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평 크기의 바닥에 높게는 7~8m로 세운 흙벽을 지탱하기 위해 박은 팔(八)자 모양의 장대와 잎이 잘 마르는지 확인하던 작은 창과 불을 때던 아궁이, 지붕으로 오르던 사다리가 있다. 내벽에는 5~6개의 장대가 천장까지 일정한 간격으로 붙어 있었는데, 수확한 담뱃잎을 새끼줄에 엮은 뒤 ‘달대’라 불리는 이 장대에 층층이 걸어 말렸다.
지붕 위에 덧댄 작은 지붕은 습기를 배출하기 위한 것으로, ‘까치집’이라 불렀다. 까치집은 모양에 따라 ‘파고다식’과 ‘아리랑식’으로 나뉘었으며, 담뱃잎을 노란색으로 잘 말리려면 배습을 조절하는 까치집의 모양이 중요했다. 그래서 당시 엽연초조합에서는 담배건조장 설계도를 갖고 농가들을 지도했다고한다.
잎담배 재배가 190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니 이런 형태의 담배건조장은 아마도 일제시대 때 생겨났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담배건조장, ‘담배창고’, ‘담배건조실’, ‘담배막’, '담배굴' 등으로 불리던 담배건조장은 30~40년 전만 해도 농촌에서 쉽게 볼 수 있었으며, 푸른 담뱃잎을 노랗게 말려내며 갖가지 이야기를 피워올리던 곳이다. 나지막한 시골집들 사이 탑처럼 우뚝 솟은 독특한 모양으로 나이 지긋한 이들에겐 추억을, 젊은이들에겐 호기심을 자아내곤 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담배건조장, 정미소, 서해안의 소금창고를 찾아다녔다. 묵직하고 두터워 땅과 하늘을 넉넉히 포옹하면서 주변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어찌보면 자연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이 된 건축물을 사진에 담길 좋아했으며, 이런 담배건조장은 그의 디자인을 이해하는 주요한 미학적 기호가 된다.
그러나 담배건조장은1970년대말 벌크건조기 등장으로 점차 사라져 그 존재가치조차 평가받지 못한 채 하나둘 소리 없이 무너져내리다, 이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관심, 더 나아가 손길이 필요한 때다.
사진제공_박재봉
첫댓글 신석기시대부터 식물을 재배하고 수확하는 정착생활을 통해 기존의 유목민 생활에서 사용되었던 간이주거에서 좀 더 단단한 집에 대한 요구가 생기면서 주변 환경에 따라 나무와 돌, 흙 등을 사용하여왔다. 요르단의 예리코 유적지부터 아프리카의 토속건축, 사막의 도시들, 스페인 알함브라궁전에서 미국의 뉴멕시코주의 산타페 시의 인디언마을, 만리장성에서 민중건축, 한옥까지, 흙건축은 역할을 다해 폐기되었을 때 다시 그 흙으로서 돌아간다. 마치 우리네 삶이 그런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