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산 꼬냑(Cognac) 레미 마르땡(Remy Martin) 한병을 놓고 올리비아 킴과 나는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먼저 잔을 비운 뒤 비장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잔을 건넸다. 심판이 술을 따른다. 그녀가 시원하게 잔을 꺾은 후 다시 내 앞에 돌렸다. 원샷(One Shot) 게임에 돌입한 것이다. 주위에 자리한 동료들이 격앙된 눈 빛으로 진지한 응원을 보낸다.
내 편은 당시 동행했던 무역 업자들이었고 상대의 응원에는 술집 '카지노' 한인 여종업원들이 가세했다. 디어 헌터를 본 딴 하와이판 러시안 룰렛 게임이었다. 청량한 바닷 바람이 담배 연기 자욱한 홀 안에 밀물처럼 스며 들었다. 손님과 종업원 사이에 벌어진 게임은 단 10여분 사이에 한병을 해치움으로써 무승부로 끝나는 듯했다. "한병 추가요-” 심판의 주문에 나는 투견(鬪犬)처럼 두 팔을 벌린 채 고개를 끄덕이면서 스물 아홉 청년의 자신감을 보였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영웅 본색(本色)의 혈기로부터 물러서면 사내 대장부로서 끝장이라는 경고를 보내 왔다. '선영이'를 잊기 위해서라도 나는 계속 마셔야 했다. "너의 행복을 빌어주마-" 그녀의 이름을 곱씹으며 나는 잔을 반복해서 목안에 털어 넣었다. 식도를 타고 빈 속에 내려간 알콜은 온몸에 산불처럼 번져 나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일어서긴 했는데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동료들의 웃음소리만 들릴 뿐 나는 무어라 말을 내 뱉긴 하였으나 그 말은 미처 내 혀끝을 빠져 나가지 못했다. 와이키키 비치에 누워 바닷물에 몸을 띄운 채 어디론가 둥실 둥실 떠가고 있었다. 하와이언 웨딩 송(Hawaiian Wedding Song)이 아련히 들려오고 내 몸 위에는 알로하(Aloha) 민속 꽃다발이 드리워졌다. "꽃 향기는 물위에 흩날리고-"
서쪽편 선셋(Sun Set) 비치에는 붉은 노을이 바닷물에 투영되어 물감을 들였고
비치에 나온 관광객들은 웃음소리를 바닷 내음에 씻으며 열대수가 늘어진 칼라카와(Kalakaua) 거리에서 건강한 저녁 한나절을 즐기고 있었다. 내 귀는 하나우마 베이(Hanauma Bay)의 파도소리에 실려 세월의 물살을 거꾸로 타고 호놀루루의 다운타운으로부터 기계음을 듣는다.
하와이 한국 일보 사무실엔 금속성을 내는 윤전기에 돌려져 쉬지 않고 현지 광고면을 찍어내고 있었다. 그날도 고물 윤전기는 중도에 멈춰 서고 말았다. 검정 잉크를 온 몸에 묻혀가며 씨름을 하던 끝에 겨우 재가동에 성공한다. 구독자의 주소를 풀로 붙여가며 배달함에 넣고 나니 온몸에 기름과 땀이 뒤범벅이다. 카페에 앉자 마자 '밀러 라이트(Miller Light)' 캔맥주를 한숨에 들이켰다. 그때 헝클어진 머리를 만지며 나에게 쓰러질 듯 안긴 여인. "오빠 내꺼 한잔-"
하와이에선 팁 대신 서비스의 몫을 '내꺼'라 한다. 손님에게 몇마디 환담을 제공하고 생수를 작은 유리잔에 따라 마심으로써 서비스 10달러의 책무는 면한다. 얼마나 편리한 직업이던가. 그날 처음 만난 그녀가 중앙여고 출신(4년 후배)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연극영화를 전공했으며 공부하러 하와이에 왔다는 고백을 듣고 나는 북아현동 선배로서 묘한 책임감이 발동했다. 추운 겨울날 아침, 검정색 동복에 트레이드 마크처럼 푸른색 털모자를 뒤집어 쓴 나의 화려했던(?) 모습으로 굴레방 등교길 어디선가 마주쳤을 그녀가 아닌가. "학교로 돌아가거라, 박선영." 연일 이어지는 나의 집요한 설득에도 그녀는 돌아서지않았다"
더욱 피폐해지고 망가진 채 술과 환각에 묻혀 살았으며 오히려 그녀의 늪속에 내가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만취한 상태로 나의 와이키키 해변 아파트를 찾아왔다. "준하 선배, 그 동안 고마웠어요. 하지만 선배를 사랑할 순 없어요, 돈을 벌어야 된단 말이예요. 날 제발 놓아 줘요. 하와이를 그만 떠나 주세요” 몸부림치며 그렇게 울부짖고 나서 그녀는 휭하니 바닷가로 사라져 갔다. 가을 겨울 봄 여름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하와이 한국일보사를 뒤로 하고 작별을 고한 뒤 꼭 3년만에 나는 서울 북창동의 무역상사 해외팀장으로 변신해 전시회 참가차 하와이행 대한 항공에 다시 오르게 된다. 태평양을 날아 오아후(Oahu) 섬의 가을 풍경을 상공에서 바라보면서 나는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기억 저편에 잠복해 있던 그녀가 활짝 웃으며 푸른 바다위에 무지개처럼 피었다. 상담 업무를 마치고 기억을 더듬어 본능적으로 그녀가 일하던 옛 카페를 찾아갔다. 그녀는 이미 그 카페에 없었고 누구에게도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며칠 수소문 끝에 옛 카페의 주인 마담을 찾아냈다. 동료들이 그때 내기를 걸어왔다.
만일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날 저녁 술 대작(對酌) 이벤트에 주전 선수로 나가달라. 대신 그녀를 찾게 되면 홀 전체를 빌려 화려한 댄싱 파티를 열어 주겠다. 꿈은 일단 후자에 걸었다. "이년 전에 시집 갔지요. 마우이(Maui) 섬에 돈 많은 홀아비라던데. 중국 사람이라지” 마담 언니는 먼지 털어내듯 그렇게 읊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이며 머리 위로 거대한 함몰(陷沒)감이 몰아쳤다. 예상치 못한 충격파였다. 묘한 배신감이 솟구쳐 올랐다.
"왕서방에게 팔려가다니. 돈에 미쳐 청춘을 버린거야. 다신 널 찾지 않으마" 흥분을 채 가라앉히기도 전에 무대에서 다음 순서로 나를 호명했다. “남성 대표 김준하 선수 입장합니다. 다같이 박수~”모두들 나의 똥 밟은 표정을 즐기고 있었다. 뒤집어진 내 심중(心中)은 아랑곳 없이 박수가 쏟아졌다. 여성 선발은 올리비아. "오 케이- 받아주마" 그 날만은 술에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먹어도 지치지 않을 만한 충격의 에너지가 충만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우매한 호기(豪氣)는 결국 와이키키 해변가에 물오징어처럼 쭉 뻗어 눕는 것으로 끝장이 났고 올리비아의 멀쩡한 마무리 동작에 전원일치 판정승으로 게임은 막을 내렸다. 밤하늘에 아련히 떠오르는 선영의 얼굴에 나는 계속 고무 지우개를 대고 박박 문지르고 있었다. "철딱서니 없는 총각 아저씨 정신 차리세요-" 은하수 달빛이 순정에 쓰러진 철부지를 비추며 쓰다듬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속에서 올라오는 신물을 코끝으로 배설하며 모래밭에 입술을 파 묻고 힘없이 주절댔다. "선영아, 돌아와야 해, 북아현동 언덕으로-"
사진 : 한성고등학교 뒤운동장에서 바라본 중앙여고 교정의 모습
첫댓글 모라고 위로를 해주고 싶은디..... 나는 글쟁이가 아니라서..... 사진속에서라면 모를까...
상권, 반갑다. 하와이안 웨딩송을 들으며 그 당시를 회상한다. 그래도 지금까지 그녀가 날 기억하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중앙여고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뒤운동장이 떠오르고, 또한 중학교 시절 땅거미가 지도록 책가방으로 골대를 만들어 주먹만한 고무공을 놓고 방과후 축구에 땀 흘리던 친구들 생각난다. 몸이 아프다며 중3때 고향땅 성환으로 훌쩍 떠나갔던 친구 박병래, 녀석이 그립다. 누가 소식 아시는가.
그래, 병래 이름이 이제야 생각나네...병래가 그렇게 나훈아가수를 좋아했던것 같던데.....!준하야 세범이 마나서 잘보냈냐.너만나기 하루전에 나와 전화통화했단다.정석이도 같이 갔데며...소식좀 전해라...!
그래, 맞구만, 영준. 나훈아 노래를 또한 구성지게 잘 불렀지. 당시의 물레방아 도는데- 였을걸세. 세범 정석 잘 만나서 회포를 풀었네. 4명 여성 돌씽(돌아온 씽글) 부대를 초청해 노래방 공연까지 잘 치렀다. 여름이 오면 네노래가 생각난다. 언제나 들어볼런가. 명근이도 다녀갔다며. 그녀석 보고싶네. 사진보니 쬠 늙었더구만. 세월은 피할 수 없는 것. 어쨋든 내년여름엔 함께 바닷가에 피서 가면 좋겠네. 리사이틀 때불렀던 노래 연습 많이 해둬라. 금희는 음악공부 잘 하는가?... 훗날 성악가수로 대성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