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일기 후편
/아현 이재관
최근 3년 중 아내의 입원생활은 1년, 재가요양은 2년쯤 된다. 발병 후 처음 6개월의 상황은 나의 책, 『나와 미학, 실버세대를 위하여』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후의 상황은 너무 슬퍼서 차마 글로 쓸 수가 없으나 이제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르며 그 후속편에 해당하는 부분을 요약하고자 한다.
아내의 루푸스 증세는 2009년에 시작되어 뇌경색의 원인이 되었으나 최근 1년간의 루푸스 상황을 보면 백혈구, 혈소판 등의 수치가 다소 낮지만 비교적 안정적이므로 소강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뇌경색은 계속 두뇌 전체로 퍼져 2011년 봄에는 하체 힘이 급격히 빠지더니 9월에는 삼키기 장애가 나타났고 10월에 언어 불능, 동작 불능 상태가 되었고 11월에 무의식 상태로 급진전되었다. 2013년 1월 현재로 14개월째 코 줄을 통해 환자식을 넣어준다. 꼬집어도 아프다는 반응이 없고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고 사지가 늘어져 있다. 감각 지각 언어가 정지되었기 때문인지 추위도 더위도 모르고 늘 평화로운 표정으로 1년 넘게 식물처럼 누워있다.
2011년 10월 16일, 다시 입원하기 위해 집을 떠나기 전날, 이제 집 떠나면 언제 돌아올 수 있을까 억장이 무너지는 저녁노을 창가의 침대에서 나는 삼키지 못하는 아내에게 억지로 음식을 떠 넣다가 밥상을 치우고 병상에 올라갔다. 비좁은 1인용 침대에 나란히 누워 얼굴을 가까이 대주니 한동안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빙그레 웃는다. 순간 의식이 돌아왔는지 내게 이별을 고하는 것 같았다. “여보 수고했어, 고마워요” 라고 말은 못해도 내게 웃어주었던 그 기억이 애틋한 이별장면으로 내 머리에 각인되어 있다. 그 후로 우리는 눈동자를 맞추지 못했다.
그런데 입원 1개월 만에 욕창이 생겨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내 힘으로 욕창을 막고 끝까지 깨끗하게 돌봐주고 싶었다.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를 간호하는 일이니 전과 달리 각오를 단단히 하고 새로운 간병체제를 가동시켰다. 욕창예방을 위해 에어매트를 깔고 석션을 구입 비치하고 24시간 붙어서 간병해주는 요양사와 주1회 방문하는 간호사를 구했고 환자식의 코 줄 투입방법과 가래 뽑기(석션) 방법을 나도 배웠다. 요양사의 취침시간을 확보해주기 위해 밤 근무는 내가 맡아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나는 불면증, 허리 통증, 치통에 시달렸고 요양사로 인한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조용한 단독주택에 50대의 건강한 여자(요양사)와 의식 없는 환자와 나, 3인이 부딪치는데 내가 야간에 환자를 돌볼 때도 휘장 너머에선 외간 여자가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때로는 노출이 심한 셔츠를 입고 집안을 돌아다니며 내게 커피를 줄여라 빵을 너무 좋아하면 안 된다는 둥 제법 안주인 행세를 하려 한다.
흩으려지려는 마음을 다잡는 구체적 행동이 필요했다. 스리랑카 현지교회 건축기금으로 1천만 원이 필요하다는 말을 게시판에서 읽었다. 다른 분들도 헌금을 할 테니 나는 그 절반 5백만 원을 하면 되지 않을까? 그것을 아내 조정자 이름으로 헌금하겠다고 교회 목사님께 전화하니 스리랑카 선교사가 마침 서울에 와있기 때문에 직접 전달할 수 있다고 하며 시간 장소를 지정해주신다. 그 약속 전날 밤 아내는 한숨도 자지 않고 고온에 땀을 많이 흘려 나는 밤을 꼬박 새웠다. 그래서 약속시간에 가지 못하고 대신 온라인으로 송금을 했다. 그냥 아내 이름으로 해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 지역이 스리랑카의 유명한 홍차 산지라고 하니 환자에게 홍차 한 모금 흘려 넣어주며 선교사 기도를 환자 귀에 들려주면 좋았을 텐데 전화 한 통 없다. 남편의 기도가 부족하다는 말만 들려온다. 무속신앙과 고급종교의 차이가 무엇이란 말인가?
심신이 기진맥진 그럴 즈음 친구들이 찾아와 밥을 사주고 위로하며 진심어린 조언을 했다. 건설업으로 성공한 동기생 원형재 회장은 집을 헐고 새로 지으라고 권했다. “환자가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처음엔 거절했으나 여러 차례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듯했다. 환자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내 기도는 허공을 맴돈다. 봄철 건강검진에서 나의 위내시경 결과가 나쁘게 나타난 것도 나를 겁나게 만들었다. 초등학교 동창인 옛 친구가 찾아와 마당에 배추를 심어주며 격려해준 것도 큰 힘이 되었다. 국면전환의 계기가 필요했다. 집을 재건축하기로 결심하고 아내를 다시 요양병원으로 보냈다. 지난번 1개월간 입원했던 곳이니 여러 모로 익숙한 병원, 그러나 이번에는 중환자실에 배정되었다. 무의식상태라 가는지 오는지도 모르며 아내는 들것에 실려 집을 떠났다.
2012년 6월, 환자와 요양사를 내보낸 빈집에서 혼자 본격적으로 이삿짐을 싸기 시작했다. 30년 넘게 살아온 단독주택의 살림살이는 복잡했다. 가뭄과 폭염이 심했던 여름 내내 짐을 정리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보존할 것은 무더기로 나누어 이삿짐 창고에 맡길 것과 겨울 옷 등 내 사무실에 보관할 것을 가려냈다. 주방 기기와 그릇, 아내의 옷, 화장품, 신발, 장신구 처리가 특히 어려웠다. 누님들이 거들어주셨지만 세세한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다. 마침 76학번 옛날 제자가 결혼식 주례에 대한 인사차 집에 들렀다가 혼자 끙끙대는 것이 불쌍해 보였던지 크게 한 몫 거들어주었다. 아내의 외출복 수백 벌을 골라 이웃돕기 단체에 기증했고 그릇, 화장품, 구두 등을 과감히 골라내기도 했다. 책은 정년퇴임 하면서 약 절반을 기증하거나 버렸는데 그래도 너무 많아 이번에 또 나머지의 절반을 골라 버렸다. 대문밖에 날마다 쌓이는 산더미 같은 책을 폐품장수가 잽싸게 들고 간다. 책은 버려져도 쓸모가 많은가 보다. 최종적으로 남은 책은 다시 두 무더기로 나눠 한 무더기는 학교 명예교수실로 옮기고 한 무더기는 나중에 이삿짐 컨테이너에 넣었다.
책을 학교로 옮기던 중 무리하게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무릎 인대에 이상이 생겨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다. 가장 정리하기 힘든 것은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잡지, 노트, 일기장, 메모, 앨범, 낱장의 사진들이다. 이런 것이 나올 때마다 나는 접착제로 붙여놓은 듯 착 달라붙어 있는 추억과 정(情)을 떼어내려고 안간힘 한다. 어찌 다 떼어낼 수 있을까. 부피가 얼마 되지 않으니 대부분 빈 박스에 넣어 보관 중이다.
2012년 8월 5일 철거작업에 들어가기 전날 이삿짐이 떠난 빈집에서의 마지막 잠을 잤다. 아끼던 화초 나무 바위도 사라질 것이다. 물청소하던 베란다도 울상 하던 비새는 방도 사라질 것이다.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처럼, 나는 그날 밤 꿈에서 황폐화된 집 뜰에 힘차게 서서 재건을 다짐하는 씩씩한 나를 만났다. 그리고 아침이 되자 뒤도 안돌아 보고 집을 나와 학교 기숙사로 향했다. 내가 정년퇴임을 한 곳, 재임용되어 입학사정관 겸 교수신분으로 드나들던 곳, 그리고 이제 건축기간 중 대학생처럼 기숙사 생활을 하기 위해 숭실대학교 캠퍼스로 또 들어간다. 끈질기고 고마운 인연이다.
동기생 원회장이 소개해준 설계사를 만나 일을 시작했고 시작 당시 나는 4층 120평 정도의 집을 구상했으나 원 회장의 간절한 충고를 받아들여 결국 5층 170평의 근사한 빌딩을 소유하게 되었다. 전월세 임대용으로 9평짜리 원룸 10개와 17평짜리 투룸 3개, 그리고 5층에 내가 살 집이 있다. 승용차 7대 이상이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 그리고 엘리베이터까지 그럴 듯하다. 12월말에 준공검사가 끝나고 곧 임대분양에 들어갔다. 마침 대학의 수시모집 합격자 발표가 있어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방을 구하러 몰려왔다. 대부분이 파릇파릇한 대학신입생들이다.
오늘 현재 3가구가 입주했고 5가구가 계약상태, 성적이 좋은 편이다. 눈이 오면 20미터에 달하는 집 앞 도로를 휘저으며 제설작업을 한다. 월-수-금 쓰레기 버리는 날은 일반쓰레기용 100리터 흰 봉투와 재활용품 수거용 대형 투명봉투를 들고 당당하게 1층에 내려가 입주자들이 아무렇게나 내버린 쓰레기를 쓸어 담고 환경미화원들 마음에 들도록 가지런히 배열해놓는다. 보증금과 관리비를 받아 챙기는 일도 물론 즐겁다. 앞으로 한 달 지날 때마다 월세가 들어오면 더 즐거울 것이다. 상도동에 “교수출신 원룸주인이 생겼는데 주인이 같이 산다.”는 입소문이 벌써 죽 돌았다고 한다. 딸 가진 학부모들은 “그거 참 좋다”고 눈을 반짝인다. 무릎만 아프지 않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아내는 언제 가 봐도 무척 평화로운 얼굴이다.
첫댓글 집을 부수고 새로 짓듯이 우리 인간을 그렇게 좀 할 수만 있다면... 신축한 5층 빌딩에 주인마님 안 계시니 얼마나 착잡하신지오 어쨓든 수고하셨고 건강 잘 추수리시고 힘 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모시고 집들이 모임을 갖고 싶습니다만... 시기와 범위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탁월한 전략가의 고견을기다립니다.
안주인이 없어 좀 그렇기는 하지만 음식은 근처 중화요리집, 보쌈집이 잘하니 배달하면 되겠고 (물론 비용 일체 주인 부담^^)
공간 넓고, 주차장, 동양화 서양화 바둑 등 장비 일체 가능합니다.
대중교통 이용시
지하철 7호선 상도역 5번출구 --> 마을버스 01, 10번 --> 중앙대 후문 --> 100미터 지점입니다.
상도동 54-33 (제이아트빌 501호)
<제이아트빌> 이름이 좋네요 다른 것은 잘 모르겠으나 1.28(월)이번 신우회 모임을 할 수 있으면 하는데..(개인의견).
7중대 동기회장단을 포함,각 중대 대표 및 희망자로 고려해 봄이 여하
좋으신 의견 매우 감사합니다. 1월 28일 좋습니다.
새로 에쁘게 건축하신 새집에 입주하심 축하드립니다. 친구를 볼수없어 마음 아프지만, 하느님의 뜻이 어디엔가 있으시겠지요. 건강하시고 힘 내세요.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행복하세요.
혹시 시간 나시면 놀러오세요. 집에 여자가 없으니 점심 접대 등 허술하겠지만...
그렇겠지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어찌 다 알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1.28일 집들이에 함께 하시면 더욱 좋겠습니다.잠간 주인마님도 한번 해 보시면 좋겠어요뵙기를 희망합니다.
오늘 다 늦은 저녁에 글을 보았네요. 덕분에 새집 구경 좀 할수 있었을텐데, 다음에 또 좋은 기회가 있겠지요. 모두 즐거운시간들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