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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4일, 토요일.
작년에도 이맘때 진해의 장복산을 다녀왔다. 매년 4월초순이면 전국적인 지명도가
높은 벚꽃 축제가 해마다 이맘때 진해에서 개최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추운 겨울을 벗어난 기분을 축복하는 듯이 피어나는 봄꽃들의
봄인사를 마다할 리가 없다.더군다나 아리따운 자태에 농염한 모습은 동토의 썰렁한
한 겨울을 지나온 심신을 녹이는 데에는 더할나위없는 보혈강장제로 쓰일 것이다.
그렇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봄꽃들을 마중할 봄꽃산행은 그래서 즐겁기만 하다.
그러나 해마다 연중행사처럼 치뤄지는 봄꽃 축제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국민 대다수의
호응도가 제일 큰 축제는 역시 벚꽃 축제가 아닌가 한다.
진해의 경우는 제쳐두고라도 전국방방곡곡의 각지에서 벚꽃 축제로 난리아닌 법석을
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각 지자체는 차치하고라도 가까운 경기도청이나 국가의
심장인 입법기관이 있는 여의도 윤증로에서도 오래전부터 행사를 해온 전력이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벚꽃이 필 무렵이면 온나라가 호들갑을 피울 때 우리의
무궁화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우리의 국화(國花)인
무궁화를 찿아보기조차도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쨋던 아름다운 봄꽃을 맞이하러 떠난다는 단순한 의미만 간직하기로 하고 벚꽃축제가
한창인 진해의 모산 장복산 산행을 계획했다.
장복산은 마산,창원과 진해의 도시를 구분짓는 산이다. 물은 사람을 모이게 하고
산은 사람을 나눈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지는 곳이다. 하늘은 한없이 맑고 푸르지만
봄가뭄이 극성을 부리니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인정마져 메말라 버릴까 안타까운 봄날,
틈만나면 산지사방 들락거리는 山客같은 사람들에게는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가
다소 거추장 스러울 수 도 있다. 그렇지만 요즘은 너댓시간 산행을 하고나면 모랫판에서
씨름을 하고 난 사람처럼 바지가랭이가 흙먼지로 가득하다.
목은 컬컬하고 콧속은 따끔거리고 얼굴은 땀과 함께 버석버석거린다.
이런 봄날 꿈틀거리는 춘정을 못이기고 먼거리 진해를 향하여 행장을 꾸린다.
서마산I.C를 빠져나오면 마산시가지 한복판을 통과해야 한다.
외곽도로가 없는 관계로 항상 교통이 병목현상을 나타내는 구간이다. 수많은 차량들이
도로를 주차장인양 착각을 하고 빼곡하게 들어 찼으니 앞차가 움직여야 뒤따라
코를 박고 뒤만 졸졸 따를 수 밖에, 다른 곳으로의 우회도로가 없으니 별 뾰족한수가
보이 질 않는다.
오시(午時)가 시작될 무렵에야 가까스로 장복산의 들머리에 도착한다.
마산에서 진해로 들어서는 출입구인 장복터널옆으로 난 산길로 들어선다.
이곳의 산길은 그동안 입산객들의 발길이 드물었던지 산길이 잡목으로 거칠어졌다.
그러나 이미 산중턱까지 올라와 산행을 시작했으니 주능선의 고속도로(?)산길은
그리 멀지않다.
주능선너머로 군사시설이 주둔해 있으므로 능선 가운데로 철조망이 능선따라 길게
설치되어있고, 철조망을 따라 방화선이 시원하게 뚫려있다.
벚나무가 산길주변에 가지런이 심어져있다. 그런데 아직 꽃이 피지않고 봉오리만 잔뜩
부풀어진 걸 보면 고도차이로 인한 기온이 낮기 때문인 모양이다. 산길은 예상했던대로
흙먼지가 폴폴날리는 바싹 마른 길이 이어진다. 다행히 오가는 등산객들이 적어서
먼지세례는 피할 수가 있겠다. 진해쪽의 산사면에는 편백나무 숲으로 짙푸른 초록의
시원함을 보여주고 산아래로 내려 갈수록 희끗희끗한 것이 벚꽃이 만개를 한 모양이다.
주변에 시야를 가릴 만한 수목이 없는 관계로 산행의 첫번째 즐거움인 조망이 갈길을
자주 머뭇거리게 한다. 거뭇하게 세월의때가 가득묻은 바위들로 이루어진 장복산의
멧부리, 해발591m, 작은 깃대에 태극기가 해풍을 맞아 외롭게 펄럭인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문양이자 국가를 표시하는 국기가 새삼스럽게 이곳 장복산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보이는 것은 어쩐 일일까? 그 이유는 해군기지가 있는 진해와
충무공의 혼이 떠돌고 있을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있기 때문일게다.
국토방위,충무공 이순신, 태극기와 그 다음으로 떠오르는 것,우리나라의 꽃 무궁화다.
벚꽃하나가지고 무얼그리 의미부여가 심각하냐고 하면 할 말은 궁색하기도 하다.
일본사람들이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쿠라(벚꽃)를 우리도 좋아하는 것이 이상 할 것은
없지싶다.혹자는 우리 대한민국은 법률상 국화(國花)로써 무궁화를 정해 놓았지만
일본은 법률적으로 국화지정이라는 규정이 없으므로 벚꽃은 일본의 국화가 아니니
신경쓸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러한 지적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차치하고 벚꽃은 역사적으로 일본을 상징하는 꽃으로 자리매김 한 것은 부인 못 할 것이다.
장복산 멧부리에서 외롭게 펄럭이는 태극기가 외롭고 쓸쓸하게 여겨졌던 것은
진해뿐아니고 충무공의 혼이 살아 숨쉬는 남해안 일대,그리고 전국 방방곡곡 벚꽃으로
뒤덮혀 졌다는 사실이다. 벚꽃을 바라보면서 일본을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힐난을 한다면 입을 다물겠다.그러나 무궁화를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묻고 싶다. 물론 주위에서 쉽사리 무궁화 구경하기가 쉽진 않을 지도 모르겠다.
벚꽃을 보면서 일본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하면 무궁화를 바라보고도 우리나라 국화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작정을 해야 한다.
법률적으로 대한민국도 국화규정을 없애 버리는 것이다. 해충에 약하다고, 꽃모양이
마음에 미흡하다고 이런저런 이유로 국민들이 외면한다면 굳이 국화로서 지정해놓고
천덕꾸러기로 남겨 버린다면 차라리 국화제도를 없애는 것이 나을 것도 같다.
공연히 맘에도 없이 백년천년 질질 끌고 갈 이유는 없는 것이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사쿠라 삼천리 화려강산으로 확대 재생산 되기전에 결단을
내려야 할 일이다.
사각의 대리석 장복산 정상표지석이 진해 앞바다를 향하고 있다.
이순신장군의 후배들이 국토방위를 위해서 심신을 단련하고 국토방위의 백년지계를
교육받는 곳이 자리하고 있는 곳, 그곳이 이곳 진해다.
한반도 전 지역을 유린한 왜구들의 후방 병참로를 차단하고 괘멸시킨 충무공의 혼이
남아 있는 곳, 남해안 이곳 저곳 충무공의 손길이 안닿은 곳이 없을 정도로 공(公)은
진정 대한민국의 수호신이 아닐 수 없다. 혹시 이곳 어디엔가 공(公)의 영혼이 머물고
있다면 온통 벚꽃으로 뒤덮힌 산하와 열광하는 국민들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실까?
온통 휘황찬란한 벚꽃으로 뒤덮힌 비경을 자기도 감상하려 온 주제가 오바센스를
한다고 질책한다면 더이상 입을 열지 않겠다.
온갖 번뇌와 갈등속의 영혼을 한순간이라도 안정을 유지하려면 산행이 최고의 선택이다.
수많은 번뇌와 혼돈속에서 벗어나는 길, 그 길은 무작정 산길을 따를 일이다.
햇볕을 가려줄만한 수목들이 주능선에 희박하니 그늘이 있을리가 없다.
파아란 하늘을 그늘막 삼아 출출해진 허기를 채운다. 창원과 진해사이에 성곽처럼
뻗어있는 장복의 주능선, 좌측의 대단위 창원기계공업단지에서 웅웅거리는 날갯짓
소리같은 공장의 심장소리가 들려온다. 그너머 정병산에서 비음산,대암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창원시내를 둘러친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봉우리 두어개를 넘으면
진해 조각공원으로 연결된 삼거리를 만나고 그곳을 지나면 곧이어 정자를 만난다.
햇볕을 피할 수 없는 주능선상의 특성상 그늘을 피할 수 있는 그늘막이 필요했을 것이다.
일찌감치 자리를 선점한 입산객들이 행랑을 풀어 요기를 하느라 시끌법적 거린다.
오늘의 산행 최종 봉우리인 덕주봉의 뾰족한 암봉이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山客을
부르는 듯하다. 건조하고 메마른 산길에서는 풀풀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다행히
진해만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덕분에 흙먼지 세레는 피할 수가 있겠다.
뾰족하게 솟구친 덕주봉은 몇사람밖에 머물 수 없을 정도로 비좁다. 그러니 지긋하게
주위조망을 즐기기에는 후등자들에게 미안한 감정만 생길터이니 아쉽더라도
자리를 후등자에게 양보해야 할 일이다.
오늘의 날머리는 진해조각공원이다. 그곳으로 가려면, 오던 산길을 되짚어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에서 진해시가쪽으로 뻗어나가는 지능선 길을 따르다 조각공원으로
향하던지, 정자옆의 하산길을 따르던지 어느 곳을 선택하여도 공원에 이르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마이크의 볼륨을 최대한으로 크게 올려놓았는지 조각공원쪽에서 노랫소리며
장삿꾼들의 소음이 진해만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잔뜩실려있다. 하산길 주변의
정자가 그새 텅비었다. 생수병마개를 열고 메마른 목에 생수를 부어준다.
구름한점없는 창공에는 거칠 것없는 태양만이 독야청청 눈부신 햇살을 내려 보낸다.
과거에 산불이 났었는지, 수목개량을 위함인지 편백나무 숲을 조성하려 오와 열을
맞춘 편백나무숲이 이곳 저곳 초록의 숲을 더해가고 산길주변에는 벚나무와
편백나무 어린 나무들이 단비를 기다리는지 힘겨운 모습이다.
산길옆의 약수터는 수량이 부족하여 약수터의 기능을 잃고있다. 온갖 수목들이 새싹을
키우려면 땅속의 수분을 넉넉하게 흡수해야 가능한데 수분이 부족한 땅속에서 물기를
찿아 뿌리들도 이리저리 땅속을 헤메고 있을게 틀림없다.
창원에서 안민고개를 넘어온 구(舊)도로변의 만개한 십리 벚꽃길이 마치 누에가 기어가는
모습을 닮았고, 희끗희끗한 색깔로 줄긋기를 한 진해시가지는 두말 할 필요없이 도로가
지나가고 있다면 틀림없다. 모든 도로변의 가로수가 거의 벚나무로 뒤덮혀 있기 때문이다.
장복산의 진해방면인 산자락은 거의 벌거숭이 민둥산의 모습이다. 최근들어 식재를
하였는지 편백나무 숲만 군데군데 자라고 있을 뿐 수목의 다양성이나 울창함과는
거리가 심하다. 자연재해나 전란으로 소실이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계곡하류가 가까워져서야 제법 굵직한 편백나무 숲이나 소사나무, 느티나무,신갈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그나마 제공한다.조각공원에서의 벚꽃축제로인한 상인들의 호객을 위한
음악과 시끌법석한 소음이 볼륨이 높아가는 걸 보면 하산지점이 얼추 가까워진 모양이다.
한창 불사(佛事)가 진행중인 진흥사 경내를 지나면 숲길은 벚꽃이 뒤덮힌 공원내
산책로로 이어진다. 마산과 창원으로 연결되는 구(舊)도로 주변을 공원으로 꾸며논
조각공원은 수많은 벚나무가 자라고 있어 벚꽃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꽃대궐을
이루고 있다. 길가 양옆으로는 자가용차량의 주차로 2차선도로가 일방통행로가 되었다.
왜정시대때 일제가 심어놓은 벚나무는 모두 베어 버렸고, 우리의 토종 벚나무를
심어 현재에 이르렀다는 밝힐 필요도 없는 구차한 변명(?)이 작은 대리석을 채웠다.
토종이면 괜찮고 외래종이면 안되는 이유는 없다. 굳이 일제가 심어 놓았다해서
베어버렸다면 근본적으로 양식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모른다.
어느 것이 외래종이고 토종인지는 수입 쇠고긴지 한우고긴지를 따지는 것 하고는
차원이 틀려도 한참 빗나갔다.하기야 이곳의 벚꽃축제에 벚꽃구경 온 관광객들이
외래종인지 토종인지 구별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이 있을리는 만무하겠지만
혹시 그러한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벚꽃자체의 현실적인 아름다움만 생각하지
또다른 정치,문화적인 의미를 부여하진 않을 것이다. 벚꽃의 탐화를 위해서 벚나무를
심는 행위를 바난할 의사는 추호도 없다. 다만 상대적으로 우리의 국화인 무궁화가
너무 홀대를 받고 있지는 않은지 염려한 노파심이 슬그머니 작동됐기 때문이다.
무사들의 나라가 일본이라면 우리는 선비의 나라다. 벚꽃은 일본의 정신이라는 무사집단
사무라이들이 사랑하고 자신들의 상징처럼 받들고 있어 일본의 국화(國花)로
여겨져 온 것은 틀림없다.물론 사무라이 자신들의 상징목으로 아끼는 금송(金松)도 있다.
금송에 대해서도 꺼림칙한 사연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구태여 말한다면,70년도 현충사
경내를 성역화한 당시 박대통령이 그곳을 참배하고 기념식수로서 금송을 심었고,
뿐만아니라 청와대와 칠백의총과 도산서원등 유명 정원에 널리 심어져 내려왔다.
심지어 천원짜리 지폐의 뒷면에도 인쇄되어 등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좌우지간 벚꽃이나 금송(金松)을 볼때에는 꽃과 나무외의 색다른 의미를 부여해서
컴플렉스에 빠져들 필요는 물론 없지싶다.
전국 방방곡곡 벚나무를 심어 벚꽃의 대궐을 꾸미던지, 우리의 정신이 깃든 공공장소에
사무라이의 상징목인 금송을 재배하던지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일제36년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지도 환갑이 훌쩍 지났다. 지난 굴욕의 컴플렉스에서
빠른 시일안에 벗어 날 수 있는 극일의 길은 경제를 그들 수준이나 그이상으로
끌어 올리는 수 밖에 달리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는 날에는
이런 쓸데없는 컴플렉스들은 푸르고 맑은 창공만큼이나 깨끗하게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