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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 코너 스크랩 수필 시인이 된 청년 `강윤수`
황종원(중앙대) 추천 0 조회 46 11.02.07 18:4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대학교 2학년 시절,. 국문과 강윤수는 복학생이었다. 그는 우리 문학 동호회 '목림삼木林森목림삼'의 맏형이었다.

 

 

세월이 2년 지났다. 졸업날이다.목림삼 동호회에서 강윤수형동생를 닳던 송은희(오른쪽)은 윤수의 아내가 되었다. 왼쪽의 여학생은  윤수형의 둘째 누이

 

동생이다. 

 

 

 

인터넷에서 '강윤수'를 검색하면 바로 뜬다. 나는 이제서 강형이 형이되는 이유를 안다, 나보다 5년 연상이었으니.

 

문득 그리운 사람이 있다. 우편함에 들어 있는 우편물에서 발신자의 주소와 이름이 추억의 세월을 건너뛰고 왔을 때, 나도 모르게 호흡이 잠시 멈춘다.
책자 한 권으로 시집이었다.
'비워 둔 자리에'
시인의 이름은 강윤수(姜允秀)였다.

얼마만인가.
대학 졸업 후 31 년이 지났다.
나는 경영학과였고, 그이는 국문학과였다.
학교에는 1주일에 한 번씩 학교 신문이 나왔고 한 면은 학생들의 글로 채웠다.
신문편집상 편집 기자는 문과 학생들의 글로만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경영학생인 내 글이 한 달에 한 번 꼴로 신문에 올랐다. 2학년 되던 해에 글 자주 올랐던 학생들이 모여서 동아리를 만들었다.
목림삼(木林森)이라 했다. 선이니 정오니 하는 글 모임이 있었으나, 나무 하나가 수풀되고 삼림되듯 살자고 우리는 우리를 그렇게 불렀다.
국문과, 연극영화학과, 보육학과가 있었고 경영학과인 내가 꼈다. 글을 써서 등사를 했다. 철판 글씨는 우리중의 누군가가 썼다. 원지를 등사판에 올려 석유 기름 냄새 나는 일은 남자 회원중에서 나도 하고 너도 했다.

쓴 글을 중국음식집에서 군만두와 백알에 알딸딸해진채 읽곤 했다.
국문과 학생들의 글은 제법이다 싶었지만, 내가 쓴 글은 말매를 맞은 기억이 난다.
뜬 구름을 잡는 글이었으니 오죽할까.
모이면 정다워지고 함께 있고 싶어지니 그이 강윤수와 함께 글 쓰던 아가씨와 우리는 늘 함께 다녔다.
그이의 집은 노량진에 있었는데 강의 중간에 점심시간이 있기라도 하면 그이의 집에 가서 라면을 끓이곤 했다.
그이의 누이가 셋이 있었는데 두 째와 나는 함께 영화 구경을 가기도 했었다.
좋은 사이였고 어찌되면 처남 매부가 되었을지도 몰랐었지만 인연은 영화보기로 끝이났다.
학교에서 우리 경영학과의 동급생들도 그이 윤수와 동아리 회원이면서 애인이 되어 버린 송은희를 알고 있었다.
늘 밝은 웃음으로 활달했던 은희는 윤수를 동아리의 연상의 선배 이상으로 대하는 것이 역력했었다.

대학을 졸업했다.
나는 군대에 갔다. 윤수와 은희는 결혼을 했다. 윤수는 학교의 국어 선생님이 되었다고 들었다.
바쁘게 살며 그 뒤 세월이 지났다.
자그마치 31년이었다.
동문의 주소록이 발간되어 내게 왔을 때 나는 그리운 이름들이 가슴에서 입 밖으로 터져나왔다.
누구와 누구... 윤수와 은희였다.
전화번호가 있어 걸었더니 은희가 받았다.
이제 은희라고 부를 수 없는 세월이 지나서
" 은희씨."
하고 불렀더니
" 쑥스롭다. 씨자 부치고 존대하니."
하여도 그럴 수밖에 없으니 은희는 이제 손자까지 본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윤수와 통화를 하니 목마름이 풀렸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을 한 권 보내니 그이는 자신의 시집을 보내왔다.

그이가 시인이 되었음을 나는 인터넷에서 보았다.
그의 시는 쉽고 읽히는 시였다.
타향을 고향삼아 사는 그이의 시를 나만 알고 있기에는 그의 정서는 가슴이 화살로 뚫어지는 느낌이었다.

도시에 머물면 도시의 물이 든다.
시인은 도시에서 자연을 노래할 수 있더라도 그것이 추억처럼 몽롱할 것이다. 시인 강윤수는 도시 복판에서 멀찍한 창원시 북면의 외산리 외딴 마을에 자리 잡았다. 직장은 도심에 있으나 그의 시와 함께 그의 삶은 궁벽한 곳에 있다.

 

창원시 북면 외산리 도래 마을을
산돌고 물돌고
길돌아 도는 마을

한번도 와본 적 없는
낯익은 타향
전생에 고향이었을 아늑한 정을
지나다 정말
우연히 지나다 필연으로 머물게 된 곳
-<도래마을-북면행>에서

 

 

도래 마을에 자리하고 시인은 도래 마을의 구석 구석을 노래한다.
'민들래', '목련', '냉이꽃', '정자나무', '소', '텃세', '빈집', 풀새' 등 시인의 가슴에 담기면 시가 된다.

 

비를 들고 섰습니다.
차마 쓸어낼 수 없습니다 .

산새발자국
밤이슬 고인자리
방금 내려앉은 햇살들

조그만 나라의
작은 숨소리
어떻게쏴쏴쓸어낼 수 있습니까

비들기 님 저리 좀 날아요
이제 사람들이 일어날 시간입니다
도래마을 이 작은나라에
꼭한번 있을 행복을
깨트리고 싶지 않습니다
-<도래마을 - 아침에>

 

흙마당 쓸던 아버지의 모습으로 시인이 마당에 섰다.
도래 마을에서 시인은 생명과 생명의 자취의 가치를 존중한다. 심지어 비들기에 까지 '님'이라고 까지 말한다.

그가 사는 마을에도 농촌이니 피폐되어있고 환경은 더럽혀져 있을 것이나 그는 그런 면의 일면만 보는 것이 아니고, 생명의 소리를 듣는다.

 

낙동강 흐린 날
홀로 배 저어 가는 사공을 본다.
사공은 저만큼 가을 수채화 속을
떠가고 있다.
잊혀진 채 강물도 철썩이고
내 안에 짙은 믈안개 드리운 때
길잃은 철새들의 울음소리
강마을은 조용히 물빛에 잠겨 있었다.
다 젖어도 젖지 않는 사공의 눈빛처럼
하나 둘 등불이 켜지면
저녁 바람에 스산히 흩어지는
마른 꽃잎들 마른 영혼들.
가난한 삶은 흐린 날 더욱 가난하나 보다
둑 너머 신평공단 공사장 부근
파일 박는 소리에
가슴마다 금이 가고, 금 사이로
시린 강물이 스며든다.
스며도 철근으로 엮어서 굳어진
마음들은 아직 펴지지 않을 것이다.
갈꽃같이 메마른 기침을 하면서
마침내 흩어지는 바람으로
이 강둑에 나설 것이다. 그리고
가을이 깊이 모르게 잠겨있는 을숙도에서
슬프도록 아름다운 조각달 하나
떠가는것을 볼 것이다.
천천히 가슴 식어가는 물안개처럼.

-<을숙도>

 

<을숙도>에서 슬프도록 아름다운 강마을과 가슴마다 금이 가는 현실이 또한 안타깝다.
내게 한 때는 추억이었던 동창생이 이제 시인으로 현실로 와있다.
" 부인과 함께 꼭 와요."
시집을 잘 받았다고 전화를 걸었더니 시인의 아내 은희가 내게 말했다.
내게는 시인의 아내는 스무살 말괄랭이 모습이었다.
시인에게 내가 전화를 걸기를
“ 목림삼을 잊지 못해 이메일 주소도 ‘목림사moklimsa’ 군요"
했더니
“ 목림삼이라 하려도 글자가 여덟밖에 안 들어가서 못했지.”
하는 그의 마음은 대학시절에 있으니 반갑다.


작가 소개
강윤수는 1942년 경남 진주 출생으로 마산고와 중앙대학교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74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이후, 문협 안동지부장, 창원문협회장을 지냈다.
<화전>동인으로 시집으로는 '가위소리' '외줄타기' 목림첩' '잠든 소리들이 일어날 때' 가 있으며, 논문으로는 <이육사론>이 있다. 현재 한국 현대 시인협회 중앙위원과 <<문학마을>>추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뒤로 세월이 다시 10년 흘렀다.  
강윤수 시집 '비워 둔 자리에'는 2001년 11월20일에 발행되었다. 펴낸 곳은 문학마을사. 값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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