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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 문화 탐방 크루즈-요르단
여행지:아카바, 페트라
* 요르단 [Jordan]
서남아시아의 아랍 국가
서남아시아에 있는 아랍 국가.
요르단 국기
요르단 강 동쪽에 있으며 수도는 암만이다. 남북으로 약 460km, 동서로 약 355km 뻗어 있고 북쪽은 시리아, 북동쪽은 이라크, 남동쪽과 남쪽은 사우디아라비아, 서쪽은 이스라엘을 경계로 한다. 아카바 만에 19km의 해안선을 끼고 있다. 웨스트뱅크로 알려진 요르단 강 서쪽 지역도 1949년부터 이스라엘군에게 점령당한 1967년까지는 요르단의 영토였다(이 항목에서는 그 지역에 관한 부분을 통계에서 제외시켰음). 면적 89,342㎢, 인구 5,395,000(2003 추계, 팔레스타인 난민 약 172만 5천 명 포함)
1. 자연환경
요르단은 지형학적으로 세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사막지역은 시리아 사막(북아라비아 사막)의 연장으로 국토의 동쪽 4/5를 차지한다. 사막 북부는 화산용암, 현무암, 침식된 모래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남쪽은 사암층의 노출로 형성되었다. 요르단 강 동쪽의 이스트뱅크 고원지대는 평균고도 600∼900m이며, 남쪽 끝 아카바 만 가까이에 요르단 최고봉인 람 산(1,754m)이 솟아 있다. 지구대로 이루어진 요르단 계곡 지역에는 사해가 있는데, 이 호수는 수면이 해수면 아래 약 400m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
토양은 일반적으로 건조하며 기후는 동쪽의 사막기후에서 서쪽의 지중해성 기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포를 보인다. 전국토면적 가운데 5% 미만에서만 연간강우량이 400㎜ 이상을 기록하며, 4∼10월에는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 동부 사막의 내륙분지에는 와디가 흐른다. 요르단과 웨스트뱅크 사이를 흐르는 요르단 강은 동쪽 고원지대에서 흘러내려오는 수많은 샘과 시내가 합류된다. 그러나 지나친 증발 때문에 염도가 점점 높아지다가 사해에 이르러서는 표면의 평균 염분함유량이 거의 300‰나 된다. 요르단의 겨울은 서늘하고 비가 많이 오며, 북쪽의 암만에서는 평균기온이 9℃, 남쪽의 만(灣)에 면한 알카바에서는 17℃이다. 덥고 건조한 여름의 평균기온은 암만에서 24℃, 알아카바에서 32℃이다. 물이 부족하여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2. 국민
국민은 대부분 아랍인으로 북아라비아의 카이스족 또는 남아라비아 예멘족의 후손이며 아랍어를 사용한다. 인구의 1/2가량이 15세 미만이다. 출생률은 비교적 높고 사망률은 개발도상국으로서는 낮은 편이어서 연간 인구증가율이 비교적 높으며 앞으로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인구가 농촌에서 도심지로 많이 이주함에 따라 경제도 어려워졌다. 인구의 2/3 이상이 도시에 거주한다. 국민의 9/10는 수니파 이슬람교도이며 1/20은 그리스도교도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교도는 루마니아 정교회나 그리스 정교회 신도이다. 1980년대 중반 85만 명 이상의 허가받은 난민과 이주민을 비롯해 10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쏟아져 들어옴으로써 인구통계의 수치가 바뀌었을 뿐 아니라 정치·사회·경제 생활에도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대부분의 난민들은 수용소에 거주하며, 근동 팔레스타인 난민을 위한 국제연합 난민구제사업기구(United Nations Relief and Works Agency/UNRWA)에서 생계유지 수준의 지원을 받는다. UNRWA에서 주로 난민들의 위생·교육·복지를 맡고 있다. 모든 난민은 요르단 시민권을 갖고 있는 한편 난민구제 혜택을 받기 위해 난민의 신분도 유지하고 있다(→ 색인 : 국제연합 팔레스타인 난민구제사업국).
3. 경제
요르단은 자유기업경제 체제에 바탕을 두고 발전하고 있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급성장하는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비슷하며 1980년대초까지 인구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했으나 그후 성장률이 떨어졌다. GNP의 주요원천은 지역·사회·개인 서비스업, 무역, 건설, 제조업 등이다. 전국토의 1/20만 경작이 가능하다. 요르단 강 하곡과 바로 동쪽의 고지대는 관개가 잘 되어 있다. 농업이 GNP의 약 1/20을 차지하며, 노동력의 상당 부분이 종사하고 있다. 주요작물은 토마토·가지·호박·고추 등 채소류이다. 그외에 밀과 보리를 비롯한 곡류·편두(扁豆)·올리브·수박·바나나·오렌지가 생산된다. 요르단에는 목초지가 거의 없으며 그나마 목축을 하기 위해서는 대개 우물을 파야 한다. 주요가축인 양과 염소에서 고기와 젖을 얻으며, 양봉도 이루어진다. 얼마 안 되는 삼림은 주로 시리아와 가까운 동쪽의 고원지대에 분포하며, 연간 국내수요의 약 1/2을 충당할 수 있는 양의 목재를 생산한다. 1967년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웨스트뱅크의 농경지를 잃게 됨에 따라 요르단 정부는 조림계획을 다시 세우고 일부 삼림지를 농경지로 바꾸었다. 광업과 채석업은 GNP의 1/20 미만을 차지하며, 노동력 가운데 약 1%가 종사하고 있다. 주요광물은 인산염이며 그외에 구리·석고·망간광석·고령토·칼륨·유리질모래를 채굴한다. 요르단에서는 가정난방과 원격통신에 태양열을 이용한다. 제조업은 암만에 집중되어 있으며, GNP의 1/10을 차지하고 노동력의 1/15이 종사하고 있다. 주요생산품은 시멘트·인산비료·압연강·담배·맥주·포도주이다. 전력은 화력발전으로 생산된다. 건설업은 GNP의 1/20을 차지한다. 주요 건설계획을 통해 요르단 강 골짜기의 관개용 댐과 공장, 사해의 칼륨 공장, 알아카바의 비료 공장과 항만 시설, 라시디야의 대규모 시멘트 공장 등이 세워졌다.
4. 정치와 사회
요르단은 입헌군주국이며, 최고 행정권은 왕에게 있다. 양원제 국회가 있었으나 1976년 아브둘라 이븐 알 후세인 왕의 명령으로 해산되었고 후세인 왕이 1970년대말에서 1980년대초까지 칙령을 통해 통치했다. 1984년 상원과 하원으로 이루어진 국회가 다시 소집되었다. 상원은 왕이 임명한 3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었으며 하원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13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었다. 최고 사법기관은 대법원이며 개인의 신분과 관련된 문제에 관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이슬람 종교재판소(Shari⁽ah Muslim courts)가 있다(→ 색인 : 샤리아). 병력은 7만 명으로 대부분 육군이다.
사회복지제도는 낙후된 편이다. 정부의 연금제도는 노령·장애·사망시에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보건시설은 주로 암만을 비롯한 도시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농촌인구의 대부분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한다. 영양부족과 위생시설이 열악할 뿐 아니라 나쁜 기후 탓으로 장티푸스·파라티푸스·살모넬라·간염·이질 같은 질병이 널리 퍼져 있다. 평균수명은 남자 60세, 여자 64세 정도이다. 주택이 계속 건설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택문제가 심각하여 대다수 가구는 단칸방에서 살고 있다.
교육시설로는 공립학교, 사립 또는 종교계 설립 학교, 난민 어린이를 위해 UNRWA에서 운영하는 학교 등 3가지 유형의 학교가 있다. 교육부에서 모든 학교를 감독하며 14세까지 의무교육을 실시한다. 고등교육기관으로는 암만의 요르단국립대학교(1962), 이르비드의 야르무크대학교(1976), 알카라크의 무타대학교(1981) 등이 대표적이다. 신문은 민간이 소유하나 여러 면에서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 국영방송인 하심요르단 방송국과 요르단 텔레비전 방송국이 요르단의 전자 매체를 장악하고 있다.
5. 문화
요르단에서는 아랍 문화가 발전되어왔으며 최고 형태의 예술은 다른 아랍 세계와 마찬가지로 구전예술과 문학예술이다. 민속문화는 노래·민요·이야기하기 등의 구전예술을 통해 표현되어왔다. 가장 유명한 시인은 무스타파 와바 앗 탈로서, 그는 뛰어난 문체와 사상으로 20세기 주요 아랍 시인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이브라힘 아부 나아브, 파우다 투칸, 사미라 아잠 등 새로운 세대의 시인과 산문 작가들이 나타났다.
6. 역사
이스라엘과 함께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이라고 알려진 지역에 자리잡고 있어서 대부분의 역사가 이스라엘과 뒤섞여 있다. 사람이 살게 된 시기는 아득히 먼 전기 구석기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요르단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는 BC 13세기 이후 존립했던 기드온·암몬·모압·에돔 등이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BC 1000경)에 지금의 요르단 동부 대부분은 이스라엘 왕국에 복속되었다. 그후 다른 중동지역과 함께 아시리아·바빌로니아·페르시아에 차례로 넘어갔으며, BC 330년 무렵부터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셀레우코스 왕조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서로 싸우는 사이에 아랍어를 쓰는 나바테아인이 요르단 동남부에 왕국을 세웠다. 이 왕국은 BC 64∼63년 로마인들에게 정복되었고, 7세기에는 이슬람교도인 아랍인들에게 넘어갔다.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들은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삼았고, 아바스 왕조 때는 바그다드로 옮겼다. 그 이후로 요르단 지역은 권력의 중심지에서 멀어졌으며 주민들은 서서히 베두인족의 유목생활로 되돌아갔다. 1099년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함으로써 예루살렘에 도읍한 라틴 제국이 요르단 강 동쪽까지 영토를 넓혔다. 16세기에 요르단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어 다마스쿠스의 관할 아래 들어갔다. 19세기에 오스만 제국은 아라비아로 오가는 길을 보호하기 위해 체르케스인·카프카스인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난민들을 요르단에 정착하게 했다. 요르단은 1920년 트란스요르단이라는 이름으로 팔레스타인과 함께 영국의 위임통치령이 되었고, 아브둘라 이븐 후세인이 영주(군최고사령관)로 임명되었다. 1948년까지 영국의 위임통치가 계속되긴 했으나 트란스요르단은 밸포어 선언의 대상에서 제외된 후 1927년 입헌국가로 독립했다. 1949년 독립한 이스라엘과의 휴전으로 요르단은 웨스트뱅크를 합병했으나 1967년 6일전쟁 후 이스라엘에게 빼앗겼다. 1970∼71년 요르단은 정부군과 요르단에 주둔하는 팔레스타인 게릴라 사이의 전투로 쑥밭이 되었다. 전투는 정부군이 팔레스타인 게릴라군을 요르단에서 몰아냄으로써 끝이 났다.
7. 한국과의 관계
요르단은 남북한 동시수교국으로 한국과는 1962년 7월, 북한과는 1974년 7월에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1972년 11월에 맺은 무역협정을 시작으로 한국과 경제·기술 협력협정(1977. 10), 문화협정(1977. 10), 항공협정(1978. 5) 등을 체결했다. 한때 요르단은 한국 업체들의 진출이 활발했던 건설시장이었다. 1990년 11월말 현재 대한 수입 3,018달러, 대한 수출 2,597만 달러를 기록하고 있으며, 1989년 6월 현재 122명의 한국인이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아라비아반도 숨은 진주 요르단
장미처럼 붉은 도시..장대함에 숙연해지다
천년 고도 페트라의 관문 알카즈네는 6개의 원형 기둥이 받치는 2층 구조에 헬레니즘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협곡 ‘시크(Siq)’ 에서 바라본 페트라의 상징인 알 카즈네
요르단 연중 평균 기온
1월:8도 2월:9도 3 월:12도 4월:16도 5월:21도 6월:24도 7월:25도 8월:26도 9월:24도 10월:21도 11월:15 12월:10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