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9?일 ??오전 10:23:18 집을 나서서 보정역으로 간다. 축제참여 문자는 내가 가고 있는 중에도 계속 날아든다. 2011?년 ?2?월 ?9?일 ???오전 10:25:32 보정역은 분당선 종점. 2011?년 ?2?월 ?9?일 ??오전 11:10:50 보정서 지하철을 타고 환승하려고 수서역에서 3호선을 기다린다. 2011?년 ?2?월 ?9?일 ???오전 11:37:28 강남 고속 버스 터미널서 9호선을 타려고 간다. 2011?년 ?2?월 ?9?일 ??오전 11:42:08 열차를 기다린다. 김포공항에 가는 열차는 완행과 급행이 있다는데 ... 2011?년 ?2?월 ?9?일 ??오후 12:32:10 김포 공항역이다. 5호선을 타고 거꾸러 가는 방향으로 갈 참이다. 2011?년 ?2?월 ?9?일 ???오후 12:33:30 5호선을 기다린다. ?2011?년 ?2?월 ?9?일 ???오후 12:42:34 김포공항역에서 한 정거장 내려와 송정역에 왔다. 2011?년 ?2?월 ?9?일 ???오후 12:44:30 두리번 두리번. 강화행 버스는 몇 번인가. ?2011?년 ?2?월 ?9?일 ???오후 1:33:34 3000번에 탔다. 강화터미널이 종점. 제대로 탔구나. ?2011?년 ?2?월 ?9?일 ???오후 1:47:56 강화 대교를 지나고... 2011?년 ?2?월 ?9?일 ??오후 1:56:14 버스에서 내렸다. 2011?년 ?2?월 ?9?일 ??오후 1:59:52 터미널 안은 조용. ?2011?년 ?2?월 ?9?일 ???오후 2:01:44 강화도 내 여기 저기 버스 시간표 ?2011?년 ?2?월 ?9?일 ???오후 2:02:18 터미널 상가 안이다. 장사가 되려나. ?2011?년 ?2?월 ?9?일 ??오후 2:02:42 터미널 상점 간판은 서로 크기 자랑이다. 마치 길에서 서로 목청을 높이듯이. 작은 간판 예쁜 간판을 언제나 걸려나. 2011?년 ?2?월 ?9?일 ???오후 2:03:30 터미날 주차장 경비실 앞 한용운 시인의 시비가 있어서 놀랍고 반갑다. 2011?년 ?2?월 ?9?일 ???오후 2:04:02 강화 병원요. 저기로 죽 가시요. 나는 죽 가는 길이 좀 아득하다. 2011?년 ?2?월 ?9?일 ??오후 2:06:26 가죽 잠바 오토바이 경찰이 트럭을 단속한다. 서울선 보기 힘들다. 여기선 아직 1990년 대 서울 풍경이 벌어진다. 2011?년 ?2?월 ?9?일 ???오후 2:13:10 강화 벼원이 보인다. 정문이 어딘가. 두리번 두리번. 2011?년 ?2?월 ?9?일 ??오후 2:14:30 제대로 왔구나. 죽 가면 되겠구나. 2011?년 ?2?월 ?9?일 ???오후 2:15:24 장례예식장이라니. 장례와 예식을 함께 한다는 말일까? 새삼스럽게 보인다. 2011?년 ?2?월 ?9?일 ???오후 2:15:52 인기척이 없다. 한 밤중에는 망자들이 산책 코스인가 보다.
?2011?년 ?2?월 ?9?일 ? ??오후 2:16:46 내가 찾는 집이 아니다 아이들이 운다. 울거라. 다들 울다가 나중에 남이 또 울어 준단다. 2011?년 ?2?월 ?9?일 ??오후 2:18:20 못찾겠다 꾀꼬리하며 상주를 찾아도 없다. 장례식장 사무실 건물로 가다 보니 뭔가 있기에 보니 바로 이 집. 2011?년 ?2?월 ?9?일 ??오후 2:22:22 한 발 앞서 온 일행이 반긴다. 2011?년 ?2?월 ?9?일 ???오후 2:25:46 어디 가나 비슷 비슷한 음식, 꼭 나오는 육계장. 2011?년 ?2?월 ?9?일 ??오후 2:25:58 상주댁이 문상객에게 고맙다하고.. 2011?년 ?2?월 ?9?일 ???오후 2:27:40 상주는 진정의 마음을 표정으로 보이고.... 2011?년 ?2?월 ?9?일 ???오후 2:27:44 97세의 어머님을 모신 효자는 웃을 수도 있다.
?2011?년 ?2?월 ?9?일 ??오후 4:38:18 나를 축제의 장으로 초대 문자를 보낸 사람 '이인재'가 왔다.
2011?년 ?2?월 ?9?일 ???오후 4:59:34 떠날 차비를 한다. 올 때는 지하철, 버스를 탔으나 갈 때는 손형 신세를 지기로 한다. 2011?년 ?2?월 ?9?일 ???오후 5:51:22 강화에서 차가 밀린다. 구제역 소독을 한다. 소독약을 오른 쪽에 뿌린다. 이렇게 대강 대강 시늉만 해서 구제역이 36계 줄행랑을 치리라고 믿는 우리는 맹추인가. 똑똑이인가. 2011?년 ?2?월 ?9?일 ??오후 6:06:04 구제역 소독을 대기하는 차량을 상대로 성인용품을 파는 장사치. 그는 무엇을 파는가. 누가 사는가.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누가 그를 방치하는가. ?2011?년 ?2?월 ?9?일 ??오후 7:01:22 양재역 방향 88도로가 밀린다. 2011?년 ?2?월 ?9?일 ???오후 7:20:22 양재역에 손형은 내려주고 나는 지하철을 타러 간다. 2011?년 ?2?월 ?9?일 ???오후 7:24:40 양재역이다. 2011?년 ?2?월 ?9?일 ??오후 7:26:56 노천명 시인은 여왕 보다 행하겠소 하지만 그 말은 과연 진실이었을까. 2011?년 ?2?월 ?9?일 ???오후 7:43:26 수서역에서 환승할 참이다. 2011?년 ?2?월 ?9?일 ???오후 8:23:12 아침에 출발했던 보정역에 다시 왔다.
2011?년 ?2?월 ?9?일 ???오후 8:29:28 집이 보인다, 이승에서 저승의 내 집으로 오는 과정도 이리 복잡한가.
모임 총무가 문자를 몇 차례 보낸다. 첫 문자를 발송하고서 반응이 신통치 않았었나 보다. 나 역시 문자를 받고 잠시 고민을 한다. 누구 씨 모친 별세, 상주는 전 전 직장 직속상관이었다. 호형호제하던 사이며 회사를 그만두고 20여 년이 지났어도 만나는 사이였다. 지금은 고층 아파트가 임립한 판교, 운중동, 용인 수지 지역에 골프장 부지를 사겠다거나 관리한다고 임야와 전답을 사시사철 불철주야 동행자였다. 그는 지시하고 나는 받아들이고 그는 지시하고 나는 거부했다. 나의 태도가 바뀌어도 그이는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주었다. 40대 그도 7 순을 바라본다. 땅 사고 아파트 관리하는 직종이라 눈치가 빠르면 가진 재산을 늘렸을 법 하나 그 나이에 맞는 박봉의 일을 하는 고지식한 영감이 되었다. 내가 들고 갈 부의금 5만 원에 그가 연연할 리 없다. 정 주고 정 받기 좋아하는 사춘기 소년의 순정을 한 그인지라 나는 집을 나서기로 한다. 승용차로 막힘없이 달리면 그이 어른 모신 강화읍 강화병원까지 2시간. 버스로만 타고 가면 2시간 40분.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면 3시간 40분. 다들 만만찮은 길이다. 내 차를 끌고 가면 나 혼자 길이 늘 걱정하는 아내를 태우고 가야 한다. 승용차를 타면 연료비, 통행료에다가 운전 한 시간도 안 돼 졸려서 이를 악물고 하여야 하는 내 고충은 마치 지옥을 다녀 온듯하다. 그런 형편에 왕복 너덧시간 운전은 참으로 무모하다. 지하철과 버스를 멋지게 조화로운들 3시간 40여 분 걸린다면 왕복 8시간 강행군은 아주 힘든 일이다. 어차피 버스는 타긴 타야 한다. 지하철 송정역에서 강화행 버스를 꼭 타야 한다. 시간을 당겨서 갈 길은 없는지. 송정역을 가려고 5호선을 고집할 게 아니라 직행고속 9호선을 타고서 김포공항에 가서 5호선을 타고서 송정역으로 가는 길은 없을까. 궁리 끝에 교통이 정해졌다. 문상객의 손에 들고 갈 부의금 봉투를 준비 해야 할 게 아닌가. 집에 있는 돈은 툭툭 털어 잔돈뿐. 그렇다면 내게도 비상금은 있다. 얼마 전에 딸아이가 생일에 준 촌지 5만 원이 있다. 부의금 봉투에 슬픔을 함께 합니다 하고 쓰고 내가 가진 비상금 전액 5만원을 넣었다. 우리 어머니 돌아가셨을 적에 그이는 3만 원을 부의를 했다. 금액이 적어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3만 원과 함께 들어 있는 메모 한 장이 기억에 남아서였다. "약소합니다만 제 형편이 이렇습니다" 메모지를 펼쳐 본 내 가슴에 뜨거운 한숨이 치밀면서 눈시울 젖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나를 명퇴시켰던 사장이 내놓은 부의금이 3만 원이었다. 사장이 몇십 억 부자라고 해서 부의금 인심이 후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날마다 회의를 한다고 얼굴을 맞대고 수천억 수주를 하러 야전에 다니던 정표가 3만 원 일 때 는 곡절이 있었을 것이다. 하다못해 "황 부장 이 부의금은 내가 가진 비상금 전부라오"라는 메모를 달았으면 섭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집을 나서 길을 떠난다. 맨인블랙 차림으로. 보정역에서 지하철을 탄다. 수서에서 3호선을 갈아탄다. 늙은 내가 탔고 늙은 너가 탄다. 두툼한 잠바를 입고 있으니 열차 안 열기가 한여름 찜통이다. 춥다 하면 덥고 덥다 하면 춥다. 어디 내 뜻대로 되는 곳이 있는가.
보정에서 출발하면 수서에서 환승을 해야 한더. PDA 자판으로 바로 이 글을 찍다 보니 귀에 복정이란 소리가 들린다. 나는 무슨 일에 열중하면 주위 사물에서 천지개벽이 일어 나지 않는 한 들리지 않는 집중력이 있다. 그러기에 지하철에서 책을 본다거나 졸거나 하면 정거장을 지나치며 되돌아 가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수서에서 내려 3호선으로 갈아탄다. 다시 타자를 찍는다. 70년 대 시디를 파는 장사치가 음악을 트는 바람에 의식을 찾는다. 나에게는 제 정신이 번쩍 의식이 돌아온다. 누가 장사치에게 고속버스터미널이 어디냐고 묵는다. 차는 서 있는 판에 여기라니. 나는 부랴부랴 일어선다. 터미널서 9호선을 갈아탄다. 내 기억으로는 급행열차를 타야 하는 데 급행 완행을 가릴 것 없이 도착하는 열차를 탄다. 노량진에 오니 고속 열차로 탈 승객은 갈아타라고 한다. 그렇다면 고속 열차의 목적지는 인천공항이고 중간역은 김포공항인가. 세상은 변해도 아는 것은 없다. 갈아탈까 말까 망설이다가 김포공항까지 내처 간다. 김포 공항에서 5호선 마천행을 탄다. 한 정거장가니 송정역이다. 2번 출구를 나서는 데 강화행 버스가 슬슬 떠나는 참이다. 오르기 전에 기사에게 묻는다. "강화 병원에 갑니까?" 마치 우리 집에 갑니까 하듯 묻는다. 기사가 답한다. "강화터미널 갑니다." 그래 맞다. 터미널서 15분 거라에 강화 병원이 있다니까. 저승으로 떠난 분께서 저승길이 만만치 않듯이 강화행 길도 저승만큼 아득하구나. 강화터미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릴 때는 카드를 콕 찍어서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내가 가는 방향을 모르면 물으면서 가는 것이 지름길이다. 터미널 주차장 관리자 60객에게 묻는다. "선생님, 강화 병원에 가려면 어느 방향입니까?" "저쪽으로 주욱 가시요." 60 객이 손으로 가리킨 저쪽으로 죽 간다. 길은 사거리인데 방향을 못 찾겠다. 아는 길도 물어서 가고 모르면 더 묻자. 사거리에 농협이 있다. 문을 밀고 들어가니 작은 가게들이 올망졸망 있다. 문 열자 바로 보이는 아줌마에게 길을 묻는다. " 강화병원이 어디쯤 있습니까?" "오른쪽으로 죽 가세요." 오른쪽으로 죽 갈 채비한다. 다른 아줌마가 얼른 한마디 거든다. "길 건너 오른쪽으로 죽 가세요." 나중 아줌마 말이 구체적으로 오른쪽이다. 오른쪽으로 150미터 가니 과연 강화병원이 있다. 병원 입구에 바로 영안실이다. 상주를 찾느라고 두리번거려도 방마다 두리번대도 내가 찾는 사람이 없다. 큰 병원처럼 모니터가 없이 대자문만 붙어 있다. 장례식장 사무실에서 물어볼 참으로 사무실로 가다 보니 출입문에 내가 찾는 상주이름이 딱 붙어 있다. 혼란 뒤에 제대로 찾아왔다. 나중에 들으니 우리 모임 모두가 이런 과정을 거쳐 이렇게 왔다. 상주를 만나고 상주 부인을 만난다. "사모님, 오랜만이십니다. 저는 팍 늙었는데 예전 그대로이시네요." 내 말은 진심이다. 상주 부인은 20여 년 전에 불광동 자택에서 만났던 대로 귀티가 난다. "황 과장님이 그대로세요." 나는 상주 부인이 말을 믿지 않으나 고맙다. 예전과 지금을 비교해서 이다 아니다라고 말할 사람이 몇이 있는가. 문상객 가운데 매달 모임 회원이 셋이나 와 있다. 건설회사 시절에 한 부서에 근무했던 얼굴이다. 한 사람은 같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 다른 한 사람은 기술부 직원, 내 또래 사람은 조경담당 직원이다. 장례식장 어디나 나오는 육개장, 떡, 돼지머리 눌린 고기 등에 소주잔을 돌린다. 오늘 여기 모신 어른은 97세이시니 천수를 누리셨다. 보름 전에 의식을 잃으셨다가 떠나시고 내일 화장터로 가신다. 세상을 떠나는 자리에 천수를 누리시다가 병원서 아니 돌아가시고 집에서 머물다 떠나셨다니 축제가 아니신가. 누구나 떠나는 자리에 자식을 적당히 고생시키고 떠나는 복 받은 삶이 어디 쉬운가. 어머니, 축제 마당에서 예정 있으셨던 곳으로 편히 가십시오 70을 바라보는 상주는 우리가 웃으라면 웃고 울라면 웃는 표정을 진다. 어머니를 어디 마실 보내는 표정이다.
숨을 멈춘 지 사흘 만에 재로 변하시는 어머니. 앞으로 우리 자신이 올 날이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이렇게 모이던 이들 가운데 이 자리 상주와 동갑네 회사 선임자가 있었다. 그때는 한 달 모임을 하던 자리였다. 지하철에서 서로 다른 방향에서 헤어지면서 그가 말했다. "다음에 만납시다." 그다음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음번 약속하려고 전화를 걸자 전화를 받은 가족이 말했다. "아버지는 지난달에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달마다 모이는 사람 어느 사람에게 연락 없이 떠나간 이의 모습은 손을 흔들면서 "다음에 만납시다." 하는 말이었다. 그의 말은 이승에서 만남의 약속이 아니라 저승의 만남을 다짐한 것이었으니. 사람이 떠난 자리는 슬프다. 젊은 사람은 몹시 슬프다. 늙은 사람이 떠날 때는 덜 슬프다. 97세에 떠난 어머니라니 문상객들은 호상이라고 짠 듯이 말한다. 호상이라니. 잘 돌아가셨다는 말이다. 무례한 말을 용서되는 자식들만의 자리니 시시비비를 아무도 안 따진다. 문상객들 저마다 안부 묻기를 끝낸 뒤에 자식 이야기로 옮겨 간다. 우리 부모님 시절엔 밤 한 칸에 식구들이 다 있을 때는 부모들은 서로 옆에만 있어도 아이를 가졌다. 요즘 아이들은 제 방이 따로 있어도 아이가 서지를 않는다. 이형은 자기 딸이 결혼한 지 2년이 되어도 아이가 서지 않는다고 걱정이다. 올해는 쌍둥이 둘이 설 거요. 내가 덕담을 한다. 옛 어른은 이런 덕담을 하듯 나도 따라 해 본다 말은 씨앗이다. 있으라면 있고 없어라 하면 없게 된다. 아이에게 착하다 하면 착한 녀석 되고 나쁘다 하면 나쁜 녀석이 된다. 집집 아버지마다 자식들 일로 열불이 가슴을 태운다. 집마다 아이(부모가 보면 3040도 아이다)는 게임으로 날밤을 새운다. 아비가 뭐라 하면 안 하는가. 천만만만에 말씀이다. 부모 잔소리를 피해 피시방에 가서 한다. 차라리 저 알아서 하겠지. 저 알아서 하면 아침에 못 일어나고 아비는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거장까지 태워다 준다. “ 이게 아버지가 할 일이에요? 우리 땐 경을 쳤지. 아침 6시에 안 일어나면 불벼락에 물벼락이었고. 직장 일을 물으면 대답이 건성 건성이에요. 두 번 물어보면 외면하고 세 번째는 화내면서 조사하느냐고 대들어요.” 아니라고 말하는 아비는 한 사람도 없다. 아들딸이 아니고 ‘적’이나 전생의 무슨 ‘웬수’들을 데리고 사는 거다. “우리 집 사위는 벌이가 시원치 않아. 전세는 오르고. 우리 집은 넓고 하니 들어와 살라고 하니 아이 부부는 좋아하고. 문제는 장가 안 간 아들 녀석이 대뜸 한다는 말이 시집가면 나가 사는 거지 왜 친정집에 들어와 사는 거냐고 따지는 거야. 우리 부모가 아들을 설득하다 보니 이 집이 우리 집인가 그놈 집인가 헷갈리는 거야. “ 아비들은 웃지도 못한다. 그 집이나 내 집이나 짝퉁이니 웃다가 한숨 난다.
전세금이 오르고 집값이 오른다고 아이들은 걱정 안 한다. 집집이 아이를 하나 둘만 낳으니 아들 며느리는 제집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부모 집이 제집이다. 아등바등 집을 사면 바보다. 그렇게 자식 키운 부모는 바보다. 바보들이 모여서는 바보처럼 살지 말자고 궁리를 한다. 다 쓰고 죽자. 아이들에게 남길 게 없다. 말도 안 듣는 자식들에게 뭐 남겨주려고 하느냐. 집에서 돈 냄새 나면 자식들이 나 망했소 돈 좀 주오 하면 주고 말 테니 돈은 다 쓰고 죽자. 자식들이 아버지 어머니에게 하루 50초 대화로 족하고 부모 재산은 제 것이라고 룰루랄라 할 때 아버지들은 저 살 궁리를 한다. 이 아비들이 맹추가 아니다 자, 자식새끼들 말 그만 하고 한 잔씩 더 합시다. 자식 욕에는 너 남이 따로 없구나. 이럴 때 하지 언제 하느냐. 집에서 맘대로 못한 욕을 .. 먼 길 떠나시는 어머님. 당신도 이런 생각을 하셨겠지요. 여기 아비들이라고 어머니 속을 안 끓여 드렸겠나요. 자식 새끼 없는 곳이 극락이고 떠나는 날이 축제의 날이지요. 그러기에 세상의 부모가 한 번 가시면 다시 오신 분은 한 분도 아니 계시지요. 한 번 겪었으면 될 일을 두 번 겪으시려고 오시겠어요. 어느 가수는 사모곡이라고 어머니 어머니하고 부르지만, 어머니께서 무슨 경을 칠 일이 있으시다고 또 오시겠어요. 어머니, 오늘이 축제의 날이라서 지긋이 웃고 계시군요.
2011년 오후. 해가 좋아서 세상 떠나기 좋은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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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일파만파 원문보기 글쓴이: 일파 황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