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빠른 '고발뉴스' 가족분들은 이미 아셨겠습니다. 저는 수년째 조영남씨를 연구하고 있는 연구자랍니다. '연구자'라니까 좀 거창하죠? 하지만 나름 사명감을 가지고 벌써 5년째 그를 '탐사'해왔답니다. 사람을 '탐사'할 수 있냐구요? 그럼요. 사람 속에도 길도 있고 물도 흐르고 그늘도 있답니다. 조영남씨는 보기와는 달리 긴 인생 여정에 수월치 않은 골을 가진 산이지요.
그럼 전 왜 조영남씨를 연구할까요? 조만간 그동안의 자료를 모아 조영남씨에 대한 연구서를 한권 출판할 계획입니다만, 우선 간단히 말씀드리죠. 저는 역사의 진보와 사회개혁을 꿈꾸는 현장 기자입니다. 진보는 긴 흐름의 자유의지가 결여되면 짧은 구호에 그치고 맙니다. 진정한 역사 진보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유주의는 진보의 터전입니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자유주의가 약합니다. 그러다보니 근엄한 구호와 천박한 호객 소리만이 전 국토에 교차, 난무합니다. 인간은 가벼히 여기저기로 쏠리다 저녁이 되면 시든 배추잎 처럼 곳곳에 버려지고 말지요.
얼마되지 않는 자유주의자의 교과서가 조영남씨입니다. 물론 찾아보면 훌륭한 분들이 많으시지만, 조영남씨는 직업이 대중문화 예술인이다보니 다른 가치들 보다 유달리 '자유' 쪽으로 진력해온 인물이지요. 숱한 오해와 억측이 늘 그를 뒤따랐지만 조영남씨 그리 간단한 인물아닙니다. 실제로 매우 솔직담백한데다가 겉희고 속검은 왠만한 지식인네들 보다 훨씬 원칙적이고 합리적입니다. 책읽기를 좋아해 몇몇 분야에서는 천재소리를 들을 정도구요. 그렇게 60여년을 살아남은 그에게서 우리 시대가 나눠가질 수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저는 늘 생각해봅니다. 저의 이런 생각을 기특하게 여기셨는지, 조영남씨는 자신의 사생활까지 속속들이 제게 오픈해주고 있습니다. 저같은 무대뽀 고발기자에게 말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를 알아갈 수록 자유는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또 그 대가는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 깨우쳐 가고 있습니다.
며칠 전 이경실씨 결혼식에 함께 갔었습니다. 카메라와 기자들의 취재가 불허됐었지요. 조영남씨를 따라서 무사통과한 저는 얼떨결에 희대(?)의 결혼식을 지켜본 유일한 기자가 되버렸습니다. 두번의 이혼 경력자인 조영남씨가 주례로 추대되다보니, 결혼식 자체보다 주례사가 주목을 받았던 이색 결혼식. 어쩌면 이날 결혼식은, 엄숙주의와 결혼을 둘러싼 기존 관념들에 대한 조그마한 저항이자 새로운 시도로 기억될 거라고 저는 혼자 생각해봅니다. 주변의 성화에 못이겨 조영남씨의 주례사 요지를 전해드립니다. 핸드폰 사진은 결혼식 시작 직전까지 주례전략을 메모하고 있는 조영남씨의 모습을 제 카메라 폰으로 촬영한 것입니다.
<조영남 주례요지>
난 처음엔 축가를 불러달라는 줄 알았다. 그런데 주례였다. 유행어를 뱉고 말았다. '쟝난하냐, 쟝난하냐!' 이런 식으로 대충 뺄려고 했는데 2주가 지나고 나니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무척 당황스러웠다. (이거 그냥 우는 소리다. 사실 조영남씨는 이경실씨 결혼 이전 한차례 주례를 선 경험이 있다. 모 언론사 기자의 조촐한 결혼식이었는데, 그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때까지 살지 않아도 되니, 사랑할 때까지만 살아라'는 요지의 주례사를 남겨 큰 박수를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이경실이 내 재혼식때 사회를 봐줬기 때문에 오늘 빚을 갚기로 했다.
이경규는 이호동 결혼식에서 '집에 불이 나기 전에는 큰 소리를 치지 말라'는 훌륭한 주례사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뒤에가서 오늘 입고 온 옷이 단벌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지저분한 얘기를 해서 옷을 받아냈다고 한다. 나는 며칠전 이경실에게서 양복카드도 받았기 때문에 그런 얘기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진짜 좋은 주례사를 해야한다는 부담이 크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두 사람다 이미 한차례씩 결혼을 했잖는가. 그때 주례가 분명히 좋은 말씀을 했을텐데 이 사람들은 그 주례에게 못할 짓을 한 거다. 그분들 보다 내가 더 잘할 자신이 없다. 그러니 둘다 그때 주례 말씀을 다시 기억해서 그분들에게 또다시 누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해라.
나는 주례사 할것은 없고 내 비장의 발명품을 하나 소개하겠다. 바로 로션 바르는 기계다. 늙으니 등이 가려운데 로션을 바를 수가 없다. 딸아이는 바를 때 마다 돈을 요구한다. 그래서 만들었다. (조영남씨는 이때 객석에 앉아있던 나를 호명했다. 미리 준비한 그의 발명품을 내게 들어보이도록 청한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문제의 발명품을 하객들에게 보여주었다.) 이 발명품은 등긁게 끝에 낡은 팬티의 부드러운 헝겊 부분을 묶은 것이다. 보기는 이래도 로션을 묻혀 등에 바르면 아주 편하다. 둘에게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잘못하면 나처럼 이 발명품을 사용하게 된다. 힘들때 마다 이 발명품을 생각하면서 잘 살기바란다. 끝.
작성일 2007/01/28 09:09:56 작성자 이상호 기자
|
첫댓글 주례의 진정한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네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