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송광사다.
대웅보전 앞의 매화가 피었을까? 영광루 앞의 산수유는?
컴 앞에서 헐망을 떨다 송광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11시 20분을 지난다.
불일암을 들러볼까 하다가 갈림길에서 숲만 보고 올라간다.
송광사는 여전히 공사 중이다.
박물관 앞의 마당을 벗겨내고 또 달리 덮어 씌울 모양이다.
영광루 담장 밖의 산수유는 노랗지만 화사함이 안 보인다.
대웅보전 앞의 매화는 하얗게 핀 것이 두 송이 보인다.
종무소 옆 서가에서 월간 송광사 2,3월호를 챙긴다.
우화각을 넓게 찍어보고 대숲을 지나는데 밑을 톱질해 솎아냈다.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드니 그늘에 눈이 수북하다.
봄볕에 녹아드는 것이 보이는 듯하다.
굴목재 나무계단을 헐떡이며 오르니 송광사를 나선지 50분이 넘는다.
보리밥집 내려가는 길은 따뜻하고 눈도 길엔 없다.
1시가 다 되어가는데 한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보리밥집 가까이서 혼자 올라오는 사나이한테 밥집 하느냐니 하더라고 한다.
손님은 몇 없다.
딸이 주문을 받고 아주머니는 아궁이 앞에 있는데 어쩐지 힘이 없다.
아저씨가 안 보인다하니 어디 가셨다 한다.
아궁이 앞에서 혼자 밥을 먹는 남자가 형수님 하며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동동주 반도를 곁들인 보리밥을 먹고 아궁이 앞에서 불을 쬐는데 그 사나이가 다가온다.
아줌마가 밤과 고구마를 가져다주며 꿔 먹으란다.
남자가 바깥주인이 며칠 전 잠자리에서 돌아가셔 조문을 다녀왔다며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 선한 미소로 반겨주시던 분이 가셨다니 믿기지 않는다.
장례식장 안내판에 74살이라고 되어 있더란다.
창고 앞의 '대장불착'글씨를 찾아보며 아는 척을 하니 남자가 김영수 선생 팬이라며
중국 이야기를 붙여온다.
나도 아는 척 응대를 하니 이야기가 이어진다.
순천에서 개인택시를 하면서 한주에 한번은 산에 간다고 한다.
접치에 차를 두고 와 송광사로 내려가 버스를 타고 접치로 가겠단다.
난 그만 헤어졌으면 하고 천자암으로 가겠다하는데 날 따라오겠단다.
그와 천자암으로 걷는다.
나보다 두어살 아래인 그는 뒤에서 쫒아오며 숨소리가 가뿌다.
가끔 기다려 준다.
천자암은 마당을 늘리는 공사는 마무리되고 나한전 앞의 살림채를 부셔 정리중이다.
다시 지을 거란다.
흐린 건너산을 보다가 내려와 송광사로 내려가는데 여전히 그는 멀찍이 떨어져 온다.
기다려 이야길 나누다가 또 앞서간다. 나 편한 대로다.
절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매표소로 내려와 버스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그와 악수하고 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