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603〉
■ 봄비 (이수복, 1924~1986)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 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랭이 타오르것다.
- 1969년 시집 <봄비> (현대문학사)
*3월도 거의 끝나가는 요즘, 오늘도 오후에는 다시 봄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보통 봄이 되면 비가 부족해 봄 가뭄을 걱정하는데, 올해 봄에는 특이하게도 비가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자주 오는 편이군요. 덕분에 주변에는 잡초들이 새파랗게 올라오는 중입니다.
어제도 종일 봄비가 쏟아지며 날씨도 다시 싸늘해졌습니다만 흠씬 내린 빗물이 농작물에게는 소중한 자양분이 될 것임은 자명합니다. 이번의 봄비가 그치면 다사로운 봄날이 지속되길 기대하며, 오늘은 예전에 올렸던 봄비에 관한 유명한 작품을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이 詩를 읽어보면, 봄비가 그치고 나서 봄이 오고 있는 고향 시골마을의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담담하게 펼쳐지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 詩 에서는 비 온 후의 봄의 정경을 간결하고 명료하게 표현하면서도 봄의 특징인 활기차고 싱그러운 모습보다는 슬픈 정서가 은은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짙어 오는 풀빛에서 서러움이 느껴지고, 아지랑이가 향연처럼 서술되고 있는 점이 그것입니다.
아마 글쓴 이가 얼마 전 사랑하는 임을 잃었거나 이별하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상실감에 빠져있기 때문에 이 약동하는 봄 풍경도 서럽게 비쳐지는 것이라 생각이 드는군요. 이 詩는 따라서, 봄이 오는 길목에서 은실같이 내리는 봄비를 바라보면서 오지 않을 어떤 사람을 기다리는 애잔함이 여리게 배어있다고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 詩를 중얼거리다 보면 율조가 7.5조의 민요풍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봄비에 관한 현대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애송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