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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의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장모와 허물없이 지내는 바람에 졸지에 '국민 사위'라는 호칭을 얻게 자가 있다. 나도 국민이기에 내 동의 없이 어떻게 그런 자가 '국민 **'이 될 수 있었는지는 참으로 의아스러웠지만 말이다. 바로 그 자는 함익병 이라는 의사로, 말 한마디 잘못해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사상누각이 되면서 프로그램에서 결국은 중도 하차하게 되었다. 여자는 병역의 의무를 안 했으니 권리를 축소해야 한다느니, 지난 대선에서 아들이 문재인 후보를 찍겠다고 말하는 걸 듣고는 투표하지 못하게 했다느니, 박정희를 추종하며 독재가 뭐가 나쁘냐, 플라톤도 독재를 지지하지 않았느냐, 하는 망발을 그가 늘어놓았다고 한다. 정말로 최고의 대학을 나와 의사를 하는 우리 사회의 엘리트를 자처하는 자의 얘기로는 들리지 않는 궤변이었다. 상식을 가진 많은 국민들이 결국은 그에게서 위대한 '국민'이라는 타이틀을 빼앗아 회수하기에 이르렀다.
저렇게 돼먹지 않은 인간이 어떻게 그동안 언론에 계속 노출되어 시청자를 기만하고 호도했는지 한심스러웠으며 그 저변에는 시청자라고 하는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사람의 인성보다는 사회적 지위, 이를테면 좋은 직장과 그에 반하는 소득, 그리고 잘생긴 외모와 언변에 사람들이 관심과 애정을 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인물로 함익병이라는 자가 적격이라 대중매체에서 그를 소비하게 되었으며, 그 또한 대중매체에서 만든 이미지가 자신의 상업(병원 운영)에 유용하다고 판단해 그걸 뿌리치지 못했으며(심지어는 즐겼다), 시청자들 또한 잘 생기고 돈 많은 엘리트를 보면서 대리 만족하거나 그러한 꿈을 꾸었기에, 이 삼각편대가 서로 만나는 욕망이라는 꼭짓점이 결국은 이런 현상을 만들어 온 것이다.
우리는 이미지란 단어에 익숙하다. 어떤 사람을 일컬어 이미지가 좋다고 하거나 나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이미지란 것이 그 사람의 실체일까? 그렇지 않다. 이미지란 그 사람에게 씌워진 허상이다. 6월 지방선거가 다가와서 하는 말이지만, 정치인들은 언제나 그러듯 전통시장을 찾아와 좌판에서 채소를 파는 늙은 할머니의 굵고 거친 손을 잡으며 '좋은 세상 만들어 드리겠다'는 말을 할 것이다. 그리고 유치원을 찾아서는 어린아이를 안고 활짝 웃으며 '이 아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겠다'고 말하며 사진 찍기에 좋은 포즈를 취할 것이다. '이번에는 정말로 잘할 것'이라는 그들의 말을 '이번엔 안 그러겠지'하며 속는 게 대중의 속성이다. 무지한 대중은 그의 실체를 보기보다는 그가 만든 이미지를 보고 판단하는 우를 범하며 스스로 제 발등에 또 도끼질을 하는 것이다.
함익병의 이미지와 정치인의 이미지는 사실 허상이다. 대중은 육체의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볼 뿐 영혼의 눈으로 볼 줄 모른다. 때문에 대중이 보는 것은 감각적인 세계이지 진실한 존재가 아니다. 그건 실체가 아닌 허상에 의지하는 것이고, 진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플라톤은 속이는 정치인과 속는 대중에게 정치를 맡길 수는 없다고 분노하며 가장 현명하고 훌륭한 철인에 의해서 통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그의 저서인 <국가>에서 밝힌다. 플라톤은 다수 의결에 의해 소크라테스를 죽인 민주주의라는 가식을 반대한 것이지 함익병이 말한 독재를 찬양한 것은 아니다.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은 독재를 하겠다는 자들이며 또 이런 자들의 말을 비판 없이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무뇌아들이 '플라톤이 그랬다고 했는데?'하는 말을 하며 스스로 무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함익'병' 사건으로 플라톤의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동안 소크라테스에 대한 말은 많이 했지만 그에 대한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며, 독서를 좀 한다는 이들도 정작 플라톤의 책을 가까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책을 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가 소크라테스를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제자 플라톤이 남긴 저작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다시 복기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소크라테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인 '너 자신을 알라 Gnothi Seauton'는 금언은 사실 그가 창안한 한 말은 아니다. 이 말은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 기둥에 새겨진 글로,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나치지 말라'는 글귀와 더불어 이 글귀를 신전의 기둥에 새겨놓았는데, 소크라테스는 이 글귀를 보고 감명을 받고 자주 하다 보니 후세의 사람들이 그가 맨 처음 말한 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자주 하는 말인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자유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이 한 말로,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소크라테스는 가난했지만 결코 배고픈 사람이 아니었다. 소크라테스는 명문 귀족 자제들을 가르쳤으며 단지 그들에게서 수업료를 받지를 않았다. 그는 자신의 생활이 요구하는 필요 이상의 돈을 거추장스러운 사치품 정도로 간주했으며 검소한 생활 속에서 자유로운 삶을 향유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바가지를 긁는 악처의 대명사가 된, 그의 부인인 '크산티페'와의 사이에서 죽기 직전 일흔의 나이에 네 살배기와 젖먹이 아이가 있었던 것으로 봐서는 금슬도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크산티페가 살아 돌아온다면 자신에 대한 후대의 평가에 대해서 뭐라고 할지 살짝 궁금해지기도 하다.
그리고 또 자주 하는 말인 "악법도 법이다"가 있다. 혹자가 오해할지 몰라서 먼저 말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런 오해의 소지가 있게 된 일이 이 책의 내용이다. 저자인 플라톤이 태어날 당시 아테네는 혼란스러웠다. 그가 태어나기 4년 전인 기원전 431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났고, 23세 되던 기원전 404년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무조건 항복했다. 그 여파로 들어선 30인 참주 정권은 그다음 해에 시민들의 봉기로 붕괴되었고 다시 민주 체제가 성립했다. 이 작품은 소크라테스가 기원전 399년 자신에게 제기된 고발 사건에 대해 법정에서 자기를 변호하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사론邪論(도리에 어긋나는 주장이나 논리)으로 아테네의 청년들을 타락시키며 국가가 인정한 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멜레토스에 의해 고발되어 500명의 배심원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그들 앞에서 그 유명한 무지無知의 지知, 즉 자기의 유일한 지식은 자기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델포이의 신탁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 자기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을 찾아다녔으나 그런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그 과정에서 지혜롭다는 사람들도 사실은 무지하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이들의 미움을 산 것이 화근이 되어 고발당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자기를 불경죄로 고발한 멜레토스와 그 일당들에게 그들의 고발이 악의적인 거짓임을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산파술로 밝혀 낸다. 그리고 배심원들에게 자기는 죄가 없으며 앞으로도 종전과 같은 활동을 계속하겠다면서, 만약 그들이 아테네인들을 각성시키기 위해 신이 보낸 '등에'인 자기를 죽인다면 아테네에 큰 손실이 될 거라고 말한다.
<아테네학당>에 모인 철학자들과 라파엘로
결국 소크라테스는 유죄 선고를 받고 미나리 독즙을 마시고 죽게 된다. 그러한 배심원의 판결이 있게 된 법정에서의 진술 과정이 <변론>이며, 죽마고우 크리톤이 찾아와 탈옥을 부추기지만 만류하는 얘기가 <크리톤>에서 나온다. 그리고 제자 파이돈이,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죽기 몇 시간 전 그의 제자, 친구와 혼 불멸론, 상기론, 이데아론에 대해 나눈 대화를 기술한 게 <파이돈>이며, 아가톤, 알키비아데스, 파이드로스와 '에로스'에 대해서 논한 게 <향연>의 내용이다. 애당초 각 장을 따로따로 리뷰할 생각이었지만 다 읽고 나서는 어떻게 리뷰를 작성할지 난감했기에 이렇게 뭉뚱그려서 함께 적는다. <홍익학당> 윤홍식 대표의 팟캐스트 강의 http://www.podbbang.com/ch/6884 를 함께 들으면서 책을 읽었다. 그랬기에 <파이돈>을 제외하고는 무난하게 잘 읽었고 재밌게 들으며 이해를 했는데 지금 막상 리뷰를 작성하려고 하니 실체가 없고 허상만 남은 듯하다. 읽은 지 일주일 정도 지나니 그 사이 기억과 감동이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간 것 같아 휘발성이 강한 나의 머리를 탓해야 하는지 아니면 이렇게 어려운 글을 쓴 플라톤을 탓해야 하는지 답답해서 그냥 지껄여본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살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충분히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법정에서 스스로 추방형을 자청했으면 사형을 면할 수 있었으며, 친구 크리톤이 탈옥을 권유했을 때 그 권유를 받아들여 아테네를 벗어나 다른 도시로 가서 또 다른 제자를 가르치면서 소피스트처럼 수업료를 받아 호의호식하며 지식을 설파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일흔을 넘긴 고령에다가 어린 자식까지 있었기에 배심원단에게 감정으로 호소했다면 충분히 그는 감형되었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실제로 이런 말은 본문에 나오지 않고 후세에서 지어낸 것인데 엄밀히 따지면 악법이라고 볼 수도 없다. 소크라테스는 악법에 처단 당했다기보다는 다수결 결과로 법이 집행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명예를 위해, 소크라테스 정도되는 사람이 마땅히 취해야 할 자세를 보여주기 위해 의연히 부당한 판결임에도 받아들인 것이다.
어차피 진리 앞에 목숨이 중요한 것도 아니었고, 그가 도망가는 모습은 자신이 평생 추구했던 진리를 스스로 폄하하는 꼴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감내한 것이다. '내가 합의한 법은 내가 존중한다'라는 정신을 소크라테스는 어떤 유혹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지켜냈기에 약관의 나이인 제자 플라톤이 감동해 평생을 스승의 사상을 집대성하고 가르치고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독미나리즙을 마신 소크라테스의 몸은 굳어지면서 서서히 차거워졌다. 스승을 죽음으로 몰고 간 배후에는 이런 대중에 의한 민주 정치의 맹점이 숨어 있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구하려 했지만 그마저도 위험에 빠져 망명 신세를 져야 하는 처지에 빠졌다.
플라톤이 보기에 대중들은 자신들만이 옳다는 망상에 빠져있었다. 그 망상을 깨뜨리는 소크라테스는 무척이나 위험한 존재였다. 멜레토스와 소피스트 같은 그 당시 아테네 기득권층의 입장에서는 대중의 무지를 일깨우려는 소크라테스를 두려워했기에 그 싹을 일찌감치 제거하기 위한 작업을 했을 것이며 결국 그들의 계획대로 된 것이다. 기득권층을 위시해 그들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대중 또한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이끌었으며 결국 우민愚民에 의한 민주주의로 철인 소크라테스가 쓰러졌다. 이 스승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깊이 성찰한 결과물이 '속이지도 속지도 않는 철인이 이끄는 나라'를 피력한 책인<국가>이다. 그 책에서 플라톤은 '리더'에 대해 설명한다. 리더란 이끄는 사람이다. 나를 다스려 바른길로 이끌기 위해서는 뚜렷한 기준과 목표가 필요하다.
우리는 항상 리더를 기다려왔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세상을 바로잡아주기를 바랐다. 그런 리더를 만드는 건 결국은 대중이다. 무지한 대중은 훌륭한 리더가 다가와도 그냥 지나치지만 깨어있는 대중은 범인凡人인 리더를 훌륭하게 만든다. 그러니 대중인 우리가 깨어있지 않으면 안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를 위시한 4대 복음서를 읽긴 읽었지만 솔직히 이해하는 구석보다는 그냥 넘어간 구석이 더 많다. 그러하기에 조만간 다시 이 책을 집어 들고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플라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를 재차 음미해볼 것이다. 고전을 접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면 좋겠지만 단 한 가지라도 얻었으면 그것으로도 족하리라. 이 책도 그러하다. 내가 확실히 얻은 것은 '무지의 지'이다. 나도 내가 모른다는 사실, 그것만은 알고 있다!
첫댓글 잠이 안올때 읽기에 딱 좋은길이의 글!
無知의知을 알고계시면...리더!
그네들은 衆愚라 쓰지않고 衆牛라 쓴다나 뭐라나^^
카페 수준이 나날이 업되는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봄이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
정독 했네요. 감사 합니다. 다음. 또. 기대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