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들이 태여나 빠르면 20대초년부터 우리들은 나름데로 희망에따리서, 혹은 가업을 이어받거나
자신에 피땀의 노력으로, 갈고닦은 학문이든,실전이든간에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한곳에서 은퇴할때 까지 있든친구도있고 생판다른 직업을 빠꿔가면서 살아온 친구들도있엇다.
혹은 나처럼, 한국을 떠나면서부터---17번번의--- 직업을 바꿔가면서 오늘에 이르른건...친구들중 나 한사람이
아니였을까 ? 생각해봄니다.. 온늘은 문밖에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오전에 고객이 두서너분 다녀가고
나선지...전화벨소리도 조용하고, 눈이쌓여가니 오늘은 더 손님이 없을듯싶어 지난추억이나 한번
더듬어 볼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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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회...6년동안, 교과서도 없이 학교만 다녔지요.물론 시험만치면 0 점이지요.
기다렸든건 방학이고, 그러나 하나다른점은 있엇지요. 교과서는 안들여다 보앗어도..어릴때부터
형과누나가많아서 동화,소설,문학,사상,철학,세계문학등 수없이 책은읽으면서 스스로 깨닳곤했지요.
한국에 있을때, 22살되는해 2월달에 석항과영월, 에서 속빈 건달로지낼때(그때 김용기씨-드래곤은
석항서 목상 사업를 했지요) 재수좋게도 황석구에게 이끌려 돈쓰고 군에입대 햇지요. 만약 그당시
영장은 나이가안돼서 안나왔지마는, 지원 안했더라면, 국토건설대로 갓겠지요. 5.16혁명으로.
육군 헌병대에가서 난 많이도 깨달은것같아요. 40개월20일만에 의정부헌병대 중대장의직업군인하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집으로왔지요. 내가군에있는동안 우리집은 이미 서울노량진동 으로 이사를해서
그때부터 직업을 찾기 시작했지요. 내나이24살 4월경 부터 사회생활의시직입니다.
형님의 친구가 금호동에 섬유회사를 하고있어서 견습사원 으로 입사한게 처음시작이였다.
1--대동공업 주식회사-외국에서 수입한 원사(나이롱실) 배당계를 보앗다
그때 결혼도하고 27살, 4년 근무했지요
2--구로동 제1공업단지- 월성섬유공업주식회사 관리과장 1년6개월
3--서울시내 태평로- 유원상사 주식회사(무역회사) 에 오랫동안 근무했다.
생산관리 평사원. 과장 대리.
생산관리과장.
검사과장/관리과장-하청공장이 약 20개, 출장여자검사원 20명.
자체검사장-여자검사원-반장 모두포함-70명선-10여년근무.
4--중동(사우디아라비아) 항망청-2년계약으로 1979년 출국.
5--1981년도 귀국.후 천호동-풍납동 동진섬유 공업주식회사 상무이사로 근무 3년.
6--미국 뉴욕 동진섬유 주재원으로 출국.
7--자마이카/킹스턴에- 퍼펙트 골드라는 동진섬유 쉐타공장설립, 전무이사로근무. 2년
8--미국뉴욕으로 복귀 후, 사직서제출. 미국영주권신청.
9--1988년도 9월 영주권을받아 가족과함깨 새희망을 안고 철없는 아들딸 병든처를데리고
막막한 심정. 빈손으로 뉴욕으로 왔다.
밑바닥인생의 시직이다.
10--식당 접씨 닦이
11--티-셔츠 프린팅 기술자
12--노점상
13--쉐터 새일즈맨
14--철물상 판매원
15--신문사-한국일보 관리국/공무국입사 1991년 3월
16--신문사-신인응모-인생팔자로 등단. 지껏껏 25년동안 매주 글을 쓰고있다,
68세까지 풀타임 공무국부장으로 일했고, 지금은 파트타임 일한다
17--순보 역학원을 본격적으로 운영하며 한국인/미국인과 상담을한다.
저넠마다 이나이에 영어학교를 다니는것도 좀 더 고급영어를 하기위함이다.뉴욕시 영어학교도
2014년부터니 3년이 넘은셈이다.
오늘에이르러서...한도많앗고 탈도 많앗든 내인생도 더이상 바뀔 직업이나 일은 없을것같다.
그래도, 나이가 더 늙어갈수록 이 마지막 하는직업이 더더보람있고 대접받고.때론 존경도받고
내가, 지나온 직업중 제일이아닌가 생각합니다.
얼굴이 주름지고 머리히고수염이 하야케 될수록 더높이 보아주니, 직업중에 이이상 늙은이
대접해주는 직업이 무엇있읍니까?. 일년에 크게 한번씩 신문에쓰는 신년운세는 인기많치요.
멀리 카나다,멕시코등 주변나라 교포들도 원하지요.
때론, 인생길을 몾찾아 헤메고 인생을 포기하려는 사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심어주고,후일에
그분이성공해서 찾아왔을때 그기뿜은 정말로 보람있읍니다.
날이길수록 더더 여러방면으로 두뇌능력을 발휘하게되니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하다 가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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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팬하나, 종이한장, 말만하면. 되지요.
찾아오는 사람에따라 가난한사람도있고 수백어대의 갑부도있고 하지요.
가난해 복비도 없는사람은 내가도리여 돈을 줄때도 있엇지만 그런일은 극히드물지요.
최하론 만원을 한번 받은적은 있지요. 최고로는 하루에 ....... 올린적도있읍니다.
어떤 일에서나 최선을다한뒤, 그일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여 이름값을 하는것입니다.
한, 인간의 인생길 이렇읍니다. 아직도 눈보라가 휘몰아칩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첫댓글 야 참 직업을 여러번 바꾸었고 고생도 많이 하셨네요
나는 농사좀 지어보고 공무원으로 33년을 살고는 다시
농사해보니안되어 포기하고 직업이없습니다
사람이 늙으막이 좋아야합니다 젊어서고생은사서라도하지만
늙어서 할일없고 돈없으면 처량합니다
참 좋은직업을 택하여 남에게 존경받고 수입좋고
그저 건강만챙기면 노년 세월보내기 좋은직업 부럽습니다
좋은글 고마워요 늘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어떻게 생각해보면, 살어름같은 경쟁의사회, 더구나 낯설고물설고 말조차도 다른 나라에서
곳 깨질것같은 얇은 어름위에 강을 건너가는 심정으로..죽어도 그만이라는 생사를 초월하여
살앗다고 봄니다. 죽고사는건 생가조차 하지를 안앗지요. 나의 이런삶에 비하여 벽암은
너무나도 편항 인생을 살아왔지요. 33년동안 공직에서 부러울것없이 지내왔으니 큰복이였지요.
농사야 벽암이 벌어서 장만한게 아니라 부친께서 물려주신땅이니 해도그만 안붙여도 그만이니
문제 될것도 없을터.자연히 자식들에게 넘겨주어도 아깝꺼나 섭섭할게 없지요.
돈이든 부동산이든 내 피땀으로 벌어서 이룬것은 때로는 보람도 따를때도 잇엇지요.
@simon 벽암, 이제 무슨 큰낙을 바라겠읍니까,
얼마남지안은 내인생에 코앞에 닥처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가 떠나야지요.
인간 안승웅의 결정판을 보는 것 같소이다.
유년 시절과 청장년기를 거쳐 노년에 이르기까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습네다.
학창시절에는 건달로 지냈으나 독서로 세상을 보았으니
오늘의 성공을 거머 쥔 것이 아닌가 봅니다.
노후에 직업도 큰 노동력도 밑천도 필요치 않은
순전히 머리를 써서 돈을 버는 직업이니 종이 한 장에
볼펜과 언변으로 사람을 좌지우지하는 마력을 가진게 아닌가?
언급 했듯이 기분좋게 본 사람은 복채도 두둑하게 주고 나가니
하루에 자그만치 1천3백만 원을 벌 때도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네.
집에서 편안하게 앉아 큰 힘 안 들이고 돈이 뭉치로 굴러오니
늘그막에 인생은 제대로 사는 simon 이라 생각하네.
지금도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지만 고급영어를 배우겠다고
학원을 다니는 모습을 볼 때 칭구로서 느끼는 바가 크다네.
신문에 글을 올리고 고급인과 대화하려면 공부도 이에 버금가는
노력이 따라야 할 줄 아네.
늘 얘기 하지만 미국으로 이민같다가 실패하고 고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사람도 많으니 그 이유를 이제사 알겠네.
나이 먹었다고 한탄말고 죽을 때까지 갈고 닦으며 공부해야
성공한다는 거 말일세.
우리 4/7동창 중에서 늑그막 인생을 가장 멋있고 보람있게
살고있는 simon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하네.
내가 영월 있을때(22년간) 그래도 동창으로 석항에서..우린서로 알고 살엇기에
나를 이해하기가 수월햇으리라고 본다. 그래도 우리동창 중에서 드래곤도
꼿꼿하고 반짝이는 별처럼 강원 도청에서 공무원으로 보람있는 생활을 했고
은퇴후에도 어렵고 답답한 사람들을 위해서 손발이되여 이런일 저런일 도와주고 있지 안는가.
그만하면, 드래곤도 우리 동창중 성공했다고 나는 본다. 또한 까패활동도 전국적으로 참석하고
사교성도좋고 언변도 능하다보니 만나고 찾는 인간관계가 넓어서 노인같이 볼사람이 없을 것이네.
잘살아가는 일이네. 니야 어쩔수없는 눈에아보이는 운명의 인생길을 가다보니 죽을순없고..
살아남기위해서 ...
@simon 몸부림치고, 또몸부림치다 보니 지금이곳에 멈추어 살아가고 있을 뿐이네.
만약, 하늘의신이...승웅아..! 너다시 그옜날로돌아가서 더 더 한번노력해 성공해볼래...
이렇케 묻는다면, 지금죽더라도 절데로 그옜날로 돌아가고 싶지는안타.
그만큼, 맨발로 가시밭을 걸어온듯..쓰라리고 상처뿐인 인생길이였으니깐,
긴 답글로 소식 주고 받아 기뿌다. 너도 지금같은 건강 잘유지하고 재미있게 살아가라.
시몬의 삶에 인생철학을 극찬 않을수 없네 모쪼록 항상 건강하여 만인의즐거운 인도속에서
행복을 구가하며 사는날까지 부지런히 살아가요, 80노인이 지금도 영어공부를 한다는 그용
기의 결심이 대단하이 사는날 까지 열심히 살아갑시다.
인산형 답글에 감사합니다..
배우느데는 끝이없군요, 원체 무식으로 출발하다보니 이렇게 되고 말앗읍니다.
겨울 날씨에 건강 조심해서 새봄에 후배들에게 귀감이되는 빛날 한시나 보여주시기 바람니다.
장문을 썻구만,
만물의 연장으로 태어나 갖가지형태로 살다 눈을 감겠지.
죽은 사자보다 산 개가 낫다는 속담도 있지만 결국 나름 성격대로 살다 가는게지
나이들면 낙천적으로 변하는 것 같네 이나이에 맘 먹는다고 될 일이 뭐 있겠나.
젊어 많은 업을 쌓았으니 그 빛을 보는것이라 대단하네. 미국 건너가 거지되고 고국에도 못돌아오는
처량한 사람도 많다던데 오늘의 복을 고맙게 여기며 재물은 값지게 쓰길 바라네
어차피 저승엔 못가저가지 않겠나. 재물이 사람을 따라야지 궁한데로 감사하며 살아야지
속이 편하다네 ㅎ ㅎ
우리 승웅이 처럼 자수성가한 사람이 그냥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요.
신의 도움이 있었을 겁니다. 젊어 직장을 얻어 열심히 뛰고 열정적으로
삶에 도전을 한 결과가 오늘의 승웅이를 만들어 냈구만, 결국 혼자서 다 일궈낸
악착같은 도젼정신과 끊질긴 인내심, 성실성 아마 한국에 있었어도 뭔가 큰 것을 해냈을꺼네
재물 운도 있고 이제 남부러울게 없으니 건강이나 잘 챙겨서 고국에 친구들과 지금처럼
변함없는 우정을 나누며 때가 되면 또 만나고 밥도 사주고 허허낙낙 실컨 떠들어 봄세...
피리님의 답글을 읽어보면서.... 옳은길 그른길...내 남은 인생에서 어느길을
선택해야 그나마 보잘것없는 내인생의 마지막 불꽃이라도 피워 보려나...생각했읍니다.
누구라도 긂어죽을순없고, 살려니 어쩔수가없는 야생동물- 하이에나 처럼 배고픔을 면해야
오늘을 살수가 있었으니 까요. 만약 그당시, 내옆에 친구라도, 형재라도, 단, 몇일이라도
도움을 줄수있는 사람이 있었더라면....오늘의 나는 다른사람이 됐겠지요, 지금보단 아주몾한...
그당시 아무도 주변에 없엇다는게 지금생긱해보면 불행중 다행이였지요.
하늘이 무너저도 솟아날 구멍이있다는걸 가끔 생각했읍니다.
매일 바뿌가봄니다. 원체 부지런하고 활동적인 피리님
@simon 이라서, 24시간 바삐움직이니..꿈꿀 새도 없으리라고봄니다.
사모님도 안녕하신지요... 음력명절도 곧찾아오네요. 2017년에는
온가족 행복하기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