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등에 까만 구두약이 묻었어도 눈에는 희망이 반짝거리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남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해 아버지가 투옥되었기 때문에 이 소년은 구두를 닦으면서 힘들게 살아야했지만 밤하늘에 박혀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별들을 보며 탄식대신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길 모퉁이에서 밤늦게까지 구두를 닦으면서 노래를 부르는 소년을 본 사람들이 “구두를 닦는 일이 그렇게도 좋으냐?”고 물을 때마다 소년은 대답했습니다. "그럼요, 저는 구두를 닦고 있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닦고 있거든요." 희망을 닦던 이 소년은 후에 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는데, 이 소년이 바로 '올리버 트위스트'를 쓴 "찰스 디킨즈"입니다. 찰스 디킨즈는 자기가 닦는 새카만 구두를 반짝이도록 닦으면서, 그 안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꿈을 바라본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절망을 보지 않습니다. 희망을 보고 살게 됩니다. 그것이 기도의 위대한 힘 가운데 하나입니다.
성경의 유명한 구절 렘33: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는 말씀을 외칠때 예레미야는 왕의 미움을 사서 시위대 뜰안에 파 놓은 구덩이에 갇혀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알았습니다. 그의 조국이 곧 세계의 통치자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하고 수많은 백성들이 조국을 떠나 머나먼 이방의 땅으로 유배되어 살게 될 것을 알았지만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구덩이속에서 예레미야는 구덩이를 쳐다보고 한숨을 내쉬며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실 놀라운 일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포로로 잡혀갔던 땅에서 그의 백성들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그들은 무너진 성을 다시 수축하며, 그들이 다시 짓는 예루살렘 성을 통해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을 보았습니다.
기도는 한 마디로 희망을 보는 눈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입니다.
예신교회는 바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희망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작음이 아닌 하나님의 희망안에서 산을 옮기는 교회가 될 것을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아멘!
당신도 산을 옮길 수 있다는 이 도전적인 설교제목은 실제로 우리 삶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단지 슬러건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앞에 놓여진 산에 초점을 맞추지 말자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제자들은 무화과 나무가 마른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현상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다우마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이상하게 여긴 것은 무엇입니까? 나무가 말라버린 것입니다. 19절에 보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나무가 말라버린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긴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놀랐습니다. 이런 것들을 제자라고 데리고 다니셨으니 우리 주님 참 힘드셨겠습니다.
저는 기도에 대한 간증을 한가지 갖고 삽니다. 은성교회에서 목회할 때 어느 여름 태풍에 교회종탑이 무너진 것을 보고 제 맘에 거룩한 분노가 일어나 옆건물 옥상의 점집 장대가 부러지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2주일이 지난뒤 어느날 그 장대를 묶어 놓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귀신을 본 것처럼 놀라고 난후 얼마나 제가 부끄럽던지요. 목사가 기도응답된 것에 귀신을 본것처럼 놀라다니! 주님께 드린 기도대로 된 일을 갖고 놀라다니, 제자들을 보고 위로를 받아요. 초점을 자기에게 두고 있느니까 그 장대가 부러지라고 기도했지만 정말 부러질 줄을 몰랐던거죠. 제자들도 주님이 말씀하셨지만 그 한마디에 나무가 마르게 될 줄 몰았던 겁니다.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too busy not to pray 란 책에서 빌 하이벨스 목사는 인도에서 사역을 할 때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금요예배 사역 팀의 한 사람이 하이벨스목사님에게 저녁예배 설교를 인도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그 부탁은 그의 마음을 부담감으로 가득하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언어적 장벽과 익숙치 않은 문화 때문에 상황에 맞는 적절한 설교를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도하기 시작했지만 의심과 두려움에 30초도 넘기지 못해 기도가 중단되어 버렸습니다. 그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족히 3만 명은 되어 보였고 그것은 그를 더욱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이렇게까지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오 하나님 지금 당장 이 지역에 비를 퍼부어 주시든지, 혹은 저를 싹 사라지게 하옵소서. 자기앞에 놓여진 산이 너무 커보여서 그 산을 없애달라고 기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드디어 설교 전에 한 자매의 찬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오 신실하신 주"를 듣는 순간 마음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빌 하이벨스는 지금까지 언어적 장벽, 문화적 혼돈, 부족함, 연약함,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자신 앞에 놓인 움직일 수 없는 산을 보며 자신의 무능함만을 탓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 채로 하루종일 자신의 무능에 짓눌려 있었던 것이었죠. 그는 비로서 그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깨달았고, 자기앞에 놓인 산을 옮기실 수 있는 하나님께 그 산을 내어드렸습니다. 그 날의 저녁집회는 어느 날 보다 뜨거웠습니다. 그날 빌이 깨달은 것은 하나님은 장벽을 보시지 않으신다는 것과 하나님이 자신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앞에 놓인 산 대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자 하나님도 그를 통해 역사 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속에는 우리가 넘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산들이 존재합니다. 그 산들은 우리를 왜소하게 만들고, 우리가 가진 놀라운 꿈들을 평범한 것으로 만들어갑니다. 우리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는 사실을 통감하면서 그 벽앞에서 물러서곤 합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많은 군중들과 말씀을 나누다가 제자들을 불러 그 군중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눅9:13절에서 제자들은 말합니다.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제자들은 그들이 가진 것을 보았고, 많은 군중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먹을 것을 사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많은 사람을 보았고 너무나 작은 음식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해낼 수없는 일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인생을 바라봅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작은 것을 쳐다보고 자기가 해결해야할 큰 문제를 바라봅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문제를 피해가자, 혹은 자기가 품은 뜻을 스스로 꺽어버립니다.
왜 우리가 비저너리의 삶을 살지 못하는 줄 아십니까? 상황이나 조건이 우리의 비전을 꺽는다고 우리는 착각합니다.
사실은 우리가 스스로 자신에게 시선을 맞춘 채로 검은 구두약만 쳐다볼 뿐 반짝 반짝 빛나는 광채를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많은 무리를 보지 말아라, 그 높은 산을 쳐다보는 데서 네 시선을 돌려라! 왜 무화과나무 잎이 마른 것만 쳐다보고 놀라고 있느냐? 기도가 응답된 것을 보고 깨달으라.
우리 인생앞에 놓여진 문제, 산이 무엇이든지 지금 당장 그 산에서 눈을 떼십시오. 그리고 시선을 산을 옮기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에 맞추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가 두 번째 할 일입니다.
믿음이란 시선을 하나님께 맞추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눈길을 주는 것,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시선을 갖고 사는 것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의심이라는 훼방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한다고 내앞에 놓인 산이 사라진다고? 라고 의심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지식이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을 훼방하는 장애물이 되는 것입니다.
도널드 휘트니는 구원의 확신이란 책에서 윌리엄 카우퍼라는 우울증에 시달렸던 한 그리스도인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는 염려와 영적인 의심에 줄곧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의 한 말과 행동에 대한 지나칠 정도록 집착함으로서 그는 자신과 하나님 그 무엇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살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믿음의 확신을 얻기 위해 자기의 의심을 대적하며 싸웠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이런 시를 썼습니다. "주 하나님 크신 능력 참 신기하도다. 바다의 폭풍 가운데 주 운행하시네. 검은 구름 우리들을 뒤덮을지라도 그 자비하신 은혜로 우리를 지키네. 연약하여 흔들릴 때 주 의지하여라. 어두운 구름 너머로 주 얼굴 보이네. 어둠에서 소경같이 헤맬지라도 주 나를 불쌍히 보사 앞 길을 비추리."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만약 자신의 말과 행동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면 그래서 늘 '왜 그렇게 말했을까?'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조바심을 낸다면 이것은 마치 거대한 망원경을 가진 사람이 별을 보기 위해 하늘에 렌즈의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 망원경의 렌즈를 하나님께 고정하고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에 초점을 맞추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 권면을 본문안에서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의심하는 대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시선을 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해서 산을 바다로 옮기는 기도의 사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 간증을 통해서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임임택 장로님은 점자로 된 2,200곡의 악보를 외우고 다니는 걸어다니는 악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살던 분입니다. 그 분이 예수님을 알고 그 곡들을 다 버리기로 결심을 합니다. 위대한 꿈을 꾸는 사람은 일단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십니까? 그 악보 갖고 연주하면 몇 년동안은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재능인데 그걸 버리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편곡을 새롭게 독학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점자로 말입니다. 그리고 편곡을 위해서는 피아노를 배워야 했죠.
그래서 시각장애인을 가르칠 피아노 선생을 찾았는데 아무도 가르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피아노도 독학을 시작했대요. 그렇게 3년을 독학해서 교회 예배 반주도 하고 편곡을 배웠는데 3개월마다 해야하는 피아노 조율 비용도 부담이고, 조율이 마음에 들지 않는 때도 많아서 피아노 조율사에 도전해야 되겠다 싶었답니다. 그래서 피아노 뚜껑을 열어보니까 건반처럼 88줄인줄 알았는데 200줄이 넘더랍니다. 6개월이 걸려 지금은 능숙한 조율사가 되었답니다. 자기의 책에서 이런 글을 썼습니다. "내 인생은 단 한가지라도 수월하게 넘어가는 게 없는지 잠깐이나마 갈등하고 죄절하기도 했지만, 넘어야 할 산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내딛는게 낫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제 저녁 우리는 자기 앞에 놓여진 큰 산에 초점을 맞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춰 큰 산을 바다로 옮기는 한 사람을 만나본 것입니다. 그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배우는 귀중한 진리가 있습니다. 기도는 간절한 열망은 산을 옮기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에 적어도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산이 한가지씩은 있을 것입니다. 지금 어렵고 힘들고 피하고 싶다면 우리는 지금 그 산의 그늘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 산은 우리들의 잘못된 생활 습관이나, 인격적 결함, 힘든 결혼생활, 혹은 직장 문제나 재정문제, 신체적인 장애, 자기의 능력의 한계를 경험하는 일, 직업을 잘못 선택했다는 의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조금도 꿈쩍도 않는 여러분의 산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 두려움의 산그늘에 너무도 오래 서 있어서 그 어두움에 익숙해져 버렸거나, 무작정 기도를 하면서도 "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 생각하거나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의 기도의 초점을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여러분이 만난 산에 대해서 설명하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앞에 놓인 산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산을 옮기시는 분께로 관심을 돌려 그 분의 영광과 능력과 신실하심에 초점을 맞추는 일입니다. 믿음 안에서 행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르십시오. 그러면 산이 내 앞에서 옆으로 비켜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나무가 마른 것을 보고 놀라느냐?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우리의 기도가 산을 옮길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산은 넘으라고 있는 것이지, 피해가라고 도망치라고 놓여진 것이 아닙니다.
기도로 산을 옮기는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