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는 리츠 또는 여지라 불리는 과일을 특히 좋아했다. 양귀비는 이 과일 맛에 반해 해마다 5월이 되면 중국 남방에서 생산되는 여지를 먹겠다고 황제를 졸랐다. 양귀비에게 반한 현종은 상하기 쉬운 여지를 싱싱한 상태로 선물하기 위해 빠른 말과 능숙한 기수를 뽑아 들였고, 대궐에 도착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곳곳에 이들을 배치하여 릴레이식으로 운반하도록 명령했다. 여지의 원산지인 남쪽지방의 광둥(廣東)에서 양귀비가 살고 있는 시안까지는 2천㎞가 넘는 거리로, 오늘날의 기차로도 꼬박 26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백성들은 왕의 여자를 위해 여지를 담은 얼음상자를 등에 진 채 쉬지 않고 말을 달렸던 것이다. 그래서 여지는 '양귀비의 과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여지탄 荔枝歎
여지열매 한탄: 양귀비(현종)
十里一置飛塵灰(십리일치비진회) : 십리마다 역을 두어 먼지와 재를 날리고
五里一堠兵火催(오리일후병화최) : 오리마다 봉화대 두어 병사를 재촉했다
顚坑仆谷相枕藉(전갱부곡상침자) : 구덩이에 떨어지고 골짜기에 넘어져 서로 포개어 싸이니
知是荔枝龍眼來(지시려지용안래) : 아는것은 여지 용안이 오는 거였다
飛車跨山鶻橫海(비차과산골횡해) : 수레가 날아 산넘고 매는 바다 건너고
風枝露葉如新採(풍지노엽여신채) : 여지가 바람이며 잎은 새로딴 듯 이슬있습니다
宮中美人一破顔(궁중미인일파안) : 궁중 미인은 한번 찌그리는 얼굴이고
驚塵濺血流千載(경진천혈유천재) : 티끌 놀라 뿌린 피 천년쌓아 흐릅니다
永元荔枝來交州(영원려지래교주) : 영원으뜸 여지는 교주에서 오고
天寶歲貢取之涪(천보세공취지부) : 천보는 년말 공물로 부강이 취급했습니다
至今欲食林甫肉(지금욕식림보육) : 지금껏 욕심은 이임보(현종재상)의 고기였고
無人擧觴酹伯遊(무인거상뢰백유) : 잔드는 사람없으면 백유(후한인 여지공물폐지상소)가 부었습니다.
我願天公憐赤子(아원천공련적자) : 내원은 하늘 공히 백성을 가엾이하고
莫生尤物爲瘡痏(막생우물위창유) : 더욱사물 상처 되게 생산 마라 했습니다.
雨順風調百穀登(우순풍조백곡등) : 순한비 바람조화로 온갖곡식 여물고
民不飢寒爲上瑞(민불기한위상서) : 백성은 굶주려 춥지 않아 상서가 되게 하였습니다.
君不見武夷溪邊栗粒芽(군불견무이계변률립아) : 임금은 무이산 골짜기의 좁쌀 싹을 보지 못했던가
前丁後蔡相籠加(전정후채상롱가) : 앞에선 정위가 뒤에선 채양이 서로 대바구니 더합니다.
爭新買寵各出意(쟁신매총각출의) : 새것을 다투고 사랑을 팔아 각자 뜻을 내고
今年鬪品充官茶(금년투품충관다) : 올해는 품질을 겨루어 조정 바치는 차가 되었습니다
吾君所乏豈此物(오군소핍기차물) : 우리 임금에게 모자람이 어찌 이런 물건인가
致養口體何陋耶(치양구체하누야) : 입과 몸을 기르게 함은 얼마나 비루한 일입니까
洛陽相君忠孝家(낙양상군충효가) : 낙양 재상(전유연)은 충효 집안인데
可憐亦進姚黃花(가련역진요황화) : 가련하게도 예쁜황색 꽃을 바칩니다
* 괴국부인: 당나라 현종의 비인 양귀비의 언니
괵국부인야유도 虢國夫人夜遊圖
괴국부인이 밤에 노는 그림(양귀비언니)
佳人自鞚玉花驄(가인자공옥화총) : 미인이 스스로 옥화말의 고삐를 잡고
翩如驚燕踏飛龍(편여경연답비룡) : 놀란 제비처럼 날며 용이 나는듯 오른다
金鞭爭道寶釵落(금편쟁도보채락) : 금채찍이 길을 다투어 보석 비녀 떨어지고
何人先入明光宮(하인선입명광궁) : 어떤이가 먼저 명광궁에 들어갈까
宮中羯鼓催花柳(궁중갈고최화류) : 궁중 갈나라 북은 꽃과 버들 재촉하고
玉奴絃索花奴手(옥노현색화노수) : 양귀비 비파는 양양왕 손을 찾는구나
坐中八姨眞貴人(좌중팔이진귀인) : 좌중 8째 이모는 진정한 귀인이라
走馬來看不動塵(주마래간부동진) : 말 달려 와서 보아도 티끌 일지 않네
明眸皓齒誰復見(명모호치수복견) : 밝은 눈 흰 이를 누가 다시 볼까
只有丹靑餘淚痕(지유단청여루흔) : 오직 단청에 있는 남은 눈물 흔적이구나
人間俯仰成古今(인간부앙성고금) : 사람 사이는 꺽고 올려 고금이 되니
吳公臺下雷塘路(오공대하뢰당로) : 오공대 아래에서 우뢰 못 길이구나
當時亦笑張麗華(당시역소장려화) : 당시도 장화려(남조 진후비)가 웃으니
不知門外韓擒虎(부지문외한금호) : 문밖 한금호(수나라 장군)를 모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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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나라 明皇은 貴妃 楊氏의 세 자매를 큰언니를 韓國ㆍ세째언니를 虢國ㆍ여덟째언니를 秦國 夫人에 봉해주니, 八姨는 바로 괵국부인이다. 가장 총애를 받았다.
괵국부인은 唐 玄宗 때 楊貴妃의 세 자매 중 가장 총애를 받은 여인이다.
虢國夫人夜遊圖는 張萱이 그린 그림으로, 당시 劉有方의 집에 많은 名畵가 있었는데 이 그림이 그중 가장 뛰어났으므로 소식이 이 그림을 보고 시를 지은 것이다.
陳 後主가 張麗華에게 빠져 나라를 망친 것을 인용하여 唐 玄宗이 양귀비에게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다가 安祿山의 난을 초래한 사실을 비판한 내용이다.
解說:
玄宗이 가장 寵幸했다는 괵국부인의 그림을 본 感想을 노래한 것이다. 그 그림은 길 위에 비녀도 떨어뜨리며 玉花馬를 달리는 날렵하고도 아름다운 괵국부인이 그려진 그림이다, 玄宗은 이처럼 美人들에게 둘러싸여 놀이로 歲月을 보내다가 結局 잠깐 사이에 安祿山의 亂에 依해 亡하고 말았다.
그때엔 陳後主가 張麗華에게 빠져 밖에 隋나라 韓擒虎 將軍이 쳐들어왔음도 몰랐던 것을 비웃었는데 그 보다 나을게 무엇 있느냐는 것이다.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