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드럼통 같기를
요즘엔 그런 모습이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아직도 어둑어둑한 시간인데도 날일(일용직)을 구하는 사람들이 시장 공터에서 자신을 불러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고 늦가을로 접어들면 사람들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허리가 잘리어지고 여기저기 구멍이 뜷린 드럼통에다 폐목재로 불을 피워 추위를 쫒아내고는 했습니다.
날일을 찾아 나온 가난한 사람들은 식구들의 생계를 걱정하며 허름한 옷 사이로 파고드는 추위를 이기고자 공터 가운데 불 피워진 드럼통 주위에 웅크리고 둘러서서 불을 쬐며 알지 못하는 누군가 불러줄 때 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불을 쬐며 기다리다 한 사람 두 사람 일을 찾아 떠나기 시작하여 마지막 사람이 떠나가면 드럼통 안에 불도 점차 꺼져갑니다. 그리고 나면 사그라진 재를 가득 품에 안고 싸늘하게 식어진 철판을 드러낸 드럼통만이 덩그렇게 놓여있게 됩니다. 혼자 놓여 진 드럼통은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괜한 발길질을 당하거나 아무의 관심도 받지 못 한 채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둠이 찾아오면 외로운 사람들을 덥혀줄 준비를 시작합니다.
드럼통은 지난날 화려하게 페인트로 단장하고 귀한 것들을 가득 채워 창고에 차곡차곡 싸여 있었는데 이제는 구멍이 숭숭 뚫린 채 녹이 슬고 찌그러진 모습이 지난날의 화려함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고철덩이에 불과하지만 가장 힘든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녹여 주기 위하여 거친 나무개비를 가슴 가득히 품고 불을 피워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줍니다.
세상이 점점 험해져 갑니다. 이제 2024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2024년 출발하는 사람들이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드럼통처럼 저와 우리교회가 따뜻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도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와 힘을 얻고 용기를 얻었다면 그것이 보람이고 소중한 가치입니다. 요즘은 저마다 자신의 대단함을 뽐냅니다. 그러나 주님이 가르쳐주시고 보여주신 영성은 자신을 제물로 내어주신 헌신의 영성임을 묵상해 봅니다. 저는 그것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내안에서 나를 태우는 불을 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도 주를 따라 그렇게 내가 사그라질지라도 그것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것임을 기억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