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강로프를 던졌을 때부터 구름과 바람이 심상치 않더니 이내 다음 하강 지점을 찾을 수가 없다. 세 번째 하강 포인트에서 현범이 잘 못 내려가 확보물이 없는 오버행에 매달리게 되었다. 10분이 흐르고 20분이 흐르고...
소리를 질러도 바람에 묻혀 안 들리나 보다. 무전기를 안가지고 온 것이 후회된다. 시간이 정처 없이 흐른 후 현범은 로프를 고정시켜 달라한다. 신속하게 하강을 원했기에 퀵 드로우 백업을 안 했다. 안전벨트를 보니 6mm 페츨 코드슬링과 7mm 코드슬링이 있다. 우선 두 코드 슬링으로 각각의 하강로프에 프루직 매듭(Prusik knot)으로 고정시킨다. 과연 미끄러지지 않을지 걱정이 되어 두 로프를 한꺼번에 다시 프루직 매듭으로 감는다. 그리고 발로 로프를 밟아 바위에 밀착 시키고 현범에게 고정완료를 외친다. 가능하면 6mm 페츨 코드슬링이 감겨있는 로프를 당겨야하는데... 잠시 후 피아노 줄처럼 팽팽하게 페츨 코드슬링을 감은 로프가 당겨진다. 로프는 미끄러지지 않고 잘 버티고 있다. 눈과 우박이 오락가락하고 바람이 연신 남벽아래에서 불어 올라와 몸이 점점 추워진다. 저체온증이 걱정된다. 한발은 로프를 누른 상태에서 오버 재킷을 꺼내 입는다. 하지만 오버 트라우저는 입을 수가 없다. 로프에서 발을 뗄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현범의 거친 호흡 소리가 들려온다. 조금 후 헬멧이 보이고 지친 기색으로 올라온다. 6mm 페츨 코드 슬링으로 프루직 매듭을 하고 한발 한발 올라선 것이다. 내 곁에 서서 숨을 몰아쉰다. 표정은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뀌었다.
무게를 생각해 쥬마를 놓고 가자고 한 내가 미안했다.
-3피치 하강

-프루직 매듭으로 로프 고정

-역시 프루직 매듭으로 올라 오는 현범대장

세 번째 하강부터 마지막 하강까지는 내가 리드했다. 남벽의 아래 설원에 내려서 다시 비박지로 오니 데포 시켜놓은 장비가 나뒹굴고 있다. 멀리서 들리던 천둥소리라 이제는 가까이 들린다. 빙벽화로 갈아 신고 에너지바로 행동식을 대신 한 후 바로 하산한다. 올라올 때와 달리 바위가 온통 젖어서 미끄럽다. 순간순간 흩어지는 구름사이로 길을 가늠하여 내려서니 저 아래 설원이 보인다. 베르그슈른트를 넘어 가파른 설사면을 내려오니 구름이 우리의 머리 위에 있다. 구름속의 당 뒤 제앙은 번개와 천둥소리로 요란하다. 다시 한 번 성모 마리아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이제 살았다는 생각이 들자 배고픔이 느껴졌다. 쵸코바로 에너지를 보충한다. 오늘 샤모니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고 토리노 산장에서 하루 묵기로 한다. 순간 번개가 번쩍하더니 우리의 좌측 바위봉(3,541m)에 쏟아 붙는다. 현범이 기겁하고 튀어 나간다.

저녁 7시 30분경, 토리노 산장에 도착했다.
산장은 오래 되었으나 젊은 관리인 친구가 반갑게 맞아준다. CAF(프랑스산악회)회원증을 보이니 숙박50% 할인과 저녁까지 먹을 수 있게 준비 해준다. 맛없는 파스타와 딱딱한 빵에 순간 실망하고 있는데 소고기에 호박을 곁들인 메인 디쉬가 나온다. 맛있다. 정신없이 허겁지겁 먹었다. 석식 후 바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방은 6인실에 우리 둘만 잘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고맙고 감사하고 살아있음이 행복한 하루였다.
-무슨 맛인지 모를 파스타

- 또 먹고 싶은 소고기와 호박볶음

-옆 침대 현범의 숨소리가 고르다. 피곤해겠지...

-재필은 혼자서 잘 자고 있을까?

8월 9일
기상하니 비가 잘도 내린다. 아침식사 후 장비를 짊어지고 몽블랑 횡단 파노라마 곤도라의 상황을 물어본다. 운행하지 않는다. 편안한 다람쥐 캠핑장이 너무나 그립다. 우리는 이태리 쿠르마이어로 내려가 샤모니로 가기로 결정한다. 이태리 행 케이블카 티켓을 구입한다. 이태리에서는 몽블랑을 ‘몬테 비얀코(Monte Bianco 4,810m)’라고 부른다. 몬테 비얀코 스카이 웨이라는 케이블카는 새로 건설하여 최신식이다. 프랑스 산악인들과 함께 타고 하산하다 샤모니까지 가는 방법을 물어보니 자기네도 그 곳으로 간다고 따라 오라 한다.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프랑스인의 안내로 쿠르마이어 시내버스를 타고 버스터미널에서 샤모니 행 표를 구매한다. 우리 것까지 함께 끊어준다. 정말 친절한 친구들이다. 약 30분을 기다려 샤모니행 버스를 타고 11km 몽블랑 터널을 지나 우리는 다시 다람쥐 캠핑장에 도착했다.
- 이태리행 케이블카 탑승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유재원선배의 뜻이 서려있는 "에귀뒤 누르와르 페터레이"

-몬테 비얀코 스카이 웨이 탑승장

-친절한 프랑스 산악친구들

-쿠르마이여 버스터미널(관광안내소도 이 곳에 있음)

-샤모니행 버스티켓.. A4 紙 ㅋㅋㅋ

-몽블랑터널을 운행하는 SAT(시외버스)

-그리운 에퀴흐럴(다람쥐) 캠핑장

200여 년 전 산이 좋아 바위와 얼음과 눈의 세계를 탐험했던 선배산악인들의 순수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으며, 묵묵히 등반에 임했던 조현범 등반대장과 혼자 가슴조리며 우리의 안전을 기원하고 따뜻한 식사로 배를 굶지 않게 했던 이재필 대원, 이번 원정의 성공을 기원해준 맹일억 단장과 1조, 2조 대원님들 그리고 모든 춘천클라이머스 회원님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혹독한 4,000m의 등반을 경험하게 해 준 그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첫댓글 멋집니다~~굴하지 않는 정신력
멋진 풍경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