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개성(開城)은 경기도 북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현재 개성직할시가 되었다. 본래 고려의 수도였으며, 그 이전까지 송악군(松嶽郡)·송도(松都)·개경(開京)·부소갑(扶蘇岬)·동비홀(冬比忽)·촉막군(蜀莫郡) 등으로 불리었다. 고구려 때에는 부소갑(扶蘇岬)이라 했으며, 465년(백제 개로왕 11)에는 100년 동안 백제 영토였다. 555년(신라 진흥왕 16)에 신라가 점령한 이후 송악군(松嶽郡)으로 개칭되었고, 898년(효공왕 2)에 궁예가 잠시 태봉의 도읍으로 삼기도 하였다. 919년(고려 태조 2) 1월 수도를 철원(鐵原)에서 송악산(松嶽山) 남쪽으로 옮긴 후 개풍군과 송악을 합쳐 개주(開州)라 불렀고 5부를 설치하였다. 960년(광종 11)에는 개경(開京)으로, 995년(성종 14)에는 개성부(開城府)로 개칭하였다. 조선이 개국하여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 1467년(세조 13)에 개성부로 경기도에 편입되어 개성부윤(開城府尹)이 부임해 오다가 1906년 개성군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시제(市制) 실시에 따라 개성시가 되었고, 1954년 10월 개풍군과 판문군(板門郡)이 황해북도에 편입되었다. 1955년 개성시와 황해북도 개풍군·판문군이 통합되어 개성직할시로 승격되었으며, 1961년 3월 황해북도 장풍군에 강원도 철원군 일부를 편입시키면서 개성직할시의 관할이 되었다. 2004년 1월 개성직할시를 황해북도 개성특급시(開城特級市)로 바꿨다.
성씨의 역사
송악(松嶽)의 호족 집안이었던 개성왕씨(開城王氏)의 시조는 왕건(王建)의 증조인 왕국조(王國祖)이다. 후에 그는 원덕대왕(元德大王)에 추존되었다.
유년시절부터 총명하고 자질이 비범하던 왕건은 태봉(泰封) 국왕인 궁예(弓裔)의 휘하에서 무공을 세우고, 정벌한 지방의 구휼(救恤)에 힘써 백성들의 신망을 얻었고, 궁예의 횡포가 극심해지자 중신들의 추대로 왕위에 올라 고려왕조의 문을 열었다.
이후 고려는 34대 475년에 걸쳐 계속되었으나 이성계(李成桂)에 의해 조선이 건국된 후, 정치적 보복으로서의 멸족의 변을 당하여 전(全), 옥(玉), 금(琴), 전(田)씨 등 왕(王)자를 변형한 성씨로 바꾸어 간신히 그 혈맥을 유지하였다. 조선 정조 때에 다시 왕씨(王氏)로 돌아와 송악(松嶽)의 옛 지명인 개성(開城)을 본관으로 삼았다.
따라서 개성왕씨는 모두 고려 태조의 후손으로 족보에는 태조의 제15왕자인 효은태자(孝隱太子: 즉 東陽大君) 왕원(王垣)을 1세조로 하고 있다.
주요 세거지
경기도 이천군 율면 오성리
경기도 개풍군
경기도 화성군 미산면 아미리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면 상리
경기도 시흥시
충청북도 청원군 강내면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개성왕씨는 6,148가구 총 19,808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