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에 대하여
차은량
예쁜 노트만 보면 사들이는 버릇이 있다. 이제 중년의 티가 역력함에도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문구점으로 들어가 어 린 학생들 사이에 끼어 한참씩 노트를 고르곤 한다. 더러 주위의 시선에 노트 를 고르는 손길이 다급해지기도 하지만 마음에 드는 노트를 서너 권 사들고 나오는 발길은 과자를 얻은 아이처럼 신이 나기도 하고 가난한 농부가 전답을 마련한 듯 뿌듯하기도 하다.
새 노트를 책꽂이 한 켠에 꽂아놓고 바라보는 즐거움은 여러날 지속된다. 언제라도 내 수다스러운 푸념을 다 담아줄 과묵함과 부끄러운 나의 속내를 말 없이 수용해 주는 그 믿음직스러움, 노트는 내게 있어 그런 친구이다. 70년대 후반 석유파동의 여파로 소규모로 유지해 나가던 아버지의 사업체 가 흔적없이 사라지고 그럼에도 대학을 가겠다고 발버둥쳤던 그 가슴 아팠던 시기에도 나는 돈만 생기면 노트를 사들였다. 그러던 어느날 부턴가 학업에 대한 포기가 되면서 도서관에 간다고 책가방을 들고 나서는 내 발길은 번번히 다른 곳으로 향하였다.
덕수궁, 경복궁, 비원, 경기도 근방의 인적없는 왕릉 까지를 헤메고 다니며 노트의 빈 칸을 메워대곤 하였다. 평일의 그런 장소들은 그지없이 조용하고 한적하여 들끓는 마음을 가라앉히기에는 더없이 좋았 다. 그러던 어느날 가방안에 있던 비밀스런 노트를 발견한 작은언니로 인하여 나의 행적은 고스란히 공개되었다. 그때의 수치심이랄까 모멸감은 세월이 가 도 희석되지 않은채 지금도 가끔 작은언니와의 사이에 냉랭한 기류가 흐르기 도 한다. 그 이후로 한동안 노트는 내게서 멀어져 갔다. 그리고 얼마 후 일가붙이 하나 없는 이 곳으로 시집을 오면서 다시 노트를 대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사는 것이 신나고 즐거울 땐 친구 생각도 별로 나지 않는 법인지 내가 힘들거나 외로울 때, 슬플 때, 그리고 지극히 그가 필요할 때에만 노트를 찾게 된다. 뿐인가, 오랜 기간에 걸쳐 마음을 나눈 정리 ()를 저버리고 그와의 사이 에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면 흔적을 인멸하기 위하여 마당으로 가지고 나가 낙엽과 함께 화형(火刑)에 처하기 일쑤이니 그것이 대인관계에서라면 나는 당최 상종 못할 이기주의자인 것이다.
그러기에 나의 노트는 나와 세상과의 사이에 이간이나 협잡을 하지 않아 가볍고 변덕스런 인종과는 그 무엇도 견줄 바가 아니다. 사람좋기로 소문난 시어머님도 며느리 앞에선 더러 고약해지실 때가 있다. 그 속상한 마음을 사돈에 팔촌까지 옹기종기 모여사는 시골 마을에서 누굴 붙 잡고 하소연하랴.
더구나 큰아이가 벌써 중학생, 그 만만찮은 세월이 흘렀음 에도 동침을 거부하는 원초적 협박이 없이는 '사랑해' 소리도 할 줄 모르는 내 남편을 어디에다 대고 흉을 보랴. 모내기철, 장마철을 구분 못하고 비만 오면 창가에 서서 시간을 보내는 철없는 감성에도 노트는 결코 나를 비방하거나 훈 계하지 않는다. 때로는 어쩌다 스쳐지나간 남자의 향기도 비밀스레 담아놓을 수 있는 그릇으로, 때로는 보낼 수 없는 편지를 마음껏 써 보는 편지지로, 그 리고 내가 꾸미는 은밀한 음모에 절대 지지자로, 그렇게 노트는 내 곁에 있다.
언젠가 '부부싸움'이라는 제하로 적나라하게 써 놓은 남편 비방문을 저장 시 켜놓은 컴퓨터 사건 이후로 노트에 대한 나의 신망은 더욱 두터워졌다. 자기 덩치만큼이나 성격이 소탈한 남편은 고맙게도 내게 오는 편지나 전화, 노트는 물론 개인적인 취향에 대해 고마울 정도로 너그러운 편이다. 그러나 컴퓨터 소프트 웨어에 감춰진 아내의 비밀스런 생각에 한 번 맛을 들인 그의 관심을 따돌리기에는 역시 노트가 제격이다.
컴퓨터야 온 가족이 함께 쓰는 것이니만 치 항상 열려있으니 쉽게 내용을 들여다 볼 수 있지만 설마 덩치가 그만한 남 자가 품위 없이 아내의 책상에 놓인 노트까지 들춰보랴. 이제는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중의 하나가 되어버린 글쓰기이다. 좋거나 싫거나 늘 가까이 두고 있는 노트의 존재는 내 가난한 삶에 있어 크나큰 위로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이 못난 탓에 한갓 물품을 두고 친구로 삼고 있지만 내가 즐겨보는 K 사의 문장 백과사전을 보면 친구에 대하여 장장 8쪽에 해당하는 지면을 할애 하고 있다. 그 방대한 분량의 자료에서 하나같이 주장하는 것이 친구의 '배신' 이다. 그만큼 친구를 얻기는 힘든 것이며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임을 말해주고 있다.
평소 존경하는 수필가 한 분이 네 번째 수필집을 보내와 고맙게 읽던 중에 친구에 대한 글이 있어 관심있게 읽었다. 매일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흥청망청 놀고 다니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친구란 과연 무엇인가를 몸소 보여준다. 큰 물건을 자루에 담아 아들에게 지게 한 후 아들의 친구를 찾아 다닌다. 그리고 친구를 불러내어 실수로 사람을 죽였는데 당분간 시체를 좀 감춰달라는 부탁을 아들에게 하게 하지만 결국 어느 누구도 도와주는 친구는 없었다.
그제야 아버지는 그 짐을 지고 아들을 뒤따르게 하 여 어느 한 친구를 찾아가 같은 부탁을 한다. 아버지의 친구는 당혹한 표정을 짓지만 황급히 그 짐을 헛간에 꼭꼭 숨기고 두 부자를 방으로 안내하여 자초 지종을 묻는다. 그리고 말하기를 며칠간 마음의 안정을 취한 후 자수하여 죄 값을 치루라는 간곡한 부탁을 한다. 그제서야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으며 잘 삶은 통돼지였던 그 짐을 내오게 하고 아버지의 친구는 잔치를 벌린다는 얘기 다.
내게 그런 친구가 있는가에 대해선 부끄럽게도 자신이 없다. 한 두 사람 있 을런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 스스로 그런 친구가 되려는 노력은 부단히 하 고 있다. 결혼 전의 친구들은 모두 멀리 있으니 어렵게 만날 때마다 반갑기만 하고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전화도 할 때마다 애틋하다. 하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 자주 만나는 사람 사이에선 뜻밖의 실수도 하게 되고 이해타산에 눈이 가려 마음의 문을 열기 또한 어려우니 점차 나이가 들면서 친구를 사귀는 일이 어렵기만 하다.
내 편이 아닌 친구도 좋을리는 없지만 이 편도 저 편도 아닌 회색분자는 나 는 싫다. 내 편이 아닌것이야 내가 사람이 못난 탓일 수도 있고 그쪽의 주장 이 분명하다는 말도 되니까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뚜렷한 자기 주장도 없이 양편을 오가며 화근을 만들고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는 친구는 차라리 없느니 만 못하다.
여럿의 시시한 벗을 가지느니보다는 한 사람의 훌륭한 벗을 가지는 편이 낫 지만 한 사람의 훌륭한 친구조차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나로서는 늘 노트를 가까이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인지 모른다. 하여 훌륭한 당신을 위한 한 권의 노트가 되고 싶다. 그리하여 마지막 장이 넘겨지는 그 날, 그대 앞에 찬란한 불꽃이 되고 싶 다.
2000/ 8집
첫댓글 훌륭한 친구조차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나로서는 늘 노트를 가까이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인지 모른다. 하여 훌륭한 당신을 위한 한 권의 노트가 되고 싶다. 그리하여 마지막 장이 넘겨지는 그 날, 그대 앞에 찬란한 불꽃이 되고 싶 다.
여럿의 시시한 벗을 가지느니보다는 한 사람의 훌륭한 벗을 가지는 편이 낫 지만 한 사람의 훌륭한 친구조차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나로서는 늘 노트를 가까이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인지 모른다. 하여 훌륭한 당신을 위한 한 권의 노트가 되고 싶다. 그리하여 마지막 장이 넘겨지는 그 날, 그대 앞에 찬란한 불꽃이 되고 싶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