12회 바로 앞자리였는데, 너무도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띄었다. 나와는 일족이고 같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했고, 더구나 초등학교 동기동창인 최영숙이 앉아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졸업 후 이런 저런 잡다한 연유로 3년 동안의 허송 세월을 보내는 동안 영숙이는 정규 코스를 거치다 보니 나와는 중학교 3년 선, 후배 사이가 된 것이다. 나도 제 때에 진학을 하였다면 쟁쟁한 9회 선배님들과 동기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무심결에 9회 김수호 선배님께 넌지시 얘길 했더니, ‘한살이라도 젊은 층과 어울리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하셨다. 그건 사실인 것 같다. 잘못했다간 12회 다정한 친구들을 배신하는 망발이 될뻔하지 않았나. 용서들 하시게나, 잠시 동안의 나의 어리석음을......
더구나 본인이 2005년도 12회 동기 회 회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는데 말이다.(물론 원해서 맡은 건 아니지만) 문장원 총무의 경과보고에 의하면 고문님들과 전, 현직 회장님들, 또 그 외의 동문 여러분이 동문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하여 많은 액수의 찬조금을 쾌척하시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다. 나도 기분만은 살아있으나 뜻대로 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매 행사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이번에도 문장원 총무의 빈틈없는 준비성에 감탄했다. 그러자면 그러한 봉사정신이 투철하지 않고서야 어려운 일이라 생각되었다. 행운 권 추첨 같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전체 동문들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으니 말이다.
노래자랑 순서에는 우리 동문회에서 국보(?)같은 존재, 13회 곽은섭 동문의 카리스마 있는 명 사회로 진행되었다. 선, 후배간의 노래대결과 나이도 초월하고 무대로 달려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시던 9회 어느 선배님의 모습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있다.
더구나 자랑스런 우리의 후배 17회 윤건영 국회의원님은 의정 활동에 바쁜 와중에도 참석하여 의원체면도 잠시 접어두고 선, 후배들과 끝까지 한데 어울려 주었고, 또 멋지게 한 곡조 열창하기도 하여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 모두가 애향심과, 동문이 아니고서야 이러한 풍경이 연출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였다. 노래자랑 심사결과 대상에는 9회 이남숙 동문이 차지하였고, 금상에는 과분하게도 ‘덕수궁 돌담 길’을 부른 본인에게 돌아오는 영광이 있어서 쑥스럽기도 하였다.
또 은상에는 여중6회 이향연씨가 받았으며, 그 외에도 인기상, 장려상 몇 사람이 입상하였다.
박광진 심사위원장의 심사 평처럼 화합의 한마당에 중점적으로 치중한 결과라니 다소 억울(?)한 동문이 있더라도 이해되리라 믿고 싶다.
끝 무렵 모두 일어서서 “고령은 오랜 고을......”로 시작되는 교가를 합창할 땐 모두들 고향생각과 학창시절 생각에 잠시 분위기가 숙연해지기도 하였고, 항시 우리가 ‘고령인’ 이라는 것과 ‘고령중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는 느낌을 받았다. 휘나레를 장식한 “고향의 봄”을 끝으로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내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을 하였던 것이다.
첫댓글 아무도 흔적을 안남기시는걸 보니 흥미가 없는것 같아 오늘 2004년 12월 크리스마스 이브 이후에는 붓을 꺾을까 합니다.
최회장 참으랑게....붓을 꺽어뿌마 우짤라고? 그 붓이 어떤 붓인디...63빌딩을 팔아도 못사는 붓이잖여.............
참아라 검색하고 조회 해주는 것만 다행으로여겨라..모두들 법산이 마음 같지않으니깐 말이다
황장군! 내가 잠시 실언을 했소이다. 얼른 생각을 바꿀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