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캅(69 ~ 155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사도 요한의 제자로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다.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가 기독교를 박해할 때 86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화형틀에 묶인 그에게 총독이 마지막 기회를 줬다. 이제라도 예수를 안 믿겠다고 하면 살려주겠다는 것이다. 아예 배도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예수를 안 믿는다는 말만 하면 풀어줄 테니까 풀려난 다음에 다시 믿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런 조건이라면 얼마든지 타협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정말로 안 믿는 것이 아니라 안 믿는다고 말만 한 번 하는 것이다. 폴리캅이 말했다. 나는 86년 동안 그분을 섬기며 살았으나 그분은 한번도 나에게 해를 끼친 일이 없소.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가 있단 말이오?"
군중들은 일제히 폴리갑을 산 채로 불태워야 한다고 소리쳤다. 폴리갑은 두 손을 말뚝 뒤로 묶인 채 기도하였다. “오, 전능하신 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여! … 당신 앞에서 살고 있는 의인들의 경주의 하나님이시여! 당신은 오늘 이 시간 나로 하여금 성령 안에서 영과 육의 영생과 부활로 순교자들의 수에 포함되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 당신의 소중한 아들을 통하여 참으로 모든 일에 대해서 나는 당신을 찬양합니다. … 나는 당신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 아멘.”
튀르키예에서 가장 큰 도시는 이스탄불이다. 두 번째가 수도인 앙카라, 세 번째가 이즈미르인데, 계시록에 나오는 서머나가 바로 이즈미르이다. 이즈미르에 폴리캅 기념 교회가 있다. 교회 내부에는 폴리캅의 생애와 관계된 성화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다. 19세기말에 교회를 수리할 때 프랑스의 화가 레이몽 페레(Raymond Pere)가 그린 그림들이다.
벽화 중에는 폴리캅의 순교 장면을 그린 그림도 있다. 불길에 싸인 폴리캅을 향해 칼을 든 사람이 다가서고 있고, 그런 중에도 폴리캅은 평온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는 그림이다. 그림 한쪽 구석에는 손이 묶인 사람도 있다. 폴리캅에 이어 처형될 사람이다. 폴리캅의 순교는 실제 상황이지만 폴리캅에 이어 다음 사람이 차례를 기다린 것은 실제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그렸느냐 하면, 그린 사람 마음이다. 그 사람은 레이몽 페레 자신이다. 레이몽 페레가 자신을 폴리캅에 이어 순교할 사람으로 그렸다고 한다.
- 큐티 : 만일 내가 '레이몽 페레'처럼 화가가 되어 당시 '폴리캅의 순교 장면'을 그렸다면, 나의 모습을 어떻게 그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