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6월이 신선한 바람을 앞세워 이 땅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초여름의 상큼한 날씨가 보여주는 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을 보라! 파란 물감을 드린 도화지에 수 놓은 듯한 구름 몇 점, 꽃보다 아름답구나! 어찌 보면 숙녀의
아름다운 손에 낀 보석같이 보인다. 그 사이로 나르는 기러기 한 쌍 사랑의 노래 부르며 저쪽 산으로 날아가는 모습 또한 장관이다.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버스의 차창으론 6월의 향기가 신선하게 밀려온다. 우리는 설렘을 가슴에 안고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을 받으며 강원도 설악산의 제2
금강산이라 불리는 신선대를 향해 가고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의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우주의 움직임에
맞춰 변화를 일으키는 생명체의 신비로움을 느끼는 순간이다. 꽃만큼이나 아름다운 파란 나뭇잎을 바라보라! 연초록으로 피어나 이젠 제법 성숙하게
자라 완연한 초록으로 변했음을 자랑한다. 이러한 광경이 눈부시게 빼어난 우리나라 6월의 경치다. 설악산으로 가는 도로엔 징검다리 연휴 탓으로
모든 차가 가다 서기를 지루할 정도로 반복한다. 그러나 차 안은 잔잔한 멜로디가 은은하게 흐르고 모처럼 만난 회원들은 사랑스러운 대화로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다.
미시령 터널을 나오자마자 해피산악회의 보배이며 사진작가이신 장선덕 본부장이 우측을 바라보라고 소리친다.
회원들에게 신비로운 풍광을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울산바위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회원들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감탄사를 연신 터트린다. 자연의 신비로움을 또 한 번 생각해 보는 순간이다. 이 길은 터널이 생기기 전에는 꾸불꾸불한
고갯길을 아슬아슬하게 수십 고비를 돌며 자연의 신비를 짜릿하게 만끽했던 험난한 길이었다. 그러던 길이 지금은 문명의 혜택을 받아 터널을 뚫어놓아
단숨에 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관광객들은 보아야 할 아름다운 경치를 보지 못하고 짜릿한 전율도 맛보지 못하고 지나가야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버스는 드디어 목적지인 금강산 화암사(金剛山 禾巖寺) 주차장까지 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회원들의 안전 산행을 위해
정상헌 부회장의 구령에 맞춰 간단한 체조를 하였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성의와 열의 또 봉사 정신이 배어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산악회의 또 한 분의 보배이다. 우리는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목의 오른쪽에 금강산
화암사(金剛山 禾巖寺) 숲길 안내도가 나온다. 금강산 신선봉 설악산 울산 바위와 푸른 동해를 함께 감상하면서 산림욕을 하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즐길 수 있는 숲길이다.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화암사의 대궐 문 같은 일주문을 막 들어설 때 그윽하게 풍기는 솔향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얼마나 향기로운지 정신이 몽롱해진다.
금강산 화암사(金剛山 禾巖寺)까지 선시(禪詩)의 길을 조성하여 놓았다. 선(禪)의
핵심은 깨달음에 있고 선(禪)에 의해 깨달음의 지혜가 열린다. 순수한 집중과 깊은 사유로 자기 실상을 자각하고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선(禪)이다. 그리고 자기 응시와 깊은 탐구로 신(神)과 내통하고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부처를 돈오(頓悟)하여 자기 존재의 핵심에 도달케
하는 것이 선(禪)이다. 선시(禪詩)는스스로 깨닫고 체험된 세계를 언어로 형상화하고 표현한 것을 말한다. 즉 돈오(頓悟)적 직관으로 존재의
실상을 깨닫고 내심자증(內心自證)된 세계를 언어로 표현한 작품을 선시(禪詩)라고 한다.
화암사(禾巖寺)는 일주문에서 절 입구에
이르는 도로 포장공사를 시작하면서 이 길을 사색과 명상이 있는 선시(禪詩)의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절로 올라오는 오른편에는 현대에서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깨달음을 이루었던 고승들의 오도송(悟道頌)을 중심으로 비(碑)를 만들고 다시 절에서 내려가는 오른편쪽에는 고승들의
열반송(涅槃頌)을 위주로 비(碑)를 세워서 이곳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명상과 사유의 즐거움을 누리는 공간을 만들기로 하였다. 진리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배우는 일이다. 자기를 배우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를 내려놓고 배워야 본래 자기 모습이 드러난다. 올라오는 길에서는 깨달음을 배우고
내려가는 길에서는 내려놓고 비우는 지혜를 통해 자기 현존을 뒤돌아보게 하였다.
절로 가는 길목에는 간혹 돌탑도 세워놓았다.
오른쪽에 세워놓은 6분의 오도송(悟道頌)과 2분의 선시(禪詩)를 적어본다.
1) ※동곡(東谷)/ 일타(日陀)
(1929~1999) 충남 공주 출신으로 출가하여 남다른 재주로 경, 륜, 론 삼장을 통달하고 율을 통해 생명을 사랑하고 화해와 화쟁으로
갈들을 해소하고 사람의 안심 임명을 심어준 선교에 밝은 해탈인 이시다.
몰록 하룻밤을 잊고 지냈으니 시간과 공간은 어디에
있는가 문을 여니 꽃이 웃으며 다가오고 광명이 천지에 가득 넘치는 구나
2) ※경허(鏡虛) / 성우(惺牛)
(1849~1912) 전북 전주 출신이시며 근세 선종의 중흥조 출가하여 삼장을 두루 섭렵 통달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콜레라에 걸려
죽음 속에서 생사 여일을 깨달은 해탈인 이시다. 경허 때문에 수행의 삶은 풍족해졌고 자유가 훨씬 확대되었다.
문득 콕구멍이 없다는 말을 들으매 온 우주가 나 자신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래 길 할일 없는 들사람이
태평가를 무르네
3) ※퇴옹(退翁) /성철(性撤) (1912 ~1993) 경남 산청 출신으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법어로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큰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게 한 정신적인 거인이시다. 십년을 장좌불완하고 4개국을 독파하여 선교에 막힘이 없었고
깨달음이 경지를 한층 높이셨다.
머리는 희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고 옛사람은 이미 말했네 지금 대낮에 닭 울음소리 든나니 대장부의 할 일을 다
마쳤네
6) ※고암(古庵) (1899 ~ 1988) 마음밖에 진리가 없다는 것을 일생동안 실천한 푸른 눈을 지녔던
선지식. 지혜와 자비로 상대를 절복 시키고 하심으로 충생을 재도한 자비가 몸과 마음에 가득했던 해탈인 조계종 3대, 4대, 6대
종정을 역임
禪定三昧壺中日月 (선정삼매호중일월) 凉風吹來胸中無事 (양풍취래흉중무사)
선정삼매는 항아리 속
일월같고 시원한 바람 부니 가슴속엔 일이 없네
※경허(鏡虛) (1849 ~!1912) 스님께서 남긴
선시(禪詩)이다
靜聽魚讀月 笑對鳥談天 (정청어독월 소대조담천)
고요한 밤 물고기가 달 읽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웃으며
새들이 천문(天文)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네
삶에 절망해 본 사람만이 삶을 사랑할 수 있다. 인간에게 고통과 슬픔이
없다면 인생을 치열하게 살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사람에게 고통과 슬픔이 없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태풍이 지나고 천둥이
그친 날 이 시를 기억하라
※작자미상(作者未詳)의 스님께서 쓴 선시(禪詩)도 있다.
石虎山前鬪
(석호산전투) 盧花水底眠 (노화수저면) 돌 호랑이는 산 앞에서 싸우는데 갈대꽃은 물 밑에서 잠들었네
사유가 깊어져야
보이고 영혼이 맑아져야 들린다. 사람들은 안으로 여물어지고 성숙되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다. 맑은 영혼이 되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필자는 감히 상상도 해보지 못한 고승들께서 쓰신 인간의 고뇌를 파헤친 아름답고 귀한 글을
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토록 보석 같은 글이 속세를 떠나 산 중에 묻혀있는 것이 안타까워 세속으로 선보이려고 수필에 적어보았다.
2편에서는 금강산 화암사(金剛山 禾巖寺)에 대한 글과 고승들의 열반송(涅槃頌)을 적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