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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 & Reader 이문열, 시대를 쓰다
그땐 ‘연좌제→원죄’ 번역했다…내 작품이 넘어야 했던 바벨탑
카드 발행 일시202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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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이문열, 시대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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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문학 세계화는 내가 가장 빨랐다
지난 회에서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대해 짤막하게 언급했는데, 몇 군데 언론사에서 별도로 내 반응을 물어 왔다. 심지어 아쉽지 않으냐고 묻는 곳도 있었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나는 노벨상과 코드가 맞지 않는다, 노벨 문학상은 인류의 자유와 복리 증진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일종의 공로상 아닌가. 만약에 선택이 가능하다면 노벨상 수상보다 내 영어판 소설이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게 더 좋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노벨상을 내심 기대하거나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어떤 것으로 계산해 보지 않았다. 물론 받는다면 도움과 격려가 되겠지만 그 수상 여부가 내 문학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작가 된다는 것은 참 복합적 문제
작가가 된다는 것은 대단히 종합적이고 참 복합적인 문제다. 한 문학상이나 사조(思潮)만으로 어떤 작가가 규정된다면 좋을 건 없다. 게다가 엄밀하게 말하면 노벨 문학상의 지향도 그때그때 차이가 난다. 가령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로 유명한 아일랜드 출신 프랑스 작가 사뮈엘 베케트는 1969년 노벨상을 받았는데, “깜짝 놀랄 만큼 어두운 유머로 인간 삶의 근본적인 토대를 살핀다(examines the most basic foundations of our lives with strikingly dark humor)”는 것이 선정 사유였다. 그러니 노벨상에 맞춰 글을 쓴다는 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한강 작가도 노벨상을 타겠다고 노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학의 세계화라면 나도 할 얘기가 없지는 않은데, 나는 다른 작가들보다 일찍 그리고 널리 해외에 알려졌다. 역시 지난 회에 밝혔던 것처럼 1990년대 들어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여러 나라에 내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소개되면서다. 90년대 후반에는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뉴욕의 와일리 에이전시와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전속 계약을 맺고 미국 시장에 작품이 소개됐다.
지금까지 24개 언어권 31개국에서, 앤솔로지 16권을 포함해 총 93권의 책이 출간됐다. 가장 많이 소개된 작품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22개 나라에서 출간됐고, 그다음 많이 소개된 소설이 한국에서는 반응이 그리 뜨겁지 않았던 『시인』으로 16개국에서 책이 나왔다. 『사람의 아들』은 9개국, 『금시조』와 『황제를 위하여』는 나란히 5개국씩, 『젊은날의 초상』은 4개국에서 출간됐다.
누구보다 활발하게 해외에 소개되다 보니 한강의 노벨상 수상에 대한 내 반응을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 같은데, 내 소설이 널리 알려지는 데도 역시 선구적인 번역자의 역할이 컸다. 단편소설 ‘하나코는 없다’로 이상문학상을 받은 작가 최윤과 프랑스 국립동양언어문화대학교 명예교수이자 라르마탕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잡지 ‘Tan'gun(단군)’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파트리크 모뤼스가 공동으로 내 소설의 불어 번역을 도맡다시피 했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199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소개됐다. 소설가 겸 번역가 최윤(왼쪽)과 한국문학에 정통한 파트리크 모뤼스가 당시 큰 역할을 했다. 사진 이재유
물론 두 사람이 내 소설만 프랑스에 소개한 건 아니다. 프랑스에 유학 중이던 최윤은 불어로 소설을 써 현지 잡지에 발표한 적이 있는데, 프랑스의 외국 문학 전문 출판사인 악트쉬드가 최윤에게 불어소설집 출간을 제안했다고 한다. 한국에 좋은 작품이 많다며 중편 분량이 잘 읽히는 프랑스 시장을 감안해 10여 편을 작품 개요는 물론 작가 소개까지 곁들여 역으로 제안한 게 악트쉬드가 한국문학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한국문학총서(Lettres Coréennes)’를 90년에 시작한 계기가 됐다고 들었다.
한국문학총서 상업적으로도 성공적
한국문학총서는 2010년대 중반까지 40권 가까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지금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과 대산문화재단 그리고 한국문학번역원이 번역과 출판 비용을 지원했는데, 『금시조』와 『그해 겨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총서의 1~3권으로 나왔을 정도로 내 소설이 초창기에 집중적으로 소개됐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최인호의 『깊고 푸른 밤』 같은 작품들이 90년대 초반 나란히 출간됐는데, 책마다 2500~4500권가량 팔려 현지에서는 상업적으로도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고 한다. 실제 독자 수를 판매부수의 5배 정도로 계산하는데, 1만~3만 명가량이 읽은 셈이니 악트쉬드 입장에서는 여러 나라의 번역 소설들 가운데 한국문학총서만큼 반향을 일으킨 경우가 없었다는 것이다.
나를 포함해 이청준·조세희·윤후명 같은 작가들이 악트쉬드와 유럽 판권 전속 계약을 맺었다. 또 다른 프랑스 출판사인 필립 피키에는 김성동의 『만다라』를 출간했고, 이탈리아의 지운티 출판사는 악트쉬드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내기도 했다.
2014년 런던도서전에 참석한 한국 작가들. 한국이 주빈국으로 선정돼 대거 참가했다. 왼쪽부터 소설가 이문열, 한강, 김인숙, 시인 김혜순, 아동문학 작가 황선미, 소설가 이승우, 신경숙, 웹툰 작가 윤태호씨. 연합뉴스
내 소설에는 과분한 평가가 잇따랐다. 르몽드는 『금시조』를 두고 “시대의 고통과 개인의 고뇌가 절묘하게 시적으로 묘사됐다”며 나를 독일의 대시인 횔덜린에게 견주었다. 국제뉴스를 다루는 월간지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황제를 위하여』는 디즈니와 코카콜라로 상징되는 세계문화에 맞서 젊은 세대가 그들의 뿌리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해 준 작품”이라고 평했고, 국내에도 저서가 여러 권 소개된 프랑스의 문학이론가 츠베탕 토도로프는 내 소설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한국문화는 다양성 속에 동질성을 밝혀낼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작가를 잡아라, 유럽 출판계 전속 계약 붐’ ‘파리 문단에 이문열 바람’ 같은 제목의 국내 일간지 기사가 나오곤 했다.
93년에는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내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시인』을 읽는다는 보도가 나기도 했는데, 그해 여름 한국의 고속철도 기종이 프랑스의 TGV로 결정된 것과 관련이 있었다. 미테랑 대통령은 한국 방문 때 문화인들을 대동했는데, 거대한 손가락 조각으로 유명한 세자르 발다치니와 악트쉬드 출판사의 위베르 니셍 사장이 포함돼 있었다. 미테랑 대통령이 귀국길에 읽겠다며 니셍 사장에게서 내 소설들을 빌려갔다는 얘기였다.
1992년 11월 프랑스 정부로부터 받은 문예공로훈장. 프랑스 문화예술 발전에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수여되는 훈장이다. 왼쪽 아래쪽에 'Fait a Paris le 12 Juin 1992', 훈장을 '92년 6월 12일 파리에서 제작했다'는 문구가 보인다. 사진 이재유
프랑스 문예공로훈장 수여식 이후 리셉션 장면. 왼쪽에서 둘째가 이문열씨. 사진 이재유
95년 말에는 프랑스 문화부 산하 국립도서센터 주관으로 한국과 프랑스의 작가들이 대거 참가하는 한국문학포럼이 파리와 8개 지방 도시에서 열렸다. 한국에서는 시인 김지하·고은·신경림, 소설가는 최인훈·한말숙·김원일·오정희·박경리·박완서·이청준·최윤과 나까지 모두 12명이 참가했다. 프랑스 작가 가운데 2022년 노벨상을 받은 아니 에르노도 있었다.
한국 작가들 유대, 프랑스 작가 이해 못해
프랑스 청중에게도 질문 기회가 주어진 한 행사에서 어려서 입양된 열아홉 살의 한국계 여학생이 “한국 소설은 유머가 없고 분위기가 무거운데 한국 사람들도 그런가”라고 물었던 게 기억난다. 어쩌다 내가 답하게 됐는데 “한국 현대문학은 분위기가 너무 침중(沈重)하고 나쁘게 말하면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해 주었다.
한 프랑스 작가는 한국 작가들이 함께 술 마시며 어울리는 것을 신기해 했다. 자기네는 서로 경쟁 관계에 있다는 생각에 작가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아 만날 일도, 함께 술 마실 일도 없다는 거였다. 그 얘기를 들은 최인훈 선생은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반응이었다.
『시인』은 국내에서는 채 20만 부도 나가지 않았지만 외국에서 특히 반응이 좋아 소중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많은 나라에 소개되기도 했지만 어디든 서평이 좋았고 여러 나라에서 재판(再版) 이상을 찍었다.
방랑 시인 김삿갓으로 잘 알려진 소설의 주인공 김병연은 평안도 선천 부사(府事)였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 때 반란군에 투항했다가 난이 진압된 다음 참수되는 바람에 평생 연좌(連坐)의 그늘, 대역죄인의 자손이라는 원죄의식에 시달렸던 인물이다. 신분 회복의 길이 모두 무산되자 김병연은 시인으로서 일탈의 삶을 산다. 그런 김병연의 삶을 작가인 나와 동일시하지 말아 달라고 말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시인』은 월북한 아버지를 지우기 위해 방황하다 소설을 쓰게 된 내 자전적 스토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르몽드의 대대적인 서평 역시 그런 점을 정확히 짚은 것이었다. “이문열 자신의 대리 전기적 이야기”로 “김삿갓이라는 저주받은 문학인의 여정을 통해 왜곡된 역사와 사회 속에 던져지는 글쓰기의 유효성과,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담아 짙은 안개와 폭풍우를 헤쳐나가기 위한 나침반으로서의 소설”이라고 했다.
2000년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한 서울국제문학포럼을 마치고 경주에 문화 답사를 간 문인들. 대표적인 국내외 문인 교류 행사다. 왼쪽부터 당시 재단의 곽효환 사무국장, 이문열, 황석영, 문학평론가 도정일, 시인 고은씨. 사진 이재유
『시인』은 결국 예술가 소설이자 자전소설인데, 예술가의 자전적인 성장 과정은 소설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작가는 어쩌면 자기 하소연을 하다 글을 쓰게 된 사람이다. 누구나 트라우마나 정신적 흠결이 없을 수 없는데, 하소연을 하기 위한 글쓰기는 상처를 치유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그 과정에서 글쓰기가 자기 수양의 방편도 된다고 생각한다.
젊었을 때는 그렇지 않았지만 나이 들면서, 아무도 모르는 마음속의 어떤 상상도 나 혼자만의 것으로 남겨두지 못하고 결국 글을 통해 표출돼 남과 공유하게 된다고 느꼈다. 어떤 생각이든 남의 검열을 받게 되는 것이니 생각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글을 잘 쓰려면 그 행위가 어느 정도 경건성을 획득해야 된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활을 잘 쏘는 사람에게는 정신을 집중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텐데 결국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 개성일 수 있겠는데 나는 그래서 시든 꽃, 벌레 먹은 꽃은 그리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사실주의 화가는 시든 꽃도, 벌레 먹은 꽃도 그려내겠지만 나는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는 일은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었다.
뉴욕 와일리 에이전시와 전속 계약
미국 시장 진출은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뉴욕의 와일리 에이전시와 전속 계약을 맺으면서였다. 와일리 에이전시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솔 벨로우, 오에 겐자부로를 비롯해 보르헤스, 칼비노, 루슈디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을 대행하는 에이전시다.
경희대 영문과 케빈 오록(2020년 별세) 교수가 번역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Our Twisted Hero)』의 2001년 미국 출간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었다. 출판사가 디즈니의 자회사인 하이페리온 이스트였고, 와일리의 내 담당자 어진경씨에 따르면 한국 정부나 재단의 지원 없이 미국의 유력 출판사가 문학성과 상업성을 따져 한국 작가의 소설책을 낸 것은 내가 처음이었다. 책 가격의 10%를 기본 인세로 해서, 5000부 이상 팔리면 12.5%, 1만 부 이상 팔리면 15%로 판매 부수에 따라 인세를 올리는, 미국 내 다른 유명 저자와 비슷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유의미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뉴저지의 페닝턴 스쿨이라는 사립고등학교에서 영문판 『Our Twisted Hero』를 동아시아 문학 수업 교재로 선택하는 바람에 내가 하버드에서 체류 작가로 있던 2007년 초청 특강을 한 적은 있다. 87년 전두환 대통령의 4·13 호헌 조치에 많은 지식인이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던 게 소설을 쓴 계기였다고 소개하자 “당시 상황에 비판적이었다면 왜 직접 반대하지 않고 소설로 썼느냐”던 한 학생의 직설적인 질문이 기억난다.
『Our Twisted Hero』보다 더 주목받은 작품은 한국계 미국 작가 하인즈 인수 펜클과 장유섭 공역으로 2017년 출간된 중편 『Meeting with My Brother(아우와의 만남)』인 듯싶다. 아무래도 남한의 대학교수인 주인공이 중국의 중개인을 통해 북한의 이복동생을 만나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 망제(望祭)를 지낸다는 내용 때문일 것이다. 북한 사람들에 대한 남한 사람의 정서를 알 수 있어 여러 한국문학 코스에서 활용된다고 들었다.
2007년 5월 미국 뉴저지의 페닝턴 스쿨에서 저자 특장을 하는 이문열씨. 당시 페닝턴 스쿨은 이문열씨의 소설 『Our Twisted Hero(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교재로 선택했다. 연합뉴스
『황제를 위하여』는 80년대에 이미 영문 번역판이 미국에서 출간됐다. 하인즈 인수 펜클이 새 번역판을 내기 위한 샘플 번역을 미국 출판사들에 보냈으나 내자는 데가 별로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연좌제 원죄를 기독교 원죄로 번역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언어의 바벨탑을 넘어서야 한다. 내 소설이 활발하게 해외에 소개되던 때는 바벨탑 하층부에서의 우리의 발신이 바벨탑 상층부의 주의를 충분히 끌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번역 문제도 있었는데, 『시인』에서 연좌제를 설명하면서 비유적으로 사용했던 원죄(原罪)라는 말이, 서구어로 번역되면서 기독교의 원죄, ‘Original Sin’으로 뒤바뀌곤 했다. 그렇게 종교적인 개념이 개입되면 작품의 온전한 이해가 어려워진다.
『황제를 위하여』 같은 작품도 동양적인 천명설(天命說)과 서구의 합리주의가 충돌하면서 한 인물 내부에서 생기는 의식의 착종과 혼란을 누가 번역하더라도 제대로 번역해 내기가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번역의 품질, 그에 필요한 번역자의 자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해야 할 텐데, 요즘은 확실히 우리 때와 비교하면 괜찮아진 상황인 것 같다.
에디터
이문열
관심
작가
3377@hanmail.net
1948년 서울 출생.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 ‘새하곡’, 제3회 오늘의작가상 중편 ‘사람의 아들’로 등단. 『사람의 아들』 『젊은 날의 초상』 『황제를 위하여』 『변경』 등 3000만 부 이상 판매. 동인문학상·이상문학상·동리문학상, 은관문화훈장 등 수상.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5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