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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동의 고고학 기행
청계천엔 왕후의 무덤에서 해체한 다리가 있다
출처 한국일보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92009260003532
편집자주
우리 역사를 바꾸고 문화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한 발견들을 유적여행과 시간여행을 통해 다시 한번 음미한다. 고고학 유적과 유물에 담겨진 흥분과 아쉬움 그리고 새로운 깨달음을 함께 즐겨보자.
<35> 서울 청계천
청계천 수표교 근처에서 빨래하는 서민들의 모습.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서울 도심을 동서로 가로질러 흐르는 청계천(淸溪川). 이 청계천을 모르면 한양을, 또 서울을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조선이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뒤, 청계천을 정비하는 일은 궁궐 축조에 견줄 만큼 핵심적인 도시 계획이었을 것이다. 태종 때 정비했고 그 후 주기적으로 준천(濬川ㆍ물이 잘 흐르도록 개천 바닥을 파내는 작업)을 해 개천(開川), 즉 ‘새로운 하천을 열다’라는 이름을 얻었다. 특히 영조 재위 시절이었던 ‘경진(庚辰ㆍ1760년) 준천’ 후에는 왕이 직접 행차해 동전을 뿌리며 축하했을 정도로 중요한 국가사업이었다.
한양 천도 이후 600년 가까이 흐른 지난 1977년 하천이 복개(覆蓋ㆍ덮어씌움)돼 도로가 생겼고 청계천은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서울살이 애환의 편린들을 남몰래 간직한 어두운 공간으로 변했다. 반면, 청계천 복개면 위에 생긴 청계로 주변 상가들은 조선시대에는 상상도 못했을 국가 중추 산업 현장으로 변신했다.
1760년 경진년 당시 다리(오간수문) 위에서 준천 작업을 지켜보는 영조의 모습(어전준천제명첩). 부산박물관 제공
그리고 2003년 시작된 청계천 복원 사업. 하천 위 길이었던 청계로가 사라지고 청계천이 우리에게 돌아왔다. 전대미문의 토목사업이었다. 이 거대한 사업에 앞서 문화재 발굴은 필수 작업이다. 지금은 말끔하게 정리돼 맑은 물이 흐르는 도시 하천이 됐지만, 복개 직후의 청계천 문화재 발굴 현장은 그야말로 숨 쉬기조차 어려운 하수도 속이었다.
도심 구간의 하천 전체를 발굴하는 일은 세계적이자 세기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서울은 이 발굴을 통해 ‘어느 곳이나 유적으로 가득 찬 도시’라는 사실을 확실히 입증했다. 이제는 그 위에 더 이상 아무것도 덮이지 않을 청계천이다.
1965년 청계천 교각을 세우는 모습. 서울시 제공
‘쓰레기 고고학’의 대사건
흔히 ‘고고학 유적’이란 절, 신전, 무덤, 궁전 등 오래 보존되길 바라는 옛사람의 염원이 깃든 화려한 건물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웬 쓰레기 고고학? 고고학에서 자주 다루는 ‘쓰레기 더미’가 있는데, 바로 패총(貝塚ㆍ조개더미)이라고 불리는 유적이다. 이것은 고대인들이 먹고 버린 음식물 쓰레기가 쌓여 남은 것이다. 현대 쓰레기 고고학은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시작됐다.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고고학자들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는지 검증하기 위한 시도였다고도 할 수 있다.
유적이 발굴되면 고고학자들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ㆍ문화 등에 대해 많은 추측들을 내놓지만, 실제 생활상이 고고학자들의 추측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현대 고고학자들은 유적지의 쓰레기 더미에서 나온 각종 생활용품을 통해 당시 생활상을 복원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바로 ‘쓰레기 고고학’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960년대에 고 김원용(1922~1993) 교수가 소사 신앙촌 쓰레기 더미를 발굴해 세계적인 인류학 잡지에 보고한 적이 있다.
청계천 하수도 유적 발굴은 아마도 현대 고고학사를 장식할 대발굴 작업이 아닐까 한다. 청계천은 ‘현대 메트로폴리스’인 서울의 생활사가 가장 잘 보존된 유적이기 때문이다.
동대문운동장과 그 옆을 흐르는 청계천 모습. 국가기록원 제공
청계천, 숨겨진 서울의 역사
청계천(淸溪川). 혹자는 일제 강점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고, 인왕산의 청풍계천(淸風溪川)에서 유래됐다는 속설도 있지만, 그 어원은 아직도 분명치 않다. 한양에 도읍하기 전에는 ‘실개천’이었다고도 하는데, 한양 내사산(內四山ㆍ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에서 흘러드는 물에, 청계천 주류라고 보는 백운동천(白雲洞川)과 여러 지천까지 모였으니 ‘실’ 자가 들어갈 정도의 작은 규모는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청계천 지류가 있는 곳에는 각기 고유한 도시 기능을 갖추고 있었음을 고려하면, 청계천은 당시 한양의 척추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강남이 개발되면서 한강이 서울의 중심부 역할을 하게 됐듯 당시엔 청계천이 그 역할을 한 셈이다. 오늘날 서울 한강 변에 가장 좋은 아파트들이 줄지어 있지만, 한양 청계천 변도 가장 핫(hot)하고도 쿨(cool)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힘든 발굴 작업이기는 하지만, 흥미로운 유물에 대한 기대도 컸다.
2004년 광통교 하부 교각 해체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
고고학자의 헛된 꿈
일반 대중에게 ‘발굴’이란, 아마도 무령왕릉이나 천마총 등 화려한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왕릉 발굴’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 발굴도 또 다른 의미에서 한국 고고학 발굴사를 새롭게 썼다. 세종 대에 청계천 용도에 대한 논쟁이 있었는데, 하수도로 사용하자는 주장이 최종 정책으로 선택됐으니, 청계천 발굴은 세계 최대 하수도 발굴이기도 하다.
나는 발굴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문화재위원으로 여러 차례 현장을 방문했다. 청계천도 강인 만큼, 조선시대 유구(遺構)뿐만 아니라, 내 전공 분야인 구석기 유적도 하나쯤 건질 것으로 은근히 기대했다. 하지만, 그건 헛된 꿈이었다.
복개된 내부 공간에는 청계로를 받치는 교각이 줄지어 있었고, 물 흐름 옆에는 수십 년간 홍수로 쌓인 모래톱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글자 그대로 도시 하수도의 모습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발굴 전 복개 공간에 대한 환상이 여지없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동전(상평통보)과 비녀, 백자 등 청계천에서 발견된 유물들. 청계천 박물관 제공
잊힌 작은 추억을 기억나게 하는 것들
또 하나의 작은 기대는 지금은 사라진 근현대 유물들을 많이 볼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어릴 적 잃어버린 물건을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진 기억, 미국 버클리대 유학 시절 로위(Lowie)인류학박물관에서 샌프란시스코 대지진(1906년)이 남긴 하수도 유물을 정리하던 기억이 오버랩됐다. 그리고 당시의 흥분이 청계천 발굴에서도 재연되길 기대했다. ‘아, 그렇지! 이건 예전 우리 집에도 있었어!’라는 감탄사를 자아내는 유물들이 눈앞에 나타나 주길 말이다.
하지만, 조선 시대 준천 작업과 복개 공사 과정에서 퇴적층이 유실됐는지 유물이 다양하거나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누군가가 다리 위에서 떨어뜨린 비녀가 발굴단 손끝에서 반짝거리며 나타날 때는 ‘어느 할머니의 역사’가, 떠내려가다가 하수도 바닥에 묻힌 한 청년의 주민등록증에서는 술 취한 청년의 비틀거리는 모습이 그려졌다. 또 화투장들은 담요 위를 힘차게 내리치며 ‘고!’라고 고함치는 서민들의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쓰레기에서 건져 올린 추억의 편린들이었다.
일제 강점기 청계천 수표교와 수표의 모습.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청계천 다리의 재발견
하천 바닥에 쌓인 퇴적물에서 생활 유물을 건져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청계천 발굴 과정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업은 청계천 복개 콘크리트를 잘라내는 것이었다. 청계천 뚜껑을 여는 것은 오랫동안 숨겨진 서울의 보석, 바로 아름다운 옛 다리들을 발견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어두운 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낸 다리 구조물에서는 당시 조선인들의 토목 기술과 감성을 엿볼 수 있었다.
청계천에는 20세기 초에 제작된 것들을 포함해 모두 15개의 다리가 있었다. 많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잊힌 다리들을 되찾은 것이다. 다만,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꼽히는 수표교는 아직도 장충단공원에 옮겨져 있다. 그래서, 아직도 청계천 복원 사업은 진행 중인 셈이다.
청계천 광통교 교대로 사용된 정릉 부재석들. 일부 돌들은 위아래가 바뀐 채 거꾸로 놓여 있다. 중앙문화재연구원 제공
광통교 발굴에서 느낀 인생유전
한양에서 가장 큰 다리가 바로 광통교였다. 숭례문(남대문)에서 보신각으로 가는 길에 놓인 청계천 다리다. 일제가 서울의 도시구조를 바꾸기 이전에 이 길은 왕성에서 육조 거리, 그리고 숭례문을 잇는 한양의 중심 도로였다.
그런데, 광통교 다리 밑을 받치고 있는 아름다운 석조각물은 신덕왕후(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아내 계비 강씨)의 능(정릉) 장식물이란다. 누가 감히 조선 최초 왕비의 무덤 부재를 하수도 다리의 하부 석축에 사용했을까? 그것도 처박아 버리듯이 거꾸로 뒤집어서 말이다. 바로 태종이었다. 신덕왕후는 살아생전 태상왕 태조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지만, 사후엔 신의왕후(이성계의 첫 번째 아내 한씨. 정종ㆍ태종의 어머니)의 아들인 태종에 의해 멸시받은 것이다.
이런 사연을 품은 광통교를 보고 있자니, 문득 계모인 신덕왕후의 위상을 격하시킨 태종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든다. 아, 그 호방한 왕도 그저 인간이었구나!
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한양대 명예교수
한국일보
빛명상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협상
2003년 당시 서울시청의 행정공무원이자 청계천 복원사업 기획단장이었던 박명현 씨는 20만 명에 이르는 청계천 상인들을 설득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청계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청계천 상인들의 자발적인 철수와 이전이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청계천 상인들은 자신들이 수십 년을 지켜온 일터를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사실에 거세게 반발했고 한 치도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박명현 씨를 비롯한 상인대책팀은 매일 수많은 상인들을 만나 정부가 제시한 대안의 장점과 보상 제도에 대해 설득했다. 하지만 겨우 다섯 사람으로 이십만 명의 상인들을 상대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박씨는 이 난관을 헤쳐가기 위해 매일 아침 일을 시작하기 전 5분 정도 빛(VIIT)명상을 하고 그날의 협상이 잘 이루어질 수 있기를 우주마음에 청했다.
매일 아침 반복된 짧은 습관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좀처럼 움직일 것 같지 않던 상인들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결국 청계천 사업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게끔 합의점을 찾기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박 씨는 빛(VIIT)을 통해 청계천 사업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낼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과 공로를 더욱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당시 서울 시장으로 재직 중이던 이명박 대통령 또한 빛(VIIT)을 알게 되고 이후 이 힘과 직접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MB의 빛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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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환경,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서울을 만드는 데 있어 청계천 복원사업은 시민은 물론 여러 학자와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주장해온 숙원 사업이었다. 한편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몸담아온 생계의 터전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를 노점 상인들의 반발 또한 피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교통 문제 등 기타 여러 복합적인 상황들이 맞물리면서 사업 추진 자체가 위기에 몰리게 되어 그로인한 실질적 어려움은 물론 정신적 스트레스 또한 엄청난 지경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업무를 시작하기 전 이 모든 문제들이 가장 순탄하고 원만한 방향으로 풀려나갈 수 있게끔 지혜가 생기고, 상인들의 마음 또한 이 사업에 협조하는 쪽으로 돌아서기를 바라면서 빛(VIIT)명상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였다.
그 결과 외국에서도 모범 사례로 삼을만큼 순리적인 협상방식을 통해 무난히 청계천 사업을 추진해 날갈수 있었고, 서울 시민은 물론 온 국민의 사랑,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 청계천이 새로이 태어나게 되어 참으로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박명현,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전 서울시 상수도 사업 본부장, 59세)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상대방의 마음을 얻고 합의점을 찾고 팀워크를 이루며 또한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 대상이 상사나 고객, 동료, 아랫사람일 수도 있고 친구, 가족, 사랑하는 사람일 때도 있다. 그러한 순간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혹은 서로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인간관계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능력일 것이다.
출처 :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행복순환의 법칙
2009년 09월 14일 초판1쇄 P. 85~87
소원을 현실로 바꾸다
당신은 대구 팔송산의 갓바위를 아는가? 보물 431호 팔공산 갓바위의 정확한 명칭은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이다. 이 갓바위가 소원을 비는 기도의 효험이 있다는 걸 아는가?
당신은 이것을 미신이라 여기는가? 그렇다면 자그마치 1년에 1,200만 명 이상의 삶들이 이곳을 찾아 기도를 하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 수많은 사람들은 정성을 다해 한 가지 소원을 빌면 반드시 들어준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단지 믿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갓바위의 기도는 각종 시험의 합격은 물론이고 병의 치유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조용헌의 『사주 명리학 이야기』 『방외시사』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동양학자 조용헌의 말에 귀기울여보자. 『조용헌의 소설』에서는 기도의 응답이 잘 오는 곳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도처는 모두 바위산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기도발은 바위에서 발생한다. 지구는 그 자체로 한의 커다란 자석이라 볼 수 있고, ‘지자기(地磁氣)’가 계속 방출되고 있다. 이 지자기는 지상으로 나올 때 바위나 암반을 통해 방출된다. 바위나 암반 속에는 철, 동, 은, 금 등과 같은 광물질이 들어 있다. 지자기는 바위 속에 들어있는 이와 같은 광물질을 통해 지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인간이 바위산에 앉아 있으면 그 지자기가 인체에 그대로 전달되는 셈이다.
팔공산 갓바위의 기도가 효험이 있는 것은 그곳 바위의 지기(地氣)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 강력한 지기는 쉽게 말해 고 주파수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 정성으로 기도를 하면 그 소원(주파수)이 보다 더 강력해진다. 이렇게 해서 ‘소원하는 마음’의 주파수는 한반도 전역에 울려 퍼지게 되면서 ‘소망하는 것과’ 공명(共鳴)함으로써 소원성취가 된다. 삼라만상은 파동(주파수)으로 볼 수 있게 때문이다.
삼라만상의 본질에 대해 프리초프 카프라는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에서 이렇게 말한다.
물질의 이원자적 단위는 양면성을 띠는 매우 추상적인 실체다.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것들을 때때로 입자로, 때로는 파동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이중성은 저자기파 혹은 입자의 형태를 취하는 빛에 있어서도 드러난다.
물질과 빛의 이러한 성질은 매우 기묘한 것이다. 어떠한 것이 입자, 즉 매우 작은 영역속의 실체며 동시에 파동-공간의 넓은 영역에로 뻗어 나가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수긍하기란 불가능한 것처럼 봉니다. 이와 같은 모순은 종국에 가서는 앙자론으로 공식화된 것이긴 하지만 선종에는 수행자의 마음을 연마하기 위해 내는 시험문제인 공안(公案)과 같은 역설들을 유발케 한 원인이 되었다.
이와 같은 모든 물질의 궁극적인 실체의 한 성질이 ‘주파수(파동)’라면, 삼라만상의 모든 생명과 무생명이 주파수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우리 인간의 눈에 별개로 보이는 찻잔, 책상, 의자, 건물, 자동차와 가로수와 비와 구름과 고양이와 강아지, 사람이 모두 주파수로 통일, 연결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나(인간)와 마음(心, 念)도 포함이 되므로 결국 나와 우주는 별개가 아닌 하나(주파수)라는 해답이 나온다.
이쯤 되면 당신은 『시크릿』이 떠오를 것이다.
“『시크릿』의 아류 아닙니까?”
아니다. 『시크릿』의 원리가 이미 우리 전통 속에서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것이다. 오히려 현대인들이 그것을 간과하다가 서양에서 책으로 소개되니 뭔가 새롭고 대단한 것으로 열광하는 것이다. 실제, 『시크릿』의 원리는 동야에서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온 ‘명상’에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었다.
당신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을 아는가?
이것은 『화엄경(華嚴經)』에 나오는 말로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르면 자연계에서 생명을 갖고 있는 사람과 동물, 식물 그리고 생명이 없는 구름, 산, 바위를 비롯해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이 다 ‘마음’이라는 말이다. 더 나아가 지구를 에워싼 태양계, 은하계를 포함한 온 우주가 결국 ‘마음’이라는 말이다. 이 마음이 결국 주파수이자 파동이다. 따라서 『화엄경』은 ‘모든 것이 오로지 주파수이자 파동’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거듭 말하지만 『시크릿』을 읽은 당신은 선입견을 갖지 말기 바란다. 『시크릿』의 원리는 서양의 몇몇 명상단체의 고유한 지적 자산이 아니라 전 세계의 명상 단체 모두에 통용되는 보편적인 것이다.
마음(心, 念)은 뇌파(腦波: 뇌의 주파수이자 파동)로 볼 수 있는데, 과학은 미미 ‘뇌파’로 각종 기기를 작동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오로지 마음으로 컴퓨터, 자가용, 게임기를 작동할 수 있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명상 상태(세타파)의 마음은 소원을 보다 강력하게 끌어당겨준다. 따라서 명상을 통해 꿈을 이루어 준다는 것, 즉 소원을 성취한다는 것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언제까지 유명 종교 단체에서 신에게 매달려 소원을 비는 것은 일리가 있고, 명상을 통해 소원을 비는 것은 미신으로 업신여길 것인가? 둘 다 미신이거나, 둘 다 메커니즘 상에서 일리가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학회장님은 앞서 다각도로 ‘우주마음’, ‘우주근원’의 순수에너지 ‘빛(VIIT)’을 입증했다. 자연계 현상의 기적, 빛(VIIT)분 발생, 물성의 변화, 병의 치유를 통해 생생한 실체임을 밝혔다. 학회장님은 이러한 빛(VIIT)에너지의 흐름을 조절해 강력하게 소원을 이루어 준다. ‘빛(VIIT)’은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파동, 주파수와 차원을 달리하며 그 에너지의 힘이 상상을 초월한다.
1994년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이다. 학회장님의 빛(VIIT)의 힘으로 지팡이를 완전히 놓게 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학회장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지난 대선 이후 정계에서 물러난 것은 사실입니다. 허나, 지금처럼 건강한 상태가 유지된다면 또다시 대권에 도전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족과 나라를 위해 기꺼이 이 한 몸 바칠 생각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빛(VIIT)을 만난 후 그 어느 때보다 건강이 좋아졌다. 그러자 한동안 덮어두었던 대권도전 의지를 밝혔다. 학회장님은 그 말을 듣고 우주마음에 의지했다. 그러자 학회장님 머릿속으로 그가 외교 순방길에서 5~6개국 정상들과 지팡이 없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지나갔다.
그분이 틀림없이 뜻을 이루는 모습이었다. 학회장님이 말했다.
“큰 뜻을 이루시면 온 국민이 화합하고 상생하고 부강한 국가를 만들어 주십시오. 빛(VIIT)이 함께 할 것입니다.”
그 후 3년이 지난 1997년 12월. 그는 제15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 이듬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팡이 없이 당당한 모습으로 세계 각국의 정상들과 나란히 선 모습이 TV를 통해 방송되었다. 이때, 학회장님은 또다시 성공의 빛을 가득 안겨드렸다.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은 IMF 구제금융 위기에 처한 국가 경제를 빠르게 회복시켰고,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인’가운데 1위에 선정되었다. 2000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당신은 이와 같은 일을 한낱 우연으로 보는가? 혹은, 과장으로 보는가? 여전히 당신은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과 관련된 또 다른 사례가 있다.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대통령. 그분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에 청계천 복원 사업이 엄청난 기여를 했음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 청계천 복원 사업도 학회장님 빛(VIIT)의 힘으로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2003년 서울시청의 행정공무원이자 청계천 복원 사업 기획단장이었던 박명현 씨. 이분은 결사적으로 이전을 반대하는 20만 명에 달하는 청계천 상인들과 대면해야 했다. 당시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애초에 20만 명의 상인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때 박명현 씨는 학회장님을 만나고 빛viit명상을 했다. 매일 아침 5분간 빛viit명상을 하고 그날 협상이 잘 이루어질 수 있기를 우주마음에 청했다. 그러자 기적처럼 상인들과의 합의점을 찾기에 이르렀고 순조롭게 청계천 복원사업이 진행될 수 있었다.
이때의 상황을 박명현씨는 이렇게 회상한다.
“생각보다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교통문제 등 기타 여러 복합적인 상황들이 맞물리면서 사업 추진 자체가 위기에 몰리게 되었어요. 그로 인해 실질적인 어려움은 물론 정신적 스트레스 또한 엄청났어요. 나는 매일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이러한 모든 문제들이 가장 순탄하고 원만한 방향으로 풀려나갈 수 있게끔 지혜가 생기고, 상인들의 마음 또한 이 사업에 협조하는 쪽으로 돌아서기를 바라면서 빛(VIIT)명상을 했어요.”
그 결과 외국에서도 모범 사례로 삼을 만큼 순리적인 협상방식으로 무난히 청계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당시 서울시장 재직 중이던 이명박 대통령 또한 빛(VIIT)을 직접 만나게 되었다.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대구가 유치하는 과정에서도 빛(VIIT)이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올림픽, 월드컵과 더불어 세계 3대 스포츠 대회의 하나이다. 하지만 여러모로 여건이 좋지 않은 대구가 이 대회를 유치하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이때 대구 부시장으로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 실무진이던 박봉규 씨가 빛(VIIT)을 청해왔다. 학회장님은 박봉규 씨를 포함해 대구 유치위원단에 빛(VIIT)을 보냈다. 그와 함께 빛(VIIT)명상을 권했다. 그리고 대회 심사위원단이 대구를 방문 했을 때도 빛(VIIT)을 보내 마음이 대구로 기울어지게 했다. 한 언론매체는 모스크바를 제치고 대구가 육상대회를 유치한 것은 연약한 다윗이 거대한 골리앗을 이긴 격이라고 평했다.
이렇게 하여 모두의 예상을 깨고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대구 개최가 결정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정부와 대기업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평창군은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했다.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 또한 빛(VIIT)을 만난 후 비로소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15대, 16대 총장 선거에서 패배를 했다. 하지만 학회장님을 만나 빛(VIIT)을 접한 후 17대 총장 선거에서 당선이 되었다.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은 이렇게 전한다.
“정광호 빛(VIIT)선생님과 인연이 되었고, 그 인연은 내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간절한 염원이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었습니다. 빛(VIIT)과 함께 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과도한 일정으로 경직되어 있던 부분이 풀려나갔고, 더불어 지난날 부득이하게 의도하지 않았던 오해나 반목이 있었던 분들과도 보다 성숙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화합, 상생할 수 있는 분위기로 전환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입시와 각종 시험, 취직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 관련 회원의 체험사례를 소개한다. 이에 대한 사례는 무수히 많은데 지면 관계상 두 분을 소개한다.
빛(VIIT)명상 태소정 회원은 말한다.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과 달리 저는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내면서 학교 공부에서 뒤떨어졌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이 되고 빛(VIIT)명상을 매주 엄마와 함께 일 년을 다녔습니다. 그렇게 한 해를 빛(VIIT)명상과 함께 하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성적이 부진하여 보충수업을 듣던 제가 공부에 관심을 가져 성적이 훌쩍 올랐습니다.
고3이 되었을 때에도 빛(VIIT)과 함께한 저는 수험생이란 생각이 안 들 정도로 몸과 마음이 너무도 편안했습니다. 긴장이나 불안함이 없었기 때문에 수월하게 수험생활을 했습니다.
수능 당일에는 각 교시 시험이 시작되기 직전마다 빛(VIIT)명상을 5분씩 했습니다. 나는 빛(VIIT)과 함께하고 있고, 나의 실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다고 마음속으로 계속 되뇌었습니다.
이렇게 빛(VIIT)명상을 한 결과, 저는 고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제가 마음속에 목표했던 한 명문대학교에 합격하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번째 직장으로 한 외식업체에 입사하였지만 일에 대한 불평불만을 끊임없이 늘어놓으며 직장동료들과 맞지 않다는 핑계로 1년 만에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두 번째 직장에서도 상사와의 마찰로 2년 근무하다 좋지 않게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직장생활에 적응도 못하고 대인관계 또한 힘들어 저에게는 일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시간이 날 때마다 부모님을 따라 빛(VIIT)명상을 하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빛(VIIT)명상을 하면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조금씩 느꼈습니다.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구할까 싶어 한 커피점에 이력서를 냈는데 바로 합격하여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부산으로 발령이 되었고 빛(VIIT)명상 프로그램에 참석하여 한 점포를 책임질 수 있는 ‘점장’ 되고 싶다고 간청했습니다. 그 후 생각지도 않게 몇 달 뒤 점장으로 진급하게 되었고 3개월이 채 안 되는 신입점장이었던 제가 130평의 1, 2층으로 구성된 대규모 점포를 책임지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습니다. 제가 빛(VIIT)명상과 함께 지내온 시간들을 정리해보니 정말 기쁜 날들만 있어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요즘 대학생, 직장인들은 명상(기도)의 소원 성취나, 신념(믿음)의 메커니즘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다. 『시크릿』이나 『긍정의 힘』그리고 카네기의 자기계발서 등이 널리 읽히고 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이것들은 모두가 거양에서 유입되었다. 우리 전통에서 이미 신념을 북돋워주고 소원을 성취시켜주는 명상과 기도가 있지만 이를 미신으로 여기고 깍아 내리려는 풍조가 있는 듯하다.
명상 쪽에서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made in USA’라면 깜빡 죽는 습성이 있는 건 아닐까? 이런 현상을 과장해서 말하면 김치도‘made in USA’만 사서 먹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은 당신의 내면에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사대주의’라는 바이러스를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퇴치하는 데 한 치의 망설임도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 것, 전통의 명상 문화에 대한 사실 확인과 자부심만이 사대주의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강력한 백신이 될 것이다.
출처 : 해독제 2012년 7월 7일 초판 1쇄 P. 112~121
첫댓글 무한이시고 순수이신 근원의 빛과 함게 할 수 있음에
우리의 뿌리이며 순수의 마음인 빛마음을 발현할 수 있음에 감사와 공경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본인의 간절한 바램을 이루고ㆍ
상대방의 마음까지도 움직이는
위대한 근원의 힘ㆍ
빛 viit ㆍ
감사와 공경을 올립니다 ㆍ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 합니다...
귀한 말씀. 중요한 이야기들. 기적을 이뤄내고 왜 명상을 해야되는 지를 잘 읽어 보았습니다. 순수한 우리의 명상문화를 잘 지켜나가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보았습니다. . 감사드립니다.~
우주근원의 순수에너지 빛VIIT
안에서 살아가는 오늘에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이 아닌 달을 봐야
자기 마음을 알지않을까 행각드네요
감사합니다
청계천의 역사와 소원을 현실로 바꾸는 빛역사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빛과함께 하는 마음을 되돌아봅니다.
감사합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청계천 복원사업이 빛과 함께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사례 마음에 담습니다.
소원을 현실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끌어주는 빛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귀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빛명상으로 좋은 쪽으로 협상이 이루어지고 멋진 청개천이 탄생 했네요. 현실 변화로 이루어지는 빛. 소중하고 감사와 공경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빛명상을 할 수 있게 해주신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무한 공경과 감사마음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바꾸어 주는 빛명상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소원을 현실로 바꾸다
귀한 빛의글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고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무한한 감사와 공경의 마음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빛 의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소원을현실이되고 불가능을빛 명상으로이루며 행복한 사회 생활하게 할수있게해주신 빛마음에 빛과함께 하신학회 장님께 감사와공경의마음을올립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소원을 현실로 바꾸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힘.. 빛과 함께 할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빛으로 오신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공경과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