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 ] 아이를 말한다. 愛 1

[Mini stop]

내가 아주 어렸을 적 만났던 꼬마 아이가 하나 있다. 어슴푸레한 달의 시간과 마찬가지로 무척 희미한 기억만이 어렴풋이 남아있는 아이였는데 내가 확실히 그 아이를 기억하고 있는 명백한 이유는 한때나마 함께 어울리던 그 아이의 질책과 괴롭힘이 오로지 나를 쫓아다녔을 뿐더러 그것이 하루가 멀다고 유년 시절의 내가 감당하기엔 벅찬 극성이 되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딱히 그 아이가 우리 옆집에 머무르던 김씨 아이인지, 허구언날 외국 여행을 일삼는 부모님 덕분에 타국에서 불현듯 마주친 아이였는지 세부적이고 확고한 기억을 되살려 누구다! 하고 지칭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에게 있어 그 아이는 절망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뺏어가 속수무책으로 부셔놓는 것은 물론이거와 내가 먹는 아이스크림을 빼앗아 내 머리 위에 쏟기 일쑤인 이 와 같은 장난을 일삼는 아이인데, 어찌 그 아이를 나의 천적이자 누구나가 흔히 말하는 개새끼가 아닐 수 있으랴? 나는 이따금씩 생각나는 아이의 얼굴에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1년된 남자친구 국현이에게 선물로 받은 커다란 곰인형, 죠세핀을 흠씬 두들겨 패곤 했다. 웃기게도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나는 그 아이가 어떻게 성장하게 되었는지 따위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아이의 얼굴이 열받게도 꽤나 반반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계집애도 아닌 것이 참 예쁘게 생겼더랬다.

하지만 그 아이를 떠올리면 떠올릴 수록 그 지옥과도 같았던 악몽 속 유년 시절은 나를 두 번 죽이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기억속에서 그 아이에 대한 온전한 기억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아이를 말한다 (愛語)

팸카 : 항해의 닻을 올려라 http://cafe.daum.net/-33-fam

공카 : 내 말 들어봐요, 언니? http://cafe.daum.net/YoonS1004

최국현, 그 씨발놈은 오늘도 어김없이 그녀의 전화를 깡그리 무시한다. 그 사실이 억울하고 비통해 분을 식히지 못한 유진이 거칠게 핸드폰을 침대 위로 던져버렸다. 2년 약정이라는 계약 아래 구입한 최신형 터치 폰이었기에 마음처럼 베란다 창문 너머로 집어 던질만한 용기는 나지 않는다. 그녀의 가슴은 새 가슴이었고, 솔바람이 잘도 부는 갈대와도 같은 통풍 가슴이었으니 말이다.

1년된 남자친구를 남자친구라 부르지 못하고, 사랑하면서 사랑한다 말하지 못한다는 점도 꽤나 서러움을 안겨주는 판국이건만, 이제는 생각만 해도 봇물처럼 눈물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그런데 1분에 한 번씩 발신 버튼을 눌러대는 그녀의 가히 집착이라 일컫을만 하는 통화 수신에도 불구하고 국현은 하루 종일 그녀의 연락을 노골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유진은 거칠게 머리카락을 긁적이며 침대 위에 얼굴을 묻었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권유진.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봐도 뜨겁게 달아올라 쉬이 가라앉지 못하는 활화산과도 같은 가슴은 잔잔해질 수 없다. 오히려 국현에 대한 생각이 더욱 짙어짐과 동시에 농후해져만 갈 뿐.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가슴이 폭발을 곧 앞둔 거친 양대산맥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정확한 찰나에 전화가 울렸다.

“야, 이 개 자식아!”

수신자를 확인하기도 채 전에 그렇게 소리를 질러댔건만, 후에 들려오는 나지막한 음성은 그녀의 목소리를 무안함이란 무언의 공간 속으로 완전히 잠식 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개 자식이 아니고, 네 애미다. 이년아.

“엄마?”

순간적으로 당황한 유진이 수신자를 한 번 확인했다. 그리고 액정 위에는 ‘Mama.’ 라고 저장되어 있는 번호가 보란 듯이 각인 되어 있었다. 

-쯧쯧, 전화 받는 꼬라지 하고는. 어떻게 된 게 나이를 먹어도 변함이 없니?

“시작부터 핀잔은 주지 마, 나도 짜증난단 말이야.”

-됐다. 너랑 무슨 얘기를 하겠니?

“그럼 끊을게.”

-얼씨구.

놀란 기색 하나 없는 엄마의 어투는 다소 하이톤이었다. 유진은 괜스레 입술을 삐죽이며 수화기 속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유진이 화를 억누르고 작게 구시렁거리는 순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덥썩 말문을 연 엄마는 자신의 딸아이를 모질게 몰아붙였지만 금세 화제를 바꾸곤 나긋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유의 계집애가 동하랑 결혼하겠다며 집 떠난지 어느덧 반년이나 지났잖아? 혼자 있는 네가 혹여나 외로워하는 것은 아닐까 이 엄마와 아빠가 얼마나 걱정하는 줄 알아?

“흥.”

-그래서 말인데, 하숙생을 하나 들일까 해. 일본계 한국 유학생이기는 한데, 한국말도 어느 정도 구사할 줄 알고. 네 또래 아이라 이런 저런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적합할 것 같거든, 네 생각은 어떠니?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마요, 언니가 없다고 해서 크게 외롭지도 않고 난 지금 내 삶이 좋아. 일찍이 학교를 때려쳤지만 크게 거슬리는 일도 없고.”

-그래? 그런데 어쩌니.

엄마의 말은 다소 묘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마치 ‘그래봤자 너는 내 손바닥 안.’ 이라고 딱 잘라 말하는 듯 했는데 설마…유진은 어색한 미소를 띄우며 설레 설레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질 만큼 현실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들려오는 청천벽력같은 엄마의 말에 유진은 크게 벌어진 입술을 다물지 못한 채로 그대로 턱선을 잔뜩 일그러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 달에 네가 가져간 그 60만원 말이야, 그거 그 하숙생이 미리 지불한 하숙비거든.

“어?”

-아마 지금 쯤이면 그 하숙생도 한국으로 들어왔을 텐데, 한국의 지리에 대해선 조금도 모르는 그 불쌍한 아이를 네가 거둬주길 바란다.

“무, 무슨 소리야. 싫어!”

 -여유 부리지 말고 당장 인천 공항으로 달려 가.

“인천 공항이라니? 내가 왜? 설마 그 하숙생이니, 뭐니 하는 사람을 마중하러 가라던가,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할 생각은 아니지?”

하지만 세상은 유진이 생각하는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며, 그녀의 뜻을 따라줄 정도로 너그럽고 인자하지 못했다.

-그럼! 앞으로 그 집에서 머물 너의 하숙생이니, 네가 직접 마중하러 가는 게 당연하잖아? 그럼 엄마는 바빠서 이만 전화 끊는다. 

“어, 엄마?”

-조만간 다시 전화할테니 그 때까지 되도록이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렴. 사랑한다. 

싱긋 웃고 있을 엄마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졌다. 그리고 그렇게 전화는 끊겼다. 한참동안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채로 굳어버린 유진은 자신의 몸을 에워싸는 살얼음판과도 같은 한랭한 냉기 속에서 쉬이 벗어나올 수 없었다. 귓가에 맴도는 엄마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이해하기도 전에 자신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드는 엄마의 완강한 태도에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튕기듯 집을 벗어나왔다.

무심결에 그녀는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와 인천 공항으로 향하는 리무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활주로에 착륙하는 항공기 천천히 운행을 정지하면서 문 앞에 붙여진 트랩 아래로 너나할 것 없이 우르르 몰려내리는 사람들의 분주한 동태가 그녀의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다. 그 때 유진은 이렇게 생각했다. 아마도 어렸을 적부터 사고를 일삼는 언니가 어느 날은 아버지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후 만신창이가 되어 제 방으로 슬그머니 기어들어오던 적을 자주 목격했는데, 그 때부터 부모님에 대한 자신의 충성심이 굳건해진 것이고, 그 때문에 자신은 어머니의 강압적인 태도에 미약한 반항의 기미조차 보이지도 못한 채 이 곳, 인천 공항까지 부리나케 달려왔음이 틀림없다고 말이다.

그렇게 유진은 스스로를 위안하는 가슴 아픈 정의를 내렸다.

“……아 정말 싫다.”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핸드폰 진동이 뇌파로 전해지자 다급히 액정을 열었다.

「사카모토 쿄헤이를 환영합니다. -한화 빌라 가족 일동-.」

유진의 표정이 보기 좋게 굳어지는 찰나에 다시 한 번 진동이 손 끝을 타고 전신으로 퍼졌다.

「플랜 카드는 필수, 한국인의 매너를 보여주자고. 우리 딸 화이팅!」

아, 나는 정말 우리 엄마가 밉다. 미워 죽겠다.

아이를 말한다. (愛語)

캐리어를 이끌고 줄줄이 몰려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은 각양각색이었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방문하는 각국의 사람들은 크게 서양과 동양으로 분리할 수 있는데 지금 유진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사카모토 쿄헤이는 일본인, 즉 동양인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녀가 눈으로 훑는 사람들은 대다수 서양인이었고, 피부도 눈에 띄게 새하얬다.

일본에서 이륙한 한국행 비행기는 이미 운행이 정지되어 완전히 차감되었는데, 어째서 그는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물론 사내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이름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하숙생을 남성으로 몰아가는 것도 이기적이지만 이상하게도 이를 그녀라고 칭할 수 없었다. 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고 게이트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러나 작열하는 태양열에 녹아내린 자신의 심신을 더 이상 주체하지 못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극한의 순간을 맞이하는 순간 끝내 유진은 손에 쥐고 있던 어설픈 플랜 카드를 대리석 바닥 위에 던지다시피 하여 떨어뜨리곤 그 위에 냉큼 엉덩이를 붙였다.

국제적인 공항임에 에어컨에서 흘러나오는 전자적인 바람은 살갗 위에 살포시 내려앉아 한기를 더해주었지만, 질척하게 몰려다니는 공항 내의 지저분한 인파들의 움직임으로 인해 그 냉기도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땀으로 흥건히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봉긋한 자신의 이마를 찰싹 내리쳤다.

“어, 여드름.”

그러다 문득 관자놀이 부근에 톡 튀어나온 여드름의 흔적을 손 끝으로 느낀 유진의 얼굴이 금세 울상이 되어버렸다.

“정말 짜증만 솟구치는 구나.”

유진은 아마도 손 독이 올라 한껏 부풀어올라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고 있을 밤톨만한 여드름을 쥐어짜기 위해 그 부근을 중심으로 양쪽 검지 손가락을 한데 모았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날이 선 손톱으로 마치 안쪽으로 밀어내듯 여드름을 강하게 짓눌렀다. 금시 따끔한 통증이 신경 세포를 자극했지만 그 미약한 고통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저 그 찰나의 유진에게는 이 따위 아픔 보다 굳은 얼굴로 자신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발치의 남자의 시선이 더욱 아팠을 것이다. 물 밀려오듯 터져버린 고름을 손등으로 벅벅 문지르는 것을 끝으로 여드름의 최후에 대한 장식을 화려하게 치장했야만 하는데, 이상하게 주저앉은 자신을 내려다보며 작은 실소를 터뜨리는 남자의 눈빛속에 마치 자신을 비아냥거리는 듯한 악의 감정이 뒤섞여 있는 것만 같아 꼼짝할 수 없었다. 

남자의 눈총은 매우 따가웠으며, 또 치명적이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별안간 그 남자는 유진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더라. 어느새 가깝게 다가선 그를 빤히 올려다보는 내내 유진의 뒷목은 고단한 상황에 부딪혀야만 했다. 이를테면 근육이 조여와 전율이 흐르는 어깨 부근과 뒷목을 비롯한 척추가 서서히 아려오기 시작한 것.

“あ, この女だったの?”

무엇보다 남자는 실망한 역력이 가득한 목소리를 눈 앞에 보이는 유진을 향해 토해내듯 뱉어냈다는 것. 그 때 유진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막연한 생각의 지푸라기 하나가 그녀의 좌뇌와 우뇌를 강하게 끌어 안았다. 동시에 유진은 생각했다. 

아, 이 놈이구나! 

순식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유진이 떨어진 플랜 카드를 자신의 가슴 앞에 붙여놓았다. 

“음, 저 그러니까. 음…….”

“…….”  

“고, 곤니찌와. 음, 보쿠와? 와, 와따시와?”

두 사람의 시선이 정면에서 마주쳤다. 아찔한 남자의 시선에 유진이 바보처럼 헤벌쭉 웃어보였다.

“흐흐, 비록 말이 통하지는 않는다만 나날이 발전해가는 세계화 속에서 언어 따위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

“역시 중요하죠. 이럴 줄 알았으면 일본어 사전이라도 가지고 올 걸 그랬네요. 그나저나 제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요?”

“…….”

아, 미친 새끼. 이 고까운 눈빛 좀 보게.

“저기요, 어느 정도 한국말에 능통하시다면서요. 제가 무슨 말 하는지 조금도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그 쪽 이름이 사카모토 쿄헤이가 맞냐고요. 사카모토 쿄헤이!”

그러나 이번에도 묵묵부답이다. 유진은 생각했다. 이 씨발 새끼를 그 빌어먹을 최국현으로 각성 시켜 전태일의 추락 사건을 다시 한 번 일으켜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가 자신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야 할 것인가를 말이다. 그러나 초면인 남자에게 거침없이 욕설을 터뜨릴 정도로 그녀는 막되먹은 여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유진은 후자 쪽을 택했다.

“저기요.”

“…….”

“사카모토 쿄헤이상? 제 말 안 들려요? 아니면 여기 이 플랜 카드가 안 보이는 거요? 그것도 아니라면 그 쪽 이름을 내 멋대로 히라가나로 적어놓아서 화라도 난 거요?”

그러나 문제가 있다면 그녀가 다혈질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다진 결의와 결심은 작심삼일로 끝나는데 대다수였기에 아무래도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듯 싶다.

“이 쪽바리 새끼가 한국인의 근성을 보고 싶어 환장했나…….”

“…….”

“이봐요, 사카모토상. 나는 예쁘게 생긴 것처럼 마냥 착해빠진 여자가 아니라우. 그러니까 우리의 의사소통이 이심전심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냥 조용히 동행합시다. 나는 당신이 지금까지 내가 기다려 왔던 일본계 한국 유학생 사카모토 쿄헤이로 간주할 테니까. 알았어요?”

안 그래도 온 몸이 후덥지근한 것이 금방이라도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것만 같은 마당에 최국현보다 더 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만 같은 남자가 시종일관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으니 짜증에 분노가 더해져 완전히 눈이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설마했던 하숙생이 이처럼 새파랗게 어린 놈일 줄이야. 덧붙여 그녀의 예상대로 그는 그녀가 될 수 없는 완전한 남성의 몸을 가지고 있는 성숙한 청년이니…….

오, 맙소사.

공항을 벗어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리무진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정류장에서 걸음을 멈춘 유진은 자신의 뒤를 쫄랑쫄랑 쫓아오는 남자를 곁눈질로 훑어봤다. 은은한 갈색빛이 맴도는 머리카락과 창백하리만큼 새하얀 혈색, 그리고 지금껏 인식되어 왔던 고정관념과 다르게 오묘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는 모습을 띄고 있는 이 남자는 여자인 저보다 훨씬 아름다웠으며 고왔다. 구겨진 청바지 뒷 주머니에 자신의 손을 찔러넣고 어느새 두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맞춰 입술을 중얼거리는 입술도 무척 예뻤다. 입술 곡선도 또렷했고, 눈매의 윤곽도 짙었다.

이목구비 하나하나가 눈에 띄게 인상적인 이 남자는 한 눈에 보아도 저보다 한참이나 어려보였으나, 확실히 성장기인 모양인지 그녀보다 훨씬 컸다. 그래서 그와의 시선을 마주할 때마다 유진은 힘에 겨웠다. 그러나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휴, 모르겠다.” 

앞으로의 하숙 생활이 어떻게 돌아가게 될 것인지, 유진은 조금도 짐작하지 못했지만 썩 유쾌하지 않을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공항 버스 리무진이 정류장 앞에서 정차했다. 그녀가 버스 위로 냉큼 올라타자 그 뒤를 놓치지 않고 바짝 쫓는 쿄헤이였다. 그로부터 한 시간 반이라는 긴 시간을 소요했다. 버스에서 내려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도어락을 열고 비밀번호를 꾹꾹 누르면서 유진은 줄곧 닫혀있던 입술을 한 번 뗐다.

“시크릿 넘버, 원. 제로, 제로, 뿨어.”

전자음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짐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그는 제일 먼저 거실에 들어서 주위를 살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뭐지, 이 좁은 돼지 우리는? 이라고 말하는 그의 시선이 문득 유진과 정면에서 부딪혔다. 날카로운 그녀의 시선이 그에게 ‘불만 있어?’ 라고 간접적으로 물었다. 쿄헤이는 가차없이 그녀에게서 고개를 틀어 다시 한 번 좁은 빌라의 내부를 살폈다.

앞으로 이곳이 자신의 보금자리가 될 것이고, 생활터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 한편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여기가 화장실, 여기는 부엌. 한국말 못 알아 들어도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대충 눈으로 훑어보아도 어디가 어딘지 정도는 분간할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쿄헤이는 퉁명스레 말을 이어가는 유진을 빤히 주시했다. 그러던지, 말던지 무관심한 태도를 일관하며 집안 내부를 설명하기 급급한 유진은 급기야 제 할 말을 끝으로 자신의 방으로 쏙 사라지려 한다. 그때 쿄헤이는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저 여자가 이대로 제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린다면 두 번 다시 이야기를 주고 받을 시기를 놓쳐버리고 말 것이라고. 그랬기에 순간적으로 다급해진 쿄헤이가 말했다.

“없어, 칫솔.”

동시에 문고리를 향해 뻗은 그녀의 가는 팔이 경련을 일으켰다. 부르르 떨리는 몸뚱이로 황급히 돌아서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은 놀란 듯 조금 커다래졌다.

“속옷 없어.”

“…….”

“가서 사야 돼, 슈퍼.”

현기증을 느낀 유진이 자신의 이마를 짚고 두 눈을 가늘게 덮었다. 닫힌 안검을 쉽사리 들어올리지 못하는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저 바보처럼 조금 전 위풍당당하게 그를 쪽바리로 일컫었던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며 한탄하고 또 한탄할 뿐이다.

“……맙소사, 한국말 할 줄 알잖아. 그런데 왜 공항에서는 아무 말도 안했던 거에요?”

“슈퍼 없었는데, 공항에.”

문장 해석은 다소 어설프긴 했으나 그의 발음은 정확했다. 그의 말 한 마디로 인해 그만 넋을 잃은 유진은 뻥진 채 풀린 동공 너머로 보이는 그의 모습을 바보처럼 쫓았다. 그는 작은 캐리어의 손잡이를 닫고 쇼파 위에 보란 듯이 던져두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렇게 말한다.

“근성 뭔지 모르겠지만 재수 없었어, 그 말.”

그 때 유진의 생각은 이러하였다.

“그리고 못 생겼어, 한국 여자. 니혼 온나가 훨씬 예뻐.”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카와이하고 코와이한 놈을 하숙생으로 받아들였음이 틀림없다고.

Mini stop

채 아라님, SS급미녀님, 김1다운님, Yoon S님, 쩨이님, 옌지님, 민다혜님, 미래지향님, 김철수님, K.밀림님, 송송♥님.

파라디♡님, 요술사님, 놀토님, hotpinky님, はるさめ님, 하이고님, 피치네이드♡님, 야행성미녀님, superayaka님.

sobersides님, 쪼리님, 이상향님, 욯홍님, 트너님, 이치짱님,

가상에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10~15 사이에서 完♡

혹여나 업쪽=愛 를 남겨주세요.

30일 재생기간 만료

가사 뮤비

 

[나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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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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