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택진 목사님을 추모하며
어느덧 오는 7월29일이면 임택진 목사님의 12주기가 됩니다. 필자가 대학시절에 청량리중앙교회에 부임해 오신 임택진 목사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목사님께 배우고 장로로 서기로 목사님을 가까이에서 보필한 교인으로서, 부족하지만 아직 기억이 생생할 때에, 점점 잊혀져가는 목사님의 그 고귀한 삶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하여 올립니다. 부모님 같은 분에 대해 글을 쓰자니 외람됨을 느낍니다.
목사님은 1916년 평남 중화군에서 태어나, 평양신학교와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였습니다. 1940년 일제 말엽 찬바람이 불 때, 평북 선천(宣川)군에 있는 학현(學峴)교회(속칭 증골교회)와 목수태(牧使垈)교회에서 20대 젊은 조사로 교역을 시작했습니다.
해방 후 철산의 신성교회와 황해도 황주에 있는 흑교(黑橋)교회를 시무하며 공산당의 박해를 받던 중 6.25 전쟁이 터져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제주도까지 피난 가게 되었습니다.
1952년 제주노회에서 목사 안수 받고, 서귀포 피난민교회(3년), 부산 성도교회(4년)를 거쳐 1959년 정월 첫 주일에 하나님께서 서울에 있는 청량리중앙교회로 인도하셨습니다.
청빈(淸貧)한 목회자 목사님은 그 당시 서울 변두리 청량리 산동네에 있는 25년의 역사를 가진 청량리중앙교회의 여섯 번째 목사로 부임하였습니다. 전임 목사가 일부 교인과 함께 타 교단으로 분열된 후이므로 130명 정도 모이는 어수선한 교회에 부임하여, 교인 가정들을 열심히 심방하며 교회에 애정과 정열을 쏟았습니다. 목사님 오신 후 10년 동안은 부목사도, 교회 사무원도 없이 여전도사 한 분의 조력으로 목회와 행정실무를 직접 다 하였습니다.
박서근(朴瑞根)사모님이 쓴 글에 두 분의 이런 대화가 있습니다. ‘아이들 학비에 쪼들리는 형편에 책만 사 모으시는 거요?’ ‘책 없이 목사 일 볼 수가 없는 줄 당신은 아시오? 목사가 책 사는 것은 목수가 쟁기 사는 것과 같단 말이요’
어려운 시절에 여섯 자녀 중 다섯 자녀를 모두 약학을 전공시키고, 막내딸은 간호학을 전공시키며 물질면에서 많이 힘들었지만, 목사님은 묵묵히 주님 주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어느 교인이 금반지를 선물로 드렸는데, 어렵게 사는 교인들이 많은데 어떻게 목사가 사치스럽게 금반지를 낄 수 있겠느냐고 하며 한 번도 끼어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청빈히 살면서도 큰 체격에 위풍이 당당한 모습만큼이나 인품이 관후(寬厚)하였고, 유머가 섞인 재담이 풍부하여 구수하고 소탈한 성직자의 멋과 맛을 풍기셨습니다.
영향력 있는 목회자 목사님은 교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하여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목사님은 교회 일은 현재만 보지 말고 뒤를 멀리 넓게보며. 교리와 법리와 원칙에 어긋나지 않아야 되고, 균형과 조화와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고 늘 가르쳤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언제나 성경말씀 중심이었고, 꾸밈이 별로 없고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고 교리가 있어, 교인들은 말씀에 은혜를 받으며 착실하게 성숙해 갔고, 말씀을 갈망하는 많은 새 교우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교인수가 늘어나 60평의 예배당이 한계에 이르자, 제3예배당 300여 평을 건축하게 되었는데, 교인들이 힘들지 않게 4년 간 충분히 준비한 후에 공사는 1972년3월에 착공하여 동년 11월에 완공하고 거뜬히 헌당예배까지 드렸습니다.
목사님의 영향력은 전 교계에 미쳐 1970년 서울동 노회장, 1977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제62회 총회장, 한국교회 100주년 준비위원회 건축위원장,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과 서울장로회신학교 강사 등을 역임하였고, 1998년에 장로회신학대학교로부터 한국인 최초로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습니다. 항존직 정년제와 주기도문 재번역안도 목사님이 제안한 것입니다.
문필가인 목회자 목사님은 글쓰기를 식사나 주무시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다고 합니다. 사모님의 말씀에 따르면 식사를 하면서 수저를 드신 채 원고를 정리할 때가 있어서 ‘식사나 마치고 나서 하시지요.’ 하면 ‘식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원고인데 생각 날 때 써야한다.’고 하였답니다. 때로는 밤새 원고를 가지고 씨름하다가 새벽기도회에 나가는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봄가을 대 심방을 하고, 매일 새벽기도회를 하던 시절, 목사님은 분주한 목회 중에도 외부로부터 청탁 받은 글과 교계 신문잡지 등에 기고한 글도 많이 썼습니다. 1971년에「신앙과 기도」라는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해설한 책을 처녀작으로 내고, 2002년에 마지막으로 주로 후배 목회자들에게 권면한「진실로 하나님 앞에서」라는 책을 낸 것은, 마치 예수님의 2대 설교인 ‘산상수훈’과 ‘고별설교’를 연상케 합니다.
목사님은 공저 9권과 역서 1권을 포함해서 50여권의 주옥같은 책들을 펴냈습니다. 55세부터 86세까지 책을 쓴 셈입니다. 1983년 초에 크라운판으로 완간된「임택진 신앙저작전집」전7권은 목사님이 목회 일선에서 은퇴하는 기념으로 그동안 출간한 책들과 발표했던 글들을 한데 묶은 것으로, 목사님의 목회생애의 총 결산이며 금자탑이라 할 만 합니다. 목사님은 은퇴하신 후에도 열 한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목사님의 이런 집필의 힘과 열정과 사명감과 근면하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훌륭한 신학자 목사님은 목회 하면서 늘 연구하고 신학대학교에서 가르친 학자였습니다. 목사님이 쓴 많은 책의 제목이「목회자가 쓴...」으로 되어 있습니다. 목사님의 목회 경험과 목회 현장의 생생한 증언들인 목회학, 교회론, 교회정치 분야의 저술, 설교, 성서강해 등은 목회자들이나 신학도 들에게 중요한 학술자료요 목회지침이라는 정평입니다. 목사님은 또한 대 설교가요 전국적으로 알려진 부흥사이기도 했습니다. 목사님은 주어진 시간을 정확히 맞추고, 설교나 강의는 감화력이 크다고 알려져서 교계의 각종 행사나 부흥회 제직 훈련 등의 강사로도 많이 공헌하였습니다.
끝이 깨끗한 목사 목사님은 정년제를 제안 할 때의 결심대로 정년을 5년 앞두고 65세 조기은퇴의 용단을 내렸습니다. 1981년12월 마지막 주일 23년 간 마음과 정성을 쏟아 가꾸어 놓은 청량리중앙교회의 목회 일선에서 조용히 물러나셨습니다. 그날 교회는 목사님을 원로목사로 추대하였습니다.
교회가 목사님 은퇴 후에 사실 30평형 아파트를 사 드리기로 하고 어느 쪽에 정할까 물었을 때, 원로목사가 가까이 살면 교회가 불편하다고 하며 한강 건너 경기도 접경의 명일동으로 가시고는 자주 오시지도 않았습니다. 이용식 목사님 때 제4예배당을 크게 짓기로 하였다고 설명 드리러 갔을 때 ‘교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더 큰 예배당이 필요하지요’ 하며 건축헌금도 적지 않게 해 주시고, 후임자가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목회에 전혀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무소유의 목회자 목사님의 장녀 임해은 권사님의 글에 목사님이 남긴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죽거든 수의 사서 입히지 말고 평소 외출할 때 입던 옷으로 입혀라. 추모예배는 첫 해만 드리고 매년 드리지 마라. 어머니 사는 동안 네가 이 집에서 모시고 살다가 어머니 돌아가시면 집은 교회에 드려라.’
마침내 2007년7월29일 주일 아침(7시40분) 향년92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시신마저 서울대학교 병원에 기증되어 후학들을 위해 베풀고, 분묘나 총회장을 지냈다는 비문이나 묘비하나 남기지 않고 주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목사님은 그의 저서에서 ‘인간의 창조물 중에서 가장 생명이 긴 것이 책이다.’ 라고 한 것처럼 목사님은 가셨지만, 목사님의 신학사상과 설교 등은 책으로 남아 널리 그리고 장구하게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런 멋있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감화를 받으며 신앙생활 했다는 행복감과 감사가 큰 만큼 그리움도 더한 것 같습니다. (2019. 5. 28 작성)
첫댓글 존경하는 이춘익장로님의 추모 글을 읽으면서 임택진 목사님의 모습과 말씀과 음성이 가까이 다가 오는 것 같았읍니다.
2년 여 전에 미국에서 막내 아들 임장로가 높은뜻섬기는교회에 왔을 때 모습을 보고 임목사님인듯 반가오웠던 기억이 납니다.
임택진 목사님은 참으로 폭넓게 깨끗하게 사셨지요, 그리고 부지런하셨어요.
그런 분에 대한 이 글은 너무 부족함을 느낍니다.
저는 임택진목사님을 몇차례만 뵈었을 뿐인데 이춘익 장로님의 귀한 추모의 글을 읽고서 목사님에 대한 여러가지를 알게 되었고 훌륭하시고 참 좋으신 목사님이셨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훌륭하신 목사님을 모시고 함께 신앙생활 하시면서 목사님을 닮으신 이춘익 장로님의 신앙과 하나님 섬김의 도와 교회 사랑의 도를 깨닫게 됩니다.!!^^
청량리중앙교회와 섬기던 당회원들 ,성도님들 모두가 우리나라의 자랑이고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자랑거리 인 것 같습니다.!!^^
귀한 말씀 귀한 글을 자손 만대에 남겨서 후대에 귀감이 되게 하신 이춘익 장로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