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의 때에 있어서의 블레셋의 침략에 있어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라고 증거된 아래의 본문 말씀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기이하고도 특별한 방법에 의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사무엘이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 드린 어린 양 하나와 함께 한 번제가 직접적이고 강력한 역할을 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인데 다만 분명한 것은 그러한 어린 양이나 번제 자체에 하늘의 힘과 구원의 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인 것입니다..
실상 그러한 어린 양의 번제는 구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시기 전인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에 있어 가장 대표적인 것들 중 하나인 것으로..
오늘날 우리들로 치면 그 있는 자리에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한 것과 근본적으로 다를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와 같은 구원의 실제가 어떤 식으로든 그러한 구주 예수님 단독이실 수는 없는 것으로 그 이전에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설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심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었고 애초부터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이며 진정 그와 같은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중 지극히 일부가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무엇보다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누리고 경험하며 나타나고 성취되어 지게 하신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그렇듯 근원적으로는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본질적으로는 그러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자체가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일들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에 그렇게 어떤 식으로든 말씀이 육신이 되신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함에 있어서의 합당함, 또한 다름 아닌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에 있어서의 합당함, 게다가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인한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와 누림에 있어서의 합당함에 있어서,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에 있어서..
참으로 아무나에게, 아무렇게나가 아니라 아래 본문 앞의 사무엘상 7장 3~4절에서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다른 그 무엇보다도 더 이상의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 등으로 인한 미지근하고 잠자며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이 아닌 자복하고 돌이키며 깨어 있고 살아 있으며 치열해 지고 뜨거워진 말씀의 신앙으로의 회복, 말씀의 열정으로의 변화와 함께였음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역대하 20장 5~9절에서 “여호사밧이 여호와의 전 새 뜰 앞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회중 가운데 서서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주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을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들이 이 땅에 살면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한 성소를 주를 위해 건축하고 이르기를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라고 증거된 말씀에서도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여호사밧 왕의 때에 모압과 암몬과 마온이 연합한 대군의 침략에 있어서도 여호사밧 왕이 성전 뜰 앞에 서서 성전을 의지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했는데 사실상 그러한 성전이야 말로 구약 시대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을 위한 구주 예수님에 대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에 있어 가장 대표적인 것들 중 하나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오늘날 우리들로 치면 마찬가지로 그 있는 자리에서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한 것과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역대하 20장 21~23절에서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 잘 발견할 수 있는 것이듯이 단지 찬송과 함께, 실질적으로는 전적인 하나님의 방법으로 인해 완전히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며, 그에 있어서도 역대하 20장 3~4절에서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 및 그 뒤의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금식하면서 각성하고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며 오직 말씀대로 돌이키면서 간구함으로 인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반면 역대하 21장 11~17절에서 “여호람이 또 유다 여러 산에 산당을 세워 예루살렘 주민으로 음행하게 하고 또 유다를 미혹하게 하였으므로 선지자 엘리야가 여호람에게 글을 보내어 이르되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네 아비 여호사밧의 길과 유다 왕 아사의 길로 행하지 아니하고 오직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음행하게 하기를 아합의 집이 음행하듯 하며 또 네 아비 집에서 너보다 착한 아우들을 죽였으니 여호와가 네 백성과 네 자녀들과 네 아내들과 네 모든 재물을 큰 재앙으로 치시리라 또 너는 창자에 중병이 들고 그 병이 날로 중하여 창자가 빠져나오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들과 구스에서 가까운 아라비아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시키사 여호람을 치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올라와서 유다를 침략하여 왕궁의 모든 재물과 그의 아들들과 아내들을 탈취하였으므로 막내 아들 여호아하스 외에는 한 아들도 남지 아니하였더라"라고 증거되어 있고, 또한 역대하 24장 24절에서 “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니 이는 유다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이와 같이 아람 사람들이 요아스를 징벌하였더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들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듯이..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그 자체로 얼마나 어두워지고 위험해 지게 되는지, 어느 정도로까지 무섭고도 비참한 결과들이 나타날 수 있는지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고, 사실 그러한 이치와 원리들, 실상과 결과들은 성경의 창세기 처음부터 해서 마지막 요한 계시록에 이르기까지의 구석구석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사와 인류 역사의 현장들에 있어서도, 무엇보다 오늘 이 시대 우리들 가운데에 있어서야 말로 생각 이상으로 쉽고 흔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사무엘상7:9~10)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0월 11일(금)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