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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감독님의 축구를 ‘니포 축구’라는 애칭으로 부릅니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니포 축구’는 어떤 축구인가요?
축구팬 뿐 아니라 경기를 뛰는 선수들도 항상 만족감을 느끼는 축구가 제가 원하는 축구입니다. 우리 팀이 공격을 하고 있다고 가정해 볼까요. 만약 10명의 필드 플레이어가 모두 그 상황에 참가할 수 있다면 거기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컴비네이션이 가능합니다.
사실 그런 부분 때문에 우리 중앙 수비수들이 공격에 신경 쓰다가 집중력을 잃어서 역습으로 위기를 자초한 적도 많습니다.(웃음) 그러나 팬들은 이런 축구를 좋아합니다. 선수들도 그런 축구를 좋아하고...
분명 감독 입장에서는 그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이 무척 어렵습니다. 지금도 기억하지만 당시 수원이나 일화(현 성남)를 우리가 그렇게 밀어붙이고도 승리를 가져오지 못한 경우가 많았지요.(웃음)
- 방금 말씀하신대로 재미있는 축구를 구사하는데 있어 결국 결과의 문제는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축구를 계속해야하느냐에 대한 고민도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그런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웃음) 그런데 이런 것을 생각해봤습니다. 당시 동대문운동장에서 경기를 많이 했는데, 처음에는 관중이 1천명 미만이 왔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우리가 우승도 못한 팀이지만 만명이 넘는 관중이 왔었지요. 목동운동장을 쓸 때도 교통수단이 좋지 않아서 관중이 모이기가 더 힘든데도 꾸준히 팬들이 찾아왔습니다. 이런 것들이 저에게는 힘이 됐습니다.
그런데 만약 구단에서 결과에 대한 압력이 컸다면 제가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겁니다. 내 스타일을 바꿨겠지요. 다행히 부천 구단은 성적에 대한 압력을 그렇게 크게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축구를 고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구단에 감사하지요.
- 어떻게 보면 4백 시스템을 한국에 정착시킨 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당시 한국은 존 디펜스의 개념조차 거의 희박하던 시절인데, 이로 인한 어려움도 컸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웃음) 하긴 그 시절에는 스위퍼에 맨투맨 방어를 하면서 상대 공격수 물 먹는 데까지 따라간다는 이야기가 있었지요.(웃음)
사실 그 부분을 선수들에게 주입시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선수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많이 노력했지요. 그것과 병행해서 멀티 포지션 개념도 도입했습니다. 수비수는 수비만 하지 말고 미드필더 역할도 해보고, 미드필더는 수비 역할도 해보고, 중앙에서 뛰던 선수가 측면에서도 뛰어보고...전체적인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지요.
예를 들어서 중앙에서 뛰다가 측면에서 뛰게 되면 경기를 보는 각도 자체가 달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이해를 돕기 위해 포지션 체인지를 통해 서로의 역할을 상호 이해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또한 선수들에게 많이 강조했던 것이 모든 경기상황에 자신이 될 수 있는 한 많이 참가해야 하며, 많은 선수들이 방관자가 되지 않고 게임 상황에 참가해야 한다는 점이었지요. 4백 존 디펜스를 하기 위해서는 공격에서 수비로의 전환, 수비에서 공격으로의 전환을 굉장히 빨리 가져가야 합니다. 자신의 자리를 빨리 찾아가야 하지요.
사실 예전을 돌이켜보면 윙백은 철길 달리듯이 라인만 따라 위 아래로 달리곤 했습니다.(웃음) 그런데 자기 포지션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른 파트너도 생각할 줄 아는 선수가 되어야 4백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고 팀 전체가 살 수 있지요. 선수들은 피치에서 생각을 해야만 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2수, 3수는 내다볼 줄 알아야 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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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폼니쉬 감독과 애제자 윤정환 ⓒ스포탈코리아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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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 감독으로서 첫 시즌이었던 95년에 윤정환이라는 천재 미드필더가 입단했습니다. 사실상 ‘니포 축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인데요. 이 선수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어떠셨습니까?
윤정환이 동아대에 있을 때 2-3게임을 봤는데, 처음 보자마자 한국 스타일이 아니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플레이메이커로서 경기를 주도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고, 경기의 흐름을 잘 느끼고 있었어요. 경기운영을 빨리 할 때와 천천히 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선수였습니다.
시즌 초반에는 올림픽대표팀 차출 등으로 인해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고, 올림픽대표팀에서 돌아왔을 때는 팀에 적응해야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대표팀에서 요구하는 것과 팀에서 요구하는 부분은 다르기 때문에 내가 요구하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지요. 물론 동료들과의 호흡을 맞출 시간도 필요했고...
일단 정환이는 수비를 등한시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부분에 대해서 해결을 해줘야 정환이를 활용할 수 있어요. 정환이의 장점을 살릴 수 있게 하려면 뒤에서 그를 커버해주는 역할을 해줄 선수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시스템은 정환이를 앞에다 두고, 뒤에 수비형 미드필더 2명을 기용하는 트라이앵글 형태의 미드필드 시스템을 구축했지요. 또한 전방에도 3명의 공격수를 배치해 정환이의 패스루트를 다양화시키면서 윤정환으로부터 파생되는 공격효과를 최대화했습니다.
- 반면 대표팀에서는 윤정환의 활용도가 높지 않았습니다. 흔히 말하길 프로팀에서는 윤정환 중심의 축구가 가능하지만, 대표급 레벨에서는 윤정환이 지단급이 아닌 이상 그에게 모든 것을 집중시키는 시스템은 위험부담이 크다는 이야기인데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지난 2002 월드컵 때 한국은 밸런스 축구를 했습니다. 전원이 수비도 적극 가담하고 공격도 적극 가담하는 형태였지요. 팀이 수비나 압박 등의 부분을 강조하게 되면 정환이의 효용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정환이가 볼을 점유해서 공격을 전개할 수 있다면 경기에서 굉장히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볼을 갖고 놀게 해주면 그 기대에 부응해주는 선수지요. 볼을 잡지 못하게 한다면 문제가 되지만 말입니다.(웃음)
- 최근 들어 미드필더의 피지컬이 강화되고, 수비력과 체력도 강조되는 추세이다 보니 아무래도 윤정환 같은 스타일의 미드필더의 활용도가 점차 떨어지는 것 같은데요.
미드필더 뿐 아니라 공격수에게도 수비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이 현대축구입니다. 그렇지만 그 문제는 감독이 걱정하고 고민해야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윤정환을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 역시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윤정환이 물론 지단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분명히 지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예전 강철 코치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지도자들은 자신의 잘못을 바로 앞에서,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지적했지만, 감독님은 항상 따로 불러서 조용히 지적을 해줬던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감독이 선수를 꾸중할 자격은 없습니다. 선수가 못하는 것은 지도자가 잘못 가르쳤기 때문인데, 그 결과에 대해서 어떻게 선수만 탓할 수 있겠습니까.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꾸중해야 하지만, 실수한 것은 고쳐주면 되는 것이지요. 올바르게 하려고 했는데 생각대로 잘 되지 않은 것은 연습을 시키고 보정을 시키면 되는 겁니다.
나쁜 감독은 있을 수 있어도 나쁜 선수는 없다는 것이 내 지론입니다. 그리고 사실 감독이 30명의 선수들을 모두 똑같이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30명의 선수들을 모두 존중해줄 수는 있습니다. 감독이 항상 지녀야할 명제이지요.
-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선수도 잘 찾아내셨다고 들었습니다.(웃음)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굉장히 많지요.(웃음)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신 선수는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그 선수 주위에 가서 냄새 맡는 흉내를 내기도 했지요.(웃음)
일단 감독은 선수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 등의 좋지 않은 행위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그 부분에 대해서 항상 꾸중만 해서는 안됩니다. 19-20살 때는 그런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또 다시는 공을 차지 않겠다고 도망쳐서 코치들이 찾으러 다니기도 하지요.
그런 선수들을 찾아서 데려와 시간이 지나면 좋은 선수가 되기도 합니다. 4년 동안 그런 문제들이 참으로 흥미로웠지요.(웃음) 어려운 기억도 물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은 기억, 재미있는 기억이 훨씬 많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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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의 마지막 해인 98년, 아디다스컵과 필립모리스컵에서 모두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아쉬움이 무척 컸을 것 같은데요.
물론 팀원 모두가 우승이라는 성과를 쌓기 위해 노력했지만 운이 없었는지 결과적으로는 우리에게 우승이라는 행운이 오지 않았습니다. 꼭 중요한 순간에 울산이나 전남 같은 팀들에게 잡히고 말았지요. 그 전에는 우리가 좋은 경기를 했던 팀들인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지나간 일이고, 유감은 유감일 뿐이죠. 이것이 축구입니다.
예전 카메룬 대표팀을 이끌었던 90 월드컵에서도 잉글랜드와의 8강전이 무척 유감스러웠지요. 당연히 이길 수 있는 경기였지만 결국 졌고, 4강 진출에 실패했었습니다.
- 98년이었던가요? 울산과의 경기에서 부상 치료 때문에 일부러 아웃시킨 볼을 윤정환이 상대에게 차줬는데, 그게 골로 들어갔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 일부러 실점을 내주는 감독님의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기억납니다.(웃음) 윤정환이 울산에게 볼을 넘겨주려고 찼는데, 울산 골키퍼였던 김병지가 너무 앞으로 나와 있었지요. 그래서 그 킥이 김병지를 넘어서 골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수비 하지 말고 골을 허용하라고 지시했지요. 옆에서 통역이 몇 번이나 “정말 그렇게 하실 겁니까?”라고 묻더군요.(웃음) 중요한 경기였거든요.
그 때 우리 골키퍼가 샤샤였는데, 골키퍼는 골을 먹을 수 없으니까 끝까지 수비하고 수비수는 막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서 5분이 지나서야 겨우 실점을 할 수 있었지요.(웃음) 결국 경기는 1-1로 비겼습니다.
경기 끝나고 울산의 고재욱 감독이 악수를 청하더군요. 당시 악수를 하면 좋지 않다는 징크스가 있다며 한번도 악수를 한 적이 없었는데, 그날 경기 끝나고 처음으로 악수하고 “니포, 땡큐!”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웃음)
- 사실 부임 이후 96년 아디다스컵 우승을 제외하고는 우승컵을 손에 넣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축구팬들과 축구인, 그리고 언론에서는 모두 감독님의 부천 시절을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평가해주시는 분들에게는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실 축구를 하는 이유가 돈을 벌려고, 우승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 우리가 축구를 하는 것입니다. 뛰는 선수들 역시 자신이 즐기면서 축구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최근 흐름을 보면 팬들조차 어떤 면에서는 승점, 승리 등에 너무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중요한 것들이지만 여기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진정한 축구의 재미를 망각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최근의 축구는 결과에만 집착하지 과정이나 경기내용에 대해서는 떨어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내가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지요.
어쨌든 축구는 결과적으로 관중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의 부천 축구가 그런 축구였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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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폼니쉬 감독과 조윤환 당시 코치의 옛 모습 ⓒ부천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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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님이 한국을 떠나신 뒤에도 조윤환, 최윤겸, 하재훈 감독 등이 ‘니포 축구’의 계승자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감독님 밑에서 코치를 하던 분들이 모두 인정을 받고 있는데요.
내가 그들에게 따로 무엇인가를 가르친 것은 없습니다. 그냥 같이 잘 지내면서 함께 일한 것밖에 없어요. 그 친구들 개개인이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지 내가 해준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준 것보다 그 친구들이 내게 준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 감독님이 팀을 지도하는 스타일은 흔히 ‘부드러움’이란 단어로 많이 표현합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의 예를 보듯이 한국 선수들에게는 카리스마 넘치는 스타일의 감독이 더 어울린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곤 하는데요.
그렇게 단정 지을 순 없습니다. 사람마다 모두 스타일이 다른데, 이 스타일이 여기에 맞다라고 단정 지을 순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24시간 소리 지르고 강하게 질책해도 전혀 안될 때가 있어요. 반대로 어떤 때는 한 번의 눈길만으로도 내 의사가 전달되고 수행될 때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한국 선수들은 생각하는 것은 적게 하고, 주어진 임무를 시키는 대로 하도록 교육받으며 성장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자기 자신 뿐 아니라 팀까지 생각하는 축구를 하라고 하니까 당연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정말 멍청한 사람 외에는 조금의 준비 시간이 지나가면 하게 됩니다.
결국 지도 스타일을 국한시킬 필요는 없어요. 스타일은 자유입니다. 다만 어떻게 선수들에게 전달하느냐, 선수가 가진 것을 얼마나 많이 끌어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히딩크 감독은 자신의 스타일, 즉 강한 카리스마로 팀을 장악하는 능력으로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건 그 스타일대로의 업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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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지다
재미있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