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깊숙한 숲으로 가기 위한 어귀마다 산사가 있는 곳이 우리나라의 산천이다. 의례 그런 곳은 우선 양지바르고 산세와 어울리는 평지와 계곡이 구분되어 있고 산사가 앉은 뒤 배경으로는 당연히 괴암 괴석을 중심으로 산의 어깨가 양옆으로 동무처럼 펼쳐지면서 길게 선을 이어나가는 절경이 바로 절 집의 터가 된다. 그리고 본찰을 중심으로 시야가 좋은 곳곳에 암자가 있고 석간수 방물 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삼라만상을 깨우는 종소리처럼 들리며 한 모금으로 산사를 찾은 과객의 심신을 정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실기를 한 부동산 정책으로 벼락같이 가파르게 올라버린 아파트 가격은 결국 무슨 지구로 개발이라는 정책을 쏟아 내어 인간의 문명이라는 허울 아래 자연을 파괴하는 새로운 그림을 그리려는 지역이 떠올랐다. 사라지기 전에 옛 모습을 보고 담아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자연에서 피고 지는 꽃만으로도 충분하련만 절가에서의 가르침에 합당한 내용을 지니고 있는 여염집에서나 볼 수 있는 꽃들이 절간 곳곳에 심어져 절에서 볼 수 있는 꽃들이 많다. 그리고 절의 중심에 못을 두어 수련과 연꽃을 키우기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깊은 산중에서 발원하여 아래로 흐르는 계곡을 이용하여 일주문을 두고 그리고 潭(담)이 있는 곳을 절묘하게 이용하여 가르침의 경전의 이름을 빌려 다리를 놓고 속계와 선계의 구분을 짓고 담의 이름이나 다리의 이름을 지어 놓는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절기마다 피는 꽃이 군락을 이루는 곳이 많아 오늘 찾게 된 것이다. 황매가 다가오더니 붉은 명자꽃이 덤불에 가려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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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영웅을 모셨다는 대웅전을 피하고 바로 산속으로 길이 열린 계곡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자 곳곳에 피나물 꽃이 지천으로 다가 왔다. 이 녀석들 보다 더 높고 빨리 피는 꽃은 동자꽃인데 하며 피나물꽃 삼매경에 빠졌다. 동자꽃도 노란색이다. 모양도 엇비슷하고.. 그러나 줄기를 꺾어보면 피나물꽃은 피같은 물이 묻어나 피나물이라 부르는 것이다.
봄에 산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하경이 있는 여러해살이풀로서 줄기를 자르면 붉은색의 액이 나온다. 상처가 났을 때 피가 나는 것에 빗대어 피나물이라 흔히 부르나 매미꽃(Koreanomecon hylomeconoides Nakai)과 유사하여 노랑매미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이영노, 1975). 유액은 붉은색이나 꽃은 노란색이고 열 편이 4개로 양귀비과의 전형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다.
본 분류군이 속한 피나물 속은 전 세계에 약 2종이 있고 모두 동아시아 지역에 분포한다. 본 분류군과 마찬가지로 붉은색 유액이 나오는 매미꽃은 피나물 속에 분류하기도 하나 2007년 발간된 한국 속 식물지에서는 매미꽃을 처음 기재되었던 대로 독립된 속으로 처리하여 매미 꼭 속에 분류하였다(Flora of Korea Editorial Committee 2007). 피나물과 매미꽃 둘 다 노란색의 꽃이 피고 유액이 붉은색이나, 매미꽃에 비해서 잎을 단 줄기가 있으며, 꽃은 숫자가 적고, 일찍 피므로 구분된다.
전국의 산지 및 계곡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애기똥풀(Chelidonium majus L. var. asiaticum (H. Hara) Ohwi)과도 비슷한데, 애기똥풀은 유액이 노란색이다.
식물체에 알칼로이드 화합물을 많이 분비하며, 특히 벤조 펜안트리딘 계열의 알칼로이드가(benzophenanthridine alkaloids)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화합물은 항염증, 진정제, 항균, 항종 양 등의 약효를 지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Kang et al. 2003).
약 1km 계곡 곳곳에 펼쳐진 피나물꽃 노란빛이 정서적으로 포근함으로 다가 온다. 곤충들의 도움으로 개회되고 개체수도 늘려 가는 꽃은 대부분 인간에겐 친근함을 전해 온다. 박꽃, 호박, 오이꽃 등도 노란색이다. 화려하면서도 진정성을 감추고 있는 식물인 야생화 대부분은 봄의 절기를 이용하여 자태를 우아하게 보여주기 시작한다. 자신을 찾아주는 곤충들을 유혹하기 위하여 색, 꽃술, 잎모양 등은 진화해 왔다. 나무와 풀은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능력을 지닌반면 동물들은 정반대다. 남의 것을 쟁취하여 자신이 필요한 것들을 해결 할 수 있는 조건이니 인간이 다가 가는 곳마다 분쟁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먹잇감은 하나인데 먹으려는 자가 많으니 늘 소요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보편적인 방법으로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여 필요한 만큼 나눔이 이루어지면 해결되겠지만 이 또한 어림없는 일이다. 문명 안에서 분명하게 존재해야 하고 복음이니 경전이니 하며 거룩하고 공번된 가르침이 난무하지만 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이 동안 명확하게 전해 오고 있다. 서로의 영역확장을 위하여 시작된 종교적 싸움이 어느세기를 막론하고 지금도 전쟁은 진행 중이다. 나는 풀과 나무 앞에 서면 스스로 인간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진다. 풀과 나무들은 소통을 하기 위하여 색과 향기를 통하여 친화하고 소통하며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 나간다. 결국 피나물꽃과 함께 어울리며 견딜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위선을 느끼며 자책하였다. 슬쩍 소매가 감춰 놓은 손목시계의 바늘을 보기 위하여 겆어 올렸다. 우선 단침을 본 후 장침을 살피니 4시를 넘어 서고 있었다.
계곡 돌무더기 사이를 빠져나와 산비탈로 다가섰다. 그리고 정비된 S자형 산 길을 돌다( 산 길이 S자 형태로 이어진 이유는 옛적 적이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만들어진 길이기 때문이다. 올라오는 적을 화살로 공격한 후 숨을 수 있는 지형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들별꽃 군락을 만났다. 마침 곤충이 찾아들어 열심히 꿀을 빨고 있는 모습이 보여 속사로 여러 장을 찍어 두었다. S자형 참호의 성격과 비슷한 길을 거슬러 오르자 비로소 보루 형상의 전망이 펼쳐지는 능선에 서게 되었다. 연둣빛 봄의 물결이 봄의 깊은 수렁으로 침잠시켜 준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녹류(綠流)에 두둥실 실려 봄바다로 뱃놀이 떠나게 되었다. 한참을 그렇게 즐겁게 보내다 다시 또 새로운 능선상에 서게 되었다. 그때 한 움큼 봄바람이 봄햇살 희롱에 맴돌다 모자챙을 할퀴고 지나갔다. 끈으로 조여 맨
색안경 조임 끈을 풀고 벗어버렸다. 분홍빛 바탕에 봄을 잊으려는 진달래 가지에 달린 새잎 올라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진달래 잎이 달리고 휘감으면 봄은 저만치 달아나기 마련이다.
봄을 배웅하는 마음에 합류하며 서서히 안녕~~~! 안녕이란 소리를 크게 질러 버렸다. 에코가 맴을 돌다 사라진다. 그러다 작은 샘에 도착하였다. 이곳 물은 참 안정적이다. 수량도 그렇지만 물맛도 아직 변하지 않었다. 샘에서 물을 길어 컵에 담아 들고 샘에서 벗어나 우선 갈증에 마르고 마른입에 가심을 해주었다. 텁텁함이 한순간에 청량감을 도모해 주었다. 그 질이 공기와 같었다. 보는 시선의 맑음에도 어울렸다. 보고 듣고 느끼는 촉이 부드럽고 편하면 생각과 행위도 순치되는 법이다. 족히 한 400여 년 된 느티나무 밑에 앉아 준비해 간 커피를 꺼내 마셨다. 도시의 향이 나를 외람되게 평가한다. 허기를 다스리려 생과자 몇 개를 씹어 넘겼다. 가식적인 달콤함이 순간 정적을 흔들어 놓는다. 그렇게 앉아 소일하다 샘가에 어느 해인가 한 스님이 심어 놓은 앵두나무에 하나 둘 피기 시작하는 앵두꽃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애를 쓰는구나, 엄동을 이겨내고 이렇게 고운 꽃을 피우느냐 얼마 고생이 많으니, 고맙다 정말 고맙다. 참 보기가 좋구나, 너를 통하여 삶의 이치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구나. 박새 한 마리도 다가와 부리와 날개 짓으로 봄 인사를 하고 다가오더니 인사 값으로 부리에 물려준 생과자 부스러기를 물더니 허공을 날아오른다.
오수라도 즐기려 하다. 젖은 옷이 마르려는지 한기가 느껴졌다. 일어섰다. 느티나무 고목이 여럿 서있는 비탈을 돌아 가파른 능선이 살아 있는 길을 택한 후 거침없이 내려섰다. 양지꽃이 숨어 있다 반색하듯 나타 나 인사를 전해 오고 박새도 아직 인사가 남았는지 기척을 전해 온다. 휘파람으로 응답한 후 능선 끝으로 오솔길로 들어서자 보랏빛 아름다운 꽃을 발견하였다.
이름을 알았던 꽃인데 40여 년 전 야생화만 찍으러 다닐 적에 백두산만 찍으러 다니던 후배가 권해 온 책이 몇 권이 있었는데~~ TIME이란 출판사에서 출간 한국 야생화 전집류였다. 충무로까지 나가 구매 후 즐겨 보며 야생화에 대하여 섭렵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책을 몽땅 분실하게 된다. 그 책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던 꽃인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여러 날을 씨름하다 보면 찾아지겠지~~
하산 후 자전거에 올라 강변을 달렸다. 하루살이 때가 달려 붙어 성가시게 하고 문명으로 들어설수록 소음도 깊어진다. 서산을 향해 기울어져 가는 해가 남기는 긴 꼬리가 강의 수면 위를 아름답게 채색하는 것을 위로 삼고 페달을 젓고 젓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