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호 (본명; 손효찬孫孝贊, 1927년 평안북도 창성 출생) :
2016년 7월 16일 지병 악화로 별세하였다. 향년 89세.
어릴 적 수풍댐 건설로 고향이 물에 잠기자 중국 창춘으로 이주하였으며,
해방 후 귀국하여 관서 콩쿨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후 심사위원의 권유로 월남하였다.
이어 1946년 서울에서 작곡가 김해송씨가 이끈 KPK 악단에서 가수생활을 하였으며,
6.25를 전후해 녹음기사로 전업하였다. 그러다가 1954년 작곡가 박시춘에게 <나는 울었네>,
<숨쉬는 거리> 두 곡을 받아 취입, 크게 히트시켰다.
이후 그는 신세기레코드를 거쳐 오아시스레코드에서 1956년 박춘석 작곡의 <비 내리는 호남선>
을 발표하였는데, 이 곡은 당시 대통령 선거 출마자였던 해공 신익희 선생이 유세 도중 숨지자
그의 추모 곡으로 불리기도 했다.
계속 <사랑 찾아 칠 백리>, <하룻밤 풋사랑>, <이별의 성당고개> 등을 히트시켰다.
1957년 말에 도미도레코드로 이전, <짝사랑>, <물새야 왜 우느냐>, <이별의 부산항>, <청춘등대>,
<향수의 블루스>, <남행열차> 등의 히트곡을 쏟아내었고, 빅토리레코드에서 <해운대 엘레지>를
발표하여 크게 히트시켰으나, 방송 출연을 하지 않아 ‘얼굴 없는 가수’로 통했다.
1956 영화 녹음기사로서 ‘돌아오지 않는 해병’ ‘미워도 다시 한 번’ ‘빨간 마후라’의 녹음에
참여해 대종상 녹음 상을 7회나 수상했다.
60년대 중반까지도 <돌아가자 남해 고향>, <한 많은 명사십리> 등을 취입하여 히트시켰다.
가수로 150여곡을 발표했지만 영화 녹음 기사로는 무려 2,000여 편 이상의 영화 녹음 작업을
한 인물이다.
2001년 KBS ‘가요무대’ 특집방송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으며 2003년 한국연예협회 가수
분과위원회에 입회해 76세에 비로소 가수의 적을 뒀다.
1980년대 중반까지 영화녹음 작업을 했으며, 얼마 전까지 원로가수 거목회, 만나리, 뿌리회 등
가수친목회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었다.
유족으로 부인 이선자 씨와 3남 1녀가 있다.
울어라 기타줄 1957
무적인 사/이재호 곡
낯설은 타향 땅에 그 날 밤 그 처녀가
웬일인지 나를 나를 못잊게 하네
기타줄에 실은사랑 뜨네기 사랑
울어라 추억의 나의 기타여
밤 마다 꿈길 마다 그림자 애처로이
떠오르네 아롱아롱 그 모습 그리워
기타줄에 실은 신세 유랑 몇천리
울면서 퉁기는 나의 기타여
꿈길도 그 추억도 애달픈 그 사람도
모두가 조각조각 날라간 꽃잎
키타줄에 하소 싣고 떠도는
내 심사를
너만은 알아다오 나의 기타여
첫댓글 <울어라 키타줄아>는 가수 孫仁鎬님이 56년에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발표한 노래입니다.히트곡 <斷腸의 미아리고개;66608/李海燕>와 같이 발매된 이 노래는,霧笛人(본명;李三同,타명;李在鎬,南村人)作詞/李在鎬作編曲의 작품으로,낮선 곳에서 한 純眞한 處女와 맺어진 純情을 못잊어 기타줄에 哀戀한 가락을 실었다는 評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원래 李在鎬님이,高峰山님에게 주기로 했다가,孫仁鎬님에게 곡을 주어,이에 마음이 상한 高峰山님이 후에 작곡가의 길에 들어서게 했다는 <울어라 키타줄아>,모처럼 잘듣고 가며,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곡이 탄생하게 된 여러 배경과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네요.
고봉산님에게 새옹지마[塞翁之馬]일 수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픔없는 곳에서 평안하소서.........