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피정을 다녀가신 손 가브리엘 님과 대부 이 후안디에고 님의 따스한 미담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로마 12.2] |
오늘 인천에 있는 역사가 살아 숨쉬는 순교자의 터, 해안성당에서 부족한 종이 하느님께서 내게 베푸신 섬세하고 정교한 은총에 대한 체험 증거를 하고 왔습니다. 세 가지 사례중 한 가지 딸 아이의 대학등록금 사건 을 하느님 자랑으로 올립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 부터 십 사년 전 일입니다. 당시 세상 풍파에 견디지 못하고 폐인이 되었던 몸, 친구의 권유로 봉사자의 길로 투신하게 되었습니다. 직업도 갖지 아니한 채 시립병원에서 호스피스 봉사자로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올인 하였습니다. 당연히 소득은 없고 때문에 재정적 궁핍은 표현치 못할 만큼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내색치 않았습니다. 자선과 선행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주님께서 저의 시련을 외면치 않으시리라는 단순하지만 확고한 믿음만은 제가 지니고 있던 때 였습니다.
그 무렵 나에게 최대의 위기가 닥쳤습니다. 아, 글쎄 딸아이가 대학입시에서 모대학에 불운하게도? 덜컥 합격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무일푼이고 능력없는 아빠의 처지를 익히 잘 알고 있던 딸도 난감해 했습니다. 기뻐할 수도 낙심할 수도 없는 희비의 중간지대, 나 역시 경사임에도 부담이 뒤따르니 걱정이 앞섰습니다. 등록금 납부고지일이 보름정도 가까이 다다랐을 무렵 그러니까 시기적으로 이맘 때 였을겁니다. 어렵게 딸아이가 물었습니다. '아빠, 나 대학에 갈 수 있어?' 하고 묻는 말에 내가 막연히 그냥 나온다는 말이 '걱정마라 아빠가 기도하잖아!' 그렇게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날짜는 멈추지도 않고 브레이크 없이 질주, 내일 오후 네시까지 국민은행에 입학등록금 374만원을 입금해야 되는 바로 전날입니다. 아침, 집을 나서는 제 등 뒤에 딸아이의 반 원망어린 물음이 던져졌습니다. '아빠~~. 됐어? 왜 말이 없어.' 하는 것입니다. 순간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고함치듯 큰 소리로 '아, 글쎄 걱정말라니까! 아빠가 기도하고 있다고 했잖아.' 그리고는 문 밖을 나섰습니다.
고난은 축복이라 했던가. 말 못하는 불안감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내 입에서는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 자나깨나 밤낮없이 묵주기도가 오토매틱으로 중얼거려 지고 있었습니다. 곁에서 이런 나를 지켜본 동네친구가 한 마디 툭 내뱉습니다. '이런 정신나간 놈, 기도한다고 돈이 쏟아지냐? 쌀이 나오냐?' 틀린 말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애비가 자식 등록금을 마련할려면 돈을 벌든가, 아님 빌려서라도 보낼 생각은 않고 마감일이 코 앞인데 기도한다니, 저도 당시 번민에 싸였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갈피가 잡히지 않을 만큼 결단에 혼선이 빚어져 머리 속이 하얗게 멎었습니다. 그 때 내면에서 이런 기도가 터져나오며 나를 보게 했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요. 아멘.
그리고는 생각 했습니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봉사자의 삶에 투신했던 육년 세월을 접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 일을 할까? 아니다. 그럴 순 없다. 이는 사람과의 언약이 아니라 봉사 초기 내 스스로 예수님께 맹세한 일이기에 이 길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럼 남에게 빌려서라도 이 고비를 일단 넘겨볼까? 이 또한 아니다. 내가 남에게 손을 벌린다면 내 망신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로 인하여 초라해지고 비참해지실 것이다. 그럼 어찌할까? 그래 방법은 하나야. 기도하는 것. 안 되어도 할 수 없지 뭐, 아직은 딸애가 대학에 들어가지 말라는 하느님의 응답으로 받아들이면 돼지. 이렇게 마음을 내려 놓으니 한결 몸 마음이 가벼워 졌습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낮에 병원에서 봉사하고 저녁엔 마침 월요일이었기에 청담동성당에서는 성령기도회가 있는 날, 성당을 향하면서도 내 입에서는 호흡하듯 자연스레 기도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주님, 저를 돌보소서,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주님 저에게 자비를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하며. 이런 근심걱정이 없었다면 내가 요즘처럼 이렇게 열심히 하느님만을 의지하며 기도할 수 있었을까? 아! 그래서 시련은 곧 내게 축복이구나.
저녁 기도회에서 찬송도 부르며 통성기도도 하고 뒤이어 이어진 말씀강사의 체험담을 듣고 있을 때 핸폰의 진동소리가 ~~ 살짝 확인했더니 실로 오랜만에 나의 대자 손가브리엘 형제가 대부님께 상의할 것이 있다고 만나자는 내용이였습니다. 기도회중이니 끝나고 연락한다고 답신을 보낸 후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시간은 밤 11시가 가까워 갈 무렵이었지요. 오랜만에 함께한 자리였기에 동안의 안부도 주고받고 하며 일상적인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식사가 끝나 갈 무렵 가브리엘 형제가 마치 잊고 있었다는듯 '참, 대부님 실비아는 어떻게 됐어요? 학교?.' 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냥 시큰둥하게 '어, 됐어.'하고 단답형으로 대꾸했더니 어느학교냐 묻고는 '그럼 등록금은 어떻게 하셨어요?'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응, 아직~~'하고는 얼버무려 대꾸하였더니 언제까지냐? 얼마냐? 묻길래 나는 또 그냥 회피할 수 없기에 사실대로 힘없이 대답했습니다. '낼 네 시까지가 납부마감이라는데, 보니까 금액은 374만 원이더구나.' 그 때, 얘기를 듣고 있던 대자 가브리엘 형제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 보며 '아니 어떻게 이럴수가, 세상에 신기하기도 하네요. 하면서 대부님! 사실은 오래 전부터 어느 상가에 투자해 놓았던 돈이 좀 있었는데, 그 놈들이 몇 년을 질질끌고 애를 먹이더니 나머지 잔금 삼천 팔백만원을 오늘 입금했거던요. 그래서 어차피 날린뻔한 돈인데 다행히 돌려받게 되어 하느님께 너무 감사해서 그 십분의 일인 380만원을 어디에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가장 어려운 공동체를 추천해 달라고 대부님께 전화했었는데,' 하며 잘 됐다는듯이 활짝 웃으며 나에게 지금 납부 고지서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안주머니에서 오래도록 넣고 다녀 너덜해진 대학입학금 납부고지서를 꺼내 보였더니 나꿔채듯 내 손에서 빼어갔습니다. 제가 낼 시간 전에 은행가서 납부하고 전화드릴께요, 걱정하지 마세요.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딸 실비아에게도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 달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했습니다. '오늘 제가 오랜만에 대부님께 전화 드린 것은 하느님의 오묘하신 뜻이었네요.' 자정을 넘어 내집으로 향하는 내 영혼은 깃털되어 아파트 단지 안을 날아 올라 춤을 추었습니다. 또 역시 내 속에서는 '은총이 가득하신~~.' 기도가 터져 나왔다. 이제는 탄원기도가 아닌 감사기도로!
-성경속 내 삶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예수님 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그래서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마태 14.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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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나선 이 몸, 벼랑 끝에서 걱정의 노예되어 기도의 끈을 놓았다면, 예수님만을 의지하며 그분 만을 바라보던 내가 '정신나간 놈' 이란 친구의 멸시에 시선을 돌렸다면 나도 베드로 처럼 물에 빠져 지금까지 세상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것이다. 막바지 걱정의 벼랑 끝에서 두려워 쭈빗쭈빗 하였다면 나는 추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내 자유의지를 실행에 옮겼다면 스승 망신, 내 망신 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남는 내 문패는 빚쟁이 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벼랑 끝에서도 바보처럼 그분만을 믿었다. 그리고 결과를 내 뜻에 두지 않고 내달렸다. 그리하였더니 하느님은 천사를 보내주시어 내게 날개를 달아 주셨다. 벼랑 끝에서 날 수 있는 에너지는 기도와 자선과 선행이었음을 성경을 통해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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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3장 16절 말씀입니다.
‘선행과 나눔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것들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입니다.
토빗기 12장 9절 말씀입니다.
‘자선은 사람을 죽음에서 구해 주고 모든 죄를 깨끗이 없애 준다. 자선을 베푸는 이들은 충만한 삶을 누린다.’
집회서 29장 12-13절
‘네 곳간에 자선을 쌓아두어라. 그것이 너를 온갖 재앙에서 구해 주리라.
자선은 튼튼한 방패와 단단한 창 이상으로 너를 위해 원수와 맞서 싸워 주리라.’
출처: 소금창고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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