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답사 : 강릉역, ‘경포호를 걷다’
1. <강릉역>에 내렸다. 오늘 답사는 ‘경포호’ 걷기이다. 강릉을 제법 많이 찾았지만 경포호를 걸은 적이 없는 것 같아 제대로 답사를 실행할 계획으로 찾은 것이다. 강릉역 주변 식당은 무언가 부족하다. 맛없는 소고기 국밥으로 아점을 때운 후, 경포호를 향해 걸어갔다. 몇 번 걸으니 길이 익숙해진다. 새로움과 익숙함,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여행의 즐거움과 함께 하는 느낌이다. 새로 만나는 것은 약간의 긴장과 설렘이 주어지는 기쁨이라면, 익숙함은 만남의 깊이와 여유로움을 경험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2. 경포호는 약 4.3km의 길이로 약 50분 정도 소요되는 코스이다. 원래는 12km가 넘는 넓은 호수였지만, 여러 가지 개발로 인해 축소되었다고 한다. ‘경포호’ 걷기는 강릉 해변 걷기와는다른 분위기와 정감을 만나게 해준다. 잔잔하지만 영동지방에 불어온 돌풍 때문에 물결은 제법 싱싱하게 넘실되고 있었다. 잘 닦여진 길을 따라 강릉의 명소가 한 눈에 들어온다. 경포해변과 강릉을 대표하는 호텔, 그리고 관동8경의 하나인 ‘경포대’와 음악과 영화의 명소인 ‘참소리 박물관’과 ‘영화박물관’을 호수를 걸으면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은 이제 정돈된 상태로 만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야생의 자연’은 점차 인간들에게 버거운 대상이기에, ‘인공의 자연’이 도시의 자연이 되고 있다. ‘경포호’는 그런 정제된 자연의 편안함을 제공하고 있었다. 경포호 중간에는 ‘허난설헌 공원’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이 연결되어 있다. 경포호를 따라 걸으면 선교장과 오죽헌까지 강릉의 역사문화적인 명소로 이어진다. 경포호 코스는 강릉을 대표하는 문화답사길이라고 할 수 있다.
3. 경포호 중간에 있는 ‘경포대’를 올라갔다. 장소는 때론 추억을 소환한다. 경포대는 오래전 S와의 특별한 기억을 담고 있는 장소이다. 삶의 희망이 넘쳤고 새로움을 계획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경포대의 전경은 무성하게 자란 나무 때문에 앞 쪽에서는 볼 수 없다. 때론 조경이 공간의 미적 감각을 손상시킨다. 채우는 것이 아닌 비움의 미학을 경포대 주변은 잃어버리고 있었다. 과거의 찍었던 사진의 뷰가 이제는 사라졌다. 과거의 희미해지는 기억처럼 말이다.
4. 경포호를 방향을 달리해서 2번 돌았다. 한 마리의 새가 물고기를 잡기 위해 물 속으로 잠수했지만 5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게 오랫동안 물속에 있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상승했는지는 알 수 없어도 고독하게 물속을 자맥질하는 물새의 움직임이 ‘살아있음의 슬픔’을 느끼게 하는 것은 호수에서 만나는 감상적인 기분때문인지 모르겠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외로움이 치밀어 오를 때면 찾고 싶던 곳이 동해안이었다. 아니 동해의 바다를 보면 끝이 없는 영원한 거리에서 펼쳐지는 수평선의 아득함이 잠재되어 있던 쓸쓸함을 폭발시켰다. 그런 허무적 기분을 터뜨리고 나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던 기억이 난다. ‘감상의 소비’, 단조롭고 무의미한 정신적 황폐함은 때론 이런 감상적 허무를 통해 치료가 되곤 한다. ‘쓸쓸함’을 안주삼아 한 잔의 술을 마시면, 일상의 건조함으로 복귀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동해의 바다’는 여전히 ‘고독을 통한 회복’의 신호를 주고 있었다. ‘경포호’ 또한 그러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인생의 마지막 여행 코스로 ‘경포호’를 기록해둔다.
첫댓글 - 쓸쓸함과 허무함을 이겨내는 힘이 바다로부터 들려오는 듯... 넓다라는, 멀리라는, 끝없이라는, 펼쳐진이라는, 왔다갔다라는, 침묵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