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이혼 가정 자녀를 생각하다
측은함과 꺼림 사이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불명예스럽게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입니다. 이제 이혼이 남의 집 일이 아닌 시대에 살고 있죠. 부부는 헤어지면 남이지만, 이혼 뒤에도 부모의 역할은 끝나지 않기에 고민이 깊습니다. 부모와 사회가 이혼에 대한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적절히 대처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사회제도적 지원이 미비할 뿐 아니라 ‘이혼 가정 아이 = 문제아’ 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이 여전히 많으니까요.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이야기, 이혼 가정 자녀를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은 어떤가요?
편집부가 독자에게 ...
내 아이의 이혼 가정 친구에 대하여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라 해도 사춘기 자녀가 있는 가정의 부모 이혼은 여러모로 상처가 큽니다. 분노와 우울, 좌절감에 빠져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아이들도 있죠. 이들에게 필요한 건 공감과 사랑, 관심입니다.부모들이 자신의 슬픔에 갇혀 아이를 방치하지 않는다면 이혼 가정 아이들도 얼마든지 훌륭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나 나폴레옹, 퇴계 이황 선생도 모두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란 위인이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이혼 가정에 대한 사회적 시선, 특히 어른들의 인식 개선이 절실합니다. 위클리 테마 기사를 통해 내 아이의 이혼 가정 친구에 대해 가졌던 거리낌과 불편한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길 기대합니다. _홍정아 리포터 |
이혼 자녀를 바라보는 우려 혹은 편견
‘내 주변엔 이혼한 사람이 없는데 왜 이혼율이 높을까’ 의아하다면 이유는 두 가지 중 한 가지일 공산이 크다. 부모의 이혼 사실이 알려지면 문제 있는 집 아이로 낙인찍힐 것이 두려워 주변에 숨기거나, 이혼만큼 재혼 가정 또한 많기 때문이 아닐까. 통계와 키워드로 살펴본 이혼 가정 아이들의 현주소.
취재 홍정아 리포터 tojounga@hanmail.net 도움말 송종건 소장(맑은샘심리상담센터)·정재민 소장(청소년가족교육연구소)·최세환 소장(세리자녀·부부상담센터)·김수림 대표(한국응용예술심리연구소)·왕수애 교사(경기 가운고등학교)
참고 도서 <이혼 가정의 아동> <이혼 가정 자녀 어떻게 돌볼 것인가> <이혼 부모들과 자녀들의 행복 만들기> 학생 모델 고혁빈(서울 강서공업고 1)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이혼 건수는 11만5천500건으로 결혼 건수인 30만5천500건의 1/3 수준. 이중 미성년 자녀가 한 명인 이혼 부부는 25.9%, 두 명은 20.2%, 세 명 이상은 3.3%였다.
청소년가족교육연구소 정재민 소장은 “이혼으로 가족 연대감이 파괴됐을 때 자녀들은 감정적·정서적 타격을 크게 받는다. 특히 사춘기 아이들이 부모의 이혼을 경험할 때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고 전한다. 부모 이혼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는 해외 연구 결과도 있다. 영국 가정 법률 전문 변호사 단체의 추적 연구에 따르면 이혼한 가정의 자녀 세 명 중 두 명은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고, 폭식이나 편식 등 식습관이 나빠진 비율도 33%에 달했다. 우리나라도 이혼 가정 자녀에 대한 우려가 만만치 않다. 이혼 가정 자녀의 학업과 친구, 학교생활은 과연 어떨까.
공부를 잘하기 위해선 정서적 안정이 기본. 부모의 이혼이라는 큰일을 겪은 아이가 과연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12세 미만 초등학생은 학업에 대한 부모의 관심과 지원 등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부모의 이혼으로 성적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상대적으로 중·고등학생은 영향을 덜 받는 편.
세리자녀·부부상담센터 최세환 소장은 “학업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불안이나 강박, 우울감 등 부정적 감정 요소가 없어야 한다. 부모가 이혼하는 과정에서 큰 상처를 받지 않았고, 부모와 자녀의 애착 관계가 공고하다면 오히려 그런 박탈 경험이 학업성취의 동기로 강하게 작용하기도 한다”고 전한다.
청소년 자녀가 있는 이혼 가정은 부모의 적절한 관리와 감독이 소홀해지면서 함께 사는 부모의 자녀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강화되는 양상을 띤다. 자녀가 친구 관계에서 소외되거나 위축되지 않게 하려고 지나치게 많은 용돈을 주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 아이에게 아빠 혹은 엄마를 잃게 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경제적 보상이 강화되기도 하는 것.
정 소장은 “이런 경우 아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용돈을 게임이나 과소비 등 비생산적인 여가에 사용하기 쉽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로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고 조언한다. 부모에게 직접적인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또래 친구에게 더욱 의존하거나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부모의 이혼 사실을 학교에 알릴 것인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학교와 교사들의 이혼 가정 자녀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과거에 비해 줄었지만 일부에선 여전히 차별과 편견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교사가 아이들을 훈계할 때 자신도 모르게 부모의 이혼 사실을 실수로 공개하는 경우 등이다.
경기 가운고 왕수애 교사는 “교사가 아이의 친구나 다른 학부모를 통해 이혼 사실을 알 경우, 아이는 더욱 불안하고 수치스러워 교사를 피하거나 도움을 거절할 수 있다. 교사 역시 부적절한 말이나 행동으로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지만, 이런 경우라도 교사가 아이의 변화나 어려움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이혼 가정 친구에 대한
엄마 vs 아이 동상이몽
“이혼 가정 아이에게 측은지심이 들어요”
이혼 가정 아이들에 대해선 모를 땐 전혀 모르다가 알고 나면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경우가 많아요. 중1 아들이 어느 날 같은 반 친구에게 쪽지한 장을 받았어요. 친구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왕따 당하는 아이인데, 며칠 전에 그 아이가 급식을 먹고 체했대요. 5교시 체육 수업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오다가 복도에서 토해 저희 아들이 함께 치웠다네요. 그게 고마워 친구가 건넨 쪽지라는데… 읽는 내내 제 마음이 짠해서 혼났어요. ‘엄마 혼자 생계를 책임지며 아이를 키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측은지심도 들고요. 황희경(가명, 48·서울 강남구 대치동)
“이혼했다고 다 원수 되는 건 아니에요”
오빠가 이혼을 했어요. 하지만 빨래며 청소며 웬만한 살림을 저희 엄마가 다 해주니 오빠와 중2 조카는 아내와 엄마의 부재를 느끼지 못하고 불편함 없이 지내는 모양이에요. 올케언니와 전 사이가 좋은 편이었고, 지금도 올케언니에게 나쁜 감정은 없어요. 조카에게 엄마에 대해 나쁘게 얘기하지 않으려고 조심해요. 그래서인지 조카가 부모의 이혼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아요. 학교 행사나 상담은 엄마가 가는 걸로 합의하고 약속을 지키니, 아이도 덜 혼란스러워하고요. 하지만 어른이 됐을 때 드러날 수 있는 트라우마가 걱정되긴 해요. 전양순(가명, 38·서울 송파구 가락동)
“어쩐지… 이혼한 집 아이였구나?”
아이 같은 반 친구 엄마 중에 남편과 헤어진 사람이 있어요. 주변 시선 때문인지 이혼과 동시에 이사하고 아이도 전학시키더군요. 마음 터놓고 지내는 이웃을 통해 나중에 들으니 이사한 곳에 가서도 이혼 사실을 숨기고 아빠가 해외 지사에 나가 일하는 걸로 얘기했다네요. 요즘은 이혼이 워낙 흔해서 그런지 부모가 이혼했다고 그 아이까지 색안경 쓰고 보진 않는 것 같아요. 한데 솔직히 다른 아이를 때렸다거나 학교에서 말썽을 피웠을 때 부모가 이혼해 그런가보다 쑥덕거리며 뒷말을 하죠. 이중적인 잣대가 있는 건 분명해요. 정진영(45·서울 서초구 반포동)
“이혼 가정 아이 늘면서 서로 위안을 삼더라고요”
요즘은 한 반에 부모가 이혼한 아이들이 4~5명은 되는 것 같아요. 예전처럼 학교에서 누구 엄마 아빠가 이혼했다더라는 식으로 이슈가 되진 않는 것 같아요. 아이 얘길 들어보니 이혼 가정 친구들은 처지가 비슷한 친구들끼리 위로받고 고민을 공유한다더군요. 한편으론 가엽지만, 아이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니 다행입니다. 양순미(43·경기 남양주시 가운동)
“이모부들 사랑과 관심에 아빠 공백 못 느껴요”
제 친구 영수(가명)는 아빠와 엄마가 2년 전 이혼을 해서 엄마와 함께 이모들 집 근처에 살아요. 이모들이 많아 가까이에 사는 이모부도 세 분이나 있죠. 처음엔 길에서 영수와 함께 가는 이모부를 보고 영수 아빠인 줄 알았어요. 나중에 자세한 얘길 들었는데,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아빠보다 옆 단지에 사는 이모부랑 야구도 보러 가고 더 친하다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저와 저희 아빠 사이보다 가까운 것 같아 부러운 생각까지 들었어요. 부모가 이혼하면 비뚤어지고 반항아가 된다는 어른들 생각이 틀렸다는 걸 다시 깨달았어요. 안진철(17·서울 성북구 정릉동)
“구속 없이 자유로운 친구가 부러워요”
단짝 친구 민영(가명)이는 3년 전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했어요. 처음엔 워낙 심하게 방황해서 가출도 했나 봐요. 지금은 아빠랑 살고, 엄마는 작년에 재혼했대요. 민영이는 학원도 영어 하나만 다니기 때문에 낮에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요. 시험 끝나고 친구들과 민영이네 간 적이 있는데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는 민영이가 자유로워 보였어요. 수학 학원 시간 때문에 저 먼저 나오긴 했지만, 솔직히 ‘오늘 학원 하루 빠질까’ 갈등했어요. 그날 이후 자유로운 영혼 민영이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임수빈(가명, 16·서울 양천구 목동)
“하루빨리 독립하고 싶어요”
성격이 맞지 않는데 자식들 때문에 억지로 사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못 살겠으면 이혼하는 게 맞는데, 친척들이 이러쿵저러쿵 엄마 아빠 얘길 하는 건 듣기 싫어요. 명절 때 할머니 댁에 가면 큰엄마랑 할머니가 내 앞에서도 엄마 흉을 봐요. 할머니는 자식 버리고 나간 독한 엄마 용서하지 말라면서 저보고 불쌍하대요. 아빠가 잘못한 건 생각도 안 하고 엄마만 나쁘다고하니 정말 팔은 안으로 굽나 봐요. 하루에 한 번 아빠 얼굴 보기도 힘든데, 부자라는 이유로 굳이 아빠랑 한집에 살아야 하는지… 하루빨리 독립해서 돈 벌고 싶어요. 이찬수(가명, 18·서울 구로구 고척동)
“이혼 가정 아이라는 편견 싫어 열심히 공부해요”
제가 어릴 때부터 자주 다투셨고, 각방을 오래 쓰셨기 때문에 부모님의 이혼은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에요. 부모님 이혼 뒤 아빠와 함께 살면서 한 달에 한두 번씩 엄마를 만나지만, 그 빈자리는 어쩔 수 없더라고요. 여름방학 무렵에 단짝 친구가 생기면서 제 비밀을 털어놓고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요. 제 학원비를 한 번도 밀린 적 없는 자상한 아빠에게는 고마운 마음이에요. 아빠의 기대에 보답하고 이혼 가정 아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서라도 꼭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요. 정민지(가명, 15·서울 강남구 역삼동)
부모의 이혼과 자녀를 위한
솔루션 모음
Solution 1 이혼에 대해 자녀에게 알리기
01 엄마와 아빠는 헤어지기로 했단다.
02 네가 많이 놀랐을 거라고 생각해. 아마 당황스럽고 뭐라 말하기 힘들 거야.
03 우리 가족에게는 지금과 다른 변화가 있을 거야. 아빠(엄마)는 집을 떠나 다른 곳에 살지만, 토요일마다 너를 보러 올 거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아빠네 집에서 지낼 거야.
04 우리가 같이 살지 않는다고 해도 엄마와 아빠는 네 엄마, 아빠고 언제나 너를 사랑한단다. 아무 때나 아빠(엄마)에게 전화할 수 있고, 네가 아빠(엄마)가 필요하면 꼭 너와 함께할 거야.
05 엄마 아빠가 이혼한 게 너에겐 참 혼란스럽고 힘들 거야. 궁금한 게 있으면 얘기해봐. 아빠(엄마)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답해줄게.
Solution 2 이혼 가정 아이들의 절망감 치유
01 부모의 이혼은 절망이 아니라 ‘변화’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혼은 부모 한 사람의 부재지만, 그것이 아이에게 절망이나 상실로 받아들여지기보다 새로운 가정으로 ‘변화’하는 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02 이혼은 특별한 가정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상황이 아님을 설명한다.
03 부모와 아이 본인이 각자 살아간다는 주체적인 사실을 인식하게 한다. 물론 부모의 역할과 도움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꼭 있어야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줄 것. 한 부모 가정에서도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Solution 3 내 친구의 부모님이 이혼했다?
01 이혼 가정 친구가 자신의 가정에 대해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릴 것.
02 이혼 가정 친구에 대해 다른 친구들에게 그 친구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알리지 말 것.
03 이혼 가정 친구를 대할 때, 이혼하지 않은 가정 친구와 차별하거나 특별하게 대하지 말 것. 과잉 대응이나 필요 이상의 특별 대우는 이혼 가정 친구를 더 힘들게 할 수 있다.
Solution 4 내 아이의 친구가 이혼 가정 아이라면?
아이가 이혼 가정 친구의 상황을 언급할 때 특별하거나 특이한 상황이 아니라는 태도를 보인다. 우리 주변의 다문화 가정과 기러기 가족, 주말부부 가정처럼 여건과 상황에 따라 가정의 형태가 다양해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내게 이혼이라는 거친 풍파가 닥치지 말란 법도 없다. 아이가 ‘이혼은 나쁜 것, 잘못된 것’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에 빠지지 않도록 가르칠 것. 불안한 마음에 “아빠(엄마)는 뭐 하시니?” 묻거나, 안쓰럽고 측은한 생각에 “○○에게 잘해줘”라는 얘기도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