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에 24분이 참석하였습니다
2026.8.13(음7월 초하루 분향)
재천정 보수한 모습
재천정 수많은 시집과 유집 등이 있어서 별도의 책을 발간하는 것도 후손으로 고려해야 함을 강조 하심
반계 이양오 문학비
石溪書院 研修
1. 藝之前功不爲小矣 : 이예는 전일의 공로도 작지 않는데.
今聞此言甚嘉之 : 이제 이 말을 들으니 매우 가상(칭찬)하게 여긴다. (세종) 광토왕비문체
2. 馬島之功 : 대마도 정벌의 공은
李藝最多 : 이예가 제일 많다 (조말생 병조판서)
조말생은 자신의 관직 후배인 이예(李藝, 1373~1445)와 사적으로 친밀한 사이로 자주 술을 같이 마시며 시를 주고 받던 사이였다.
특히 조말생은 찬치를 쓸 정도였는데 이는 조말생과 이예가 사적으로 매우 가까운 관계였음을 알 수 있음을 반증한다.
아래는 조말생이 이예의 외모를 칭찬하며 남긴 당대의 시로 현대까지 내려오고 있는데 이처럼 조말생은 시적 감각이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다.
鶴坡先生遺像讚(학파선생 영정 찬미 撰者)
趙末生(조말생 1370-1447) 世宗文臣, 領中樞院事
稟得山川 靈氣有盛(품득산천 영기유성) 품성을 산천에서 얻었으니 신령스런 정기가 넘치고
文武兼才 忠義定性 (문무겸재 충의정성) 문무를 겸전하고 충의의 성품을 품었도다.
功幹崇高 形端容正 (공간숭고 형단용정) 귀한 공 높은 지위에 형체는 단정하고 용모도 바르구나.
遺像在世 觀者起敬 (유상재세 관자기경) 남긴 상이 세상에 있어 보는 이 마다 공경심을 갖게 하네.
석계서원 설명(이수원께서 설명)
1. 石溪書院(석계서원): 서원 명칭, 구 명칭은 용연사라고 하다가 정조 임인년(1782) 이곳으로 이건하였다. 현재 서원 소재가 석천리 석계 마을 이었다. 부사 李忠翼(이충익)의 글씨.
2. 踐實齋(천실재): 東齋(동재), 실상을 진실로 실천한다.
판서 李翊會(이익회)의 글씨.
3. 致知齋(치지재): 西齋(서재) 대학 8조목에서 나온 말. 格物(격물). 致知(치지), 誠意(성의), 正心(정심), 修身(수신), 齊家(제가), 治國(국), 下(평천하). 격물치지: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연구하여 앎을 이룬다. 판서 이익회의 글씨.
4. 必東門(필동문): 東流水(동류수) 萬折必東(만절필동) 동류수(황하)는 만절을 굽이쳐서 끝내 동쪽으로 흐른다.에서 나온 말.
李璋燦(이장찬) 선조님의 글씨.
5. 尙忠祠(상충사): 사당. 충을 숭상한다. 최신석의 글씨.
6. 敬守堂 (경수당): 항상 겸손한 공경심을 지킨다. 좌향(신좌), 이익회의 글씨.
7. 慮國門(려국문): 충숙공 諡狀(시장)에서 나온 말.
慮國忘家曰 忠(여국망가왈 충), 執心決斷曰 肅(집심결단왈 숙).
8. 在亭(재천정): 在日 逝者如斯夫 不舍晝夜(재천상왈 서자여사부 불사주야) 선생께서 흐르는 강물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세월은 이처럼 흘러가는가, 밤낮을 가리지 않는구나.
9. 如斯軒(여사헌) 從吾寮(종오료): 재천정의 방 이름.
10. 神道碑(신도비): 조선시대 종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낸 사람의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우는 비석. 시조 단소 앞에 1863년 세움.
글 쓴분들의 소개
李璋燦(1808~1886): 의금부도사.
李翊會(1767~1843): 조선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1811년(순조 11) 문과에 급제, 1835 년 대사헌, 1843년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글씨에 능하여 문익점(文益漸)의 신도비(神道碑)를 썼다.
李忠翼(1804~?): 조선의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蔭職(음직) 1858년 울산부사. 양명학(陽明 學)을 연구했으며 해서(書)와 초서(草書)를 잘 썼다.
崔錫信: 士人. 경주 양동의 無堂(무첨당 이씨 종가)과 書百堂(서백당 손씨종가) 글씨를 씀.
석계서원 분향 후 강연 요지
회의·강연 내용 요약
1. 문중·문화재 관련 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해야 한다는 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