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 될까 저어하다
학교마다 나름의 문화가 있다. 그 가운데 ‘교직원 명렬’이라는 것이 있다. 교직원 전체를 내림차순으로 번호를 정한다. 이 명렬의 내림차순 번호는 학교마다 그 기준이 몇 가지로 나뉜다. 대체로 호봉 순이다. 호봉은 교직 경력과 같이 간다. 호봉 순과 생년월일 순은 같을 수도 있고 차이가 날 수도 있다. 교직 입문이 늦었거나 중간에 휴직 기간이 발생하면 몇 년 뒤처질 수 있다.
예전 어느 근무지에선 내림차순 기준을 성씨 ‘가나다’ 순으로 정하기도 했다. 가나다 순이 호봉 순이나 생년월일 순보다 훨씬 개방적이라 생각된다. 교직원 명렬은 학생들의 출석부 번호처럼 여러 곳에 쓰인다. 현관에 들 때 신발장의 교사 고유 번호로 부여된다. 연수회 출석 서명 받는 명부로 삼기도 하고 회람을 해야 할 자료에서 열람 여부를 확인할 때도 교직원 명렬이 쓰인다.
교직원 명렬에 얽힌 일화를 하나 소개하련다. 올여름 정년을 맞는 지기가 있다. 그는 사립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교직에 입문했다. 교육민주화 운동이 전교조로 바뀔 때 탈퇴하지 않는다고 재단에서 그를 교단에서 밀어냈다. 해직 동지들과 함께 아스팔트에서 투사가 되어 복직 투쟁 끝에 공립으로 특채 되었다. 해직 기간 5년은 호봉 인정받지 못해 동년배보다 늘 호봉이 뒤쳐졌다.
지기는 석사 이후 박사까지 수료해 작년부터 지역 국립대학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를 나가기도 한다. 지기는 예전 근무지에서 고사기간이면 투덜댄다는 얘길 들었다. 평가 담당자가 고사 감독 배정에서 고령교사를 전혀 고려해 주지 않더란다. 호봉이 낮지, 나이가 적은 것이 아닌데 고사 감독을 명렬 순으로 돌렸나 보다. 그래서 일갈하길 신발장 번호는 납골당 대기 순번이라고 했단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교직원 명렬이 있다. 신발장은 명렬의 번호를 부여하지 않고 교직원 성함을 붙여 놓았다. 그럼에도 좌측 상단부터 교장이고 교감과 행정실장으로 나가다 내 자리가 왔다. 꼭 맞아떨어지는 몰라도 호봉이나 연령 순으로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듯했다. 현재 근무지에서 관리자를 뺀 교사들만의 명렬에서는 내가 호봉으로나 나이로나 1번이다,
나는 고교 졸업 후 뒤늦게 교육대학에 진학했고 임용 적체로 초임 발령도 늦었다. 또래보다 4 늦게 교직에 입문해 정년을 1년 6개월 앞두었다. 호적 등재가 늦게 되어 1년을 연장해 정년을 맞게 된다. 내가 태어날 무렵에는 시골에선 영아 사망률이 높아선지 출생신고가 몇 개월씩 미루어지기 예사였다. 보호자가 면사무소로 직접 가질 않고 이장을 통한 대리 출생 신고도 허다했다.
다시 학교 얘기로 돌아오련다. 고사 기간이면 교사들은 수업에 들 때보다 신경이 더 쓰인다. 한 교실에 복수의 감독교사가 배정된다. 학생들의 답안지와 봉투에 찍어줄 도장은 반드시 챙겨야 한다. 학생들은 오전에만 시험을 보고 하교해 교사들은 오후는 자유로운 시간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고교 학점제 연구학교라 학생들이 다양한 선택 교과가 개설되어 시험 때도 복잡하다.
지난 주중부터 정기고사가 진행 중이다. 목요일 금요일을 지나 이번 주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까지 닷새다. 시험 나흘째인 칠월 넷째 화요일이다. 시험 기간 아침엔 평가업무 담당자로부터 예약 메신저가 날아왔다. 그날 들어갈 감독교사 배치다. 하루 두 시간은 기본이고 어떨 땐 한 시간 들기고 했다. 메신저의 첨부 파일을 열어보니 나에게 감독으로 배정된 학급이 한 시간도 없었다.
그간 정기고사 기간에 감독을 한 시간도 배정 받지 않은 날을 한 차례도 없었다. 빈틈없는 업무 담당자인데 실수로 배정에서 빠질 리 없었다. 교직원 명렬 상위 순번 몇 명은 고사 감독에서 빠져도 되는 날인 모양이었다. 작년부터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에도 감독관에서 면제 받고 있다. 되돌아보니 내 교직 생애가 어느덧 서산에 기우는 해가 되었다. 동료들에게 짐이 될까 저어하다. 20.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