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리를 떠나 약 40분정도 배를 타고 나폴리항에 도착했다. 지금 상태에서 세계 3대 미항이라는 과거의 명성은 어울리지 않았다. 소렌토가 나폴리보다 훨씬 더 매력있었다. 다만 인천항처럼 물동량이 많은 항구였다.
항구 앞에 '카스텔 누오보(새로운 성이라는 뜻인데 별로 새로와 보이지 않는다)'라는 고성이 보인다. 현재 박물관으로도 사용된다고 하나 그 곳을 들리지는 못하고 일정상 로마를 직행하게 되었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 보니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이 대단한데, 그 곳은 들리지 못한 것이 아쉬었다. 나폴리에서 로마로 고속도로로 달려보니 주위에 공장 창고도 많아 인천, 부평 부근의 공업지역을 연상시킨다.
로마로 돌아 와서 다시 같은 호텔에 머물렀다. 수영장도 있고 다른 시설은 큰 불만이 없었다. 다만 이 호텔 3박동안 하루 12유로(약 2만원)를 지불하고 인터넷을 접속하려 하였는데 느려서 이메일도 잘 연결이 안되어 짜증이 났다. 호텔이 있는 지역에 인터넷 전용선이 아직 안들어 와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보급이 잘 된 것에 대해 긍지를 가져야 한다.
비행기 타기 직전에 찍은 위 사진은 뒤 가게의 간판을 보면 따로 설명이 필요없다.
유럽을 떠나기 위해 로마 공항에 도착해서 마나님이 아쉬운지 공항에서 촌스럽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한다. 바쁜 일정에 힘들었지만 막상 떠나자니 아쉬움이 남았나 보다.
이번 유럽여행을 총정리하여 본다. 둘째가 대학을 들어가는 것을 기념하여 우리 가족 5명이 2009년 8월6일 뱅쿠버에서 출발하여 8월 15일까지 유럽현지에서 8박8일로, 런던, 파리, 제네바,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폼페이, 소렌토, 카프리를 다니는 강행군을 하였다.
가족들에게는 처음 하는 유럽여행이었다. 나도 같이 다니면서 처음 본 것이 많았다. 전에 파리를 일로 두번 가면서도 줄서기 싫어 에펠탑은 못 올라가 보았는데 실제 올라가 보았더니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이미 블로그에 올리지 아니한 몇개의 사진을 추가로 올리면서 이번 유럽여행을 다시 정리해 본다.
카프리섬 정상(해발 589m)위에서 바다를 내려다 본 모습이다. 8월 지중해의 강한 햇볕아래 남색 바다위에 떠 있는 요트가 흡사 고기떼와 같이 보인다. 카프리는 유럽의 부호들이 별장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실 능력이 되면 지중해를 바라 보는 절벽위에 집 하나 가지고 싶은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돌아오라 소렌토로'라는 가곡으로 유명한 소렌토가 나폴리보다도 더 지중해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 주었다. 다시 소렌토로 돌아 올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바티칸 광장 중앙에 이집트에서 가져 온 오벨리스크 위에 십자가를 설치하였다.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바티칸 박물관 등을 다니면서 서양문화의 뿌리를 찾아 보려 하였다. 그런데 런던, 파리, 로마 등 큰 도시에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상징으로 광장에 설치하여 놓은 것을 발견하였다. 즉 지금의 유럽문화의 건축술이 이집트를 원조로 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오벨리스크의 사선으로 올라 가는 미묘한 기하학전인 미감은 절묘하다.
대영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이집트 미이라의 모습이다. 약 3000년전의 미이라가 아직도 살아 있는 모습같다. 비록 이집트의 기후가 건조하여 미이라를 보존하기 좋다는 것을 감안하여도 이런 미이라를 준비한다는 것은 의료 생물학적인 지식이 뒷받침되었다고 본다.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그리스 시대 유물품
그리스는 이집트를 이어 서양문명의 원류가 되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대영박물관에서 파르테논의 신전의 부조, 루브르에서 밀로의 비너스, 나이키 상 등을 보았다. 나중에라도 이집트와 그리스는 방문해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위 사진에 보이는 바티칸 박물관도 멀리 이집트,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르네상스 시절까지 진기한 유물을 거의 건물에 넘칠 정도로 보관 전시하고 잇다. 보관된 유물의 규모는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에 뒤지지 아니한다. 로마에 가면 꼭 들려 볼 장소이다.
과거 로마의 원로원 등 시가의 중심지이다. 그러나 지금은 흩어진 유물을 일부 다시 모아 놓았을 뿐 인걸은 간데 없다.
설명이 따로 필요 없는 콜로세움이다. 철근 콘크리트도 없이 어떻게 이러한 큰 건축물의 건조가 가능하였는지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된다.
로마와 폼페이의 유적을 본 것은 깊은 인상을 주었다. 약 2000여년전의 로마시대의 사람들이 사는 생활수준이 단순 건축물의 크기 뿐 아니라 상하수도를 다 갖추어 놓고 있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오히려 나폴리를 지나면서 고속도로 부근에 쓰레기를 치우지 못해 방치해 놓은 것을 보고 남부 이탈리아는 로마시대가 지금보다 나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전 폼페이에서 사용한 상수시설로 지금은 물을 절약하기 위해 수도꼭지를 달았을 뿐 아직도 그대로 마실 수 있다.
로마가 멸망한 후 이탈리아는 게르만 용병의 약탈, 훈족의 침입 등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그러한 환경에서 갯벌 위를 간척하여 도시를 건설하고 무역의 중심지가 된 베네치아도 인상적이었다. 우리 가족도 베네치아에 가서 곤돌라를 같이 타면서 뜨거운 태양아래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기후 온난화의 영향으로 바닷물이 상승하여 베네치아는 위기 상황이라고 한다. 그래서 해수면의 상승을 막는 거대한 댐을 건설하는 모세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라고 한다. 현대의 이탈리아인이 자신들의 조상보다 더 현명하게 역경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근대 휴머니즘의 발상지로 사실상 지금의 유럽문화를 다시 일으킨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피렌체의 방문도 기대 이상이었다. 중세 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특히 위 사진에 보이는 피렌체 대성당은 따로 채색을 한 것이 아닌 자연 대리석으로 색깔을 낸 것이 절묘하였다. 너무 화려하지 아니하면서도 자연스러움에서 균형감을 찾는 르네상스의 시대 사상이 반영되었다고 생각한다.
밀라노의 대성당은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이다. 자연대리석 질감을 이용한 정교한 조각은 이탈리아 사람들의 미감을 그대로 보여 준다. 밀라노의 패션에 대한 명성은 오랜 전통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밀라노 대성당 옆에 있는 쇼핑몰을 보면서 이탈리아가 디자인 분야에서 아직도 세계에서 으뜸인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쇼핑몰의 천장, 벽, 바닥을 고전미를 지키면서도 고급스럽게 치장한 것에 경탄하였다. 앞에 보이는 맥도날드가 내가 전세계 다니면서 본 맥도날드 매장중 가장 고급스러운 것 같다.
이탈리아는 남부와 북부간의 격차가 너무 큰 것으로 보인다. 북부는 프랑스, 영국, 독일 등 다른 유럽 선진국에 많이 접근하였는데 남부는 고대 시대를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제네바 레만호수에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우리집 전속 모델
이번 여행중에 스위스는 제네바에 들려서 1박을 하였다. 검소하면서도 깔끔한 거리 풍경을 보여 주었다. 그래도 롤렉스 시계,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 등 명품이 유명한 것이 스위스다.
바티칸 궁전에서 아직도 스위스 용병이 지키는 것을 보고 과거 자원이 없어 남의 나라에 나가 용병을 하고 먹고 살았어야 되는 슬픈 역사를 아직도 생각하게 하였다.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중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마리 앙뜨와네뜨 왕비를 끝까지 지키다가 500여명의 스위스 용병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스위스는 유럽에서 가장 잘 정돈되어 있으면서도 실속있는 부유한 국가이다. 자체 방위력을 굳건히 하면서도 영세 중립국으로 주위 국가와 원만히 지내고 있다. 우리나라가 장기적인 국가발전 전략을 수립할 때 모범이 되는 국가가 스위스라고 생각한다. 이 블로그에 별도로 '스위스를 본받자'라는 글이 있다. http://blog.daum.net/shkong78/10
이탈리아에서 알프스를 올라 반대 쪽 몽블랑을 구경하려 하였는데 산 정상부근에 구름이 가려 실패했다. 그래도 한여름에 빙하로 덮인 알프스를 오른 것은 좋은 피서 방법이었다. 해발 2100m 중턱에서 알프스 산들을 배경으로 한 사진에서 가족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인다. 위 사진이 지금 우리 마나님 컴퓨터의 배경화면이 되었다.
현재 시점에서 도시의 전체적인 균형미를 보면 파리가 제일 압권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에펠탑을 올라가 본 파리 시내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에펠탑에서 내려다 본 개선문 부근의 모습이다. 개선문 부근에 5개의 도로가 교차한다. 부근에 있는 상젤리제 거리가 고급 쇼핑가와 음식점으로 유명하다.
에펠탑 밑에서 바로 찍은 모습이다. 그냥 이 사진만을 보여주고 무엇인가를 퀴즈로 내면 답을 맞추기 쉽지 아니할 것이다.
베르사이유 궁전을 보기 전에 그렇게까지 화려할 줄은 기대를 하지 아니하였다. 당시 유럽의 최대 강국으로서 그러한 궁전을 건축할 수 있었기에 지금도 프랑스인의 자존심이 살아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베르사이유 궁전 내부의 화려한 상젤리제와 천정화, 벽화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준다.
런던 타워브리지를 배경으로 한 여름에도 선선한 날씨라는 것을 복장이나 표정에서 알 수 있다.
역사순서로 다시 정리하다 보니 여행순서하고는 역순이 되었다. 20세기초까지 소위 해가 지지 않는다고 불리운 세계 최강국이었던 대영제국은 지금도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과거의 영화를 다시 찾기는 쉽지 아니하다. 제조업의 경쟁력을 잃고 금융산업에 너무 의존하기 때문이다.
과거 영국의 발전과정을 보면 개방과 혁신이 있었다. 햇볕이 부족하여 농사도 잘 안되는 땅에서 안주하였으면 대영제국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외로 진출하여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무역을 하고 내부로는 증기기관의 발명 등의 혁신으로 근대산업국가가 되면서 의회정치를 발전시킨 국가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세종시, 4대강사업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 큰 공사판을 벌려 내부 잔치를 할 시점인가 냉정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세계 국가들이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이 상황에서, 지금은 장기적인 국가경쟁력 강화와 국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발전방안을 수립 실행하여야 하는 결정적인 시점이다.
우선 IT, 자동차, 기계, 그린에너지 산업 등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산업들을 정부가 뒤에서 연구 개발을 지원하여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해외자원확보를 위하여 아프리카나 남미 중앙아시아 등의 자원부국에 과거 우리나라의 개발경험을 전수하여 주면서 그 댓가로 지하자원에 대한 권리를 받아 오는 것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 세종시 및 4대강 사업을 둘다 일단 중단한 후, 국회에서 여야가 관련 전문가를 초빙하여 6개월 이상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토론을 진행하여야 한다. 생방송으로 국민이 국회의 토론과정을 직접 보면서 최선의 방향에 확신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국민적인 합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만약 MB가 수천년 내려온 우리 민족의 젖줄인 4대강을 국민적 합의 없이 자기 독단으로 손을 대겠다고 한다면 MB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족들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이공계 진학이 더 많아야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큰 아들은 일리노이 대학(어바나 샴페인)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하고 있고, 이번 여행을 마치고 큰 딸도 캐나다 최고 명문대인 토론토대학 화학공학과를 들어가서 공부를 시작하였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유럽을 직접 본 경험에서 자극을 받고 내 자녀들이 더 열심히 노력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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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많이 해 보고 많이 고치자 원문보기 글쓴이: 공석환
첫댓글 유럽여행에서 찍은 사진이 만장이 넘는데 일부 다시 넣어 총정리를 해 보았다.
단란한 가족사진과 배경의 조화, 사진의 상세한 설명등 잘보고 감세.
석환이가 정말 부지런하구나! 사진정리하는것도 일인데..이렇듯 복습까지 시켜주고..! 다음 행선지는 남미나 중국이 되겠구나!
우리가 덕분에 구경 잘했다~ㅎㅎ
석환이덕분에 유럽여행 잘 해쓰~~~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