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에서 손가락들의 글쇠 배분은 영원한 숙제입니다. 강하고 빠른 검지와 중지에 빈번히 쓰이는 글쇠를 몰아 주는 것이 자판 설계의 기본입니다만, 약지와 소지도 쓰라고 있는 손가락이니만큼 그들도 어느 정도 부담을 나누어야 합니다. 이 때 양손의 배분은 50:50 에 가까울수록 좋겠지만, 검지:중지:약지:소지 의 비율은 정해진 바가 없고 정할 수도 없는 사항이라 봅니다. 어느 외국 사이트에서는 4:3:2:1 의 비율을 제시했던 걸로 기억하지만 참고만 할 만한 수치이지요.
모두 잘 아시듯이 자판에서 각 검지가 맡은 글쇠 수는 대략 8개로, 다른 손가락들의 두 배입니다. 검지는 엄지를 제외하면 가장 민첩한 손가락입니다. 큰 부담을 견딜 수 있지요. 다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공세벌식에서 검지의 비중은 너무 높지 않느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가령, 오른손 전체의 60% 이상을, 왼손도
거의 50%를 검지가 맡고 있습니다. (대신 왼손은 약지의 부담이 매우 큽니다. 이것은 종성을 왼손 약지와 소지가 맡는 공세벌식의
구조적 한계입니다) 다음의 문장을 보세요.
"이유 없이 스스로 완성했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혼나야 한다."
별 의미는 없는 문장이지만, 모든 초성이 오른손 검지를 쓰도록 만들었습니다. 치는 데에 아무 문제도 없긴 하지만 왠지 위화감이 듭니다. 공세벌식의 검지 비중은 예전에 ㅣㅐ 와 ㄱㄷ가 바뀌어 있던 시절에 더욱 높았습니다. 사실 오늘날 ㅐㅓ의 자리
바꿈 논란은 ㅣㅐ 가 뒤바뀐 것과 관계가 없다 할 수 없는데요. 특히 오른손의 60%는 제가 알고 있는 다른 종류의
자판(두벌식과 몇몇 영어 자판)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검지 비율이 그 손의 50%를 점유하는 게 보통의 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이것은 거의 양손이 번갈아 치게 되어 있는 한글 자판의
특성과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가령 영어 자판은 저렇게 검지에 자주 쓰는 글쇠를 몰아넣었다가는 검지 연타가 너무 많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영어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e는 거의 반드시 중지에 등장하지, 검지에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키보드와 달리 힘을
주어 쳐야 하는 타자기에서는 약지와 소지보다 검지와 중지(특히 검지)에 빈번히 나오는 글쇠를 몰아 주어야 할 필요성이 더 높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요 몇 주일 동안 타자를 연습하면서 느낀 것은, 이렇게 검지의 비중이 높아도
검지가 아픈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오히려 왼손 중지와 약지가 좀 저립니다. 다만 제가 우려하는 것은, 이렇게
검지의 비중이 높다면 타자 속도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예시를" 이나 "사랑한다" 의 경우 오른손 검지가
널뛰듯 움직이게 되는데 그러면 타자가 매우 빠른 사람의 경우 그 속도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추가: 오른손 전체에서 검지의 비율은 약 62%로, 70% 이상이라고 했던 건 잘못이었습니다. 정정합니다.
첫댓글 FDSA WE 순서대로 편하다고 믿는 저로서는 어찌되든 검지비율이 줄어든 세벌식을 반깁니다. 검지 비율을 줄이자 찬성 표를던집니다.
E보다 W가 편하다고 생각하신다니 의외이군요! 저는 딱히 현재의 공세벌식 배치를 바꾸자기보다는 그저 여러분들의 의견이 궁금했었습니다. 어쨌든 지금 제가 쓰는 자판은 공병우 최종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요.
명랑소녀님이 올리신 이 글을 보고 짧은 덧글로는 답할 수 없어서 좀 긴 글로 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http://pat.im/1127
실은 몇 해 동안 생각했던 주제였는데, 너무 폭넓게만 생각해서 헤매다가 명랑소녀님 덕분에 범위를 좁혀서 한 주가 넘는 시간에 모자라나마 겨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수동 타자기로 윗글쇠를 몇 번 눌러 보고 나면, 요즈음 글쇠판으로 윗글쇠 누르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싶은 마음이 절로 듭니다. 요즈음에는 그저 그렇게 느껴지는 타자 동작이 수동 타자기에서는 너무 힘들게 와닿을 수 있는데, 수동 타자기에서는 검지를 많이 쓰게 한 것이 좋으면 좋았지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링크의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수동 타자기를 쳐 본 적은 없지만, 거기에서 검지 비율이 높을수록 좋은 것은 백번 이해되는 바입니다. 실제로 영타에서 쿼티 다음으로 많이 쓰인 드보락 자판은 hand alternation, 즉 손 번갈아 치기를 강조하여 디자인되었죠. 반면 키보드 시대에 새로 나온 자판은 손 번갈아치기의 중요성을 좀 낮게 본 경우도 있습니다. https://geekhack.org/index.php?topic=67604.0 가 참조가 될 수 있지 싶네요.
손가락 번호를 검지부터 소지까지 2 3 4 5 로 붙인다고 할 때, 34 나 43 조합은 링크 글에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수동 타자기에서는 그리 좋지 않은데 반해, 키보드에서 동시치기 입력을 할 때엔 매우 편하다고 느낍니다. 역시 수동 타자기, 이어치기, 동시치기의 여부에 따라 강조되는 점과 생각해야 할 점이 많이 다르네요.
시프트를 쓰는 받침으로 끝나는 용언 어간 뒤의 어미 문제나, ㅁ와 ㄹ의 위치 같은 건 제가 시프트를 안 쓴 지 꽤 되어서 그런지 생각해 보지 못했군요. 역시 이런 종류의 문제들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것은 즐겁습니다. 저도 자판 관련해서 이것저것 생각날 때마다 적어 두고는 있는데 팥알 님의 링크처럼 정리해서 올리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명랑소녀 알려 주신 주소의 글을 살짝 훏어 보고, 공세벌식 자판에서는 당연한 안쪽→바깥쪽 손가락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누군가는 싫어할 수도 있다는 것에 살짝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듭니다. 신세벌식 자판도 안쪽→바깥쪽(outward)로 이어지는 손가락 이어치기가 많지만, 겹받침을 칠 때에는 새끼 손가락만 안 쓴다면 바깥쪽→안쪽(inward)으로 이어지는 손가락 이어치기도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손 번갈아치기/같은 손가락 거듭치기/손가락 이어치기 방향의 비율을 나타내는 자판 배열 비교 방법이 한글 자판 비교 지표로도 좋은 것 같아서 타자행동 분석 프로그램에 끼워 넣었습니다.
@팥알 업데이트 자료 감사합니다. 아마도 로마자 자판의 경우 한 손으로 세 타 이상을 쳐야 하는 상황이 자주 나오다 보니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354, 435 등의 조합은 손가락을 매우 꼬이게 하죠. 손 번갈아치기가 잦을수록 이런 일은 드물어집니다. 겹받침을 제외하면 정확히 공세벌식(혹은 신세벌식)의 상황이지요. 개인적으로는, 한 손으로 세 타 이상을 치는 경우가 없다면 한손 이어치기의 방향은 안쪽이건 바깥쪽이건 큰 무리는 없다고 느낍니다.
공세벌식 자판은 "한글을 칠 때에 검지는 자주 쓰는데, 거듭 쓰는 때는 적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는 두벌식 자판이나 영문 자판에서는 바랄 수 없는 모습입니다. 아직도 공세벌식 자판까지 잘 헤아린 자판 배열 이론이 바로서지 못한 통에 공세벌식 자판이 그 이론들의 예외 사례로 남아 있는 꼴입니다.
검지는 확실히 다른 손가락보다 덜 부담스러운 편입니다. 예전에 소인배 님이 손으로 무언가를 쥘 때 손가락 별로 힘이 다르게 배분되므로 그 비율에 따라서 글쇠를 배분하면 좋을 것이다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로서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힘의 비율로 글쇠 배분을 한다면 좋겠지만, 제 경험상으로는 검지보다는 중지, 약지, 소지의 피로가 더 큰 편입니다. 그래서 검지로 많은 타이핑이 몰려도 크게 부담스럽진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올려주신 문장 같은 경우는 치는 데에 속도가 느려질 수 있겠군요.
저는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예전에 handroll combo라는 용어를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참고가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http://cafe.daum.net/3bulsik/6CY8/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