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초부터
세계음반시장에
지각변동이 있었는데
그것은
음반시장 2위의 자리에서
유럽대륙이 밀려난 것이다
그후로 부터
세계음반시장의
1위는 미국
2위가 일본
3위는 유럽대륙으로 자리를 잡고있다
일본대중음악은
어떤 변천사를 거쳐서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된것인지
그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면
일본대중음악 변천사
1부 40년대-50년대/
"엔카(演歌)"에서 "신엔카(新演歌)"
일본창가에서 발전을 했던
40년대의
"엔카(演歌)"부터 출발해서
45년도를 기점으로
주일미군 상주하고
미국팝송들이 보급되면서
일본대중음악은
여러형태의 쟝르로
발전하게 되는 효시가 되고
그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은 형태로
주한미군의 팝송으로 부터
대중음악의 여러쟝르들이 시작된다
5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팝송의 멜로디들이
일본인들의 정서가 결합되면서
"신엔카(新演歌)"라는 형태로
탈바꿈하게 되고
그 이전의
"엔카(演歌)"들은
일본창가에서 약간의 발전을 한
민속음악의 틀에서 만들어진 노래였다
"엔카(演歌)"의 여왕으로
일본의 국민가수로 추앙을 받았으며
89년 5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재일동포 출신의
"美空ひばり(미소라히바리)"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던 때 이기도하다
"美空ひばり(미소라히바리)"는
49년도에 12세 데뷔를 해서
모든 스타일의 음악들을 소화해냈으며
오랫동안 국민적 인기를 누렸었다
그외에도
대표적인 가수들은
"후지야마이치로"와
"오우미도시오"
"가시기시즈코" 등과 같은 이들이
많은 활동을 했다
"가시기시즈코"는
전쟁전 재즈를 주로 하는 무대에서
인기가 있던 사람으로
"부기우기조(미국에서 말하는 스윙)"의 노래를
많이 불러 "부기의 여왕"이라고 말했으며
"후지야마이치로"는
재즈조나 건전한 가사의 노래가
주류를 이루던 시절이었으나
훗날 "엔카(演歌)"부활의
근원이 되었던 노래들을 많이 불렀다
"엔카(演歌)"의
기본적인 가락을 창조한
작곡가 "고가마사오"는
소년시절에 지금의 서울인 경성에서
수년간 살았던 적이 있어서
이것이 "엔카(演歌)"의
"한국 기원설"에 대한
근거로 제시되었다
2부 60년대/
"FOLK"과 "ROCK"
60년대에는
전세계적으로 "비틀즈(BEATLES)"라는
남성4인조밴드가
최고의 인기를 차지하게되면서
"비틀즈"열풍에
젊은이들이 빠져있었다
그런 현상은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66년에
일본공연을 했던 "비틀즈(BEATLES)"로부터
많은 영향들을 받으면서
FOLK과 ROCK의 음악들이
태동하기 시작했으며
"비틀즈(BEATLES)"의 패션과
악기편성을 흉내낸
많은그룹이 등장하게되는데
이들을 "그룹사운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쟈-타이가스(THE TIGERS)"는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았던 밴드였으며
"쥬리"라고 불리우던
리드보컬의 "사와다겐지"는
현재도 가수와 배우로서
활동중이다
이런현상도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ROCK의 대부로 불리우는
"신중현"이 밴드를 구성하고
음악을 시작했던 시기와
동일한 때이다
솔로활동했던 이 중에는
"히라오마사아키"가
가장 많은 활동과 사랑을 받았는데
그가 아마도
오빠부대의 효시가 아닐까? 생각된다
"히라오마사아키"는 락엔롤이라는
"엘비스프레슬리"와 같은
쟝르에서 활약했으며
일렉트릭키타를 감싸 안고 보여주는
격렬한 몸짓으로
특히 젊은여성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받았었다
이 시기에 일본대중음악에
한획을 긋는 가수가
61년도에 등장을 하게된다
바로
"사카모토큐"라는 인물인데
"上を向いて步こう
(우에오무이테아루코-/위를보고걷자)"라는
노래가 일본어로
불리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빌보드 챠트에서 1위를 기록하는
커다란 성과를 거두게된다
이곡은
"SUKIYAKI"라는 곡명으로
미국에 진출했었으며
현재까지도
아시아출신에서
빌보드챠트 1위에 오른
노래는 없다
참고로
일본대중음악이
빌보드챠트에 진입했던 노래는
총 7곡이었으며
최근에 진입했던노래는
우리나라의 BOA와
작년 12월19일에
싱글음반발매된
"THE MEANING OF PEACE"를
듀엣곡을 불렀던
"코다쿠미(倖田來美)"이다
일본대중음악 변천사(中편)
3부 70년대/
"쟝르들의 다변화"
70년대로 들어서면서
일본대중음악은
여러쟝르들로 발전되는
다변화시기로 접어든다
먼저 70년대 최고의 여성가수를
꼽으라면 단연
"야마구치모모에(山口百惠)"일것이다
인기절정때 은퇴를 했던
전설적인 가수로
지금도 많은이들에게 기억되고있는
가수이다
당시 15세의 어린나이에 데뷔를 해서
이후에 데뷔하는 여가수들의 나이를
낯추게했던 인물이라는
농담적인 말을 듣기도했다
"야마구치모모에"가
76년에 불렀던 "요코스카 스토리"라는 노래는
의지력이 강한 여자를 노래했던 곡으로
그녀의 대표곡이라고 할수있다
남자를 대표할수있는 가수라면
역시 15세의 나이에 데뷔를 했던
"고 히로미(鄕ひろみ)"라 할수 있으며
72년에 노래했던
"오토코노코, 온나노코(남자애, 여자애)"에서
중성적인 음성의 소유자로
후에 남성 아이돌가수의
기본적인 모델이 되기도 했다
데뷔후에 계속적인 활동을 해오던중
작년 11월7일에 발매한 싱글음반
"코노세카이노도코카니(この世界のどこかに)"를
마지막으로 돌연 무기한활동중지를 선언했다
한편
"마츠토야유미(松任谷由實)"의 등장은
당시로써 신선한충격이었다
"마츠토야유미"는
싱어송라이터의 효시격이었으며
FOLK의 멜로디와 ROCK의 리듬이
조화를 이룬 음악들이
서서히 나오기 시작한 시기이기도하다
70년대 중반의 음악들은
"뉴뮤직"이라 불리우며
가수들이 직접 곡을 만들어 부르는
싱어송라이터가 기본을 이루었다
"뉴뮤직'에 대해서
간단히 정리를 해서 말한다면
"미국적인 일본노래가 정형화되었던
대중음악들의 총칭"이라고
생각하면된다
또한 "마츠토야유미"는
"유밍'이라는 애칭으로 불리우며
73년 데뷔이래 현재까지
매년 음반들을 발매해 오고있으며
발매음반마다 100만장이 판매되고
차트에서 1위에 오르는 가수중에
한사람이며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영화"8월의 크리스마스'가
일본에서 상영되었을때
"유밍"이 그 영화를 보고
많은 감동을 받게 되었고
"허진호"감독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고한다
그런던중 "유밍"은
"허진호"영화감독에게
먼저 연락을 취해서
차기영화에서는 자신에게
영화음악을 맡겨달라고 부탁을 했으며
그후에 만들어진 영화인
"봄날은 간다"에서
"유밍"이 영화음악을 담당했고
"봄날은간다O.S.T"중에서
"김윤아(자우림)"이 부른
"봄날은 간다"를 들어보면
"유밍"의 음악성향에 대해서 알수있을것이다
이외에도
당시에 활동했던 가수들을
간단하게 정리를 한다면
독특한 연주스타일과
독특한 음성과 아이디어로
자기만의 스타일을 지녔던 가수
"야노아키코(矢野あき子)"
60년대말 "밥딜런"에 심취해서
FOLK가수로 데뷔해서
70년대를 풍미했던
"요시다타쿠로-(吉田拓郞)"가 있었다
"요시다타쿠로"는
70년대에 FOLK계에서
이례적으로 흥행이 되는 가수가 되면서
공연장에 수만명을 동원하는
최초의 FOLK계열가수이기도했다
또 한사람을 꼽는다면
"이노우에요스이(井上陽水)"라고 할수있는데
한소절 한소절을 절규하는 목소리로
많은 팬들을 확보했으며
현재도 확보하고 있는 가수이다
최근에 발매음반으로는
작년에
"UNITED COVER"앨범을 발매하고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노우에요스이"도
"요시다타쿠로"와 같은 시기에
FOLK가수로 데뷔했으며
그의 노래들은
노래가사 속에서도 많은 시적인 표현으로
깊이있는 자기성찰적인 요소들이 많았다
74년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앨범을 100만장을 판매한 첫 가수이기도하며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져있는 그룹
"안젠치타이(安全地帶)"가
그의 빽밴드였었다고 한다면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것이다
이야기를 조금 돌려서
"HOTEL CALIFONIA"라는 노래로
아마도 우리나라사람들중에서도
모르는 이가 거의 없는 그룹
"EAGLES"는
"린다론스타트(LINDA RONSTADT)"의
빽밴드 였다
이야기를 다시 계속하면
"호리우치다카오(堀內だかお)"
그는 tv출연을 거부하며
일본에서 처음으로 신비주의 전략을
만들어 낸 가수이다
78년도에 그의 노래
"기미노 히토미와 햐쿠망보루토(너의 눈동자는 백만볼트)"라는
곡이 화장품 CM송으로 사용되면서
유명세를 타게되었고
그후에 대중음악과 CM과의 제휴가
노래히트의 필수조건이라는
상업적전략을 만들어 낸 가수이기도하다
현재 일본대중음악의
비중있는 가수들의 노래들은
음반발매전에 TV-CM에서
먼저 들을 수 있을정도로
CM과의 제휴는 기본적인것이 되었다
여성댄스그룹의 원조였던
"쟌디즈"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없는 부분이다
76년도에 "하루이치방"이라는 곡으로
기존의 솔로나 듀엣 여가수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안무와
신선한 노래스타일로
당시의 고교생과 대학생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현재도 40대 후반사람들이 중심이 된
팬클럽이 버티고있다고 하니까
그녀들의 등장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변화였음은 틀림없었던것 같다
여고생 3인조로서
78년의 해산콘서트에서
눈물속에 남긴 마지막 말은
"평범한 소녀로 되돌아 갈래요"였는데
당시의 여고생들의
대유행어가 되었서
어떤행동을 끝내고 난후에는
꼭"평범한 소녀로 되돌아 갈래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뒤를 이어서
등장한 여성댄스듀엣으로
"핑크레이디(PINK LADY)"가
일본대중음악의 한획을 그었다
아마도
90년초에 우리나라에서
"서태지"의 등장으로
대중음악들이 커다란 변화를 했던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77년도에 "나기사노 신도밧도(물가의 신밧드)"라는
노래로 데뷔를 해서
자신들은 수영복을 입고 나와서
어린이들과 같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일본전역에 방송이 되었다
이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으며
일본의 여러민간단체에서
저속하다는 이유로
수영복출연 방송컨셉에 대해서 반발이 심해졌으며
방송에 수영복을 입고 나오는것을 금지됐다
"핑크레이디"의
기발한 옷차림과 안무는
초등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초등학생옷들이 전부 울긋불긋 했으며
"핑크레이디"의 의상에 대해서
이해되기 쉽게 표현을 한다면
우리나라에서 70년대에
TV외화 시리즈로 방영됐던
"원더우먼(WONDER WOMAN)"의
의상스타일이라고 말할수있다
그리고 당시 일본의 초등학생들은
아무데서나 "핑크레이디의 S.O.S"춤을
추고 다녔다고한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도
초등학생들뿐만 아니라 전국민들에게
유행시켰던 춤이 하나 있었다
몇일전에 운명을 달리하신
故"이주일(정주일)"님이
"수지큐"라는 음악에 맟춰서
"오리궁뎅이"춤을 유행시켰을때
우리나라 전역의 어린이들은
모두 그"오리궁뎅이"춤을 추고 다녔다
심지어는 학교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지적을 받고
불림을 받았을때도
"오리궁뎅이춤"을 추며
선생님앞으로 나갔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핑크레이디"가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음반을 발매했던 첫 일본가수가
아닌가 생각한다
당시에 큰 히트를 했던
"KISS IN THE DARK"이라는 노래가
당시의 LP음반으로 발매되었다
노래들은 영어버젼이었으며
그후에
"쇼-죠타이(少女隊)"의 음반등도
발매된적이 있다
요즘에 일본가수들의 음반들이
국내에서 발매되고 있다
B'Z,쿠라키마이(倉木麻衣),X-JAPAN등의
음반들은 아직도
영어버젼이나 INSTRUMENTAL형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일본대중음악변천사(下편)
4부 80년대 / 서양음악들의 일본화
80년대에는
한마디로 말해서
일본대중음악의 중흥기라고 볼수있다
또한
서양에서 유행되는 음악들을
일본화하는 시기라고 할수있는데
쟝르별로도
많은 뮤지션들이 등장을 했으며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도 많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사잔오루스타즈(SOUTHERN ALL STARS)"라고 할수있고
그들은 데뷔를 78년도에 했던 그룹이지만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많은 주옥같은 노래들로
일본인들의 가슴속에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아티스트이다
그룹의 리더인 "쿠와타케이스케(桑田佳祐)"는
별도로 솔로활동을 하면서도
그룹활동을 병행해왔다
최근에는
지난 6월26일에 싱글음반"토-쿄(東京)"을 발매하는 등
지속적인 활동하고 있다
일본대중평론가들은
"사잔오루스타즈"의 음악에 대해서
"자유분방한 장난조의 일본어를 ROCK 리듬에 싣는 제 1인자다"라고
평하고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노래가사에는
무의미한 말장난적인 요소도 많고
에로틱한 내용도 때론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일본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사잔오루스타즈"의 노래가사로
일본어를 공부한다면
정확한 일본어를 배우지 못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도 활동을 하면서
많은 음반들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으며
얼마전 발매한 "토-쿄(東京)"이라는 곡도
오리콘챠트에서 오랜기간동안
1위에 머물러있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요즘에 "인디즈"라고 말하고있는 그룹들의 형태가
태동하기 시작하는데
그 선두주자는 "록카즈(ROCERS)"였다
82년에 결성하면서
"우리도 밴드를 결성해서 마음껏 소리를 지른다..."라는
취지였다고한다
그들은 "펑크(FUNK)"의 영향을 받은
언더그라운드 그룹이었으며
그들의 음악자료들은
희귀음반에 속하고 있다
일본중고음반시장에서
50만엔정도에 거래가 된다고 하며
그나마 공급자보다수요자가 더 많다고한다
그렇만한 이유는
자신의 음반을 자비로 500매정도 음반발매를 해서
자신들의 음악을 좋아하거나
알고있는 사람들에게만 나뉘어 주었기 때문이다
정식으로 레코드회사에서
음반을 제작해서 발매를 했었다면
레코드사에 "레코딩마스터"가 보관되어 있기때문에
재발매를 할수있겠지만
예전의 "록카즈(ROCERS)"의 멤버중에서도
"레코딩마스터"를 보관하고 있는이가 없는듯하다
다음 이야기는 쟝르가 바뀌어서
"YMO(YELLOW MAGIC ORCHESTA)"에 대한 이야기인데
"디스코(DISCO)"라는 음악과 함께
보급되었던 악기가
지금은 "신디사이져"라고 불리우는
컴퓨터악기인데
컴퓨터를 사용해서 테크노사운드가 확산되면서
대중음악의 주류로 자리를 잡으면서
일본의 악기회사들이
이시기에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기도한다
다음으로 "쇼넨타이(少年隊)"다
아이돌 스타들의 "맏형"적인 존재로
현재도 어린아이돌 남자가수를 대량 배출하고 있는
"쟈니즈프로덕션"소속의 3인조아이돌그룹이었다
"SMAP"/"TOKIO"/"V6" 등이
"쟈니즈프로덕션"소속의 아이돌그룹이며
일본에서 연예인을 만드는 양대체제가 있는데
남자연예인은 "쟈니스프로덕션"이고
여자연예인은 "오키나와액터스쿨"에서
어릴적부터 입학해서
교육되어지고 만들어지고 있다
"오키나와액터스쿨"출신의
대표적인 아티스트는
"아무로나미에"/"하마사키아유미"/"MAX"등
지금은 해체한후 솔로활동을 하고 있는
전"SPEED"멤버들
역시 지금은 해체된 그룹"D&D"도
이곳 출신이다
"D&D"가 3인조였을때의 "OLIVIA"는
그룹해체전에 팀원들과의 불화로
그전부터 솔로로 활동하고 있다
"마츠다세이코(松田聖子)"
지난 6월5일에도 싱글음반
"스테키나아시타(素敵な明日)를 발매하며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가수이다
그 이전인 5월9일에는 딸 "SAYAKA"가 가수로 데뷔하는
첫싱글음반"EVER SINCE"를 발매함으로써
모녀가 함께 대중음악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마츠다세이코(松田聖子)"는
그동안 연예인활동을 하면서
언론으로 부터 많은 질타를 받았던
연예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일본연예인중에서 가장 많은 질타를 받고도
살아남아있는 여가수이다
"여자가수 이기보다는 허상의 측면이 부각되어서
"거짓울음의 성자"라는 별명도 있었고
결혼, 이혼, 불륜 등으로
끊임없이 연출된 자신을 언론에 일부로 노출시키면서
자신의 강한이미지를
다시 연출해온 인물이기도 하다
"나카모리아키나(中森明菜)"
80년대에 "마츠다세이코(松田聖子)"와
언론으로 부터 제일많이 비교되며
라이벌로 인식되어 있는 가수이다
자살미수, 파혼, 만취사건 등
"마츠다세이코(松田聖子)"못지않게
많은 스캔들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사람에게도
많이 알려져있는 노래
"긴기라기니"라는 곡으로 유명한
近藤眞彦(곤도-마사히코)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하자
자살소동을 벌이기도했으며
몇년전부터는 모든 음식을 맵게해서 먹는
이상한 습성까지 생겨서
"파스타"같은 음식을 먹을때는
타바스코소스 한병을 전부 부어서 먹는다고 한다
일부에서 정신적인 문제가 아닌가 한다고한다
그외에도
그 시대에 활동을 했던 아티스트들은
"오냥코쿠라부"
"이츠키히로시"
"캬로루"
"크루즈"등이 있었는데
위의 아티스트들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미소라히바리"가 여성엔카가수를 대표한다면
"이츠키히로시'는 남자엔카가수를 대표한다고 할수있고
"캬로루"는
가죽점퍼 스타일에
그 당시 할리우드영화의 반항적인 젊은이의 이미지를
부각시켰으며
현재 일본ROCK계의 지존이라 할수있는
"야자와에이키치(失澤永吉)'가
리더보컬로 할동했던 그룹이기도하다
"크루즈"는
ROCK & ROLL을 주로 하는 그룹이었다
그리고
"고메고메쿠라부(米米CLUB)"가 등장하게된다
여성댄서도 가담한 대규모 밴드이었으며
음악적으로는 흑인음악에 바탕을 둔
곡들을 많이 만들어낸 그룹이다
이 시기에 미국대중음악에는
"CHIGACO"라는 그룹이 있었는데
음악을 들어보면 문득"CHIGACO"가 생각나며
한편으로는
"EARTH WIND & FIRE"를
생각나게도 만든는 그룹이다
비쥬얼적인 요소들을 만들어내면서
얼굴에 분칠같은것(?)을 하기도 했는데
그 시조는 미국밴드로
"I WAS MADE ROR LOVING YOU"를 불렀던
"KISS"라는 그룹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이 흑인음악적인 요소들을
일본대중음악에 뿌리를 내리게한 그룹이었다
그리고
"UNICON"/"JUN SKY WALKERS"등이 있었고
"BOOWY"도 등장하는 시기이다
"사무라이픽션"영화에서
주연으로 등장했던"호테이토모야쓰(布袋寅泰)와
"히무로쿄-스케(永室京介)가
활동했던 그룹이다
"PRINCESS PRINCESS"
"프린세스프린세스"는
전원이 여성으로 구성된 밴드가 등장한다
70년대초부터 ROCK GROUP에
여성보컬들은 있었지만
여성으로만 구성된 밴드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후에 오사카출신의 출신의 여성3인조그룹
"쇼넨나이후"도 있었다
5부/90년대 세계음악시장에 진출
"시부야케-(澁谷系)"음악이라는 쟝르는
일본에서 보다 서양에서의 인지도가 높다
대표적인 인물로
한사람을 이야기 한다면
"TOWA TEI"라고 할수있는데
그는 자랑스럽게도 우리나라계의 아티스트이며
우리나라이름은 "정동화"이다
현재 "시부야케- "음악의 최고뮤지션이다
"시부야케-"음악은
처음에는 테크노를 기초로
여러가지 사운드들을 융합시켜서
만들어낸 음악이었지만
현재는 더 많은 발전이 되어서
재즈,펑키,소울,락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다
시부야케이음악을 정리한다면
각음악들의 장점들을 모아서
만들어진 새로운음악이라고 생각하면된다
"TOWA TEI"는
87년에 미국유학을 가게되고 음악공부를 하게되며
그후 90년에
싱글음반"グル-ヴ-イズ.イン.ザ-ハ-ト( globe is in the heart)"를
발매하면서 데뷔를 하게되고
이곡은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챠트에서
1위에 오르게 된다
미국 빌보드챠트에는 4위에 오른다
91년에서 94년도에는
坂本龍一(사카모토류이치)/小泉今日子(코이츠미쿄-코)/
NOKKO 등의 레코딩을 담당하게되며
어렌지/작사/자곡/리믹스 등을 하며
많은 뮤지션들의 음반에 참여했으며
95년도와 96년에는
ゲイシャ.ガ-ルズ(게이샤가-루즈)/
ピチカ-ト.ファイブ(pizzicato 5)/
KOJI 1200 등의 레코딩에도 참여했고
96년에는
縝原敬之(마키하라노리유키)등의
음반도 레코딩하게 된다
97년도에는
ハイ.ポジ(hi-posi)/
CHARA/ カヒミカリィ(kahimi karie)/
シティ.ボ-イズ(city boys)등에게
리믹스와 곡들을 주었으며
99 년에서 현재까지도
현재 일본에서 활동이 활발한 여성가수들인
ua/ bird 등 많은 뮤지션들에게
대단한 영향력을 주고있는 뮤지션이다
우리나라계열의 뮤지션으로는
미국 빌보드챠트에 오른사람은 없다고 알고있을지 모르겠지만
"TOWA TEI(정동화)"가
우리나라계 출신으로
미국 빌보드챠트에 오른 첫 뮤지션이다
그럼 본격적인 컬럼으로 가서
"보아다무즈"
일본에서 보다는 해외에서 많은 팬을 확보있었던 그룹이다
오스카출신의 하드코어 노이즈밴드로
한때는 보컬의 "야마즈카아이"의
과격한 라이브모습 등으로 폭력적인 인상이었으나
후에는 예술지향적인 밴드로 탈바꿈되었고
"오자와겐지(大岐建志)"에 의해서
94년도에 RAP음악이 일반화되었다
RAP의 내용들은
젊은층의 의미없는 언어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었으며
"오자와겐지"는
시부야의 젊은층들이 좋아하는
세련된 음악장르의 제 1인자이기도하다
최근발매음반으로는 지난 2월7일에 앨범"ELECTIC"있다
"덴키구루부(電氣GROOVE)"
테크노그룹의 선두주자였던
YMO의 영향을 받아서
컴퓨터음악을 통한 비트를 구사하고 있다
이들의 노래속도는
가사를 보지 않고는 도저히 알아들을수 없을 정도이며
"시부야케-(澁谷系)"음악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있는 그룹이다
"X-JAPAN"
우리나라에서 가장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룹이
아마 "X-JAPAN"일것이다
진한화장과 기발한머리를 하고 등장해서
비쥬얼계ROCK이라는 쟝르의
효시가 되었던 그룹이다라고
음악의 쟝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음악의 구성형태로
분류를 하는것인데
이 들이 그 통상을 깨어버린 그룹이다
어떻게 그룹이 보여주는 모습이
쟝르로 따로 구분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그것은 "X-JAPAN"이라는 그룹이
일본 ROCK계에서 다른 그룹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기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바쿠치쿠(BUCK-TICK)/"마르코시아스"
"반푸"등과 같이
90년대초부터 멤버(남성)들이
아주 진한화장과 이상한 머리를 하는 것이
그룹들의 유행되었고
일본대중음악에서는 이 그룹들을
비쥬얼ROCK이라고 부르게된다
그룹의 일원이었던
"히데(HIDE)"는
98년 1월에 변사(자살?)했다
여담으로 96년 NHK紅白戰(코하쿠우타갓센)에
'X-JAPAN"이 출연했을때
그때 나이드신 분들은
"이런 음악도 있었군!" 했다고 한다
"L'Arc-en-ciel(라루쿠앙씨에루)"
초창기의 음악들이
너무 성인취향의 곡들로
젊은층에게 외면당하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엔카에서 J-POP까지
다양한 노래들로 인기회복한 그룹이다
97년에 메이저로 데뷔했으며
"X-JAPAN"과는 다른 성향이나
미디어에서는 비쥬얼ROCK으로 분류하고 있다
보컬"하이도(HYDE)"는
솔로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지난 8월에는 우리나라에서
그의 앨범"ROENTGEN"이 영어버젼으로
발매되었다
"Luna Sea"
'L'Arc-en-ciel"과 비슷한 시기에 메이저 데뷔했으며
미국에서 유행하는 음악스타일들을
모두 집약시킨 노래들을 만들어낸 그룹이다
지금은 해체한 그룹이지만
보컬이었던 "카와무라류이치(河村陸一)"는
솔로활동을 하고 있으며
얼마전에 우리나라의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도 했었다
이 그룹 역시 비쥬얼ROCK으로 불리고 있다
"SMAP(스마뿌)"
"쟈니즈프로덕션"소속으로
현재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남성5인조 그룹이다
멤버들은 노래를 부르는것 이외에도
각자 TV에서 진행자나 연기자등으로
출연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키무라타쿠야((木村拓哉)"는
일본남자연예인 1위자리를
수년간 지켜오고있으며
"이나가키고로(稻垣吾郞)"는
얼마전 "뺑소니와 공무집행방해죄"로
팀활동에서 몇개월간 제외되기도 했다
한편 "쿠사나기츠요시(草なぎ剛)"는
"초난강"이라는 이름으로
얼마전 우리나라에서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Globe"
"코무로데츠야"가 이끄는 그룹이며
그는 일본 최고의 프로듀서이다
95년 8월 'Feel Like dance'로 데뷔해서
당시 90만장이라는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이후 9월과 11월에 발매한
'Joy to the love'과
'SWEET PAIN'등의 히트를 등에 업고 발매한
네번째 싱글 'DEPARTURES'는
220만장이라는 판매고를 기록하게된다
최근에 발매한 음반으로는
지난 4월17일에 여덟번째앨범
"LIGHT 2"가 있으며
싱글은 2월6일에 "MANY CLASSIC MOMENTS"와
4월10일에 "INSPIRED FROM RED & BLUE"가 있다
"Kiroro"는
오키나와 출신의 여성2인조로
70년대의 어코스틱한 분위기음악들을
리바이블한 그룹이며
"아무로나미에(安室奈美惠)"
앞서 이야기한 바 있는
"오키나와"의 "나하"에 있는
일본여자 연예인만을 양성하는
"오키나와 액터즈스쿨"출신이다
상당한 수업료를 낼수없었던 그녀였지만
노래와 댄스등을 인정받아서
장학생으로 졸업할수 있었으며
"코무로데츠야"에 의해서
키워진 가수이기도하다
한창 주가가 올라가 있는 시기였던
19살에 결혼을 하고
20살에 출산을 했지만
지난 7월에 이혼을 했다
이외에도
"우타다히카루(宇多田ひかる)"/쿠라키마이(創木麻依)"/
"MISIA"/"B'z"등
많은 아티스트들의 이야기들을 올리지못한점을
아쉽게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현재 일본에서 최고의 가수자리에 있는
"하마사키아유미(浜崎あゆみ)"의
이야기로 컬럼을 끝내려고 한다
78년 10월2일 후꾸오카출생
156cm / A형
98년 4월8일 싱글"poker face"로 데뷔
"하마사키아유미(浜崎あゆみ)"는
가수로 데뷔하기전에는 드라마에 출연하던
보통의 여배우였다
그러다가
97년 가수로서 데뷔하고 싶어서 뉴욕행을 결심하고
1년간 뉴욕에서 노래공부를 하게된다
작사를 시작한 것도 이때 쯤부터 이며
98년에 자신의 작사에 직접 만든 곡을붙여서
자신만의 스타일의 노래를 완성하게된다
첫 싱글 이후에도
모든 곡들은 자신이 작사를 했으며
솔직한 감정이 실리고 담백한 언어를 쓰는 작사로
그녀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사에 심취해 버린다고 한다
98년 4월부터 내놓은 거의 모든 싱글이
오리콘 챠트에서 1위를 했으며
"하마사키아유미(浜崎あゆみ)"는
이쁜외모와 탄탄한 음악실력을 바탕으로
현재 일본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작년에는
남성5인조 아이돌그룹"TOKIO"의 보컬인
"나가세토모야"가 연인이라고 밝혀서
그녀의 소속사가 발각되집어진 사건도 있었다
"나가세토모야"의에 대해서 부연설명을 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최민수"와 함께 촬영했던 영화
"소-루(SEOUL)" 에서 주연을 했던 아이돌스타이다
다시 "하마사키아유미"의 소속사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하마사키아유미(浜崎あゆみ)"는
일본최대의 레코드사인 "AVEX"소속가수인데
"AVEX"의 년매출의 3%를 차지하고 있다고한다
그 소동으로 인해서
한때 "AVEX"의 주식이 곤두박질하기도 했으며
"하마사키아유미(浜崎あゆみ)"의 새로운 음반발매들이
모두 연기를 하는 등 소동을 겪기도했었다
지금까지 3편으로 나누어서
일본대중음악에 대한 컬럼을 정리해서 올렸습니다만
그 자료들이 너무 방대해서
정리하는 과정에서
소홀히 취급된 아티스트들이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네티즌여러분들의
넓은 양해부탁드립니다
첫댓글 정리된 글 잘읽었습니다. 일본대중음악의 이해에 도움이 많이 되어 좋았습니다. 영화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위에 언급하신 봄날은간다와 8월의 크리스마스의 감독은 신승수감독이 아니라 허진호감독이 안닌지요 글의 내용에서 벗어 난 내용이지만 의문이나 댓글 올립니다.
그렇군요 수정 했습니다 아마도 작성 하신분이 혼동 하셨나 봅니다 일본판 '8월의 크리스마스'(감독 나츠카와 슈니치)를 리메이크한 작품 이지요 이글을 작성한시기는 2002년에 쓰여진것 같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