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겐 농부의 피가 흐르고 있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가꾸는 일을 저리 좋아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주말이면 토마토나 고추 같은 작물의 모종을 사다가 심었다. 한껏 공을 들여 키웠다. 어린 내 눈에는 그저 지루해 보였다. 시장에 가면 넘쳐나는 것들에 정을 쏟는 까닭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와서 내게 그 장면은 부모 마음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진다. 자라거나 자라지 않거나, 수확을 할 수 있거나 없거나 정성을 들이는 마음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 심정을 이해하게 될 때쯤 나 역시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됐다. 불쑥, 자연에서 무르익는 초록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이든 자연히 되는 일이란 없으니 저 우렁우렁한 잎들이란 얼마나 놀라운 현상인가. 그러니 매일 아침 화분 몇 개에 쏟는 나의 정성은 대자연적 인과관계에의 참여라고 과장스레 소개할 수 있으리라. 어쩌면 나이 들어감에 따른 변화일지도 모른다. 한 시인은 내게 “나이 들었더니, 꽃 사진을 눈치 보지 않고 찍을 수 있어 그건 참 좋더라” 했다. 아끼는 고무나무에 앙증맞은 새순이 돋았을 때, 나도 몰래 탄성을 내지르고 만 일이 떠올라 나는 하하 웃었다.
아침 출근길엔 비가 내렸다. 나는 우산을 펴기도 전부터 ‘아- 화분을 내어놓아야지’ 생각한다. 쨍한 빛깔의 잎사귀를 자랑하며 제 몸 곧추세울 식물들을 생각하니 즐겁다. 그것들 사진을 찍어 자랑하고 싶은데, 그 자랑을 들어줄 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내 안에 흐르고 있을 아버지의 피가 한쪽으로 기울었나 보다. 그가 그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